(강릉 서지초가뜰) 스토리가 있는 음식
음식문화 탐사로 강릉에 들러 우연한 일정으로 들른 서지 초가뜰,
스토리가 기능을 앞서는 요즘, 오래된 못밥이야기에 모두들 쉼취한다.
강릉 서지마을은...
태백산맥의 수많은 산이 남으러 향하던 중 시루봉 하나가 멈추어 우뚝 서 골짜기를 만든다.
시루밑골, 메내골, 안골, 서지골… 창녕조씨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이다. 그 중 큰댁이 살고 있어 큰댁 마을이라고 부르는 서지는 길한 땅, 상서로운 땅, 그러기에 쥐도 곡식을 물어다 갈무리해두고 싶은 땅, 이런 뜻 만큼이나 아늑한 골짜기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300년을 이어온 서지 조진사댁에 새댁이 시집온다. 시집 오는 새댁이 가장 먼저 본 것은 열매만 오롯하게 담고 서 있는 감나무였다. 새댁의 어머니는 감나무같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 옆에는 언제나 운유암을 오르는 시할아버님이 계셨다. 운유암은 사람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는 소나무와, 세상살이 이치를 알대로 알고 있는 대숲이 할아버지와 한 몸으로 어우러지는 자리이다.
그리고, 몇 백년이 되어 흘러온 저 그릇... 그 속에 담긴 감 곶이 떡은 부른 배에도 자꾸자꾸 손이 가게 만든다.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와 정성스런 음식은 음식이 단순한 먹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되새기게 하였다.
못밥 이야기
농사일이 사람 살아가는 일 중 가장 근본이라고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믿고 계셨다. 그러기에 두 분이 농사 뒷바라지하는 모습은 어느 종교 의식 못지 않았다.
모심는 날이 되면, 진사댁 부엌은 논가에 이고 나갈 음식준비로 더욱 분주해진다. 이애걸이 참을 내고 잇달아 아침준비, 또 첫참, 점심, 술 깨는 참, 세참, 야지랑참, 아주머니들의 능숙한 손놀림과 상상도 못할 반찬의 양에 새댁은 속으로 놀라는 일 뿐이다.
질꾼 앞앞이 밥 한두가리, 국 한두가리, 떡갈나무 잎에 담은 찐두부, 구운 꽁치, 쇠미역튀각이 맨손으로 하나씩 돌린다. 질꾼들은 두가리 밥에 자반, 머위나물, 약고추장을 썩썩 비벼 기름에 묻힌 곰취를 손바닥에 놓고 쌈을 싸 즐거운 함성과 함께 입속으로 넣는다. 그런 가운데 너댓살 된 코흘리개 아들과 함께 온 질꾼 장정 하나가 수저를 쥔 채 뭔가 편하지 않은 눈치였다. 못밥터가 집 가까이라 부엌에 남아 잔일을 돌보시는 어머니에게 돌아와 그 장정 이야기를 하자, 어머니는 깜짝 놀라 부랴부랴 밥을 푸시고 반찬을 챙기셨다. 잠시 후 집 앞길로 바쁘게 달려가는 그 장정을 보았다.
실은 아이랑 만삭인 부인은 장정과 함께 못밥을 먹지만 집에 남은 거동 못하는 어머니가 눈에 밟혀 목이 메었다는 것이다.
못밥 먹던 그 자리에는 효와 우애, 사랑 이런 것이 가득했다. 반갑게 못밥을 받던 흙 몸의 질꾼들, 그들을 위해 한 몸이 되어 음식을 만들던 안식구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새댁에게 그날 할아버지의, 어머니의 종교 같은 믿음이 눈물겹도록 숭고했다.
여재당, 경농재, 그리고 홍운탁월 <서지초가뜰>
서지초가뜰 최영간 사장은 할아버지가 묵으셨던 여재당에서 음식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농사를 경영하는 마음으로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그대로 있는다는 의미의 여재당은 어느새 할아버지의 그 마음과 뜻을 따라 자신도 묵묵히 걷고 있는 가족의 변함없는 모습이다.
흙이 사는 모든 것에 내보내는 사랑이야말로 어머니의 사랑과 같다며, 그것이 여재(如在)라고 한다.
농약과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들의 채소와 나물을 심고 캐어, 모든 사물을 아낌없이 내놓는 것이야말로 흙과 어머니의 사랑이며, 이를 받는 이가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홍운탁월, 아름다운 마음으로 구름을 그릴 때, 넉넉함으로 남겨놓은 여백에는 어느덧 밝은 달이 떠 있을 거라는 그녀의 믿음.
“무엇이든 억지로 이루어지는 일은 힘들다. 그리고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순리에 어긋났기 때문이다.”라며 올바른 뜻을 품고 넉넉한 마음으로 천천히 즐겁게 그러나 땀 흘려 행하면, 어느 사이 우리 옆에는 값진 결과가 우리의 뜻과 함께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첫댓글 배용준의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떠난여행 "머물다 " 편에 소개된곳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