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에게 제 근본을 고백했듯이, 저는 원래 영어 통역사로 일하며 회화 표현 습득을 위해 미국 시트콤 시청을 시작했다가, 엉뚱하게 시트콤에 중독되어 시트콤 연출가의 꿈을 갖게 된 사람입니다.
이제 '논스톱'에서 자유로운, 시트콤 매니아의 한 사람으로, 오늘은 시트콤이라는 장르에 대한 이야기, 그중 한국 시트콤의 모태를 이룬 미국 시트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원래 시트콤이란 장르가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르입니다. 일본에도 아직 제대로 인기를 끄는 시트콤은 없구요, 아시아 지역에도 별로 없지요. 한국에 유독 시트콤이 많은데, 그 가장 큰 이유를 저는 두 명의 걸출한 시트콤 연출가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은 '남자 셋 여자 셋'을 만든 송창의 선배님, 또 한 사람은 '순풍 산부인과'를 만든 김병욱 피디님.
알만한 사람은 다 알듯이, 원래 '남자셋 여자셋'의 원형은 미국 최고의 청춘 시트콤 'Friends'이지요. 기존 우리의 시트콤들은 미국 시트콤의 가족주의 영향을 받아, 주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었지요. (LA 아리랑, 오박사네 사람들) 이런 유형을 벗어나 기숙사/혹은 하숙집의 틀 아래, 청춘 군상들이 나와 이런 저런 사랑 이야기에, 툭닥이며 사고치는 이야기를 처음 선보인게 '남자 셋 여자 셋'이었지요.
'남셋 여셋'의 성공으로 자극받은 방송 3사는 이후 다양한 청춘 시트콤을 들고 나오게 되었지요. '프렌즈'도 제가 참 좋아하는 시트콤이지만, 그보다 더 좋아하는 시트콤은 '싸인펠드'라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제 모든 이멜 아이디는 다 싸인펠드가 들어갑니다.) 아주 이기적인 뉴요커 네 사람의 이야기인데, 권선징악의 구조가 아니라 사악한 인간의 본성을 씨니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더욱 통쾌한 코미디라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싸인펠드'에 비견할만한 한국 시트콤이 있다면, 그건 '세 친구' 정도가 되겠군요. 아주 이기적이고, 매일 작업(?) 들어갈 생각만 하는 나쁜 친구들 이야기, 주인공들이 너무 빨리 떠서(?) 조기 종영하게된 불운의 시트콤... 모르는 사람들은 정상의 자리에서 멋지게 물러났다며 박수를 보내지만, 저는 '세 친구'는 주간 시트콤의 강자로 '프렌즈'처럼 충분히 장수할 수 있는 작품이었는데, 너무 빨리 끝난게 아쉽습니다.
'프렌즈'와 '싸인펠드'의 인기 질주 이후, 미국 시트콤은 춘추 전국 시대를 맞습니다. 'Mad About You' -헬렌 헌트를 발굴한-와 'Caroline in the City' -신문 만화에서 컨셉을 빌려온- 'Married with Children' -본격 섹스 코미디라 할만하죠.- 등 다양한 작품이 인기를 끌었지만, 절대 강자는 없었는대요.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작품이, 'Sex and the City'입니다. 얼마전 골든 글로브 상 시상식을 보니, 이 시리즈의 연기자들이 상을 많이 타가던데요. 유료 채널, HBO에서 하는 통에 시청률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작품성은 정말 뛰어난 시트콤입니다. 스튜디오 진행 시트콤이 아니라 'Alley McBeal'처럼 야외 드라마 촬영으로 만들기에 뛰어난 영상미와 짜임새 있는 각본이 이 시리즈의 매력이지요.
저는 송창의 선배님이 '연인들'이라는 로맨스 시트콤을 들고 나왔을때, 한국판 '앨리 맥빌'이나 '섹스 앤더 씨티'가 되려나?하고 눈여겨 봤는데, 방향은 좀 다르더군요. (왜 한국에는 남자가 주인공인 시트콤은 성공하는데, 여자들 사랑 이야기에 촛점을 맞춘 시트콤은 인기가 없는걸까... 흠... 아쉽군요.)
저는 요즘 김병욱 피디가 만드는 시트콤'똑바로 살아라'의 결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분이 만드는 시트콤은 한국 토종 시트콤이라 부를만한 자신의 독특한 색깔이 있는것 같습니다. 특히 일일 시트콤이라 일년에 300편에 가까운 에피소드를 만들면서, 그 대본의 완성도를 훌륭히 지켜간다는 점에서 김병욱이라는 연출가는 걸출한 PD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논스톱의 특징은? 청춘 연기자들의 캐릭터와 슬랩스틱 코미디로 승부한다지요. 청춘 시트콤은 좀 가볍긴 하지만, 나름대로 필요한 장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똑바로 살아라'의 선전과 송창의표 시트콤의 신상품을 기대해 봅니다. 미국 시트콤과 달리 적은 제작비, 잦은 방송 일정이라는 약점을 안고도 선전하는 한국 시트콤의 밝은 미래를 희망하며...
첫댓글 마이클럽 올미다 사랑방 아지트에 퍼갑니다. 김피디님의 시트콤 개론에 정말...많은걸 배우고 있습니다.감사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