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무릎을 안고 있습니다. 봄이 와서 봄산에 봄새가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봄새가 웁니다. 가늘은 피리소리를 냅니다. 간격을 두고 웁니다. 이름을 알 수가 없습니다. 가지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봄이 오는 소리를 홀로 다 연주하고 있습니다. 솜씨가 좋습니다. 공중을 저 가늘은 천수千手의 소리로 쓰다듬으면서. 나는 내 방에 앉아 그이의 우는 소리를 다 쓰다듬습니다.
봄이 오니 새가 많아졌습니다. 못 보던 새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몸이 아주 작은 봄들이 가지마다 앉아 공중을 쓰다듬습니다, 아지랑이처럼. 저마다 생기가 있고 곱습니다.
서로가 쓰다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움큼씩 소량으로 봄비가 올 적에도 그렇습니다. 봄비는 풀잎을 적실 정도로 옵니다. 땅이 촉촉해질 정도로 옵니다. 엷은 안개가 끼는 일도 그렇습니다. 박무薄霧는 빗으로 공중을 한 번 빗겨주는 정도입니다. 거미가 구석에 거미줄을 내는 일도 그렇습니다. 모두 알뜰히 쓰다듬는 일입니다.
쓰다듬는다는 것은 “내 마음이 좀 그렇다.”는 뜻입니다. 말로 다 할 수 없어 그냥 쓰다듬을 뿐입니다. 말을 해도 고작 입속말로 웅얼웅얼하는 것입니다. 밥상 둘레에 앉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가난한 아버지의 손길 같은 것. 동생의 손을 꼬옥 잡고 데려가는 예닐곱 살 누이의 마음 같은 것. 으리으리하지는 않지만 조그맣고 작은 넓이로 둘러싸는 것. 차마 잘라 말할 수 없는 것. 그런 일을 쓰다듬는 일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오늘 낮에는 박씨를 선물 받았습니다. 나는 하얀 종이에 박씨를 쏟아놓고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뜨거운 심장 같았습니다. 고요한 껴안음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 씨앗으로부터 싹과 푸른 줄기와 하얀 박꽃과 둥근 박을 꺼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두고 볼 뿐입니다. 하나의 박씨가 어떤 쓰다듬음을 이 세상에 내어놓을지 잘 알지만 기다릴 뿐입니다. 기다리는 것도 쓰다듬는 일임을 아는 까닭에.
이렇게 봄이 옴은 파랑주의보를 받는 일 같습니다. 잔물결이 곧 일겠다, 라고 생명들이 막 세상을 쓰다듬을 것이라는 전보를 전해 받는 일. 푸른 넌출들이 출렁출렁할 것이라는. 나아가서 내가 당신을 등 뒤에서 감싸듯이 작은 둘레가 될 것이라는. 그렇게 쓰다듬겠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봄에는 쓰다듬는 것이 열애熱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