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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De Humani Corporis Fabrica의 서문을 통해서 본 16세기 서구 의학의 중층적 특성 연구
- 박영민, 연세대 대학원: 의사학 및 의철학 협동과정, 2025, 12월. P.70. [예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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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르네상스는 인문학(그리스 원전), 천문학에서 지동설로부터 물리학의 성립, 종교개혁, 그리고 이탈리아로부터 유럽에 전파된 신지식인들의 인본주의 사조를 덧붙일 수 있다. 그런데, 16세기 르네상스의 의학 분야에서는 그리스 원전에 대한 정확한 독해의 관심은 세 부류의 교차에서 온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그리스 의학과 차이 있는 학문전승, 아랍을 통해서 발전된 그리스 학문의 영역에 대한 라틴어 번역서들, 유럽 지식인들이 라틴어로 학술과 경험의 전승들, 베살리우스에 와서 세 부류의 관점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실증적 부분의 정확성을 찾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논문을 읽으면서, 우리는 의학사의 큰 줄기를 다시 생각하게 하였고, 그래서 논자가 의학자 개개인을 삶의 시기를 알리지 않았지만, 우리는 의학사 일반 연표의 작성처럼,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에서 로마시대 갈레누스, 그리고 르네상스의 베살리우스에까지 중요 의학자들을 찾아보는데, 나로서는, 시간을 보냈다. (58WLB)
석사 논문으로서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고, 자료들을 정리하고, 나아가 흥미 있는 관점들(당대의 의학적 사실들)을 설명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논자의 깊이 있는 탐구와 긴 노력의 좋은 결실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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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의학사를 읽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의학사의 중요 과제들이 3가지 정도 인 것 같았다. 그 중에서 병의 치료에 관한한 신체의 부위들에 대한 진단 또는 절단(떼어넴)의 외과 치료가 있고, 병이 외부의 무엇인가의 침입(병원균이든, 약물이든)에 대한 방어로서 병리학이 있고, 병의 치료에 필요한 약물과 더불어 (만병통치약의 제조와 같은) 질병 없이도 살 수 있는 생리 약학이 있었다. 그럼에도 알렉산드리아에서 의학은 테오프라스토스와 히포크라테스의 영향과 이집트 전통을 섞어서 약물치료가 우선 한 것 같았고, 그리고 신체 부위의 진단과 치료는 이집트 미라제작과는 다른 측면에서 신체의 구조와 부위들의 연결에 관심인 것으로 보였다.
이 논문은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서문을 통해, 갈레노스의 전통에 참조하였던 외과 치료와 관련되었던 인체의 골격 구조를 중심과제로 삼았다. 물론 베살리우스가 인체 구조만을 한정하지 않았으며, 2권에서 뼈를 연결하는 근육과 인대를, 3권에선 피의 통로인 동맥과 정맥을, 4권에는 근육과 신경 분포를, 5권에는 소화와 같은 영양활동을, 6권에서는 생명의 원천으로 여긴 심장들 다룬다고 한다. 말하자면 골격을 기준으로 근육, 혈관, 신경계, 소화기관, 심장 등에 대해 해부학을 통한 신체의 생명성과 활동성을 다루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논문은 서문을 통하여 갈레노스의 전통을 베살리우스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부를 통해 새로운 검증사실들을 덧붙이면서, 당대의 해부학을 재조명했던 것이라 한다.
이 학위 [예비] 논문을 읽으면서, 예전에 의학사와 의학입문을 읽었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벩송의 관점이긴 하지만, 의학은 어째거나 생명이 자기 보존과 자기 재생산의 토대 위에 있다는 것이다. 그 보존은 철학적으로 고통과 질병 없이 사는 것이고, 재생산은 후세를 낳고 키워나간다는 것이다. 전자만큼이나 후자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벩송이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에 관한 평문을 쓰면서, 의학의 성립에서도 또 다른 이데아(l’Idée)가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플라톤이 말하는 수학의 추상적 추론의 상징으로서 이데아가 있고 이로부터 물체들의 형태와 구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다루는 방식은 과거의 지속과 기억(유전자)의 연속을 이어가는 권능이 있고, 그 권능도 또 다른 이데아(l’Idée)라고 한다. 즉 사유의 극한에서 두 가지 대문자 이데아가 있다는 의미이다. 전자의 이데아는 기호 또는 상징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인데 비해, 후자의 이데아는 형태와 형식 없이도 활동하고 또는 지속하는 권능임에도 이데아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의학이란 고통과 질병 없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신체를 탐구하는 것이라 한다. 말하자면 생물학이 생명 전반을 다루는데 비해, 의학은 인간에 관한한 생명과 활동을 다룬다. 19세기 후반 이래로 의학을 생물학에서 따로 떼어 한 학문으로 취급한다. 이에 비해 삶에서 신체 이외에도 인간관계에서 그리고 자신의 영혼의 평온을 위한 것도 있다. 이 때문에 19세기 후반에 사회학과 심리학이 도래 한다. 그런데 영혼에 관한하여 자신의 안식을 구하는 것이 종교일 것이다. 한 개인에게서 신체와 영혼 이란 점에서, 의학과 종교가 이중으로 권위와 권세를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공동체에서 욕망과 탐욕이 뒤엉킨 사건들에서 사람들은 사회학보다 정치경제학에 관심이 많다. 그래도 자유와 인류애보다 인간에게 고통 없는 삶,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종교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뒤로 젖혀두고, 21세기에도 다원화이든 유일신이든 종교의 영향은 계속되고 있다.
종교의 영향이 강한 쪽에서 신체의 고통이든 삶의 비참이든 견디며, 안락과 내세의 해방을 위해 착하고 바르게 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당장 신체의 아픔은 종교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일 것이다. 의학의 발달이 종교를 밀어낼 것이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의학은 각 개인의 고유한 아픔과 비참을 해소하지 못했다. 결국 의학이란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일정한 범위 안에서 일반화 작업이다. 말하자면 한 사람에게 통용되는 치료제의 정량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거의 반반이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개인의 치료는 개인이 처한 고유한 특이성에 따라야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의학은 치료의 일반성과 체계를 세우고자 한다. 게다가 종교와 달리 이 학문은 철학처럼 죽음 이후를 다루지 않는다. 현실적이고 구체적 신체로부터 학문에서 중요한 것은 신체의 구조와 부위들 사이의 연결일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간의 존엄이든 종교의 영향이든 살아있는 사람의 해부를 금하였다. 그래서 해부학은 현실적이라기보다 사후 검증에 가깝다. 특히 시체해부는 결과를 다루는 것으로서 검증이지, 영원한 삶에 대한 탐구가 아니다. 그래서 의학이 생경한 치료와 오랜 질병의 귀결에 대해 답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이유로 종교는 심리(영혼)의 안식을 위해 개인에게 스며들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생명의 보존이 신체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종교는 영혼의 영생을 미끼로 생명의 존속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교가 말하는 생명의 존속이, 생물학과 의학이 말하는 생명보존과 다르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생명의 진화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설명되기 이전에는, 신의 의지로 태어나든 영혼의 윤회로 태어나든, 과거를 상실하고 또는 망각하고, 지금까지보다 나은 인간으로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 생각하였다. 과거에는 생물학적으로 생명의 재생산에서 유전을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과거의 일부를 지니고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했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활동에서 태생적 또는 선천적이란 용어를 썼지만, 조상의 과거를 동일하게 지니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추론할 줄 알았다. 그럼에도 재생산 또는 후손 계승에는 이전(선천적)의 어떤 부분들이 전수 또는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추론상으로 권능의 얼 또는 영혼(프쉬케)의 계속성이 이어지고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신체는 소멸하지만 영혼은 영속적으로 이어갈 것이라 한다.
인류사에서 겨우 1901년에 이르러, 각기 다른 나라에서 세 생물학자에 의해 멘델의 유전법칙을 재확인하면서, 유전인자의 전달을 설명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명의 단속적 연속성, 즉 신체로서 연결에는 단절이 있지만 생명에서 내재적 지속성(또는 권능)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점에서 이런 지속성을 역으로 추상하여 베르나르가 이데아(관념)라고 불렀는데, 이런 권능을 질적이고 내재성인 지속(시간)이라는 용어로 설명한 철학자가 벩송이다. 형상도 양태도 없는 이런 지속을 개념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반문하는 이들이 있다. 논리상으로 모든 질적인 요소가 다 빠져버린 이데아가 있다고 한 이가 플라톤이다. 그의 이데아는 운동, 지속, 권능이 모두 빠진 것이다. 거꾸로 모든 형상과 형태, 속성과 양태가 빠져버린 순수 질적인 작동(플라노메네 아이티다)으로 향하는 추리로서 추상도 있다. 이 작동 능력을 따로 추상하여 추리할 수도 있으며, 이런 순수 질을 권능이라는 관념[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벩송은 소크라테스의 고민이라고 보았고, 아마도 추리상 순수질적 움직임, 순수영혼의 움직임을 스토아학파에서는 세계(코스모스)영혼이라 불렀다고 하며, 이는 퀴니코스학파가 소크라테스로부터 이어받았던 것을 스토아학파가 계승했다고 한다. 순수질적 영혼(얼)이 개별자들에게 나누어가지는 참여에서, 즉 신체(물체)라는 것과 더불어 유지하는 개체들이 자기 고유성을 갖는다. 이 자기고유성이 특이성의 인격으로서 또는 류와 종의 하부에서 하부종개념으로서 소크라테스인 셈이다.
생물학과 의학이 독립학문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리고 지금도 유전자의 배열과 작동을 많이 설명한다고 하지만, 생명의 흐름을 역으로 추적하여 35억년의 과정을 해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어쩌면 35억광년 거리의 안드로메다자리의 한 성운에서 신성의 발현 또는 소멸을 이해하는 데 투여되는 인력과 시간보다 더 적게 들여서 생명과정을 설명할 날이 올 것 같다. 인간의 두뇌로 해결할 수 없는 방대한 자료를 다룰 수 있는 생성인공지능이 그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2:25, 58WNA) (3:04, 58LKA) (3:23, 59LKB)
****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 ‘얼개’ 서문에 관한 논문.]
차례
서론 2
본론 5
1) 해제: 라틴어 판본 및 저자 개관 5
(1) ‘얼개’ 라틴어 판본 개관 (1543년과 1555년판 비교) 5
(2) 베살리우스 생애 7.
2) 해제: ‘얼개’ 번역본 개관 및 한글 서문 번역본 쟁점들 140
(1) ‘얼개’ 번역본 개관
(2) 한글 서문 번역본의 쟁점들 11
3) 해부학의 역사로 본 ‘얼개' 13
(1) 해부학의 등장 13
(2) 갈레노스와 베살리우스 17
(3) ‘얼개’를 둘러싼 논쟁들 20
4) 16세기 의학의 중층성 23
(1) 질병과 치료로 본 16세기 23
(2) 16세기 의학의 쟁점들 25
5) ‘얼개’ 서문 번역본 30
존엄하신 무적의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 황제폐하께 헌정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얼개’” 서문 30
3. 결론 59
+ 참고문헌 6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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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중에서 관심 ...
1. 서론 2
2. 본론 5
1) 해제: 라틴어 판본 및 저자 개관 5
(1) ‘얼개’ 라틴어 판본 개관 (1543년과 1555년판 비교) 5
(2) 베살리우스 생애 7.
2) 해제: ‘얼개’ 번역본 개관 및 한글 서문 번역본 쟁점들 140
(1) ‘얼개’ 번역본 개관
(2) 한글 서문 번역본의 쟁점들 11
3) 해부학의 역사로 본 ‘얼개’ 13
(1) 해부학의 등장 13
(2) 갈레노스와 베살리우스 17
(3) ‘얼개’를 둘러싼 논쟁들20
“베살리우스 골” (22) :
주 62), Nutton(2024), p. 189, 변이(variation)와 비정상 또는 이상(anomalie)은 해부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16세기 괴물 연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22)
대학에서 고전어를 가르치던 마르쿠스 호퍼는 베네데티의 개정판 편집자로서 서문에 베살리우스를 향한 최고의 존경을 담은 헌서를 썼다. (23)
콜롬보와 푹스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갈레노스를 따르느냐는 이제 부차적인 문제로 보인다는 점이다. 시각적 관찰에 충실해 고전 문헌을 얼마든지 수정 보완할 수 있는 것이 허용된 아니면 적어도 학문적 논의의 대상이 되는 시대로 탈바꿈해 가는 여정 가운데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23)
4) 16세기 의학의 중층성 23
(1) 질병과 치료로 본 16세기23
앞서 언급했듯이 중세 후기 13-14세기를 가로지르는 두 사건, 즉 전쟁과 전염병이 15-16세기에 다른 형태로 재등장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23) - [17세기 대감호(大監湖)(Grand Enfermement): 1647년 페스트 창궐. 그리고 1656년이라는 연대에 주목한다. 이 해에 루이 14세가 파리에 구빈원(로피탈 제네랄)을 설립하라고 명령 내렸기 때문이다.]
콜롬버스의 귀환 축제 [1493년 3월] ... 매독의 전파: 중세 유럽 사회에 유행처럼 번지게 된 것은 바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벌어진 1495년 나폴리 전쟁에서였다. (24)
(2) 16세기 의학의 쟁점들25
- 주76) Siraisi(1990), pp. 97-98. 14세기 기 드 숄리악[1300경-1368]의 라틴어로 쓴 외과술 책 이후 16세기에 총상과 절단에 관한 저술이 앙브루와즈 파레[1510경-1590]의 의해 저술되었다. (26)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에 의해,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으로 멸망. 그리스 지식인들이 이탈리아로 이동하다. - 1400년대 말에는 플로렌스 베니스 등 여러 곳에서 그리스 원전 아카데미(연구소)가 창설되었다.]
1525년부터 쏟아진 갈레노스 그리스어 저술에 대한 관심은 기존 식자층을 고전문헌에 대한 새로운 열정에 사로잡히게 했을 것이다. (26-27)
15세기가 끝날 무렵 서구 유럽인들의 세상은 혼란과 열광의 도가니, 어둠을 간직한 빛의 세기라 할 만 했다. (27) - [15세기 말이라면 1400년대 말에 빛의 세기라 본 것인데, 총포의 시대(남미정복은 1500년대였다)를 염두에 둔 것이리라. 철학사에서 이런 빛의 세기는 1600년대 말에서 1700년대 초라고 보는데, 브레이어와 들뢰즈/가타리의 견해 이다. - 200년 차이가 난다. 표현상으로 동로마제국 멸망이후(15세기 중엽)라고 보면, 16세기 초에 자연의 자치성과 자의식의 발현으로,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갈릴레이와 데카르트 덕분으로) 물리학과 자아가 등장한다. 17세기의 활발한 상상력의 확장으로 18세기 “빛들세기”라 명명하였듯이, 브레이어는 “요상한 것(bizzarreries)의 박물관”의 시대라고, 들뢰즈/가타리는 생성, ‘지각 불가능한 것 되기’의 시대라고 한다. (58WLC)]
파레(Ambroise Paré, 1510경-1590)와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 (27)
마사, 콜롬보, 팔로피오, 유스티키오에 이르기까지 갈레노스주의를 표방하지만 모두 해부학 지식의 확장에 기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28)
‘얼개’ 출간 이후 갈레노스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들도 이와 유사한 교정과 수정을 통한 통합의 서사에 가깝다. 새롭게 관찰되고 발견된 사실들의 전통에 균열을 내고 상처를 내지만, 상처가 아물어 진정되면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잡는 과정은 이 시기 의학지식의 변화상에 지속된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30)
5) ‘얼개’ 서문 번역본 30
존엄하신 무적의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 황제폐하께 헌정
- [이 작품이 카를 5세에게 헌정으로 보아, 파리 대학을 다녔음에도 베살리우스의 삶이 프랑스 연관보다 신성제국의 영향 하에 있었던 것 같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와 신성로마(오스트리아 독일)의 연계 속에서 보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는 프랑스에 늦게 전파된 것이다. 그 만큼이나 파리 대학이 로마 교황청 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사에서는 근세를 여는 데카르트의 등장에서 시작한다고 하는 것은 교권과 왕권으로부터 벗어나는 학문 영역이 열리기 때문일 것이다. (58WLC)]
[6)]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얼개’” 서문 30
그 옛날 고트족 침략 이후 페르시아의 왕 만수르(지금까지도 그리스인들과 함께 우리에게 친숙한 아랍인들은 이 왕의 통치 아래 번영을 맞이했습니다) 치세 이래로 의학이 해체되기 시작했습니다. (31-32)
- 주94) 만수르 치세 이래로 의학이 해체가 일어났다는 베살리우스 평가는 ars에서 medicina로 용어 전환을 시도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ars와medicina는 각각 의술과 의학으로 구별해 번역했다. (32)
사실 의사들은 한때 세 개의 학파들 즉, 이론학파, 경험학파, 방법학파로 나누어지긴 했지만, 각 학파의 지도자들은 모두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을 극복하는 것을 의술의 보편적인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32)
- 주97) 이들 세 학파 중 logica, 이론학파는 고대 그리스어 aitia 즉, 병의 원인과 현상을 이론적 설명에 기초해 이해한 후에 병을 치료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empirica, 경험학파는 추상화된 이론을 무의미하다고 보며 empeira, 경험에서 비롯된 임상 사례에 기반한 치료를 강조하며, 마지막으로 methodica, 방법학파는 앞선 두 학파를 모두 비판하면서, 추상적 원인과 경험을 거부하고 막힘, 풀림이라는 상태로 질병과 정상상태를 환원하는 단순화를 통해 즉각적이고 도식화된 치료를 주장했다. (32-33)
[히포크라테스학파의 의학이 알렉산드리아로 건너가면서, 소요학파의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방법과 경험을 통한 임상적 방법으로 갈라졌다고들 한다. 이를 방법론으로 두 가지 방법론이라는 서술을 본적이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방법론을 따로 질병과 정상의 구별을 통한 치료를 중요시 한 것으로 본 것 같다. (58WLC)]
그들은 3중의 치료법을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 수단의 첫째가 식이법, 둘째는 약제들의 모든 [조제] 사용법, 셋째는 손을 통한 시술입니다. (33) - [이 세 학파들이 치료법에서도 구별되는지, 또는 세 가지 치료법 중에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인지는 불분명한 것 같다. 어느 학파든지 히포크라테스의 어록을 주목한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다면, 먹는 것을 통해서 고쳐야 한다는 약학처방을 중요시 했다. 그리고 신체를 손상시키는 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골절과 배알이 진단에서 손을 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이 시기에 ‘손을 통한 시술’이라는 방법이 칼을 쓰는 해부의 건이 아닌가? 언제쯤 수술이 외과의사에 자리 잡았는지를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검시 방법에서 칼은 필요했겠지). 치료인 한에서는 파레(Ambroise Paré, 1510경-1590)가 “나는 붕대를 감았고, 신이 치료했다”고 말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치료법이 너무나 처참하게 분열되어, 정작 의사들은 스스로 자연철학자라고 유세를 떨면서, 자신들만이 숨겨진 질병에 대한 식이법과 약제법을 맡는 것으로 주장하게 된 것이다. (35) - [치료법은 손을 통한 것만이 아닐 것이며, 세 갈래로 갈라졌다고 하는데, 두 가지에 중점을 두면, 손으로 하는 시술[수술]이 밀려났다는 것이리라.]
아스클레피아데스(Ἀσκληπιάδης) 가문: (36) - [아래 인명록 참조]
갈레노스 저술에 대한 세심한 강독들, 그리고 갈레노스 저술 곳곳에서 이뤄진 만족스런 복원들을 통해 우리가 보기에 갈레노스가 인체 자체를 결코 해부한 적이 없음은 분명합니다 : 실제로는 그가 자신의 원숭이 [해부]에 속아(말라버린 인간 시체 두 구를 그가 우연히 접했을지라도), 인체 해부를 실제로 수행했던 고대 의사들을 자주 부당하게 비난한 것이 분명합니다.161 162 게다가, 원숭이에 관해서도 갈레노스가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48)
실제로 1권에서 나는 모든 뼈와 연골의 본성을 설명했습니다. ... 2권은 뼈와 연골을 서로 연결해 주는 인대를 다루고 난 후, 의지에 따라 운동의 작동자가 되는 근육을 다룹니다. 3권은 정맥과 동맥의 세밀한 구조를 다루는데, ... 4권에서는 근육과 연결된 신경들의 분포와 더불어 나머지 다른 신경 계통도 설명합니다. 5권은 마실 것과 먹을 것으로 이뤄지는 영양활동을 돕는 [소화기관 및 배설기관]의 구조를 설명하며, .. [생식]기관들을 포함합니다. 6권은 생명능력의 원천인 심장과 그것을 돕는 부분들을 서술합니다. 사실 7권은 뇌와 감각 기관들의 조응을 다루게 되나, 4권에서 설명했던 뇌에 뿌리를 둔 신경계는 재론하지 않았습니다. (53) - [이 중에서 7권이 뇌와 감각기관이라 하는데, 의식활동보다 신체움직임에 관심이었을 것 같다.]
주185): 1482년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 원론’(Στοιχεία, Stokeia)이 최초 출간된 이래, 1533년 바젤에서 그리스어 라틴어 대조판이 출판된 때는 베살리우스가 한창 유년시절의 인문주의 4과 과정에 포함된 산술, 기하, 천문, 음악을 비롯한 교육을 받고 있었던 때였다. (54)
물론 저는 이제 스물여덟 살 밖에 안됐기에 어리다는 이유로 제 연구가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갈레노스의 그릇된 학설들을 거듭 지적했기 때문에 저들 [비판자들]의 치졸한 비난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55) - [7권으로 쓴 방대한 작업인데, 스물여덟이라.]
그리하여 폐하께서는 특히 세계에 대한 학문에 심취하셨듯이,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만들어진 것 [몸]의 연구에 때때로 빠져들며 기쁨을 느끼실 것이며, 불멸하는 영혼의 도구이자 머무르는 곳 [몸]에 대해 깊이 살펴보면서 즐거움을 누리실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거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우주와 대응됐기에, 마땅히 옛 사람들은 소우주[(microcosmos)]라 부른 것입니다. (57) - [코페르니쿠스의 대우주론에 비해 베살리우스는 소우주론을 썼다는 것이 정당하다.]
파도바에서 서기 1542년 8월 1일 (58)
3. 결론 59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는 중심으로서 지구의 위상이 박탈된 세계인 데 반해, 베살리우스의 인간은 모든 만물의 척도이자 기준이 되는 인간으로서의 특이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가 닫혀 있고 유한한 이상적인 중세적 우주와 완전히 결별하는 것도 아니듯이, 베살리우스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초한 기독교적 신의 창조물로서 인간의 이상형을 꿈꾸며 갈레노스의 치료법을 여전히 신봉한다. 한 시대와 어떤 인물이 혁명적 변혁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을 때, 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단절과 그 이후의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퇴보처럼 보이는 것들 속에 담긴 다양한 층위를 읽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59)
우선 해부학은 어떤 조건에서 비롯되는 것인가를 고대 알렉산드리아 시기부터 16세기까지 사회제도 및 의사들과 그들의 견해들을 토대로 살펴보았다. (59) - [의학의 성립이 그리스보다 알렉산드리아라는 점에서 신체에 대한 경험과학의 정립이 훨씬 어렵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베살리우스의‘얼개’ 출간이 갖는 의미를 중세 후기 해부학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브로델의 ‘장기 지속’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60) - [마찬가지로, 의학의 발전을 실증주의 도래 이래로 역사학의 발전에 맞추어 관점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따라서 역사란 보고 싶은 사실들을 거르기 위한 불순물의 제거 과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체를 바꿔가면서 새로운 해석적 시도를 감행하는 실천적 운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62) - [여기서 체라는 도구는 세포 또는 세포 내부를 다루는 기구를 의미할 것이다. 현미경의 시대가 나올 것이고, 두 세기가 지나면 전자 현미경이 도래 할 것이다. - 플라톤은 티마이오스편에서, 생명체의 부분들의 무작위적 생성에 대해 체와 키에 의해 우주에 맞게 조정된다고 한다. - 다윈의 자연도태는 체질에 해당하고, 최적자 생존은 키질에 해당할 수 있다. 플라톤주의든 다윈주의든 만들어진 것을 대상을 삼았는데, 그 만들어진 기원 또는 원인의 참구는 체와 키를 상정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벩송이다. 생명체의 자기 계열의 지속은 기억에 권능에 의한 가지치기를 한다. 즉 생명은 분화하고 발산한다고 보면서, 현존의 개체는 수렴일 뿐이다.]
또한, 고대와 중세를 관통했던 인체의 이상적 모델과 변이, 기형, 괴물성 등의 개념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했는가를 파악해 본다면, 깡길렘이 언급한 바 있는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에 대한 근대 초기의 풍경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62) - [변이, 기형, 괴물 등의 등장이 활발해지는 또는 신학의 배제를 넘어서는 18세기 초를 브레이어는 “요상한 것들(bizzarreries)의 박물관”이라 하고, 들뢰즈는 1730년에 “생성”의 시대로 표현한다. 이런 다양한 생성이 생명의 기원과 연결을 파악하려는 노력(뷔퐁, 라마르크, 생틸레르)의 계보와, 구조가 먼저 성립했다고 보는 퀴비에의 논쟁은 1800년대 초기부터 1830년으로 이어진다. [형태 변형론에서 진화론으로 나갈 것이다.]
+ 참고문헌 6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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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 년보
* 베살리우스 André Vésale, lat. Andreas Vesalius, 본명 Andreas Wytinck van Wesel 1514-1564
1514 브뤽셀에서 태어났다. (le 31 décembre 1514 à Bruxelles)
증조부는 과감한 샤를(Charles de Bourgogne, dit Charles le Hardi ou Charles le Travaillant, plus Charles le Téméraire, 1433-1477)의 주치의 였다.
할배(Everard van Wesel, s.d.)는 오스트리아 막시밀리안 1세(Maximilien d'Autriche ou Maximilien Ier, 1459-1519)의 주치의였다.
아버지(Anders van Wesel, s.d.)는 약제사(apothicaire)로서 막시밀리안과 그의 달(마가리트 도트리슈)를 섬겼다.
[이탈리아 전쟁(1521-1526):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와 신성로마제국(스페인 포함)의 카를 5세 사이에서 이탈리아 지배권을 놓고 전쟁.]
1528[열넷] 루뱅 대학의 4학부 중 교육학부(Paedagogium Castrense)에 등록했다. ,
1532[열여덟] 파리에서 공부
1533[열아홉] 파리의 그랑조 벨(rue de la Grange-aux-Belles)에 살앗다. ,
1534[스물] 의학에 필요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다.
페르넬(Jean Fernel 1506-1558)과 공띠에(Jean Gonthier d'Andernach, 1505–1574)에게 의학을 배우고, 갈리안주의에 열심이었다.
실비우스/뒤브와(Jacques Dubois, lat. Jacobus Sylvius, 1478-1555)에게 배우다.
(스물)년 의사로 종군하여 인체를 해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어 새로운 지식
세르베(Michel Servet, en espagnol Miguel Serveto y Conesa, 1511경-1553)와 롱들레(Guillaume Rondelet, 1507-1566)를 동료로 가졌다.
1536[스물둘] 파리 떠나 루뱅으로 돌아감
1536-1538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 사이에 발발했던 제4차 이탈리아 전쟁. 프랑스 내 외국인 학생들의 체류가 불안하여 파리 떠나 루뱅으로 돌아감
1537[스물셋]-1543[스물아홉]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으로 가다. 파도바 대학은 베니스 공화국 소속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 종교재판이 없었다.
박사시험을 통과하고 해부학 및 외과 교수로 제직한다. (explicator chirurgiae)
1538[스물넷] 여섯 해부학강의(Tabulae Anatomicae sex) 출판.
1539[스물다섯] 사혈(瀉血)에 관한 편지(une Lettre sur la Saignée)를 출판하였다.
1540[스물여섯] 볼로냐대학 초청 강연 – 파비아 대학의 코르띠(Matteo Corti, lat. Curtius, 1475-1564) 교수의 해부(dissection)를 예시하다.
1542-1546 카를 5세가 프랑수아 1세와 벌인 제5차 이탈리아 전쟁(1542-1546).
1543[스물아홉] 살해자의 신체 해부, 바알대학에 전시
1543(스물아홉) 인체 해부학 대계(De humani corpois fabrica libri septem, 1543)(약칭 인체의 구조, Fabrica): 헌정 카를 5세에게.
1544[서른] ‘얼개’ 출간 후, 볼로냐 대학과 피사 대학에서 가르쳤다.
1544 초판이 출간된 후, 코시모 데 메디치의 초청으로 피사에서 해부시연을 했다.
1544 카를5세의 주치의로 임명되고 궁정인으로서의 삶이 지속되면서 학계와는 서서히 멀어지게 된다.
1546[서른둘] 중국 영향으로 통풍에 관한 “Epistola Radicis Chynae”을 출판하였다.
1551[서른일곱] 스페인 살라망끄(Salamanqu) 대학에 위촉 받았다.
1555년 ‘얼개’의 개정판. 이후 10년간 활동이 보이지 않고, 편지교환이 있을 뿐이다.
1559[마흔다섯] 마상창시합으로 눈을 다친 프랑스왕 앙리2세(Henri II)에 불려갔다.
1564(쉰) 사이프러스(키프러스)를 거쳐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
- 예루살렘에서 팔로피아(Gabriele Falloppio ou Gabriele Falloppia, 1523-1562)의 사망으로 파도바 대학의 교수자리를 제안 받았다. ,
- 그리스의 젠테에서(mort à Zante en Grèce le 15 octobre 1564.) 세상을 떴다: 예루살렘 성지 순례후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 그리스 서부 연안에 위치한 섬이다. 베네치아와 연관이 많다 - 베네치아어로(찬테 Τζάντε) 그리스어로(잔퀸토스, Zacynthe ou Zakynthos Ζάκυνθος)
1847 Andreæ Vesalio, Scientiæ Anatomicæ: 브뤽셀에 베살리우스(1514-1564) 청동 입상 건립, 벨기에 조각가 집스(Joseph Geefs, 1808-1885)가 작업했다. (58WLH)
***인명록
460 코스의 히포크라테스(Ἱπποκράτης, Hippocrates, 전460–전370년), 고대 그리스 페리클레스 시대 의사이며, 의학의 아버지. 데모크리토스(Δημόκριτος, 전460경-380경)과 같은 시기를 살았으며 소크라테스보다 10년 정도 어리다. - 히포크라테스는 신화의 아스클레피오스 가문의 전승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 전384-32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 형이상학(La Métaphysique, 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ά)
335 헤로필로스(Ἡρόφιλος, 전335-전280), 소아시아 칼케돈(현재의 튀르키예 카디쾨이)에서 태어나 알렉산드리아에서 주로 활동,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 최초의 해부학자.
310 에라시스트라토스(Érasistrate, Ἐρασίστρατος, 전310경-전250경) 실험의학자, 해부학자. 별명(« l'Infaillible »), 테오프라토스에게 배웠고, 안티오크와 알렉산드리아서 활동, 사모스 섬에서 세상을 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미이라 제작으로 (사체) 해부가 가능]
?-? 리코스(Lycos de Macédoine, Λύκος, s.d.) 에라시스트라토스 시대의 의사(médecin de l'époque d'Érasistrate);
300? 에우데모스(Eudème, Εὒδημος, 전3세경 활동), 그리스 해부학자. 헤로필로스(Ἡρόφιλος, Hérophile)와 동시대인이라고 하지만, 보다 후배인 것으로 보인다.
2?? 안드레아스(Andreas Ἀνδρέας, s.d.), 프톨레마이오스4세 필로파토르(? -전205)의 주치의 였다고 한다. .
2?? 마리노스(Marinus, Μαρῖνος, s.d.). 갈레노스가 칭찬한 인물이라고 하는데, fr.en.deu에도 나오지 않는다. [AI는 기원후 2세기경의 로마의 의사라는 인물이 있지만 역사에서 소실되었다고 한다.]
129 아스클레피아데스(Asclépiades, Ἀσκληπιάδης), 그리스 신화와 전설의 의사, 영웅. 아스클레피오스(Asclépios, Ἀσκληπιός)의 가문의 상징인물. - 그 후예로서 [알렉산드리아 시인인 Asclépiade de Samos(전330-전260)], 소아시아 터키 북부지역인 비튀니아(Βιθύνια)의 의사인 Asclépiade de Bithynie(전129/124–전40), 의사이며 약사인 Asclepiades Pharmacion(1세기-2세기)가 있다. 의학사에서 갈레노스와 시기적으로 같은 셋째 인물을 지칭할 것이다.
- 휘게이아(Hygie ou Hygée, Ὑγιεία ou Ὑγεία, « santé »), 그리스 신화에서 의학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딸이라 한다. 위생(l'hygiène)의 용어는 휘게이아로부터 나왔다.
25 켈수스(Aulus Cornelius Celsus, fr. Celse, 전25경–50경), 로마 박물학자. 다방면 작가, 의학서도 썼다. 의학론(De Medicina)
O
20 페다니우스 디오스코리데스(Pedanius Dioscorides, Πεδάνιος Διοσκουρίδης, 20/40-90), 의학, 약학, 식물학. 50년-70년경 약물학을 집대성시킨 약물학자. Les Six Livres de Pedacion Dioscoride d'Anazarbe de La Matiere Medicinale: Translatez de Latin en Francois, Lyon, 1553.
[70 마리노스(Marinus of Tyre, Μαρῖνος ὁ Τύριος, 70경-130경), 그리스 수학자, 지리학자. 이 사람은 의학과 연관이 없는 것 같다]
80? 루푸스(Rufus, Ῥοῦφος ὁ Ἐφέσιος, 1-2세기경), 고대 그리스 의사, 병릭학, 해부학, 식이요법 치료제에 관한 글을 썼다.
98 소라노스(Soranos Σωρανός) 2세기경, 방법학파 계보. 에페소스(Éphèse) 출신 의사. 그는 트로야누스(Trojanus, 기원전 98-117), 하드리아누스(Hadrianus, 117-138) 두 제왕시대에 로마에서 활약한 의사로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했다. /
12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 로마 제16대 황제(161-180년), 재임중 말년에도 다뉴브강의 전투에 나갔는데, 갈레노스가 원정에 참여해서 부상자와 사망자를 다룰 수 있었다고 한다.
129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Κλαύδιος Γαληνός, Claudius Galenus, 129-199?), (현 터키지역)페르가몬 출신으로(여기서 검투사 주치의), 로마에서 활동, 로마제국시대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이자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비롯한 4명의 황제의 시의(侍醫)였다.
- 14세부터 철학을 공부(스토아학파, 플라톤학파, 소요학파, 에피쿠로스학파) - 즉 소크라테스 후예들을 섭렵했다. 그 중에 스토아학파의 공부는 당대의 주류였을 것이다. 이때 히포크라테스를 알았다.
- 148년(열아홉) 아버지 유산을 받다.
- 우선 젊은 시절 스미르네(Izmir, Smyrne: Σμύρνη, 에게해 변의 터키도시)에서 펠롭스에게 배우고, 코린토스(Κόρινθος)에도 가서 공부
- 157년-161년(스물여덟-서른둘) 페르가몬에서 검투사의 주치의
- 162(서른셋)-166: 로마에서 첫째 체류: 페르가몬 출신이 어떤 에우데모스의 철학에 심취, 맥박진단에 관심.
- 166(서른일곱)-169 페르가몬으로 귀향(L'exil volontaire à Pergame) 젊은 시절 작업정리할 기회를 갖다.
- 169(마흔)-193 황제들 곁에서 로마의 둘째 체류(Le second séjour romain au chevet des empereurs)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아들 코모두스(161-192: 재위180-192)까지 활동
- 193-216 말년은 알려지지 않았고, 어디서(로마인지 페르가몬인지) 세상을 떴는지도 모른다.
- 말년에는 원숭이 해부에서 인체를 추론하였기에 오류를 범했다고 한다.
- 아랍어로 번역 전승은 후나인(Ishaq ibn Hunayn, 830-911), 이샤크의 아들. 후나인은 갈레노스가 216년까지 여든여섯을 살았다고 전했다.
- 에페소스에서 소라누스(Soranus of Ephesus), 카파도키아에서 아레테우스(Aretæus of Cappadocia), 페르가뭄에서 갈렌/갈레노스(Galen of Pergamum)의 활약 시대.
320 오리바시우스(Ὀρειβάσιος, Ὀριβάσιος, 320-403), 그리스의 의학 저술가, [동]로마 황제 율리아누스의 주치의 / 율리아누스: 기독교를 거부하고 신플라톤주의 신봉.
600? 테오필로스(Theophilus Protospatharius, Θεόφιλος Πρωτοσπαθάριος; 7세기경) 동로마 헤라클리우스의 주치의, 비뇨기학의 선구자, 오줌에 관하여(Περὶ Οὔρων, De Urinis),
[헤라클리오스 또는 헤라클리우스(Flavius Heraclius Augustus, Φλάβιος Ἡράκλειος, 575-641) 동로마 황제]
808 후나인 이븐 이샤크(Hunayn ibn Ishaq al-Ibadi, 808–873; Hunain 또는 Hunein: arb. Abū Zayd Ḥunayn ibn ʾIsḥāq al-ʿIbādī ; lat. Johannitius), 바그다스 출생 활동. 네스토리우스 기독교 번역가, 학자, 의사, 과학자. 이슬람 아바스 왕조 시대의 정점에 그는 Abū 'Uthmān al-Dimashqi , Ibn Mūsā al-Nawbakhti , Thābit ibn Qurra 등의 번역가 그룹과 협력하여 철학 서적과 고전 그리스어 및 페르시아어 텍스트를 아랍어와 시리아어로 번역. L'Anatomie de Galien 번역 시작.
865 무함마드 이븐 자카리야 알라지(al-Razi: Muhammad ibn Zakariyā Rāzī, 865-925)는 페르시아[1][2]의 박식가이자 이슬람의 황금시대의 철학자이다. 라제스(Rhazes), 라지스(Rasis)
980 이븐 시나(Ibn Sina, lat. Avicenna, 980-1037) 페르시아 제국의 철학자이자 의학자, 과학자로 중세 최대 의학자 중 한 사람.
1020 콘스탄티누스(Constantin l'Africain, 1020-1087), 북아프리카 출신 의사. 몬테카시노 수도원 수사. 아랍 의학을 라틴어로 번역. 살레르노 의학학교(L’école de médecine de Salerne, en latin Schola Medica Salernitana)를 세움,
1094 아부 마르완 압드 알말리크 이븐 주르(Abou Merwan Ibn Zuhr, lat. Avenzoar, 1094년-1162년)는 중세 알안달루스 아랍인 의사, 시인.
1114 크레모나의 제라르(Gerard of Cremona Gerardus Cremonensis, 1114경–1187),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과학 서적을 번역. 프톨레마이오스(Ptolémée, Πτολεμαῖος, 100-168)의 “알마게스트” 번역.
1260 앙리 드 몽드빌 (Henri de Mondeville, 1260경–1320), 중세 프랑스 외과 의사. 해부학 과 외과에 공헌하였다. 성직자 의사, 대학교수 《La Chirurgie》(1306-1320)를 저술한 최초의 프랑스인
1270 몬디노(Mondino de Liuzzi, 1270-1326), 이탈리아 의사, 해부학(Anathomia, 1316), 갈레노스의 의학서 라틴어로 번역.
1300 숄리악(Guy de Chauliac, ou Gui de Chauliac, Gui de Chaulhac, 1300경-1368) 프랑스 외과 의사. Chirurgia Magna, 1363. 1348년 아비뇽에 가서 페스트 대역병을 치료한 것으로 유명하다.
1304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cca ou Petrarca, en fr. François Pétrarque, 1304-1374), 이탈리아 박식가, 시인, 인문주의자. 단테(1265-1321)년와 보카치오(1313-1375)와 함께 이탈리아 문학의 정초자. 이들은 그리스를 복원하는 르네상스 이전의 인물들이다. .
1428 니콜로 레오니체노(Nicolas Léonicène, Leoniceno, Nicolaus Leonicenos, 1428–1524), 이탈리아의 의사, 인문주의자.
1450 베네데티(Alessandro Benedetti, 1450경–1512),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해부학자, 의사, 인문학자. 해부학, 즉 인체에 관한 담론(Anatomicae, sive de historia corporis humani libri quinque, 1493(5권 1502) /en lat. Alexandri Benedicti Veronensis.
1451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it. Cristoforo Colombo 1451-1506),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 항해가. 1492년에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아 서쪽 항로 개척에 나섰다가,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 3척을 이끌고 팔로스 항을 떠나 일주일만에 카나리아 제도에 도착, 한 달 후 카나리아를 떠나 항해한지 33일만인 10월 12일 새벽에 섬을 발견[산토도밍고].
[1453, 동로마제국멸망,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2세가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
1460 베렝가리오 다 카르피(Jacopo Berengario da Carpi, 1460경-1530),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해부학자, 외과의사.
1462 조반니 마나르도(Giovanni Manardo, Manardi, 1462-1536), 이탈리아 의사, 식물학자, 인문주의자로, 페라라 대학의 교수. Epistolarum medicinalium libri duodeviginti, 1535
1476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Girolamo Fracastoro, 1476/8–1553), 이탈리아 의사, 시인, 수학, 지리, 천문학 학자. 철학에서 원자론자였다. 매독은 프라카스토로가 1530년에 쓴 3권으로 구성된 서사시 매독 또는 프랑스 질병(Syphilis sive morbus gallicus, 1530)(1555년 출간)에서 나온다. “병리학”
1478 실비우스/뒤브와(Jacques Dubois, lat. Jacobus Sylvius, 1478-1555) 프랑스 의사, 해부학자. 의학에서 아리비아에 반대하여 또한 제자인 베살리우스를 반대하여 갈레노스를 옹호하였다. 파리대학 시절 베살리우스의 스승인 실비우스.
?-? Armentarianus, Professor of Louvain
1485 니콜로 마사(Niccolò Massa, 1485–1569), 이탈리아 해부학자. 해부학 입문(Anatomiae Libri Introductorius, 1536).
[프랑수아 1세(François Ier, 1494-1547), 잉글랜드의 헨리 8세, 강력한 맞수인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 그리고 오스만투르크의 쉴레이만 대제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
1488 오토 브룬펠스(Otto Brunfels, 1488-1534) 독일 신학자, 의사. 사실적인 그림이 담긴 저서 살아있는 식물 이미지(Herbarum Vivae Eicones, 1530-1540)로 현대 식물학의 아버지 중 한 명.
1493 테오프라스투스 폰 호엔하임(Theophrastus Philippus Aureolus Bombastus von Hohenheim), 속칭 파라켈수스(Paracelsus, 1493-1541), 문예부흥기 독일계 스위스 본초학자, 연금술사, 점성술사, 오컬티스트. 켈수스란 《데 메디키나》를 쓴 기원후 1세기경의 로마 박물학자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켈수스(Aulus Cornelius Celsus전25경–후50년)를 넘어선다는 뜻이다. / 아연을 발견해 그것을 "징쿰"(zincum)이라고 불렀다 / mercure, soufre et sel)
1497 필리프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 Schwartzerdt, 1497-1560), 독일 신학자, 종교개혁가.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 1512년에 튀빙겐에서 천문학, 법학, 수학, 의학도 공부했다. - [루터(Luther, 1483-1546)도 비텐베르크 교수였다.]
?-? 게르하르두스 부엘드비크 Geerhardus ?-?
1500? 바르톨로메오 에우스타키(Bartolomeo Eustachio, Eustachi, 1500경-1574), 이탈리아 의사, 해부학자, 인간 해부학의 창시자 중 한 명. Opscula Anatomica, 1564
1501 레온하르트 푹스/푸크스(Leonhard Fuchs, lat. Leonhartus Fuchsius, 1501–1566), 독일 의사, 식물학자. 약초 서(書 herbal, ptéridologue)를 썼다. 최근 의사들의 오류(Errata recentiorum medicorum, 1530), 약전(藥典)(Codex Fuchs: Codex Vindobonensis Palatinus 1536–1566). De Historia Stirpium Commentarii Insignes 1542(Notable Commentaries on the History of Plants): 식물과 약용에 관한 약초서.
1501 호퍼(Marcus Hopper, 1501-1565), 스위스 문헌학자, 대학교수. / 호퍼(Marcus Hopper, ?-1564), 바젤 대학 학생, 법학과 물리학을 배움, 페스트로 사망, 동일인물인지 모르겠음. -[[Marcus Hopper, qui s'est occupé de donner à l'imprimeur l'édition de 1549 de l'ouvrage de Benedetti, ...]
1505 귄터/공띠에(Jean Gonthier d'Andernach, Jean Guinter, Joannes Guinter, 1505–1574) 독일 의사, 의학사가, 해부학자. 파리대학 교수 역임. [deu. Johann Winter von Andernach, Johann Guinter“)
1506 페르넬(Jean François Fernel, 1506(1497)-1558), “생리학”이라고 명명하게 될 의학 주제들을 다룬 저서 《De naturali pane medicinae》 (1542)를 집필
1510 앙브루아즈 파레(Ambroise Paré, 1510경-1590), 프랑스의 외과의사, 해부학자. Et la méthode de curer les combustions principalement faictes par la pouldre à canon. 1551. « Je le pansay, Dieu le guarist » « Je le pansai, Dieu le guérit. » .
1514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 벨기에의 의학자.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 파리에서 공부하고 후에 이탈리아에서 해부학의 학파를 일으켰다. 1534년 의사로 종군하여 인체를 해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어 새로운 지식을 얻은 뒤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 교수가 되었다. 독일 황제 카를 5세의 주치의.〈인체 해부학 대계(De humani corpois fabrica libri septem, 약칭 인체의 구조(Fabrica)〉1543, 재판 1555.
1519 앙리 2세(Henri II, 1519-1559), 프랑스의 왕, 발루아 왕가의 분파인 발루아-앙굴렘 가문의 둘째 왕이다. [프랑수아 1세(François Ier, 1494-1547)의 둘째 아들, 첫째는 일찍 사망.]
1516 레알도 콜롬보(Matteo Realdo Colombo, 1516–1559), 이탈리아 의사, 해부학자, 파도바 대학 교수. 미켈란젤로 친구. “폐순환에 관하여”(dans De Anatomica, libri xv)
1523 팔로피오(Gabriele (o Gabrielle) Falloppio o Falloppia, 1523–1562), 이탈리아 의사, 해부학자, 식물학자, 박물학자. 베살리우스 제자(파도바 의대 교수).
1543 '얼개'(Fabrica) 출판: 신성제국 카를 5세(Karl V, 스페인 왕가 카를로스 1세 Carlos I, 1500-1558)와 프랑스왕 프랑스와 1세 사이의 전쟁 중에서 제5차 전쟁(1542-1546) 중이라 한다. - [신성제국과 프랑스 사이, 아홉 차례 중에서 여덟째: 1494–1498; 1499–1501; 1502–1504; 1508–1516; 1521–1526; 1526–1530; 1536–1538; 1542–1546; 1551–1559]
1578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 영국 의사, 생리학자.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 1598년에 이탈리아의 파도바 대학에 유학한 후 1602년에 돌아왔으며, 1609년에는 바르톨로메 병원의 주임 의사가 되었다.
1772 에티엔 조프루아 생틸레르(Étienne Geoffroy Saint-Hilaire, 1772-1844), 프랑스 박물학자. 퀴비에(Cuvier, 1769-1832)와 발생론 논쟁으로 유명하다. - La tératologie: τέρας « monstre » et λογία, « étude de »: (ou étude des anomalies du développement embryonnaire). [ "기형학 논문(Traité de tératologie)" 1836.]
1805 이시도르 조프르와 생틸레르(Isidore Geoffroy Saint-Hilaire, 1805-1861), 동물학자. 에티엔의 아들. “기형학”이라 명칭은 아들이 붙인 것 같다. 에티엔(부)과 이시도르(자)와 함께 별종(anomalie)을 학적으로 정리 Histoire générale et particulière des anomalies de l'organisation chez l'homme et les animaux, 1832-1837
*
1902 브로델(Fernand Paul Achille Braudel, 1902-1985) 프랑스 역사가. 아날학파. Civilisation matérielle, économie et capitalisme, XVe et XVIIIe siècles, 1979. / 브로델과 다른 이들, 주경철 역(1995, 2010), 1350-1450년 유럽 인구의 격감과 1450-1600년 사이 인구 증가 원인 분석. pp. 50-53.
1904 깡길렘(Georges Canguilhem, 1904-1995), 프랑스 철학자. 의사. “L'homme de Vésale dans le monde de Copernic: 1543,”(베살리우스(1514-1564) 서거 400주년, 1964)
1924 르 고프(Jacques Le Goff, 1924-2014), 프랑스 중세 사학자. 아날학파(École des Annales)의 3세대(1세대, 뤼시앵 페브르, 마르크 블로크; 2세대, 페르낭 브로델, 조르주 뒤비; 3세대, 필리프 아리에스, 마르크 페로, 자크 르 고프).
- Le Moyen Âge aujourd'hui, 1998.
- Un autre Moyen Âge, 1999,
- À la recherche du Moyen Âge (avec Jean-Maurice de Montremy), 2003. 최애리 역.
- Une histoire du corps au Moyen Âge (avec Nicolas Truong), 2003.
- Héros du Moyen Âge, Le roi, le saint, au Moyen Âge, 2004.
1934 셀던 왓츠(Sheldon Watts, 1934-), 미국 역사학자, 전염병연구, 질병, 권력, 제국주의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연구로 잘 알려진 독립 학자이자 역사가. Epidemics and History: Disease, Power, and Imperialism, Yale University Press, 1998. Disease and Medicine in World History, Routledge (New York, NY), 2003.
1942 시라이시(Nancy Gillian Siraisi, 1932), 미국 여성 의학사가. 대학교수. L'horloge et le miroir : Girolamo Cardano et la médecine de la Renaissance, 1997, La médecine et les universités italiennes, 1250-1600, 2001, Histoire, médecine et traditions de l'apprentissage de la Renaissance, 2007
1941 파라스칸돌라(John Parascandola, 1941–2024), 미국 의학사가. The Development of American Pharmacology: John J. Abel and the Shaping of a Discipline, 1992, Sex, Sin, and Science: A History of Syphilis in America, 2008 ,
1943 너튼(Vivian Nutton, 1943-), 영국 의학사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의 UCL 의학사 센터 명예 교수이자 르네상스 의학 및 신체 연구 센터의 회장. John Caius et les manuscrits de Galen, 1987.; De Democedes à Harvey: études sur l'histoire de la médecine, 1988.; Études de la Renaissance: médecine dans la ville de la Renaissance, (Ed.), 2001.
[1956 베네데티(Fabrizio Benedetti, 1956-), 이탈리아 토리노 대학교 의과 대학 의 생리학 및 신경과학 교수 이며 플라시보 연구 분야의 연구자.]
[1957 강신익(姜信益, 1957-), 부산대 의대 교수, <The Body as Culture: Medical Perspevtives of the East and the West, 2000, Univ. of Wales at Swansea, David Greaves.>
1961? 구수카와(Sachiko Kusukawa, 楠川幸子 남천행자, 1961?-) 일본와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일본 1986年国際基督教大学教養学部 졸업,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과학철학사 박사. 캠브리지 대학 과학사 교수. Picturing the book of nature: Image, text and argument in sixteenth-century human anatomy and medical botany, 2014, Andreas Vesalius: Anatomy and the World of Books (London: Reaktion 2024)
1962 오창석 (吳昌錫, 1962-) 성균관대 의학과 교수, <미꾸라지 송과체의 전자현미경적 연구, 1992, 전남대, 미표기.>
1964 오드기(Stephane Audeguy, 1964-), 프랑스 작가. 영화 제작자, 영화와 예술 교수. 괴물 가깝고도 먼 존재(스테판 오드기 저/김주경 역, 시공사, 2012년 07월 05일): 원제 Les Monstres: si loin si proches, Gallimard, coll. « Découvertes Gallimard/Culture et société » (no 520), 2007.,
1965 여인석(1965-), 파리7대학,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과
1968 박평종(1968), 중앙대학사, 파리8대학 학석사, 10대학 박사 <역사적 오브제와 미학적 오브제, Paris X (Univ. de Paris Nanterre), 2023 Maryvonne Saison, 2023>. “앙브르와즈 파레의 ‘괴물학’과 기형이론(Science de monstre et de tératologie d’Ambroise Paré)”, 프랑스학연구: 프랑스학회 2015, vol., no.74, pp. 393-417 (25 pages)
1975 이찬웅(李燦雄 1975-) / 이화여자대학교 / 조교수 (75년생) 들뢰즈의 신체 개념: 결백한 괴물(2016) <Corps, signe et affect dans la pensee de Deleuze: les trois problemes de Mille Plateaux, 2010, Anne Sauvagnargues, Ecole Normale Superieure de Lyon> / “들뢰즈, 변신의 괴물학(Deleuze, la teratologie de la metamorphose)”, 불어불문학연구, 2013,
1964 오드기(Stephane Audeguy 1964-), 프랑스 작가. 영화 제작자, 영화와 예술 교수. 괴물 가깝고도 먼 존재(스테판 오드기 저/김주경 역, 시공사, 2012년 07월 05일): 원제 Les Monstres: si loin si proches, Gallimard, coll. « Découvertes Gallimard/Culture et société » (no 520), 2007.,
1970 필립푸(Dimitrios Filippou, 1970-), 그리스 아테네 대학 의대 박사. 아테네 국립대학 외과 해부학 교수. 국립의료원 원장. - Filippou, Tsoucalas, Panagouli, Thomaidis and Fiska, 2020 “Machaon, son of Asclepius”, Cureus, 12(2) [Machaon, Son of Asclepius, the Father of Surgery. Dimitrios Filippou , Gregory Tsoucalas , Eleni Panagouli , Vasilios Thomaidis , Aliki Fiska. 2020.]
게르하르두스 부엘드비크 Geerhardus Bueldevik ?? ??
*
anatomie n.f. (1314) anathomie. (1370) anatomie. Emprunté au latin anatomia (« dissection »). - anatomen 목적격.
ἀνατομή, f. 1. a cutting up, especially of an animal or person, mutilation, dissection.
consectio 절개 절단 – 이발사 외과 의사의 작업,
dissectio 해부. - 의사들의 학문적 수행
fabrica lat. <- Dérivé de faber (« artisan-forgeron »), avec le suffixe –ica.
gr. ποιεῖν, ποιέω, 1. 만들다make, 2. 창조하다create, 제작하다, 3. 생산하다produce, 4. 추론하다postulate, imply, 연역하다, 추정하다, 5. 해결하다solve, 풀다, 6. 하다do, act, 연기하다. / 플라톤에서 데미우르고스의 포이융(ποιοῦν)은 제작과정 또는 제작기술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제작인(작용인) 또는 효과인과 같은 의미로 쓴다(l’efficient qui fait commencer le mouvement (τὸ ποιοῦν καὶ ὅθεν ἄρχεται ἡ κίνησις). // 베살리우스 시대에 fabrica는 인체가 신의 손으로 빚은 최고의 작품, 즉 피조물이리라. 중세의 신학에서 온 것이라기보다, 르네상스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플라톤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oculis et rationibus 눈과 방식으로.
주 168) oculis et rationibus, 눈과 방식으로, 고전 라틴어에서 ratio는 근대 이후의 추론이나 이성과는 거리가 먼 의미를 갖는다. 특히 서문 전체에서 rationibus로 사용되는 용례는 추상적 원인이나 추론을 의미하지 않고 철저하게 해부절차상의 방법에 한정되어 쓰이고 있음에 주목해야한다. 영역은 모두 reason으로 번역한 것에 반해, 불역에서는 methode를 취함으로써 그 의미를 보다 잘 살렸다고 할 수 있다. (박영민, 49-50)
*
구아이아쿰(Guaiacum)/과아약: le gaïac ou lignum vitae (bois de vie). 가리브지역과 중앙아메리카지역이 원산지인 매우 단단한 상록 교목으로, 주로 그 목재와 수지(Guaiac resin)의 다양한 용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창목(愈昌木).
- 후텐(Ulrich von Hutten, « ex Buchonia » , 1488-1523), 신성로마제국 기사. 독일 민족주의의 초기인물, 종교개혁에서도 선전가. 가이악의 사용을 했으나, 매독으로 사망(?) (la) De guaiaci medicina et morbo gallico liber unus (1521), Bologne, impr. Hieronymus de Benedictis. Ce traité sur la syphilis (le « mal français(프랑스 병)») et son traitement à l'aide du bois de gaïac faisait la fierté de son auteur, lequel mourut néanmoins de cette maladie ; trad. fr. & éd. bilingue par Brigitte Cauvin : La vérole et le remède du gaïac[매독과 가이악의 치료], Les Belles Lettres (Paris), coll. « Le miroir des humanistes », 324 p., 2015.
야콥 푸거(Jakob Fugger, 1459-1525), 독일 은행가. 본래 푸거의 조상은 방직공 출신으로 야콥 푸거의 조상인 요한 푸거의 대부터 상인이 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막시밀리안 1세를 후원으로 유럽 최대 은행. 막시밀리안의 손자인 카를 5세에게도 지원.
- 스페인 출신 오비에도(Oviedo?)가 푸거와 결탁하여, 아메리카 약재 수입으로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페르가몬 또는 페르가뭄(Πέργαμον 또는 ἡ Πέργαμος)은 아이올리스에 있었던 고대 그리스의 부유하고 강력한 도시이다. 소아시아의 북서쪽 미시아의 고대 그리스 도시였다. 헬레니즘 시대 기간에 페르가몬은 기원전 281년–기원전 133년 동안에 아탈로스 왕조가 다스린 페르가몬 왕국의 수도였다. /
페르가몬 왕국 또는 아탈로스 왕조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장군중 한 명이였던 리시마코스의 사망 이후에 페르가몬을 지배했던 헬레니즘 왕조이다. 페르가문 왕국은 리시마코스의 제국이 붕괴된 이후에 생겨난 잔존국였다. 리시마코스의 관료 중 하나였던 필레타이로스가 기원전 282년에 페르가몬의 통치권을 차지했다. 이후에 에우메네스 1세는 그의 아버지의 유래에 따라, 도시에서 왕국으로 확장시켰다. 아탈로스 1세는 갈라티아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후, 기원전 230년대에 스스로를 왕으로 선언하였다. 아탈리드 왕조는 아탈로스 3세까지 페르가몬을 통치했으며, 왕위 계승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유언에 따라 기원전 133년에 로마 공화국에 귀속되었다.
뤼시마코스(Λυσίμαχος, 전360-전281)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한 후계자였다. 기원전 306년에 왕위에 올라 트라키아와 소아시아, 마케도니아를 지배하였다., - 대왕 사후에 4 분할에서 카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그리스 본토),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 뤼시마코스가 서아시아(현 터키와 비슷), 셀레우코스가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샤의 영토를 분할 통치하였다.
호메로스(Homère, Ὅμηρος, 전8세기경 출생)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다. 고대 그리스 문학의 기초가 되는 두 편의 서사시인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의 저자,
- 아스클레피오스 (Asclepius, Ἀσκληπιός), 의학에서 신격화
- 포달리우스(Podalirius Ποδαλειριος)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편,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들로서 치료사. 트로이 전쟁에서 필록테테스(Philoctetes, Φιλοκτήτις)를 치료
- 마카온(Μαχάων)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들. 형제인 포달레이오스와 함께 테살리아 군을 이끌고 트로이 전쟁에 그리스 연합군으로 참전
- 아가멤논(Agamemnon, Άγαμέμνων), 미케네 왕국의 와낙스(왕중왕), 트로이전쟁을 이끈 그리스 지도자.
휘게이아(Hygie ou Hygée, Ὑγιεία ou Ὑγεία, « santé »), 신화에서 의학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딸이다. 위생(l'hygiène)의 용어는 휘게이아로부터 나왔다.
소우주(Microcosme) 이 용어가 처음 쓰인 것은 데모크리토스에서라고 한다. - fragment B 34 이 용어를 갈레누스가 쓰기도 했다.
학문적으로 용어의 등장은 아니지만, 세계영혼의 축소된 인간영혼으로 보는 견해는 퓌타고라스에서 나타나며,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도 등장한다고 한다.
정식 용어로 등장은 플라톤주의자인 실베스트르(Bernard Silvestre, 1100경-1165경, ou 1075경-1126경)의 De mundi universitate, sive Megacosmus et Microcosmus (1145)에서이다.
베살리우스도 그의 저술(얼개)의 서문에서 고대인들에 따라 ‘소우주’라는 개념을 한번 사용하였다.
*열외
아펠레스(Apelle, Apeles ou Apèles ou Apelles, Ἀπελλῆς, 350년경), 고대 그리스 화가, 알렉산더 대왕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전해진다.
아펠레스 또는 코스의 아펠레스(Ἀπελλῆς; 전4세기 경)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화가였다. 이 예술가에 대한 현대 학자들의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는 그를 이전 및 후속 예술가들보다 우월하다고 평가했다. (박물지 5.36.79–97 and passim) 그는 아펠레스를 112대 올림피아드(기원전 332~329년)와 데이트했는데, 이는 그가 알렉산더 대왕의 초상화를 제작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15:12, 58WMH) (17:38, 59LKB)
**** *** **
발표문을 읽고
논1977박영민25베살리우R본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De Humani Corporis Fabrica의 서문을 통해서 본 16세기 서구 의학의 중층적 특성 연구
- 박영민, 연세대 대학원: 의사학 및 의철학 협동과정, 2025, 12월. P.70. [본 논문]
***
예비논문에 비해, 수정한 최종본에서 4장으로 따로 베살리우스의 해부학에 이르기까지 학문 발달사를 보충 설명하였으며, 5장으로 16세기에 갈레노스주의의 전승과 전파에 대해, 그리고 더하여 16세기 질병으로서 전염병과 골격과 구조로서 외상에 대해 따로 다루었다.
*[제출 논문]
차례
제1장 서론 3
제2장 ‘인체의 얼개’해제 6
2.1. 베살리우스의 생애 6
2.2. ‘인체의 얼개’를 둘러싼 논쟁들 7
2.3. 라틴어 판본 개관 10
2.4. 번역본 개관 12
2.4.1. 선행 번역본 개관 12
2.4.2. 한글 번역본 개관 13
제3장 ‘인체의 얼개’ 한글 번역문 14
제4장 ‘인체의 얼개’서문으로 본 해부학의 역사 42
4.1. 고대 해부학 42
4.2. 중세 해부학 43
제5장 ‘인체의 얼개’ 서문으로 본 16세기 의학 48
5.1. 갈레노스와 베살리우스 48
5.1.1 베살리우스가 본 갈레노스 48
5.1.2 역사 속 갈레노스 50
5.1.3 16세기 갈레노스주의 51
5.2 16세기 의학의 실상 53
5.2.1. 16세기의 전염병 53
5.2.2. 외상으로 본 16세기 의학 56
제6장 결론 57
참고문헌 63
# 참고로 초고 자료 목차 .... .... ...
****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 ‘얼게’ 서문에 관한 [예비 논문]]
차례
서론 2
본론 5
1) 해제: 라틴어 판본 및 저자 개관 5
(1) ‘얼게’ 라틴어 판본 개관 (1543년과 1555년판 비교) 5
(2) 베살리우스 생애 7.
2) 해제: ‘얼게’ 번역본 개관 및 한글 서문 번역본 쟁점들 140
(1) ‘얼게’ 번역본 개관
(2) 한글 서문 번역본의 쟁점들 11
3) 해부학의 역사로 본 ‘얼게 13
(1) 해부학의 등장 13
(2) 갈레노스와 베살리우스 17
(3) ‘얼게’를 둘러싼 논쟁들 20
4) 16세기 의학의 중층성 23
(1) 질병과 치료로 본 16세기 23
(2) 16세기 의학의 쟁점들 25
5) ‘얼게’ 서문 번역본 30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얼게’” 서문 30
3. 결론 59
+ 참고문헌 64–70
# 덧붙여서
내가 초고본을 다 읽었을 때는 이미 논자는 초고문을 스스로 수정하여 발표하였다. 우선 내용면에서 초고에서 “‘얼개“ 서문”이 뒤에 있었던 것을 3장으로 앞으로 당겼고, 4장과 5장으로 장을 따로 구분하였다. 즉 4장에서 해부학의 전개과정을, 5장에서 당대의 의학과 연관하여 갈레노스와 베살리우스의 관점들을 설명하였다. 나도 장들을 옮겼으면 했는데, 이렇게 재배치한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베살리우스에게서 “파브리카”의 용어와 관련하여 플라톤의 “티마이오스”편의 연결에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논자는 이것을 결론에서 첨가하였다. 그리고 소우주와 대우주에 대한 논의를 논자는 초고 더 이상으로 관심을 표시하지 않았다. 이 우주론적 관심은 형이상학적이라서 논문에 삽입시키기 마땅찮을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아마도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의 세계(코스모스) 제작이 목적론적으로 여기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의 견해일 것이다. 데미우르고스의 작업이 얼개(구조)에 한정시키고 형태적으로만 생각하면 합목적성으로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박홍규처럼 제작의 어려움이 있어서 질료(물질)를 어르고 달래서 이데아를 심어야 한다는 해석이 들어가면, 구조의 합리성을 넘어서, 플라톤에게서 질료 속에 이데아와 닮지 않은 생리학적 또는 생물학적 내용들을 찾을 수 있다고 하며, 그래서 박홍규는 플라톤에게는 우주론만큼이나 우주발생론이 있다고 강의하였다. 어째거나 해부학의 ‘얼개’는 구조를 우선하여 다룬다는 점에서 우주론에 가깝지만, 베살리우스의 저술에서 5권의 영양활동과 6권의 생명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보면, 생명의 생성과 성장에 관심도 그만큼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신체를 다루는 이들은 구조를 다루기도 하지만, 구조 안에서 유기적 연관(생리학)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이런 의미에서 논자도 결론에서 17세기에 이르면 기계론의 관점에서 인체에서 ‘동역학적 운동기계’로 변환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생리학적이고 생명적인 것으로 확대되어 갈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이런 관점은 르네상스를 지나면, 신학에서 벗어나는 학문들이 자연과 생명을 다루는 인간의 인식의 변화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 발표문 4장과 5장은, 내가 초고를 읽고 논문에 나오는 의학자들의 연표를 만들어 보았다. 이 작업이 느려져서, 논자는 발표 후에 나의 목록 작업을 읽을 수 있었다. (59LKC)
# 참조 1
* 초고본
<126 Oss, musculum, nervus, vena, arteria, 뼈, 근육, 신경, 정맥, 동맥의 fabrica,‘얼개’가 처음으로 언급되는 곳이다. Fabrica는 원래 장인들의 공예품 특히, 직물의 짜임새를 의미한다. 고대 철학의 목적론이 플라톤 철학의 데미우르고스 개념과 결합되면, 인체는 신의 손으로 빚은 최고의 작품으로 간주된다. (초40)>
*발표문
<주78 fabrica, 얼개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언급되는 곳이다. Fabrica는 원래 장인들의 공예품 특히, 직물의 짜임새를 의미한다. 고대 철학의 목적론이 플라톤 철학의 데미우르고스 개념과 결합되면, 인체는 신의 손으로 빚은 최고의 작품으로 간주될 수 있는데, 베살리우스가 인식한 몸이란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용어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발 23)>
# 참고 2. 결론에서 흥미로운 새로운 첨가
<이렇게 볼 때, 베살리우스가‘Fabrica’라는 용어를 책의 제목으로 채택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래 장인들의 제조나 작업물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주로 건축 분야에서 사용된다. 서문 번역문에 여러 차례 언급되는 제작자들의 주체는 기독교적 신이거나 자연,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를 연상케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체는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이상적 피조물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여기에서 왜 베살리우스가 변이나 이상 또는 기형에 대한 관찰을 했음에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신적 존재에 가까운 제작자가 인체라는 작품을 완성하는데 실수나 오류를 했을 까닭이 없다는 중세적 관점은 그에게 낯선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관찰 결과의 세부적 사항들이 이상적 인체라는 관념을 벗어나더라도 그것은 사체의 개별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16세기 말부터 이런 이상적이고 정적인 구조물로서의 인체에 새로운 관점이 도입된 것으로 보이고, 17세기의 기계론이 본격적으로 인체에 적용됨으로써 인체는 이제 동역학적 운동기계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발 60)>
# 참고 3. 소우주와 대우주에 관하여: 초고와 발표문은 그대로였다.
<왜냐하면, 이 거처는 여러가지 면에서 우주와 대응됐기에, 마땅히 옛 사람들은 소우주라 부른 것입니다. (초57) (발, 40)>
<주 196) Permultis nominibus, 직역하면, ‘여러가지 이름으로’를 의미하나, 중세 점성술에서 인체 부위의 우주적 대응 구조를 고려해 볼 때, 여러가지 측면에서 대응된다는 번역이 더 적절해 보인다. 영역2와 불역이 이름으로 본 것에 반해 영역1은 측면으로 해석했다. 대우주와 소우주의 상응체계는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세계관을 대변한다. 베살리우스 또한 이러한 세계관을 수용하고 있으며, 앞서 수학과 천문학을 비롯한 대우주에 대한 언급으로 자연스럽게 이런 구도를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개정판에서 microcosmos를 대체하는 구절, parvus mundus는 우주론적 구도보다는 보다 지상의 세계 속에 속한 인간의 위상을 제시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57) (발40 주149)>>
# 참고 4. 초고에서 종교적 이유로 인체해부 금지라는 언급이 있었는데, - 나도 궁금해서 만나면 물어보려고 줄을 쳤는데 - 발표문에서 보니파시오 8세의 칙령에 의한 것이라고 본문에 설명하고 주까지 달았다.
- 의학사에서 <1299년 교황칙령으로 ‘인체해부금지가 아니라, 사체훼손이나 절단에 대한 금지를 표명하였다고 한다. (발 47)>
- < 주171) Arasse et al. (2005, 2014), 351-353쪽, 칙령은 시신운구를 쉽게 하기 위해 시체를 절단하던 자인한 습관을 막기 위함이었다. (발 47)>
- [교황 보니파시오 8세(Bonifacius VIII, it. Papa Bonifacio VIII, 1235-1303), 제193대 교황(재위: 1294-1303).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와 갈등 끝에 1303년 아나니 사건이 발생하였고, 빰을 맞고 폭행을 당하는 등 모욕을 당한 후 감금당했다. 그 충격으로 한달 만에 사망하였다.] (5:06, 59LKC)

첫댓글 정식 제출본 제목: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De Humani
Corporis Fabrica 의 서문을 통해서 본
16 세기 서구 의학의 중층적 특성 연구
지도교수 여 인 석
이 논문을 석사 학위논문으로 제출함
2026 년 1 월
연세대학교 대학원
인문사회의학협동과정
박 영 민
심사위원장: 여인석
심사위원: 강신익
심사위원: 오창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