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읽은 소설(또는 동화) <춘향전>과 더불어 숱하게 리메이크된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뻔히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사실 춘향전이 이렇게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던 이유에는 판소리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판소리 창본으로 전해지고 있는 춘향가만도 수십가지에 이른다. 참고로 판소리는 똑같은 창본이라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한 '광대 예술'이기에, 선생 부르는 소리와 제자 부르는 소리가 다른 것이 또한 매력이다.)
고전문학이나 국악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춘향전 원본이 야하다'는 말은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판소리도 사실 예외는 아니다. (기대가 큰 사람의 비위를 맞출 자신은 없지만.) 솔직히 나도 야한 것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ㄴ게 아니라..좋아하는 사람인지라..-_-; 춘향가 가사에 나름대로 관심을 많이 가졌었다.
아주 상당히 야한 버전도 없진 않지만, 개중 공개적으로 씹을만한 수준인, 동초제 춘향가 사설을 골라서 코멘트를 달아봤다. 특히 이 창본에 나오는 춘향이가 적당히 내숭녀 & 개김녀인지라 그것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노파심으로 말하지만, 이 글에서 무언가 학술적인 배움을 원한다면 당장 창 닫으시라. 그냥 나 혼자 재밌다고 씹어본 것이니, 씹는데 동참할 사람들만 읽기 바란다.
또 하나 으름짱을 놓자면, 흐름이 끊길까봐 언급할 부분의 사설을 통째로 다 퍼왔다. 그래서 분량이 제법 많겠으니 읽기 지겨운 사람은 어여 창 닫으시라. (물론 춘향가 전체 가사를 다 퍼온 건 아니고, 씹고 싶은 부분만 퍼온 것이다.) 근데 사설 은근히 재밌을걸? :)
파란 글씨가 내가 씹은 부분인건 설명 안드려도 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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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령이 춘향이 꼬시러 몰래 침입하여 첫날밤을 치르는 대목 - 사랑가로 노는 대목까지>
(아니리)
춘향모와 향단이는 각각 방으로 들어가고 춘향과 도련님은 숫사람이요 춘향모도 모르게 첫날밤이 되어 노니, 오래 이야기 헐 수도 없고, 또한 도련님 급헌 마음 위선 다짜 고짜가 으뜸이였다. 춘향 옆으로 바짝바짝 들어가며
(평중머리)
이애 춘향아 이리 오너라. 이애 춘향아 이 만큼 오너라. 밤이 깊어 간다 잠자자. 이마작된 일을 아니 오면 어쩌자고 이러느냐.
춘향은 부끄러워 아니 오랴허니, 도련님 급헌 마음 뭉그적 뭉그적 들어가며, 이애 춘향아 말들어라. 백년해로 헐 기약 오늘밤이 첫 마수라, 첫 마수를 잘 붙여야 오는 행락이 좋다더라.
열심히 말로 꼬시는 몽룡. 장하다.
춘향 손을 잡을 터이나 첫날밤 신부 손을 잡으면 공방살이 있다는지라, 차마 손은 못 잡고 한 손으로 춘향머리를 만지며 또 한 손으로 춘향 목을 에후리쳐 담쑥 안으니, 춘향이 부끄러워 속으로 웃으며, 『아이고 나는 몰라요. 사또님 알으시면 어쩔라고 이러시오.』
'속으로'에 주목할 필요 다분히 있다. 그래도 내숭은 좀 떠는군. 더 장하다, 춘향아.
오냐 춘향아 염려 말어라. 『사또님은 우리 연치에 날보담 훨씬 더하셨단다.』
누..누가 말해줬니? -_-
춘향아 염려 말어라. 춘향의 허리를 안고 상하의복을 모다 벗겨 병풍 위에 걸뜨리고, 도련님도 옷을 벗고 꼭 끼고 누었으니 좋을 호자가 절로 된다.
동방이 밝어 오니, 향단이 밖에 나와 춘향 방 근처로 거닐며 넌짓이 허는 말이,
“아이고 날이 벌써 밝었구나.”
향단이가 착하긴 착하다. 들키기 전에 도망가라고 깨워주는군.
춘향이 방에서 이 말 듣고, 도련님과 일어나 옷을 입고 대문 밖에서 둘이 서로 섭섭허여 손길을 마주잡고 차마 놓지 못 허다가,
도련님 이른 말씀,
“이애 우리 이러고 있다가 남에게 우세허기 쉽겠다. 오늘밤에 일즉 오마.”
재삼 부탁허고, 도련님은 책방에 돌아 가 자는 듯이 누워있고,
춘향은 제 방으로 들어가 탐탐헌 마음에 잠 썩 못 들더니,
늦게야 잠이 들어 한정 없이 자던 것이었다.
완전범죄(?)라고 안심하며 둘 다 잘도 잤으나...
춘향모 고히 여겨 춘향방문 가만히 열고 자는 얼굴 바라보니, 반치나 야윈 듯 허여 새로 핀 꽃봉이가 봄 찬바람 분 듯 허며, 적은 바람에 가는 물결같이 입은 옷이 잔살 구겨 꼬기작 꼬기작 전일과 다른지라.
월매의 매서운 눈을 피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군.
(자진머리)
춘향 모친 분이 바쳐 밖으로 우루루루루 우루루루 나가더니, 망치하나를 찾어 들고 향단이를 부르더니마는, 머릿채를 감아 잡고, 네 요년. 네 요년아 말 허여라.
바른 대로 말을 허면 죽기를 면허려니와 만일에 둔사 허면, 죽고 남지 못 허리라. 간밤에 너의 아가씨가 무슨 일을 저질렀제. 아가씨 허는 일을 너는 응당 알 터이니 바른 대로 말 허여라.
하인의 신세는 이다지도 처량하구나. 향단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아니리)
이렇듯 호령 허니 향단이 겁을 내여.
“마나님 분함을 참으시고 제 말씀을 들으시오. 간밤에 아가씨와 저와 바느질을 허노라니 책방 도련님이 나오셔서 아가씨와 말씀 허시기에 저는 제 방으로 갔아오니, 그 뒷일은 어찌된 지 모르겠어요.”
설마 몰랐을까...?
춘향 어무 깜짝 놀래,
“아이고 일은 당했구나. 이년아 그 도련님이 공연히 오셨을까. 네 년이 중간에서 노랑수건 노릇을 했제.”
“마나님 이번 일은 아가씨와 제 죄가 아니오라, 마나님 허물로 이렇게 된 일이지요.”
“아이고 이년들, 일은 모도 저희가 저지르고 허물은 내게다 둘러씌우는구나. 어째서 내 허물이냐.”
“당초에 아가씨는 그네 뛰러 갈 생각도 없이 앉었는데 마나님이 가라고 시켜보내서, 하나는 남중 문장재사요. 하나는 여중 문장재녀라. 재사재녀가 눈이 맞어 그리 되었사오니, 하나님이 시키신 일이 아니오며 마나님이 시키신 일이 아니오니까. 너무 분히 생각 마옵소서”
이래서 예쁜 애들을 함부로 내보내서 키우면 안 되는 것이로군.
춘향모 들어보니 일이 그럴 듯 헌지라.
“이년아 듣기 싫다. 아가씬가 무엇인가 깨워 오너라. 어떻게된 사연이나 들어보자.”
향단이 들어가 춘향을 깨우니 춘향이 깜작 놀래 일어나거늘 마나님 진로 허신 말을 다 허니,
춘향이 겁을 내여 저의 모친 옆으로 가서 벌벌 떨고 서 있는 듸,
(진양조)
춘향모친 전후사를 생각 허니 설움이 북바치여, 춘향을 물그러미 바라보며, 두 눈에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예기천하 무상헌 년아 늙은 어미는 너만 믿고 살았는디 네 그럴 줄 내 몰랐다.
만득으로 너를 낳고 일가친척 바이없이 내 홀로 너를 길러 너와 같은 배필 맺여 내몸 의지 허쟀더니 오늘 일을 두고보니 앞일을 알겄구나.
육십 당년 늙은 년이 뉘게다 의탁을 허잔 말이냐.
이렇듯이 울음을 우니 춘향도 울고 향단이도 울고 한집안 세 식구가 울음판이 되는구나.
모전녀전이라 하였던가...
(아니리)
춘향모 울다가 춘향과 향단이 우는 것을 보더니만 손수 탕치는 말이였다.
“워라 워라 시끄럽다. 울어도 쓸데없고, 한탄해도 소용없고, 소 흥정이라고 도로 물릴 수도 없는 일이고, 허기야 다른 사람 같쟎에, 이골 사또 자제라 허니 좋기사 좋다마는,
역시 집안은 좋고 볼 일이란 말이던가.
그러나 도련님이 나도 모르게 오셔서 밤참도 없이 오즉이나 시장 허셨겄느냐. 오늘밤에 일즉 나오시라고 내 기별로 왕복이나 허여라. 그리고 향단아 아가씨가 간밤에 잠도 못주무시고 속이 오죽 쓰리겠느냐. 양 두근만 사다가 고와드려라”
그래..월매..울다가 말고 이런 생각이 들었겠지. '기회닷!'
신명을 내여 일변 음식을 작만허여 해지기를 기다리는 듸, 춘향 보담 춘향모가 훨씬 더 기다리든 것이였다.
그때여 도련님은 그날 밤에 다시 오마 약속이 깊었는지라, 해 저물어 퇴령 후에 춘향 집을 나오는듸,
그때에 춘향모는 도련님을 기다린다고 대문밖에 서 있을 제, 도련님 나오시다가 춘향모 서있는걸 보고 들어가지 못 허고, 먼데서 주저허니
춘향이 그 물색을 알고 향단이를 뒤 협문으로 내여 보내, 도련님께 손을 처 춘향 방으로 모시거늘,
춘향 어무 발서 알고 안으로 들어가 춘향 방문 비긋이 열며 도련님께 쉰사 허되,
“귀중허신 도련님이 이 누지에 왕림 허시니 하상견지 만만이요.”
도련님 각중에 무안한 듯 대답 허되,
“금야견지 의외로세.”
춘향모 두 말 없이 문닫고 나가더니 도련님 잡술 주안상을 차리는듸.
쉽게 말해서, 춘향과 동침하고 몰래 도망나가는 이도령을 붙잡아 쇼부를 봤다는 뜻이렸다. 워낙 줄여놓은지라 이해하기가 다소 힘든 대목이다.
얼핏 보기엔 길어서 지루하게 보이지만, 이 가사야말로 판소리의 맛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판소리로 직접 들어도, 매우 속도가 빠른 rap 같아서 매우 재밌는 부분 되겠다. 저렇게 다 차렸으면 상다리가 부러지고도 남겠군.
(아니리) 이렇듯 차려다가 도련님 앞에 들여놓고,
“불시로 차리느라 변변치 못하오니 이는 장모의 허물이오나 이 술이 경사 술이오니 둘이 한잔씩 먹읍시다.”
'장모'라고 아예 질러놓고 시작하는군. 대단하다 월매.
도련님 이른 말씀
“주주객반이라 허였으니 장모가 먼저 한 잔 드오.”
춘향모 먹은 후에 다시 부어 도련님께 드리니, 도련님 반만 먹고 춘향모를 다시 주며,
“이것이 합환주니 장모 딸 다려 먹으라소.”
춘향모 잔 받아 춘향 주며,
“백년해로 하자 허고 일배 반음 허였으니 사양 말고 다 먹어라.”
춘향이 부끄러워 입만 대고 내려 노니, 춘향모 다시 부어 도련님께 권하는데 서로 주고받고 이 삼배가 지낸 후에 사 오배 육 칠 배씩을 먹어노니, 춘향모 술이 얼근 허여 한이 북바처 한숨 쉬고 눈물 지며 목이 메여 허는 말이,
“아- 내 마음이 일희일비요. 한편은 영감생각을 허니 눈물이 절로 납니다. 도련님은 물론 양반이지마는 내 딸 춘향도 씨는 상사람이 아니요. 도련님 제 말씀을 들어보시오..”
춘향이가 양반 씨라는 것을 해명함으로써, 몽룡을 더욱 굳건히 잡아두려는 월매의 속셈 되겠다. 근데 예나 지금이나 술에 취해서 깊은(?) 말 꺼내는 건 똑같군.
(엇중머리)
회동 성참판 영감께옵서 보외로 남원에 오셨을 제,
일색명기 다 버리고 나를 수청케 허시더니 뫼신 지 수 삭만에 이조참판 승차 허여 내직으로 가신 후에,
저것 밴 줄 짐작 허고 연유로 고백 허니, 젓줄 뗄만 허면 다려간다 허시더니,
그 댁 운수 불길허여, 영감께서 별세 허시니 춘향을 못 보내고 내 홀로 길러낼 제,
제 근본이 있는고로 만사가 달통이라. 누가 내 딸이라 허오리까.
내 지벌 부족허니 재상가 부당허고 상천배는 부족허여
상하불급 혼인 늦어 주야로 걱정 중에 도련님을 모셨으나,
도련님은 양반이라 춘절나비 꽃 본 듯이 잠깐 보고 바리시면,
독수공방 어린것이 속절없이 늙을진데, 전들 아니 불쌍 허오. 부디 변치나 마옵소서
..라고 경험담을 섞어 질러놓음으로써 "너 내딸 책임져"라는 말을 완곡하게 전달하고 있다. 사실 어린 몽룡이야 춘절나비 꽃 본 수준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양반의 평생사를 맹세 아니 헐 수 있나. 내 만일 춘향을 잊으면 인사불성의 쇠아들이지.”
“도련님 말씀이 그러하옵시니, 기왕 육례는 못 이뤘으나 내 맘이 후룬허게 혼서례장 사주단자 겸하여 증서나 한 장 써주십시오.”
치밀하다 월매. 파이팅!
“아, 그것은 그리허소.”
연상을 다가놓고 마노연적 물을 따라 수양매월 진케 갈아,
청황모 무심필로 백릉운화 간지상에 두어줄 써 춘향모를 주니,
그 글에 허였으되
(중머리)
천장지구에 해고석란이요. 천지신명은 공증차맹이라 쓰여있고,
정묘오월 십오야 표주자필 이몽룡이라 허였거늘
넌 걸린거야 몽룡...
고히 받어 품에 넣고, 알심 있는 춘향모친 밤이 매우 깊었으니 어서 편안히 주무시오.
금침 내려 깔아놓고 안방으로 건너간 후,
이도령 성춘향은 월태화용 그림같이 둘이 서로 바라보고 쌍긋쌍긋 웃어가며 촛불을 껐다 허니,
그 뒷일이야 어찌된 줄 뉘 알리요. 말 아니 하여도 아시리다.
아무렴...모르는 사람 없겠지.
(아니리)
이렇게 이틀 밤을 지내 노니, 허물도 적을뿐더러 이제는 춘향 모도 아는지라,
하루는 도련님이 술도 한잔 얼근 허여 마음놓고 사랑가를 부르며 놀든 것이였다.
(진양조)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어허둥둥 내 사랑이야.
삼오신정 달 밝은 밤 무산천봉 완월 사랑, 목락무변 수여천에 창해같이 깊은 사랑,
월하에 삼생연분 우리 둘이 만난 사랑. 어허둥둥 내 사랑이야.
지리산 높은 봉과 요천수 맑은 물의 산수정기 한데 모아 우리 춘향 삼겼는가.
전생의 연분으로 이생에 만났으니, 추천 허든 채색줄이 월로의 적승인가.
내 보든 광한루가 초왕의 양대련가.
사랑 사랑 내 사랑이지. 어어어 어어어 어허 둥둥 내 사랑이야.
너 죽어도 내 못 살고, 내가 먼저 죽거들랑 너도 부디 못 살어라.
한자어를 생각하면 주옥같은 싯귀가 되겠으나, 어쨌든 요지는 '좋아 죽겠다'는 말이렸다.
생전 사랑이 이럴진대 사후기약이 없을소냐.
너 죽어서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글이 되되, 따 지 따 곤 달 월 그늘 음 아내 처자와 계집 녀자 변이 되고.
나는 죽어 글이 될 제, 하늘 천 하늘 건 날 일 볕 양 지애비 부자와 아들 자자 몸이 되어,
계집 녀자 변에다가 아들자 자를 떡 붙이여, 좋을 호자로 만나거들랑 나인 줄을 알려무나.
역시 여자를 꼬시는 데는 문자를 쓰는 게 최고인가.
나는 그것도 되기 싫소.
춘향..은근히 고집 세고 개기기도 잘한다.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꽃이 되되, 이백도홍 삼춘화가 되고,
나는 죽어서 나비 될 제, 화간 쌍쌍 범나비 되어,
네 꽃봉이를 내가 덤벅 물고, 바람 불어 꽃봉이 노는 대로 두 날개를 쩍 벌리고 너울너울 놀거들랑 나인 줄로 알려무나.
역시 사랑을 하면 시를 쓰게 되는가보다.
그것도 나는 되기 싫소.
역시 춘향이 잘 개긴다. 그러나 굴하지 않는 몽룡.
그러면 죽어서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종로 인경이 되고, 나는 죽어 인경마치가 되어,
새벽이면 삼십 삼천, 저녁이면 이십 팔수로 뎅.. 뎅..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내 사랑 춘향 뎅- 이도령 서방 뎅- 그저 뎅 뎅 치거들랑 나인 줄을 알려무나.
사실 상당히 유치한 감상이지만, 몽룡의 노력이 정말 가상쿠나.
(아니리)
“나 아무 것도 되기 싫소.”
“이애 그게 웬 말이냐. 우리가 살아서 인연이 하 지중 허기에 죽어서도 만나자는 말인데, 마단 말이 웬 말이냐.”
“정리는 그렀오마는, 살어서 밑으로 생긴것도 원통헌 듸, 죽어서도 날더러만 밑으로 가라니 재미없어 내사 싫소.”
“이애 그러면 우리 정리에 너를 우으로 생기게 못 헐게 무엇이란 말이냐.”
이대목이 사실은 문제(?)가 약간 있는 대목이라고 누군가가 그랬다. 단순히 몽룡이 한 '말'만 트집잡는 게 아니라는...-_-;
(자진중머리)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어둥 둥둥 내 사랑이지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로다. 어허 둥둥 내 사랑이야.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 죽어 우으로 될 것 있다.
너는 죽어서 매 웃짝 되고, 나는 죽어서 매 밑짝 되어,
사람의 손길이 얼른 허면 천원지방의 웃짝으로 빙빙 돌거드면, 너인 줄을 알어주마.
정말 가상쿠나 몽룡..그러나 끝까지 개기는 춘향..
(아니리)
“나 그것도 되기 싫소.”
“이애 위로 갔어도 마단 말이냐.”
“위로는 갔어도 가운데 주인 삼아 따러 다니는 것 하나 꼴 보기 싫여 아무것도 안 될라요.”
춘향 나이 십육세에 페미니즘을 깨우쳤군.
“그는 네 팔자 소관이라 할 수 없느니라. 그만두고 우리 업고 좀 놀아보자.”
역시 가부장적인 몽룡. 팔자소관이라고 못박아버리다니. 게다가 할 말 없으니깐 업고 놀자고 은근슬쩍 말 바꾸는 것 보세..
“아이고 도련님은 험한 소리도 다 허시오. 업고 놀다가 미끄러운 장판 방에서 넘어지면 어쩔라고 그러시오.”
“이애 네가 모르는 말이로다. 업고 놀다 넘어지면, 넘어지는 체 허고, 그 말 속 알어 듣것느냐.”
도련님이 춘향을 업고 노는 듸,
넘어지는 체 허고...그 다음엔 뭘 어쩐다는 거지? 하여튼 수작도 가지가지로다.
(중중머리)
둥둥둥둥 어허둥둥 내 사랑. 네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네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둥글둥굴 수박 웃 봉지 떼 뜨리고, 강릉 백청을 다르르 따라, 씰랑 발라버리고, 붉은 점만 가려 그것을 네가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어
춘향..먹여준다는 데도 계속 개긴다. 선수로군.
어둥 둥둥 내 사랑이야.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능금을 주랴 포도를 주랴. 뒷동산 올라가 시금 털털 개살구 작은 이도령 서는데, 네 먹으랴느냐.
작은 이도령이 대체 누굴까?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벌써 몇번째 개기는 것인가! 아..이렇게 남자를 애타게 만드는게 그녀의 스킬이었단 말인가...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소 잡어 주랴, 돗 잡어 주랴, 양을 잡어 주랴, 닭을 잡어 주랴, 나를 통차 삶어 주랴.
아이고 도련님 무슨 말씀이요. 사람을 어이 먹소리까.
이애 춘향아 말 들어라. 사랑에 지쳐서 허는 말이로다. 둥둥둥둥 어둥둥둥 내 사랑.
이 대사도 압권이다. 그냥 맨정신으로 생각하면 '나를 삶아주랴'는 변태가 아니고서는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다. 아니면 사랑에 눈 먼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겠지.
(아니리)
“후유, 아이고 고만 내리자.”
탁 내려놓더니
“이애 사랑도 품앗이라. 내가 너를 업었으니 너도 나를 좀 업어야지”
치밀하다 몽룡...어쨌든 여기서 교훈 하나. '사랑은 품앗이'
“내가 도련님을 무거워서 어떻게 업어요.”
춘향이 개기는 덴 이제 두손 다 들었다.
“내가 업듯이 허란 말이 아니라, 네 양어깨 우에다 내 두 팔만 들어 얹고, 너 다니는 대로 징검 징검 따러 다니면 그 아니 좋겠느냐.”
춘향이가 도련님께 졸리다 못 견디어 도련님을 업고 노는 듸, 잔뜩 부끄러워 방 자는 빼 놓고, 내자 서자만 가지고 놀든 것 이였다.
(중중머리) 둥 둥 내서, 어허 둥 둥 내서, 둥둥 둥둥 어둥 둥 둥 내서, 도련님을 업고 보니, 좋을 호자가 절로나. 부용작약의 해당화 탐화봉접이 좋을 호, 소상동정 칠 백리 일생 보아도 좋을 호, 단산구고 제일봉에 봉과 황이 좋을 호, 동방화촉 깊은 밤 삼생가약이 좋을 호로다. 둥둥둥둥 어허 둥둥 내서. 도련님이 좋아라고, 이애 춘향아 말 들어라. 너와 나와 단 둘이 있는 듸, 무엇이 부끄럽단 말이냐. 방짜 마저 넣려무나. 춘향도 그제는 파겁 되어, 둥둥 내 서방 어허 둥둥 내 서방. 이리 보아도 내 낭군 저리 보아도 내 서방. 내 낭군이지, 내 서방이지요. 도련님이 좋아라고, 대답을 백번 천번 허는 듸, 그저 와야 와야 와야. 어허 둥둥 내사랑이로다.....................(후략)..
하여간...잘들 논다.
총평..
몽룡: 사랑에 빠진 당신은 시인.
춘향: 할 말은 하는 조선시대 페미니스트.
월매: 딸 신분상승시키려는 처절함. '증서'를 상기하자.
향단: 하인이 뭔 죄냐.
판소리 사설을 조목조목 씹어 읽다보면, 옛 민중들의 재치에 감탄하게 된다. 오늘은 약간 비꼬는 듯이 가볍게 씹어보긴 했으나, 이런 것도 판소리를 알아가는 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직도 남원에서는 해마다 '미스 춘향'을 선발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선발대회를 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춘향의 이미지는 정숙, 기품 등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수많은 춘향전의 고본들에서 표현되는 춘향의 이미지는 다소 괄괄한 편이다. 여기서는 언급 안했지만, 몽룡이 떠날 때 "갈테면 날 죽이고 가라!"고 외치는가 하면, 떠난 다음에 신경질 부리는 대목도 가관이다.
결국 영화나 드라마등에서 "도련님, 소녀를 잊지 마옵시와요.."하며 소리죽여 흐느끼는 춘향은 재가공된 것인 셈이다. 솔직히 당신이 춘향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판소리 사설을 곱씹어 읽어보면 우리 민중의 문학과 예술이 참으로 '솔직'했음을 알게 된다.
이미 서양화된 귀들을 붙들고선, 우리음악을 들으라고 무조건 외치지는 않겠다. 다만 우리음악이 '엄숙하고 심심하고 지루한' 구석만 있다는 오해는 풀어주고 싶다. 가끔은 이렇게 판소리 사설을 가볍게 씹어보면서 오해를 풀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