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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지척에 널려있는데 어떻게 잠에 들 수 있지?"
- 볼고돈스키 폭발 직전의 의문의 전화에서
1999년 9월 9일, 자정이 넘는 순간이었다. 남쪽 다게스탄의 전쟁은 러시아군의 일방적인 공세 속에 끝나가고 있었고, 수도 모스크바 시민들은 다음날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어 있었다. 그러다 모스크바 전역을 뒤흔드는 엄청난 폭음 속에 잠에서 깨어나야 했다. 남동쪽 구리아노바 19번 거리의 9층 건물이 폭발과 함께 94명의 주민들의 목숨과 함께 사라졌다. 249명이 부상을 당했고 근처 15동의 건물도 폭발의 충격을 입었다. 누군가 300킬로에서 400킬로에 달하는 폭탄을 장치하여 주로 근로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심야에 폭파시킨 것이다.
구리아노바 폭탄 테러
누가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가? 옐친 대통령은 즉각 3만에 달하는 모스크바 주거 건물 전체에 대한 일제 폭발물 수색을 지시했다. 임명된지 1달이 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9월 13일을 구리아노바의 죽은 시민들을 위한 애도의 날로 선포하였다. 모스크바 시장 유리 루즈코프 역시 경악 속에 폭발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하였고, 모스크바 전역의 군경을 비상 대기시켰다.
그러나 푸틴이 애도를 선포한 9월 13일 새벽 5시, 모스크바 남쪽 카시르스코에 거리의 아파트에서 엄청난 폭발이 발생했다. 8층 건물 아파트가 완전히 무너지고 118명이 죽고 200명이 다쳤다. 새벽 5시, 지난 구리아노바 폭발 지점에서 6킬로 떨어진 곳이었다. 한번도 견디기 힘든 엄청난 참극이 수도 모스크바에서 두번이나 발생했다. 끔찍한 공포가 수도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카시르스코에 폭탄 테러
러시아 정부는 추가 폭발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고, FSB 공보 담당관 알렉산더 즈다노비치는 다음날인 1999년 9월 14일에 모스크바 보리소브스키에 푸루디 거리의 아파트에 장착된 폭탄을 해체했다고 발표했다. 각지에 경찰과 정보요원들이 백방으로 수색하여 총 3군데의 폭발을 저지했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1999년 9월 16일, 러시아 남부 볼고돈스크에서 아침 6시 경에 발생하는 폭발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17명이 죽고 69명이 부상을 당했다. 폭발이 발생하기 직전 인근 거리의 한 가정집에 이런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죽음이 지척에 널려있는데 어떻게 잠이 들 수 있지?"
볼고돈스키 폭발 테러
다게스탄 전쟁 중에 부이나스크의 군인 아파트 건물이 폭파된 것까지 포함해서 러시아 전역에 4동의 아파트 건물이 심야와 새벽 시간에 파괴되었다. 죽은 사람만 300명이 넘고, 부상자는 1000명이 넘었다. 무엇보다도 공포스러운 것은 언제 어디서 다시 폭발이 일어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진지하게 자신이 살아서 다음날 아침을 보게될 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1999년 9월의 러시아는 공포 그 자체였다.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가? 그들은 불과 2주만에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와 남부 볼고돈스크, 다게스탄의 부이나스크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총 7-8건의 폭발물을 장치할 수 있었다. (미수에 그친것 까지 포함해서) 또한 5층에서 9층 높이되는 건물 전체가 한순간에 무너질 정도로 건물 한채 한채의 구조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고, 그 건물의 가장 약한 부위에 수백킬로에서 수천킬로의 폭약을 주민들 몰래 가져다 놀 능력이 있었다. 또한 적절한 방식으로 폭파시켜서 집이 마치 카드로 만든 집처럼 손쉽게 붕괴시켰다.
요약하자면 다음의 능력을 갖췄다. 러시아 전역에서 수톤, 수십톤에 달하는 폭약을 광범위한 러시아 전역에서 구하고, 이를 다시 러시아 전역의 목적지로 실어나를 수 있는 능력, 건물의 가장 취약지점을 간파할 수 있는 건축공학적인 지식, 그리고 건물 전체를 한번에 완전히 무너뜨릴 만한 폭파기술.
자연스럽게 체첸인에게 혐의가 쏠렸다. 러시아 연방에 대한 저 정도의 적의, 저 정도의 능력, 저 정도의 흉악함을 가진 다른 존재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첫번째 폭발이 벌어진 며칠 뒤에 러시아 시장 루즈코브는 '체첸인들을 중심으로 테러 혐의자를 색출'하고 있다고 발표하였고, 3일내로 모스크바 전역의 모든 체첸인들이 비자를 재등록하고, 그 기간동안에 체첸에 입국하는 자들을 상대로 면밀한 심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하였다.
거기에 이번 전쟁의 무대가 된 다게스탄의 이슬람 과격세력에 대해서도 혐의가 인정되었다. 1999년 9월 15일에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사에 강한 코카서스 억양의 남자가 전화를 걸었다. 이번 모스크바와 부이나스크 폭발은 현재 다게스탄에서 자행된 러시아 공군의 폭격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다게스탄 이슬람 해방군'이라 지칭하였다. "러시아 공군의 폭격으로 인한 다게스탄 여자와 어린이의 죽음은 러시아의 여자와 어린이의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 고 말했다. 한가지 이상한 점은 기존에 '다게스탄 해방군'이라 지칭하는 단체는 없었으며, 하타브가 현지 와하비 조직과 연결한 단체명은 '다게스탐 이슬람 평화유지군'이였다는 점이다.
만약 체첸측에서 아파트 테러를 저질렀다면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샤밀 바사예프와 이븐 알 하타브였다. 이번 다게스탄 전쟁의 주모자이며 러시아 공군의 폭격 한복판에 있었고, 특히 바사에프는 과거 부데노프스키처럼 러시아 민간인을 볼모로 인질극을 벌인 적이 있기 때문이며, 위의 테러극을 감행할 만한 자금과 자원을 가진 몇안되는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샤밀 바사에프는 9월 9일, 체코 신문사 리도브 노비니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며, 다게스탄인들이 한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군이 다게스탄 3개 마을(카라마키, 차반마키, 카다르)을 포위하고 폭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하지만 나중의 인터뷰에서는 "다게스탄인이 했는 지 안했는 지도 확실히 알 수 없다.' 고 정정하였다.
아부 오마르 알 샤리프. 하타브의 무자헤딘 중 한명으로 아파트 테러의 주요 기획자 중 한명으로 지목되었다.
하타브는 9월 초에만 해도 "무자헤딘이 러시아 전역에 활동할 것"이라는 말을 언론사에 흘리기도 했지만, 주요 폭발이 벌어진 9월 14일의 인터뷰에서는 "우리는 자고 있는 사람들을 폭탄으로 죽이지 않는다. 우리는 러시아 군을 상대할 뿐 여자와 어린이를 적대하지는 않는다." 라고 하였다.
이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필자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샤밀 바사예프는 모스크바 극장테러나, 베슬란 학교 테러 등도 자신이 분명히 했다고 인정하는 데 이번 아파트 테러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말한 것이다. 처음에는 다게스탄인이라 추측했지만, 그 뒤에는 다게스탄인인지 아닌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하타브의 경우는 더욱 판단하기 쉽지 않다. 처음 언급에서는 러시아의 부녀자들도 러시아군의 폭격의 책임을 져야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가 나중에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가지 언급해두고 싶은 점은, 아파트 테러 직후에 벌어진 광범위한 검거 선풍에 의해 적발된 17명의 테러범 중에 체첸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러시아 정부에 조사에 의해 주범으로 밝혀진 아체메즈 고치아에브는 카라치 인이었다. 이븐 알 하타브의 지시를 받고 테러극의 기획했다는 그는 현재까지도 검거되지 않았다. 대다수는 코카서스 서부 카라치인이나 다게스탄의 아바르족이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체첸인과 이 사건은 무관한 것인지 그것 역시 필자는 판단할 수 없다.
아체메즈 고치아에브. 러시아 정부 측이 파악한 테러 실행 책임자
여기까지가 러시아 연방의 공식 발표에 따른 '러시아 아파트 폭탄 테러'의 전말이다. 이븐 알 하타브에 의해 수십만 달러에 매수된 테러범들이 저지른 만행이란 확고하고 명확한 자료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여러사람들이 미심쩍게 생각되는 몇가지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걸 단 두가지만 언급한다.
1999년 9월 13일, 러시아 연방 하원 의원 제나디 세레즈노브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다. "방금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지난 밤에 볼고돈스크의 아파트 건물이 폭파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폭발은 모스크바 카리스코에 거리에서 발생했고, 볼고돈스크 아파트는 3일 뒤에 파괴되었다. 실제 볼고돈스크 폭발이 발생한 직후, 어떻게 된 경위인지 물어보는 전화에 세레즈노브는 답변없이 꺼버렸다. 2년 뒤, 세레즈노브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발언은 볼고돈스크에서 벌어진 수류탄 폭발 사건을 언급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왜 그런 사안을 그 민감한 시기에 연방 하원에서 언급했는 지, 그리고 그런 문제를 왜 당시에는 해명을 안했는 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1999년 9월 22일, 러시아 남부의 소도시 리아잔의 한 아파트에서 누군가 포대 몇자루를 복도에 갖다놓는 것을 주민이 목격하였다. 테러로 신경이 곤두서있던 주민은 즉시 경찰에 신고하였고, 경찰은 아파트에 놓여진 50킬로 포대 3자루에 하얀가루가 가득차 있는 것을 보고 정밀 검사를 감식반에 의뢰하였다. 유리 카첸코라는 폭발물 감식 전문가가 'Mo-2' 가스 분석기를 휴대하고 달려왔다. 측정 결과 폭약으로 판정되었고, 폭약에 장치된 기폭장치도 발견되었다. 기폭장치는 새벽 5시 반에 폭발하도록 장치되어 있었다. 누가 생각해도 그 악명높은 테러의 또다른 시도를 천우신조로 저지한 것이었다. 블라디미르 루사일로 내무부 장관과 푸틴 총리는 '테러범들의 기도를 사전에 저지한' 리아잔 시민들을 축하하며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 폭격을 명령했다.
리아잔 사건 당시의 기폭 장치
인구 3만의 리아잔은 발칵 뒤집혔고, 1200명이 넘는 지역 경찰 전체가 총 동원되어 테러범을 색출하기 시작하였다. 도시를 빠져나가는 모든 외곽도로와 철로망에 검문소가 설치되었고, 목격한 주민을 상대로 용의자의 몽타주가 작성되어 배포되었다. 차량 추적도 병행했으며 도시 전역의 전화망도 도청되었다. 도시 전체가 요새처럼 봉쇄되었으며, 중화기로 무장한 경찰들이 수백명을 죽인 테러범을 잡기 위해 결사의 각오로 임했다.
그런데, 어느 전화국 직원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도청한다.
"현재 도시는 완전히 봉쇄되어서 경찰의 검문을 통과하기 힘듭니다."
"분산되서 개별적으로 탈출해라"
통화 내역을 분석한 결과, 모스크바와 리아잔의 장거리 통화였고, 송신측은 모스크바 FSB 소속 번호였다. 나중에 번호 추적을 통해 통화자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는 데, 그들은 FSB 신분증을 소지한 요원들이었다. 리아잔 지역 경찰들이 추가적인 조사를 하기 전에 수도에서 지시가 떨어져 그들은 석방되었다.
FSB 수장 니콜라이 파트루세브는 리아잔 사건이 비상 경계 중에 러시아 각지에서 실시된 '폭발물을 찾는' 연습이라고 기자들에게 설명하였다. 즉 경계 태세를 점검하기 위한 연습이었으며, 실제 리아잔 아파트에 설치된 것은 '설탕 포대' 였다는 것이다. 물론 자고 있는 시민들을 놀라게 하고, 이런 경솔한 연습을 한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였다.
여하튼, 체첸 강경파의 다게스탄 침공과 연이은 아파트 테러는 러시아 연방에 어려운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다. 1999년 9월 27일, 푸틴 총리는 내외의 기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러시아는 지금 국제 테러리즘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러시아는 이런 테러리스트들을 분쇄하고 격멸할 것임을 전세계인들에게 분명히 보여주겠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1999년 10월 1일, 10만의 러시아군이 체첸 국경을 넘어 진격하였다. 패배의 치욕을 씻기 위해 복수의 순간 만을 꿈꾸던 러시아군에게 마침내 2차 체첸전이라는 기회가 주워졌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Russian_apartment_bombings
http://www.nationalreview.com/comment/comment-satter043002.asp
http://news.bbc.co.uk/2/hi/europe/456848.stm
http://www.nytimes.com/2001/03/20/world/6-convicted-in-russia-bombing-that-killed-68.html
http://www.nytimes.com/1999/10/16/world/rebel-chief-denying-terror-fights-to-free-chechnya.html
http://www.historycommons.org/context.jsp?item=a022000tkachenko
http://forum.hyeclub.com/showthread.php?p=210838
Paul Murphy의 The Wolves of isl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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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필자의 견해는 "심증은 러시아의 자작극" 이군요. 하여간 저동네 무섭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수도없이 많은 설은 다 가지치기 했으며 확고하게 사실로 언론에 언급된 부분만을 소개하려고 했으며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뿌틴 눈빛이 장난아니라는.
특히 저 사진은 강렬하죠
변함없이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군요... 감동적으로 잘 읽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에 스크랩해 가도 되겠죠?
상관없습니다
왠지... 푸틴 정도 인물이라면 충분히 저런 일을 하고도 남을 듯 하네요. 정부에서 언론을 잡고 있으니 저런 일이 이슈화될 일도 없겠군요.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이건 러시아가 작정하고 벌인 짓이라는 전제하입니다만... 굳이 전쟁을 벌이려고 왜 저렇게 많은 자국민들을 죽인 걸까요?
전쟁에는 명분이 중요하지요. 왠지 푸틴이라면...
1차 체첸전의 패배 주 원인 중 하나가 국민들의 호응부족이었습니다
저게 진짜 러시아의 자작극이라는 전제하입니다만 국민 호응을 이끌어내려고 저 짓거리를 했다면 정말 미친거군요.
푸틴은 KGB출신이라 역시 다르군요. 이번 일도 자작극일수도 있고.. (자작은 아니더라도 일부로 다케스탄 지역에 대한 압박을 훨씬더 심각하게 줘서 테러 유발 동기를 일으킨 걸수도 있죠) 역시 엄청난 지도자..
음모론 중 대부격인 베레조에프스키는 푸틴은 모르는 일이었다..는 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잘 모르는 영역이라
어우,,, 그냥 폭풍간지 무시무시 ...; 눈빛 죽이네요
노려보면 물이 얼어버릴 듯 합니다
자작극이라기에는 너무 과한.. 체첸도 마찬가지인게 위협해서 '겁만 줄' 필요가 있지 자칫하다간 역효과가 나서 분노게이지 만땅 사태가 벌어지면...
바사예프에 의하면 '부데노프스키는 우리가 그만한 궁지에 몰려서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고 인터뷰 했다네요
체첸의 수장 마스하도프는 잊혀진 인물이 되어버린 건가요? 가장 훌륭한 지도자로 보이는데... 강경파들 때문에 체첸이 다시 불행에 빠지는군요... 핵분열이 완료된 체첸인들이 다시 하나로 뭉쳐 러시아에 대항할 수 있을지 염려스럽습니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이제 체첸이나 러시아나 둘 다 욕을 먹어야 할 대상이 되는군요... 어찌보면 테러로 인해 체첸인이 더욱 명분을 잃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겠어요... 확실히 KGB 출신의 주도면밀한 공작이 2차 체첸전을 공식화하게 되는군요... 푸틴은 역시 공작의 화신...
확실히 2차전 당시에 체첸측의 대오가 흐트러지기는 합니다
바사예프가 저질렀다고 해도 고백안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모스크바 극장 사건, 베슬란 학교테러는 다수의 테러범이 인질극을 벌였던 사건이기 때문에 테러범의 신원만 알아냈다면 간단히 배후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인질극은 참여한 테러범들이 사살당할 가능성이 매우 크지요 범인을 알아 낼수 없는 테러와는 다르지요
아흐마드 카디로프 친러시아 대통령 폭사 사건 때도 바사예프는 자랑스럽게 자기가 했다고 했으며, 항공기 테러 심지어 러시아에서 사고라고 공식발표한 쿠르스크 잠수함 폭파도 자기가 했다고 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안했다고 보는 사건도 자기가 했다고 떠벌리는 사람인데 유독 저 사건만 처음부터 '나는 모르겠다'고 하죠. 물론 어디까지나 누가 했는 지는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다는
...등골이 서늘해지는군요. 자작극이든 테러든간에 어느쪽이든 지도자의 만행때문에 무고한 시민들이 잠에서 영영 깰 수 없게 되었다니.
어떤 식으로든 1달도 안되는 기간 동안 전쟁과 전혀 무관한 시민 300명이 죽었습니다. 사람이 이성을 잃고 광분하기에 충분한 일이죠
푸간지의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보아하니 이번 전쟁은 방심말고 제대로 하고보자..이건가효 체첸국내적으로도 강경파로 인해 시끌벅쩍하고 국론일치안되던 현상황에서 러시아의 재침공은 체첸내 강경파가 독무대를 잡을수 있는기회군요
그래서 다게스탄 침공을 마스하도프를 실각시키기 위한 강경파의 전쟁 유도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전쟁유도라...정권교체가 될수 있는 시기군요 다시한번 러시아의 침공에과연 체첸이어떻게 버텨줄지가 의문이되는 전쟁이되겠군요
결국 끔직한 테러의 결과로 제2차 체첸전이 시작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