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문물

도윤루(수변루)
연길시 하남가두 광화로 서광골목,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 북쪽에 자리잡고있다. 청광서말년에 건설하기 시작했고 선통원년(1909)에 준공된 수변루는 선통원년에 설립한 변무독판공서 남대루의 "화청", "양화청"이라 불렸다 한다. 수변루는 동서길이가 20.8메터, 남북너비가 18.6메터 되는 정남향 2층루각이다.
1908년 일제가 연길지방에 침입하여 룡정촌에 "통감부 간도파출소"를 설치하자 청조는 선통 원년(1909년)에 길림변무독판공서를 설치했다. 1910년 정월에 변무독판공서가 해산되자 동남로병비도태공(东南路兵备台公署)가 이곳에 옮겨왔다. 1913년 6월 도대공서를 동남로관찰서로 고쳤고 민국 3년(1914년) 6월에 동남로관찰서를 연길도윤공서로 고쳤다. 남대루는 도대공서, 관찰공서와 도윤공서로 씌였는데 도윤공서로 씌인 기간이 16년에 달해 도윤루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력사기재에 의하면 수변루의 건축규모는 상당했으며 부지면적이 2900헥타르에 달했다. 변무독판공서 청사는 검은 벽돌에 푸른 기와로 지은 집으로 주변에 비교적 큰 건축군이 있었는데 남쪽청사, 북쪽청사, 사무청, 대청, 서양대청 등 도합 221칸으로 되여있었다고 한다.
성자산 산성
연길시와 10킬로메터쯤 떨어져 있으며 부르하통하와 해란강이 합류하는 부근의 성자산에 자리잡고있다. 산정상의 사변에는 흙과 돌로 건축한 성곽이 있고 4.5킬로메터에 달하며 중부에는 궁전유적이 있으며 많은 동하국 문물이 출토된바 있다.
사은기념비

연길시서북교외의 소영진 와룡촌의 동산기슭에 한백옥으로 만들어진 "사은기념비" 다섯자가 씌여진 기념비가 있다.
1907년 와룡동의 애국반일지사들은 소학교를 개설하고 1910년 중학교로 바꿨으며 이름을 "사립창동중학"이라고 이름을 달았다. 개설된지 십여년간 선후로 많은 애국반일인재들을 배양해냈다. 1920년 "경신대토벌"시 대부분의 교사들은 부득이하게 각지에 흩어졌으며 학교는 수업을 끊고 해산되였다.
1935년 9월 12일, 이 학교 학생이였던 정세환 등은 모교의 교사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이 기념비를 세웠다.
대돈대유적
원 흥안향정부 동쪽 1킬로메터쯤 떨어져있는 대돈대는 워낙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조그마한 돌산이다. 근 몇년사이 산을 파헤치고 채석하는 통에 다만 북쪽켠의 3분의 1만 남았다. 대돈대 정수리 원시 문화층 웃쪽은 인공으로 흙과 돌을 쌓아 높이 약 4.1메터로 축조한 돈대이다. 옹근 돈대는 원추형으로서 꼭대기 2메터되는곳에 인공으로 수축한 환형층계가 있었다. 대돈대 밑면의 직경은 60메터, 높이는 17메터, 웃면의 직경은 약 20메터이다.
소돈대유적

연길시인민공원의 가장 북쪽의 작은 산에 위치해있다. 소돈대는 흙과 돌로 쌓여졌으며 높이가 8메터, 밑부분의 둘레가 180메터, 직경이 53메터 되며 가장 웃부분의 직경이 19메터정도 된다. 발해시기의 봉화대로 여겨지고있다.
연변고장성

연길시 팔도구의 쌍봉산과 연길시 북쪽의 평봉산 산등성이에 고장성과 봉화대가 남아있으며 연변고장성의 조성부분이다.
연길에서 발견된 고대장성은 이어서 연길, 룡정, 화룡 험산준령에도 자욱을 남기고있다. 연길시북부의 고대장성은 대부분 토건축이였고 일부 돌건축도 있었으며 돌과 흙으로 된 토석건축도 있었다. 현재 발견된 고대장성은 서쪽으로 화룡시 룡성진 동산촌 이도구의 산마루에서 시작하여 서성, 룡문, 다시 룡정시 세린하, 도원, 동불사, 조양, 팔도, 또다시 연길시 연집, 도문시 장안진 마반산(성자산성부근)을 거쳐 동으로 장안진 계림북산에 이르는데 총길이가 150여킬로메터에 달한다고 한다. 이미 발견된 봉화대는 17개에 달하고 고장성의 가장 긴 부분은 세린하부터 로투구진에 이르는 부분으로서 10킬로메터에 달하며 가장 보존이 잘된 부분은 로투구의 관선촌에 위치해있으며 높이는 3메터정도에 달한다.
고장성은 문선의 기재가 없다. 연구에 따르면 동하국의 변강장성으로 추정되며 일부는 발해시기에 건설을 시작했고 훈춘의 "변호"와 함께 발해중경과 동경을 감싼 장성으로 여겨지고있다. 또 일부는 금대의 장성, 혹은 고구려시기의 장성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모아산돈대유적
연길시와 룡정시가 만나는 부분에 위치한 모아산(해발 517.2메터)의 정상엔 화산암으로 쌓아 만든 높이가 약 3메터에 달하는 돈대가 있다. 웃부분의 직경이 6~8메터인 모아산돈대는 발해시기의 봉화대로 여겨지고있다.
욕지산유적
연길시와 10킬로메터정도 떨어져있고 한쪽으로는 성자산과 마주하여있으며 다른 한쪽으로는 성자산과 련결되여있다. 산의 정상엔 둥근 원형의 목욕늪이 있는데 동하국 국왕이 목욕하던곳이라고 전해지고있다.
모아산
연길시 서남부에 위치해있으며 연길-룡정1급도로의 서북쪽에 위치해있으며 모아산의 산봉의 해발은 517.2메터에 달한다. 산의 모양이 모자처럼 생겼다 해서 모아산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산에는 발해시대의 봉화대유적이 있고 북쪽 산기슭에는 조선족민속촌이 자리잡고있다. 산기슭은 울창한 인공림인데 면적이 700여헥타르에 달하며 1992년에 국가삼림공원으로 비준받았다. 모아산의 남쪽은 룡정시의 해내외에 이름난 만무사과배과수원이 자리잡고있다.
마반산
동쪽으로 연길시내와 15킬로메터정도 떨어져있으며 서쪽으로 동하국 남경의 성자산과 2킬로메터정도 떨어져있다. 북쪽 산기슭으로 부르하통하가 흘러지나고있다. 마반산은 여러 산사이에 우뚝 솟아있으며 해발은 602메터네 달하는데 모양이 매돌을 닮았다고 해서 마반산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북쪽으로는 30여개의 원형구뎅이가 있으며 적갈색 혹은 흑갈색의 도자기조각들이 발견된바가 있어 원시문화유적으로 추정되고있다.
룡산
연길시의 남부에 위치해있으며 연룡도로의 동쪽에 있다. 연길시와 룡정시 동성용진의 분계산이다.
평정산
평봉산이라고도 불리우며 연길시 북쪽, 연집의 서쪽, 태암톤과 19킬로메터 떨어진 위치에 자리잡고있다. 면적이 520헥타르에 달하는 대지로서 해발은 682메터에 달한다.
연통립자
연길시의 북쪽에 위치해있으며 연집의 동부 14킬로메터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있다. 모양이 굴뚝을 닮았다 해서 얻어진 이름이며 해발 647.6메터에 달한다.
흑림자산
연길시의 북부에 위치해있으며 연집과 25.5킬로메터 떨어져있고 해발은 861.4메터에 달한다.
마향산
연집의 동북부에 위치해있으며 연집과 25.5킬로메터 떨어져있고 해발은 713.1메터이다.
자자봉
연길시의 북쪽에 위치해있으며 연집의 서쪽, 연집과 18.5킬로메터 떨어져있다. 해발은 685.8메터에 달한다.
성자산
산에 고성유적이 있어 얻어진 이름이며 연길시와는 10킬로메터 떨어져있다. 부르하통하는 남쪽 산기슭을 흘러지나며 모든 산의 모양은 말발굽을 닮아있다. 산의 주봉은 해발 390메터에 달한다.
욕지산
산에 동하국 국왕이 목욕하던 늪이 있다하여 얻어진 이름이며 동쪽으로 연길시와 10킬로메터정도 떨어져있다. 성자산의 북쪽에 위치해있고 해발은 350메터에 달한다.
부르하통하
안도현에서 시작되며 전체 길이는 242킬로메터로서 연길시의 주요한 강이다.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흐르며 시내를 꿰뚫고있다.
연집강
룡정시 팔도향에서 발원하는 이 강은 총 길이가 47킬로메터이며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부르하통하에 흘러든다.
해란강
화룡시에서 발원하는 이 강은 전체 길이가 132킬로메터에 달하며 룡정시 북쪽에서 연길시 소영진 하룡촌에 흘러들며 여기서 부르하통하와 합류한다.
조선족민속풍정
조선족은 조선반도로부터 이주하여 온 이주민족이다. 18세기초
현재 연길시에는 약 24만명의 조선족이 있는데 이들은 근로하고 용감하며 깨끗하고 례모를 지키는 습관을 가지고있다. 또 로인을 존경하고 아이들을 좋아하며 손님을 좋아하고 춤과 노래에 능한 등 미덕과 전통을 가지고있다. 생활습관은 고풍적이고 기타 민족의 선진적인것을 잘 흡수하며 사회발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특색의 민속풍정과 생활습관을 형성했다.
복장
자고이래 조선족은 하얀 소복을 입는 습관이 있으며 그러므로써 "백의민족", "백의동포"라는 미명을 가지고있다. 현재까지도 일부 농촌의 조선족로인들은 여전히 하얀색의 민족복장을 즐겨입는다.
례절
조선족은 례절을 아주 중히 여기며 로인을 존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사람을 대함에 있어러 례절과 열정을 갖추어 "동방례의민족"이라는 찬양을 듣고있다. 인과관계에서도 례절과 언어를 아주 중시한다. 조서족의 언어는 세가지 어투가 있으며 존경어, 대등어, 겸손어로 나뉜다. 로인은 가정과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존경을 받고 식사시에도 독상을 받으며 년소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다. 년소자들은 년장자앞에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지 못하며 더욱이는 불을 빌거나 맞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년장자의 동의를 거쳐도 술을 마실때엔 몸을 돌려 잔을 막고 마시며 술도 나이의 순서로 붓어야 한다. 년장자가 잔을 들어야 기타 사람들도 순서대로 잔을 들수 있으며 년장자가 수저를 들어야 온 집 가족들이 식사를 시작할수 있다.
외출시에도 년소자는 년장자의 위에서 걸어야 하며 앞지를 경우 원인을 설명해야 한다. 길에서 년장자를 마주쳤을 경우 반드시 걸음을 멈추고 길을 양보해야 한다.
가옥
조선족풍격의 가옥은 많이는 나무로 골격을 쌓고 지붕은 벼짚이나 기와로 덮으며 벽은 하얀색 회칠을 한다. 내부구조는 보통 세개 부분으로 나뉘는것도 있고 네부분으로 나뉘는것도 있다. 부엌간을 중심으로 한쪽엔 창고가 있어 부엌과 통하며 다른 한켠엔 거실이 마련되여있다.
손님이 집에 들어설때 남자와 녀자의 구별이 있다. 남자손님은 보통 작은 객방에 들어가고 녀자손님은 부엌쪽으로 가마목에 올라간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실례로 본다. 집안바닥이 모두 온돌로 되여있기에 반드시 신을 벗고 올라가야 한다. 일년사계절 조선족은 집에서 다리를 토시고 온돌에 앉아있는다.
3대경사
조선족은 일생중에 세번의 아주 특별한 경사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돌생일, 결혼일, 회갑일이다. 이 세개 경사는 성대한 경축활동을 벌려 축하한다.
돌생일: 조선족인생의 첫 경사이다. 이날 친척, 친구, 이웃들은 모두 아이의 돌생일에 참가하여 돌잡이의식을 구경하는데 밥상에는 찰떡, 연필, 수첩, 놀이감 등을 놓고 아이가 선택하게 함으로써 아이의 애호나 전도를 가늠하여보는 의식을 한다. 그리고나서 사람들은 먹고 마시면서 함께 경축한다.
결혼식: 결혼당일 신랑은 사람들과 같이 신부를 맞이하러 가는데 신랑과 신부는 실외에서 서로 마주 무릎을 꿇고 맞절을 하고 서로 술을 권한다. 신랑은 혼례상을 받는데 상엔 떡, 과자, 사탕, 닭, 물고기, 고기, 닭알 등이 있고 신랑은 반드시 신부와 밥공기속의 닭알 세개를 나눠먹어야 한다.
신랑은 소수레를 장식하여 만든 꽃가마나 승용차로 신부를 맞이한후 집앞에서 친척들이 춤을 추며 영접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부는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혼례식을 올릴때 신부는 먼저 음식을 주문하는데 상우의 닭, 물고기, 고기, 닭알, 떡, 각종 술도 모두 구전해야 하며 길상과 많은 아이의 상징인 고추를 물고있는 삶은 닭도 여기서 빠질수가 없다.
회갑: 조선족의 오래된 풍속으로서 60주세가 되면 "회갑"이라고 불러 축하연을 베풀곤 한다. "회갑"은 아주 독특하고 풍격있는 경사인데 이를 위해 외지의 자녀들과 친척, 친구들은 멀리서 모여와서 경축한다. 로인은 단정한 모습으로 실내 정중앙에 앉고 로인앞에는 각종 과자, 팔보밥, 떡, 장수면이 놓여있다. 자녀들과 손주손녀들은 일렬도 로인앞에서 세번 절을 함으로써 로인의 장수를 빈다. 친척들과 친구들도 경례를 하여 축하를 하고 음악속에서 연회가 시작된다.
민간명절
조선족의 민간전통명절은 한족과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지금까지 연속되여 온 명절은 설날(춘절), 상원(원소절), 한식(청명), 단오, 추석, 동지 등이다. 다년간 조선족의 로인을 존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는 미덕은 진일보 발양됐다. 자치주는 로인협회를 성립하고 8월 15일을 새로운 민속명적인 로인절로 정했다. 해마다 8월 15일이면 전 주 8개 현시에서는 모두 성대한 경축활동을 벌여 존경스러운 로인과 모범며느리들한테 상을 준다. 일부 지방에서는 로인들한테 집체회갑을 준비하기도 한다.
"6.1"절은 원래 아동의 명절인데 연변에서는 이미 전 인민의 명절로 되였다. 해마다 이날이면 연길시 주민들은 거의 전부 온 가족이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가서 놀기도 하고 나무그늘에서 오찬을 즐기기도 하며 춤과 노래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전통체육
널뛰기, 그네뛰기, 씨름은 조선족이 가장 좋아하는 체육항목이다. 그중 널뛰기와 그네뛰기는 조선족부녀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다. 널뛰기는 기교성이 아주 강하여 한쪽 사람은 맞은켠의 사람을 수메터 높이로 튕겨올릴수 있으며 이를 반복하는 과정은 사람을 긴장하면서도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네뛰기도 비교적 강한 체력과 기교가 필요하며 고수는 십여메터의 높이에까지 오를수 있다.
조선족의 씨름은 형식이 특별한 남자들의 운동이다. 씨름선수들은 한쪽 손으로 대방의 샅바를 잡고 한손으로 대방의 허리에 감겨진 샅바를 잡으며 재판의 명령에 따라 힘을 겨룬다. 시와 주급의 씨름대회의 우승자한테는 건강한 황소 한마리가 차례진다.
특색식품
김치: 김치는 조선족음식중 가장 특색있는 일종으로서 일년사시절 모두 만들수 있다. 통이 잘 앉은 배추, 무우, 오이 등 신선한 남새들을 소금물에서 초절이를 한후 고추가루, 생강, 마늘 등 조미료를 추가하여 발효시킨후 밥상에 올린다.
개장국
개장국은 조선족들이 즐기는 육류식품중의 하나이다. 삼복철에 많이 먹으며 더운 날 몸보신의 효과가 있다. 현재 일년사시절 모두 먹을수 있으며 결혼, 장례 및 명절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랭면
조선족은 랭면을 좋아한다. 랭면은 현재 국내에서 아주 인기가 있는 식품이다. 랭면의 주원료는 메밀, 밀가루와 전분이다. 이미 만들어진 랭면을 기계로 눌러 가마에 삶아낸 다음 시원한 소고기국물 혹은 닭고기국에 고추가루, 소고기, 닭고기완자, 닭알 등 여러가지 취미를 곁들여서 먹는다. 조선족은 예전에는 정원초나흩날 점심에 랭면을 먹는데 이날 길다란 랭면을 먹으면 장수한다고 믿고있다. 현재 일년사시장철 모두 즐기는 식품으로 되였다.
찰떡
찰떡은 찹쌀을 삶은후 떡메로 쳐서 만들어진다. 그걸 다시 덩어리로 썰어서 콩고물, 설탕, 꿀 등에 찍어먹는데 쫀득쫀득하구 감칠맛나는것이 특징이다. 조선족은 예로부터 찰떡을 상등음식으로 보고 명절이나 혼례식 등에서 귀빈들을 접대할때 준비하곤 했다.
송편
송편은 먼저 잘 이긴 쌀가루로 떡을 빚고 깨, 대추, 사탕으로 만든 속을 안에 넣은후 솔잎우에 놓고 쪄서 만든다.
조선족의 음식은 풍부하고 다채로우며 많이는 본지방의 특산을 원료로 하며 민족특색이 아주 강하다. 기타의 풍미음식으로는 조선족장국, 더덕, 순대, 조선족불고기, 찹쌀술, 감자떡 등이 있다.
출처:연변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