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수능을 치고 난 다음이었다. 수능을 치고 한가할 때 학교에서 시간을 지루하게 시간을 때우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러던 중에 학교에서 이 영화를 방영하였고, 나는 이 영화에 집중하며 몰입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과 최우수 감독상을 수여한 작품이기에 우리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하지만 영화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표면적인 재미만을 느꼈다. 지금도 생각이 모자란 나이지만, 그 때는 정말 철이 없었기……. 론 하워드 감독이 표현하려고 한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삶이라는 것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이상의 깊은 의미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존 내쉬라는 노벨상 수상자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 논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는가하는데 더욱 초점을 둔 것 같다. 다른 사람들 보다 과학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것이 그에게 정신 분열증을 가져다 주고 현실 세계와의 괴리감을 낳게 한 것이다.
과학! 과학은 우리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주는 이로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인간이 처음 이 지구에 탄생했을 때부터 과학은 존재하였다. 인간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들에 관해 과학이 관여하였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이 없으면 우리 인류는 단 하루도 살수 없을 것이다. 의식주, 모든 생활에 제약을 받으면서 살아 가야할 것이다. 그리고 과학이 우리 미래에 주는 전망도 밝다. 과학을 통해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워 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을 과학이 풀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든 것이 과학적, 그리고 수학적 공식에 의해 풀려지지는 않는다. 영화에서는 존 내쉬 같은 뛰어난 과학자도 과학이 모든 것을 정의할 수 있을 거라는 망상에 빠진 것을 보여준다. 존 내쉬는 일상의 모든 것을 방정식과 논리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주변에 있는 사물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았다. 모든 것을 패턴화 시키고 과학적으로만 보려고 노력했다. 너무나도 과학에 대해 맹신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미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다. 과학은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더욱 잘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존 내쉬는 과학만을 우선시하여 맹신한 나머지 정신 분열증이라는 증상을 겪게 된 것이다.
존 내쉬는 자신의 기숙사 방 창문을 바라보며 한 공식을 쓰고 있다. 그것은 눈 오는 거리에서 공을 차고 노는 모습을 식으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새들이 날라다니고 있는 공원에서도 휴식을 즐기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새들이 움직이는 모습까지 식으로 정리하여 공식으로 도출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또, 그의 친구의 넥타이에 있는 무늬를 빛의 굴절을 이용해 싸구려라고 증명하는 모습에서 놀라움도 느낄 수 있었지만, 사람다운 인간미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인간미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다.
존 내쉬는 모든 것을 과학적 패턴화 하는 가운데에서 정신 분열증을 겪게 된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 찰스 허스만이 그 시작이다. 찰스와 내쉬는 절친한 사이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쉬만의 허상이었다는 것은 그가 정신 병원으로 갔을 때 밝혀 진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당연한 것 같다. 방탕한 룸메이트 찰스가 영화 상에서 누군가와 대화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존 내쉬하고만 대화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 장면에서의 반전은 정말 섬찟하기 까지 했다. 그리고 그가 매일 같이 자신의 방에 틀어 박혀 자신이 국가 일급 기밀이라고 굳게 믿는 일을 하는 것도 평범한 잡지를 패턴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밀에 관련되어 있어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의 생명까지 위험하다고 느끼며 더욱 정신의 이상이 심해진다. 주위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그의 현실과의 괴리감은 더욱 더 커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이란 것은 진리에 도달 할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수단이 되어야 할 과학의 목적이 전도되어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불행한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돈이 목적으로 전도되면 사회에 반드시 재앙이 일어난다. 그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과학도 따지고 보면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는 돈이랑 역할이 같다. 그런 과학이 인간 위에 군림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인 것 같다.
그리고 과학은 인간의 능력을 퇴화시킨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주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세계 어느 곳의 모습도 원한다면 텔레비전을 통해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심심할 때 우리에게 솔깃한 재미를 주는 것도 텔레비전이다. 하지만 우리는 텔레비전을 "바보 상자"라고도 한다. 우리가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점차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좋은 정보를 주는 것도 텔레비전이지만 잘못 이용하면 악영향을 미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또, 현대 과학 사회의 대표적인 산물은 컴퓨터이다. 컴퓨터를 통해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엄청난 도움을 받는다. 직장에서뿐만 아니라, 가정, 심지어 학교에까지 정말 다양한 곳에서 컴퓨터를 사용한다. 그러면서 인터넷이 발달하게 되고, 정보가 지니는 가치가 대단히 커졌다. 일도 빨리 처리할 수 있게 되고, 생활도 더욱 편리하게 해주는 컴퓨터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과학에 대한 맹신은 더욱 깊어만 갔다. 하지만 과연 좋은 점만을 가져다 주었을까?
정보화가 되면서 우리 사회는 더욱 빨리 그리고 더욱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말 그대로 하루만 뒤처지면 영영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현대 사회이다. 사회가 더욱 바쁘게 진행될수록 더욱 사라지는 것이 바로 인간의 정이다. 사회가 바쁘게 돌아가는 만큼 인간들은 동지가 아니라 경쟁자가 늘어나게 된다. 존 내쉬도 대학 생활 시절에 연구소에 스카웃 되기 위해 동료들과 경쟁한다. 그리고 경쟁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신경전도 벌린다. 적당한 선의의 경쟁이 발전을 불러일으킨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기기 위해 서로를 눌러야 된다는 것이 참 몰인정하다고 느꼈다.
존 내쉬는 이런 힘든 삶의 과정에서 어쩌면 자신에게 부족하고 필요한 것들만을 허상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부족한 대인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유일한 친구가 찰스인 것이다. 그리고 또한, 삭막한 삶이 계속 되는 나날들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순수함을 지닌 마시,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엄청나게 인정해 준 파처가 바로 그들인 것이다.
그리고 존 내쉬가 암호를 해독할 때 장면이 아주 인상적인 것 같았다. 가만히 들어다 보고 있으면 그 의미가 있는 곳에서만 빛이 반짝 반짝 거리는 것에서 나도 모르는 기쁨이 생겼다. 마치 내가 그 암호를 해독하는 것처럼... 대리 만족이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뿐이고, 그 암호 해독하는 것이 모든 것을 패턴화하는 정신 분열증으로 빠져드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존 내쉬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존 내쉬에 못지 않게 고생한 사람이 그의 아내 엘리샤 인 것 같다. 존 내쉬에게 색다른 매력을 발견한 그는 남편의 부족한 점을 보안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면서 그녀는 남편이 정신분열증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는 누구보다도 슬퍼한다. 그리고 그의 치료에 온 힘을 다 쏟는다. 그녀는 헌신적인 희생을 하는 가운데 점점 작은 상처를 받게 되고 그 상처들이 점점 커져 간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그런 희생이 존 내쉬에게는 믿음으로 다가왔고, 그 믿음은 존 내쉬의 불안감, 자존심, 허영심을 물리치는 계기가 된다.
존 내쉬는 마지막 수상 장면에서 "전 소중한 것을 발견했어요. 그건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발견입니다. 어떤 논리나 이성도 풀 수 없는 사랑의 신비한 방정식을 말입니다.”라고 말한다. 존 내쉬는 정신 분열증에 빠졌을 때, 많은 과학적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치료되지 않았다. 정신 진료소에서 의사들의 치료를 받으면서, 그는 그의 아내를 만났다. 그 때 아내는 남편의 증상을 확실히 알게 되었고,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남편을 치료하기 위해 과학적 힘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 힘도 과학에 도취되어 있는 존 내쉬의 정신분열증을 치료하지는 못한다. 약을 복용하기도 하고, 전기 충격도 받기도 하여 증상이 수그러드는 듯 하지만 다시금 그는 정신 분열증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사랑스러운 아내의 보살핌 속에 현실과의 괴리를 좁혀 나가고, 극복할 수 있는 가망성을 보인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들을 멀리 하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믿음과 자기 스스로 이병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모든 세상의 일들을 자신의 공식대로 생각하려고 했던 존 내쉬에게 이성으로는 풀 수 없는 감성적인,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의 공식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수상 장면에서 또 하나 감동적인 것이 자신이 처음 그녀를 만나 데이트를 했을 때 받은 손수건을 그 때까지 간직하고 있다가 옷소매에서 끄내어 보였을 때이다. 정말 사랑은 위대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가슴 저 편 안 쪽 까지 찡하게 만들었다. 정말 작은 것 하나 하나라도 신경을 잘 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은 우리 사회에 주는 영향은 막대하다. 이익이 되는 점도 많지만 해로운 점도 많을 것이다.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해 준다고 무턱대고 과학을 맹신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과학이 우리의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에는 과학적 이익으로 맺어진 인간 관계가 돼어서는 안 된다. 존 내쉬와 그의 아내 엘리샤와 같은 아름다운 사랑으로 맺어진 인간 관계야 말로 우리 사회에 꽃 피워야 할 것이다.
첫댓글 과제물 잘 쓰셨구요, 답안도 잘 보았답니다. 특히 십우도의 내용을 한자로 다 옮겨 놓은 정성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반 이내에 들어오게 했어야 했는데, 죄송하답니다. 어차피 점수도 수단에 불과한 것일 뿐이니까요... 오프 때 만나뵈면 술 한잔 따라 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