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중대 4소대 118번 예비이병 김두영아!
아들아!
오늘은 제식훈련 이라는 이름으로... 퇴소식 거행을 위한 예비 훈련을 하였느냐?
퇴소식에 참관하러 오는 부모들을 위한다며, 연병장 구석구석의 쓰레기 제거, 제초작업도 하였겠지?
실은 잠시 다녀가시는 사단장님 눈에 거슬리지 않으려는 간부들의 노력을 훈련병이 수행하는 건데...
ㅎㅎㅎ 삼십년 전엔 그랬다...
외부... 손님 특히나 상급부대 지휘관이 오시는 날은 며칠 전부터 난리법석~... 그랬다!
비 전시에 인사권을 가진 상관을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상명하복의 군대 문화가 정착되어 있어야
전시에 명령에 의하여... '돌격 앞으로~'를 수행할 수 있는 군인정신을 발휘할 수 있단다.
능률과 효율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30년전의 원시 군대는 그랬다.
그 것이 군인정신이며 책무수행이라 생각하며 시간을 죽였단다.
모든 것을 비능률, 비효율이라 생각하면서도, 비겁자가 되어 감히 의견을 개진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제대를 하고보니
내 자신이 훌쩍 커져있고, 의지가 강해졌고, 가치관이 서게 되더구나.
아! 이럴땐 이렇게, 저럴땐 저렇게... 세상 살아가는 방법도 터득되어 있더구나.
아빠가 네게 귀 아프게 들려주던 가치관들!... 기억하지? 모두 그때 정립된 것이란다.
오늘! 서늘한 아침 바람과는 달리 대낮의 뙤약볕은 강렬하던데...
가을이 오는 길목에 서서 조교들이 만족할 때까지 연병장이 떠나가도록 목청껏 군가를 불렀겠지?
네가 소속한 태풍사단가도 목에 핏줄을 세워가며, 눈에 핏발이 서도록 불렀겠지?
군가!
아빠도 군생활 동안 그리 가짓수가 많지않은 군가를 매번 반복적으로 불러대었기에
지금도 30년전의 군가들은 웬만하면 모두 따라 부를 수 있는 아빠란다.
교육장과 교육장을 오갈때는 물론, 식당을 갈때도, 심지어는 휴식시간에도 불러야 했기에... ㅎㅎ
군가라는 것이 ...
박자 자체도 힘이 실리고, 반동 또한 흥을 돋구며, 가사도 저절로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그치?
아빠도 짐작은 하고 갔었지만 당시의 군생활은 막상 부딪쳐보니 충격 그 자체였다.
반복되는 하루 일과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느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수가 없었단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날아오던 발길질... 나 하나의 잘못이 단체 기합으로 이어질까봐... 노심초사!
뺑뺑이, 얼차려, 구타가 교육의 방법이라 신봉하는... 인간미나 동정심은 아예 없는 악에 받친 조교들.
현대화된 군대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너도 아빠의 고통을 답습했을 것이다.
가난 속에서 자라다가 갔던 가난한 군대나... 풍족함 속에서 커가다가 간 풍족한 군대나...
박자가 맞아야 되고, 규격이 맞아야 하고, 줄을 맞춰야 하고, 각 또한 소홀히 할 수가 없고 ...
이제...
나의 씩씩한 둘째아들이 그 어려운 고통을 이기고 군대생활의 첫걸음을 마치려 하는구나 ...
장하다!
너는 주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유복하게 자라났기에 의지가 나약할 것이라 생각했단다.
그래서 군생활을 통하여 다각적인 시련과 경험으로... 강한 아들이 되기를 바랬단다.
진정한 성인이 되었을때... 보다 큰 가치를 창조하는 아들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단다.
네 딴에는 실패한 입시를 통해서 외로움과 괴로움의 맘고생을 경험했다고 생각하겠지?
아빠가 생각하기엔 가소로울 정도의 어리광스런 생각이다.
함께 있는 전우들은 네가 겪은 괴뇌의 평균 열배의 고통을 겪고 자라온 사람들이다.
그 들은 삶에 있어 너에 비해 역전의 용사들이고, 너는 온실속에 자란 화초이다. 많이 느꼈을텐데?
세상사가...
절대평가로 모두가 잘사는 것이 사람사는 사회의 이상이라면 ...
현실은 비교평가 되는 삶에 괴로움이 양산되는 것이란다.
다시 말해 끝없는 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야 하는 것이 삶이란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좋은 학문을 배울때부터 생기는 우열의 분리부터, 자연의 섭리인 생로병사의 비교에서 생기는 고통까지
상대적인 풍요와 상대적인 빈곤의 잣대에 들어 애시당초 인간사에... 모두의 행복은 없단다.
성직자를 포함하여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단지 다수의 행복을 위하여 노력할 뿐이란다.
이제 사흘 뒤면 위장모와 위장복에 노란 작대기 하나가 박히겠네?
ㅋㅋㅋ 가소롭다 ~ 아빠는 네개였는데 ... 자랑스런 육군 병장! 김병장! ...
그렇지만 축하한다!
가소로운 이등병 아들아~ 네가 흘린 땀과 삼킨 눈물의 량을 알고 있단다...
이천십삼년 구월의 둘쨋날에... 아들 볼 날 사흘 남은... 아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