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 보리심 일으키기
ㅁ 직메링빠 말씀 (p.188)
- 일생동안 매우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나, 그중에서 보리심을 염원하고 실천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ㅁ 보리심이란 무엇인가? :
- 귀의는 해탈에 이르는 길의 "토대"이고, 보리심은 예비수행의 "진수"입니다.
- 보리심이란, "일체유정을 완전한 깨달음으로 이끌겠다는 간절한 염원"입니다.
- 보리심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자애와 연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픈 마음은 오늘날 아주 보편적인 이상이며, 흔히 보리심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장려됩니다. 그러나, (보리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측면이 "공성을 이해하는 지혜"에 있다는 점을 잊고 있습니다. 지혜가 없는 연민만으로는 보리심이라 할 수 없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므로 이 두 자질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보리심이 불교수행자에게 왜 그토록 중요한지, 매우 철저하고 정확한 설명을 원한다면 샨티데바(용수보살)의 "입보살행론"을 보시기 바랍니다.
ㅁ 보리심 : 자애와 연민 그리고 분별을 넘어선 지혜
- 대승 수행자들은 일체유정이 고통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고통의 "원인"에서도 벗어나기를 염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은 인정많고 인도주의적인 행위만 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아무리 남을 보살피고 사려가 깊어 보이는 사람들도 뿌리 깊은 이기주의자일 위험은 항시 존재합니다.
- 화를 자주 내고 제자들을 때리기도 하는 라마들은 오만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분별을 한다는 것은 지혜가 보리심과 다르지 않다는 측면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행위에 대한 여러분 각자의 의견만을 토대로 그들이 보살인지 아닌지 왈가왈부 하는 것은 순전히 바보 같은 짓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친절하고 너그러우며 이타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리심으로 착각하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진정한 보리심은) "연민을 본질로 하는 공성에 대한 확실한 이해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일체유정을 깨닫게 하려는 소망을 동기로 수행을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행하는 모든 것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의 현현일 뿐이라는 것을 늘 일깨우십시오
ㅁ 연민의 힘을 기르라
- 보리심을 완전히 이해하기까지는 "고통이 존재한다"는 생각하는 오류를 피할 수 없어서 우리는 마음이 일으키는 연민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무이법 (비이원성)"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한 모든 행위는 실망을 안겨줄 것입니다.
- 그렇다면 자기를 돌보지 않고 행동에 나서는 놀라운 연민의 힘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절대 포기 않는 확고한 결의는 어떻게 키우렵니까? 이런 자질들은 모든 것, 다시 말해 마약 중독이 문제라는 생각, 치유될 수 있다는 생각, 치료를 해야 한다는 생각 등 이 모든 것들이 여러분 자신이 지어낸 마음의 산물에 불과함을 자각하는 데서 생겨납니다. 어느 것도 마음의 바깥에는 진정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이해하면 비로소 보리심이라는 강하고 진정한 연민을 키워 갈 수 있습니다.
- 반야심경에는 여러 해 동안 중생을 돕는 데 전념한 끝에 완전히 지쳐 버렸다고 하소연하는 보살 수행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설명으로 답하셨습니다. 또, 어떤 보살은 중생을 돕는 일이 너무 고통스럽고 아직도 구제할 이들이 너무 많아서 실의에 빠겨 있다고 말씀드렸고, 부처님께서는 비유로 답하셨습니다.
. 어느 어머니가 외동아이가 거친 강물에 쉽쓸려 떠내려가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녀에게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하려 할 것입니다. 자식을 구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지 그녀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그녀는 마침내 (꿈속에서) 강으로 뛰어듭니다. 어머니는 마침내 아들을 구해내고야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윽고 잠에서 깨어납니다. 자신이 견뎌냈던 극심한 고통, 필사의 노력, 아이를 구하는 게 쏟아 부었던 시간 등 그 모든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자식의 목숨을 구했다는 생각조차 환영인 것입니다.
. 이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수행자로서 우리는 이같은 현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유정들을 도우려는 노력은 극도로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자신이 윤회라는 악몽에서 깨어났다고 믿을 때조차 우리는 여전히 꿈을 꾸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경험하는 조건들은 대부분 꿈을 현실로 믿게끔 맞추어져 있으며 우리 존재가 실은 완전히 환영이라는 것을 거의 보여주지 않습니다.
ㅁ 상대적 보리심 = 원보리심 + 행보리심
- 원보리심 : 사무량심 같이 다른 이들을 이롭게 하려는 염원이나 의도
- 행보리심 : 육바라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수행과 같이 이로운 행위에 실제로 참여하는 것
- 직메링빠 말씀
. 초심자들은 당장에 도를 넘는 수행을 성취하려고 애쓰는 대신에 원보리심 수행에 중점을 두면서 행보리심과 절대적 보리심을 서서히 불러일켜댜 한다고 거듭 권고하십시니다.
ㅁ 원보리심
- 롱첸빠 말씀 : 초심자에게는 발원이 유일한 임무이자 과제입니다
- "승만부인 사자후경"에서 승만부인의 세가지 큰 서원 : 첫째, 항상 정법을 듣기를 발원하며 자신의 선근공덕을 회향합니다. 둘째, 결코 지침없이 유정들과 불법을 나누기를 발원합니다. 셋째, 불법을 자신의 생명과 육신보다 훨씬 더 중히 여겨서 수행하게 되기를 발원합니다. ...
- 이러한 원보리심은 완벽한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 왕에게 제안하기를, 가능한 자주 마음속으로 깨달음에 대한 강렬한 염원과 갈망을 키우면서 원보리심을 일으키라고 하셨으며 타인의 선행을 수희찬탄하라고 하셨습니다. 더불어 단언하시기를, 수행한 모든 공덕을 깨달음을 향해 회향하면 국왕으로서의 모든 의무를 성공적으로 이행하게 될 뿐만 아니라 보살로서의 의무도 다하게 되어 무량공덕을 쌓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은 도움이 필요한 이를 그저 측은히 여기는 일이 아닙니다. 이런 염려와 관심은 일체유정을 깨닫게 하려는 원보리심의 진정어린 소망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의 연민입니다. 모든 유정들에게 자신을 얽어매는 미망의 그물을 해체하여 그 실상을 보여줌으로써 진리로 안내하고 하는 간절한 원보리심은 거리의 아이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고픈 마음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 히말라야 동굴안에서 수행하는 수행자는 일체유정에게 깨달음을 가져다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지닌 채 여전히 동굴에 머물러 있습니다. 세속의 관점에서 아무리 괴상하게 보인다 해도, 동굴에 머무는 수행자는 인도주의적 구호에 그치는 국제기구보다 훨씬 더 경의를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진실로 다른 이들의 깨달음을 기원하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음식과 약품을 제공하고 교육하는 일은 이에 비하면 훨씬 쉽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질병을 완화시키는 것은 세속의 행위로써 고통을 순간적으로 덜어 주지만, 일체유정의 깨달음을 도모하는 일은 모든 고통의 영원한 해결책입니다.
- 진정 마음에 보리심을 일으켰다면, 도반들이 매우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에 행복을 느꼈을 것이며, 그들이 가르침을 받는 일에 대해서는 같이 따라 기뻐했을 것입니다. 누군가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오랜 바람과 염원이 마침내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인데도 우리는 이를 너무나 쉽게 잊고 있습니다.
- 타인을 보살피는 방법 : 불경에서는 어머니가 우리를 가졌을 때 겪은 일을 생각함으로써 타인에게 자애와 연민을 느끼는 수행을 시작하라고 말합니다.
- 보리심의 세 측면, 즉 원보리심, 행보리심, 절대적 보리심은 모두 똑같이 중요합니다. 특히, 초심자들은 공성을 생각할 때 참모습과 반대인 공성을 그려내곤 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원보리심 수행을 시작으로 하여, 점진적으로 행보리심과 절대적 보리심을 불러을키는 것입니다.
- 원보리심 수행
. 일체유정에게 깨달음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염원하십시오. 그런 다음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수행 일정을 따르도록 훈련하십시오. 그리고, 유정들이 바란다고 생각되는 것을 절대 주지 말고,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만 주겠다고 다짐하십시오.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모든 분별과 고정관, 얽매임에서의 해방"이며, 선악의 양변으로 끝없이 치우치는 일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원보리심 수행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는 점을 부디 명심하십시오. 그러므로 수행하는 척하는 느낌이 들더라도 계속 해 나가십시오.
. 똥렌 수행 = 자경타중, 자타상환 수행법
. 사무량심 = 자. 비. 희. 사.
: 자애 - 일체유정이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 연민 - 일체유정이 우울과 우울의 원인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 수희 - 일체유정이 영원히 즐거움에 머물게 하소서
: 평등 - 일체유정이 세간팔법에 대한 모든 희망, 두려움, 분노, 집착에서 벗어나 마침내 분별이 사라지게 하소서
ㅁ 행보리심 = 육바라밀 =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 + 지혜
- 궁극적인 인욕은 여러분에게 해를 주는 행위, 해를 주는 존재가 모두 환영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 선정
. 우리는 내심 타인과 사물에 의해 규제와 지배를 당하고, 분위기과 환경과 상황에 묶이고, 머리채가 질질 끌리면서 이리저리 밀고 당겨지기를 좋아합니다. 이에 맛서 싸우기 위해 우리는 명상을 합니다. 명상은 무위의 상태이지만 상황에 굴복하는 것과는 - 그렇게 보일 수는 있어도 -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 육바라밀을 수행하지 않는 중생들은 정글이나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장님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행위를 취하고 어떤 행위를 버릴지 알지 못하고, 안내해 줄 도반이나 스승이 없기 때문입니다. 양분을 공급받을 보시라는 식량이나, 보호받을 계라는 무기가 없으며, 인욕이라는 재산은 다 써버린 지 오래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줄 정진은 불안정합니다. 또한, 선정을 닦지도 않기에 쉴 곳도 없으며, 가장 나쁜 일은 자신을 지지해 줄 지혜라는 지팡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ㅁ 절대적 보리심 = 일체유정을 깨닫게 하려는 염원을 바탕으로 공성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
ㅁ 보리심 수행 마무리
- 타인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은 여러분 자신의 해석일 뿐임을 매 순간 일깨워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신경을 거스르는 그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항시 선한 마음을 기르려고 하십시오. 결국은 선한 마음이 자애와 연민과 보리심으로 가는 열쇠가 됩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는 것과 자비를 행하는 것(둘은 동일한 것의 다른 표현임)"은 보리심의 씨앗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일체유정을 깨닫게 하려는 염원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결코 보리심이 마음에서 온전히 싹을 틔우지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