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보수선생은 부산 지하철 부산진역 7번출구에서 친구 박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5분 늦을 바엔 1시간 일찍 간다.’는 철학을 가진 그였기에, 이날도 약속시간보다 20분 이상 일찍 도착했다. 물론, 달리 할 일이 없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했다.
7번 출구를 나온 선생은, 고개를 들어 부산일보사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여기서 조갑제의 강연이 있다고 했다. 이 강연을 소개해준 친구 박노인은 왜 이렇게 늦는 걸까. 지나 내나 할 일 없는 늙은이가 일찍일찍 안 나오고 말이야. 선생은 그저 10층짜리 건물과 그 위의 흐린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부산일보>는 대표적인 지방언론으로서, 1946년 창간된, 역사와 전통이 있는 신문사다. 1949년 9월 16일 김지태(金智泰)가 회사를 인수하여 제2대 사장으로 취임했는데, 그는 자신이 개국한 부산문화방송을 겸영하다가, 1962년 5월 정수장학회(부일장학회->5·16장학회의 후신)에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의 지분을 넘기고 사장에서 퇴임했다. 현재 <부산일보>는 석간 신문으로 발행되고 있다. 2010년 한국ABC협회에서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지방 일간지 중 발행 부수가 가장 많다고 한다.
마침내 박노인이 도착하자, 두 노인은 천천히 정문 계단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슨 계단은 또 이렇게 많단 말인가. 젊을 때야 별 것 아닌 계단이지만, 몸이 늙고 병들다 보니 오르내리는 것만 해도 예사 일이 아니다. 입구로 들어가려 할 때 쯤, 두 노인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
▲ 회사에서 업무정지를 받아 사옥 현관에서 집무중인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 | 한 50이나 먹었을까, 점잖게 생긴 중년 남자가 부산일보 사옥 현관 앞에 책상을 펼쳐놓고 앉아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사람은 <부산일보>의 편집국장이었는데, 부산일보와 정수장학재단과의 관계에 대한 기사를 쓰고 업무정지 명령을 받아 회사에 출근하지 못한 채, 회사 정문 앞에 앉아 있는 거란다.
그 책상 옆에는 ‘박근혜 의원은 대통령 or 정수재단 양자택일하라’, ‘정수장학회의 명실상부한 사회환원을’, ‘박근혜의원은 불법강탈한 정수재단 사회환원에 앞장서라’ 등등의 사인보드들이 세워져 있었다. 두 노인은 한참 동안 그 글귀들을 읽어보다가 분연히 발걸음을 옮겼다. 박노인이 나직이 뇌까렸다.
“미친 자슥들.”
“그래 말이다. 머한다고 저 지랄이고?”
보수선생이 되받았다. 두 노인은 휘적휘적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박근혜가 신문사하고 은쟈(이제) 와서 무슨 관련이 있다고 저라노 말이다.”
“그라이! 똑 이래 큰 일 앞두고 있는 사람 곤란하이 만들라꼬... 아이, 이기 협박하는 거 아이가.”
“협박이지! 봐라 박근혜가 만약 대통령 안 나오모 점마들이 저런 거 떠들겠나? 그라고, 대통령 되면? 되고 난 뒤에도 저래 까불어치겠나? 택도 없다.”
“박근혜는 손 떼고 완전 물러났다매?”
“그래, 은쟈는 신문사하고 아무 상관 없단다.”
“그란데 와 저 지랄이고?”
“내사 모르지! 노조 놈들이 파업하는 거는 즈그 월급 올리달라카는 거 밖에 더 있겠나!”
두 노인은 무책임하게 이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강연장인 대강당이 있는 10층에서 내렸다.
“처머이(처음에) 김지태다테(에게) 뺏들 때 얘기부터 한다메? 그기 벌써 멫십년 전 일이고?”
“케케묵은 얘기지. 김지태가 누고? 자네도 기억 안 나나? 돈도 많기는 많았는갑드라. 우리 젊을 때 와, 그때 자유당인가 거서 정치한다 카믄서 돈 막 안 뿌맀나. 내 지끔도 외운다 ‘묵고 보자 김지태 찍어주자 임갑수’ 돈이 그치로 많았는갑지.”
“돈을 우째가 그래 많이 벌었을꼬.”
“뭐 일제시대때 친일도 좀 하고 그랬는갑데.”
“근데, 뭐, 박정희가 그라모 김지태다테 재산을 뺏들었는강?”
“군사혁명 땐데, 군인들 마음대로 안 했나. 와, 그래가 요즘 말로 하모 재벌개혁도 좀 됐잖아. 그때 김지태도 그래가 신문사캉 뭐 제붑 뺏깄는 갑데.”
“그래가 넘가 줬으모 그마이지. 뭐, 도로 내놓으라 카는강? 친일 부패인사 재물인데 국고 환수된 셈 치야지.”
친일인사의 재산을 똑같은 - 어쩌면 그보다 더한 - 친일인사가 국가권력을 빙자하여 침탈하고, 국고로 환수된 재산이 개인 재산으로 둔갑하는 신기한 장면이 연속되고 있었지만 두 노인은 이러한 부조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선생 또래의 노인이 몇 보였을 뿐, 강연장은 다소 한산했다. 두 노인은 앞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래, 박근혜가 그라모 장학회를 물리받기는 받았는강?”
“아 그거야 아부지껀데 아부지 죽고 나모 그라믄 누가 물리받노? 얼마동안 이사장으로 있었다 카드라.”
참고삼아 말해두지만, 정수장학회 뿐만 아니라 모든 장학재단은 원칙적으로 ‘비영리 공익 법인’이다. 개인이 ‘상속’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랬다가, 언제라카드라, 뭐 때문에 시끄럽어가 박근혜가 이사장을 물러났다케. 그라이 은쟈는 정수장학회하고 박근혜는 관계가 없어요.”
“그라모 저자슥들은 와 저래쌌노?”
“그라이 미친 놈들이지. 이미 사회 환원된 재산을 우째 또 환원하라꼬 저 지랄로 하는지, 원.”
과연 그럴까.
“지끔 이사장은 그라믄 눈데?”
“몰라. 무슨 필립이라카든가. 팔십... 팔십 몇 살 묵은 어른인데 아조 짱짱한 양반이드라꼬. 그 양반이 머라켔는가 하모, ‘노조 느그 자꾸 그래 까불므는 신문사 팔아삔다!’ 캤다 안 카나!”
“하하하, 말 잘했네, 잘했어.”
예, 제발 팔아주세요. 부산도 시민주주 신문사 한번 가져봅시다.
|
▲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 그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예정된 강연시간이 되었다. 강연장은 어느새 꽉 들어찼다. 대부분 선생 또래의 노인들이었는데, 간혹 젊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선생은 까닭없이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이윽고, 강단에 조갑제 씨가 올라섰다. 신문지상을 통해 자주 보던 얼굴이었다. 흰 머리에 회색 양복, 얇은 금테 안경을 낀 그는, 강단에 서자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강연을 시작했다.
보수선생과 박노인, 그리고 청중들은 이내 강연에 빨려들었다. 아아 명강이었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조갑제는 유려한 말솜씨와 이해하기 쉬운 어휘, 알아듣기 쉬운 논리로 한반도의 현재 상태, 북한의 현실, 김정은 정권의 미래에 대해 술술술 잘도 풀어내고 있었다.
“김정은은 그 애비 김정일처럼 아주 싸이코패스는 아닙니다. 그러니 체제 안정을 위한 폭정은 좀 할 지 몰라도, 아주 무모한 도발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다행 아닌가.
“우리 대한민국의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을 아주 잘하고 있지요. 북한을 저렇게 고립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제가 예상하건대, 다음 정부 임기 5년 내에 반드시 북한에서 어떠한 급변상황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정부가 어떤 정부가 되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느냐, 친북종북 좌파정부가 들어서느냐에 이 나라 통일이 달려 있습니다. 만일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대통령이 집권한다면, 그 대통령은 역사에 ‘통일 대통령’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쳐댔다. 보수선생도 벅차오르는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손바닥이 터지도록 박수를 마구 쳤다. 아아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내 생에 통일을 보다니. 내가 통일을 보고 죽을 수 있다니. 조갑제는 다시 물을 한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나갔다.
“보통 나라가 잘 되려면 문(文)과 무(武)를 고루 갖추어야 한다고들 합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잘 되기가 어렵지요. 우리 역사에서 보면, 문에 치우쳤던 나라는 조선왕조라고 하겠습니다. 너무 문약하다 보니 왜란과 호란을 당하는 등, 치욕적인 역사를 겪었지요. 반대로 무에 치우쳤던 나라는 고구려라는 나라가 있었지요. 그렇다면 문무를 겸비한 나라는 어떤 나라가 있었을까요.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가 문무를 겸비한 나라였습니다. 불교의 문과 화랑도의 무를 함께 갖추었기에 삼국을 통일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문무를 겸비한 나라는, 아마 지금의 대한민국일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아주 강한 군사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강군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을 발달시켰고, 이제 문무를 겸비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저는 신라 이후에 대한민국이야말로 통일 대업을 이룩할 자격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또다시 우뢰와 같은 박수가 일었다. 이 얼마나 해박하고, 알기 쉽고, 간명한 논리인가! 통일조국이 눈 앞에 다가오는 것 같았다.
|
▲ 극우논객 조갑제 씨 | 그런데, 감격하며 강연을 듣던 보수선생이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었다. 선생은 다급히 옆자리의 박노인에게 속삭였다.
“봐라, 친구야. 니 저 앞에 카메라 들고 다니는 사람 보이나?”
“어데? 저... 대가리 노라이 파마했는 넘 말이가?”
“그래, 저, 뚱뚱하이 안경끼고... 사진 찍고 댕긴다 아이가.”
“그기 와? 사진사 아이가?”
“사진산데... 내가 저번에 와 그, 뺄개이들 만나고 왔다카드라 아이가.”
“어제 얘기했지. 그런데?”
“그 자리에 저 친구가 와 있었다.”
“머라꼬? 확실하나?”
“하모. 그때도 ‘점마는 머스마가 와 저래 머리를 기라가(길러서) 빠마를 했노, 아 지랄 염색까지 했네’ 이래 생각했었거든. 그래가 기억을 한다.”
“그래? 그라모 금마가 와 왔을꼬?”
“혹시 저래 접근해가 조갑제 해코지 할라꼬 온 거 아일까?”
“에이.. 설마... 아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이 잘 보고 있자.”
선생은 마른침을 삼켰다. 어제 박노인과 얘기해 보니 저놈들이 빨갱이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은데, 저 녀석은 왜 여기에 왔단 말인가. 혹시나 저 손에 쥔 카메라로 조갑제 선생을 때리거나 하지는 않을까. 좋은 강연하러 와서 조갑제 선생이 봉변을 당하지는 않을까. 그런 위험이 접근해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갑제는 강연을 계속하고 있었다.
“독일이 통일을 하고, 지금 세계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보십시오. 유럽의 패권을 쥐고 미국 다음가는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내의 공업국입니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어느 학자의 분석으로는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2위 정도에 이른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다시 우렁차게 박수를 쳤다. 보수선생도 잠시 불안을 잊고 갈채를 보냈다. 가난했던 과거. 가난했던 나의 과거와 역시나 가난했던 이 나라의 과거를 벗어나, 세계에 우뚝 설 날이 머지 않았다. 벅찬 감격이 눈물이 되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강연은 한시간 반 정도 지나 보수선생의 걱정과는 달리 다행히도 아무런 불상사가 없이 끝났다. 그 빨갱이 사진사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명강연을 펼쳐준 조갑제에게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강연은 끝났지만 사람들은 조갑제와 악수를 한다, 기념촬영을 한다, 사인을 받는다 하며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다. 보수선생은 그 중에서 낯익은 얼굴을 하나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어? 니가 여기 우얀 일이고?”
조갑제의 책을 들고 사인을 받으러 온 그는, 선생의 손자 창훈이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