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 백승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을 잘 알지만 나를 모른다면 백전 백패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싸움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알아야 하고 나의 모난 부분을 수정해야 하는 일이 선행되어져야 합니다.
군대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무기의 용도, 성능, 단점, 장점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기와 혼연일체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훈련을 합니다. 왜냐구요? 어떤 상황과 환경에 닥쳐있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100%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지요. 아무리 최첨단의 무기라 할지라도 사용 방법을 모르면 한낮 고철덩어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최첨단의 무기가 아니라 해도 무기에 대해 잘파악하고 있으면 그 무기는 최첨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 무기를 이제 잘 파악을 했다면 자신이 사용하는 무기의 대해서 절대적인 신뢰를 하는 것입니다. 무기의 대한 신뢰는 내게 무한한 힘과 용기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아주 맹렬한 전쟁터 한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내게 있는 무기가 내 생명과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 줄 것을 확실하면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이 없지요! 이 맹렬한 전투에서 승리할 테니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첨단의 무기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있어서 최첨단의 무기는 무엇입니까? 그 무기를 알고 있나요? 알고 있다면 얼마나 정확하게 그 무기에 성능을 파악하고 확신하고 있나요? 또한 얼마나 그 무기를 녹슬지 않게 사용하고 기름칠하고 있나요? 사격을 하고 나면 총을 반듯이 기름으로 닦아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한 순간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여러분만이 가지고 있는 최첨단의 무기를 얼마나 잘 사용하고 또한 위험한 순간에 사용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나요!
부활의 예수를 믿고 신뢰하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는 모든 성도들에게는 마귀 즉 귀신과의 싸움에서 백전 백승할 수 있는 무기하나씩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 무기는 사용방법도 쉽습니다. 무게도 나가지 않습니다. 어떤 무기는 너무 무거워서 자유롭게 휴대하지 못하고 휴대할지라도 쉽게 지치게 되지요! 그러나 예수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이 무기를 휴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일들이 나타납니다.
쓰러질 것 같은데 쓰러지지 않습니다. 힘을 모두 소진한 것 같은데 새로운 힘이 샘솟습니다. 길이 없어서 낙심할 때 이 무기로 인해 쉽고 편안한 길을 찾을 수 있지요. 내 마음에 평화는 없고 근심과 걱정, 두려움, 괴로운 문제의 폭풍우가 물려와서 침몰할 것 같아서 눈을 꼭 감았지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폭풍우는 온데 간데 없고 평화롭고 행복하며, 아름다운 삶으로 바뀌어 있지요.
또한 언제 어디서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떤 환경에서도 그 무기의 성능은 100% 발휘되지요. 이 무기는 어른 아이, 남녀노소 불구하고 모두 사용 할 수 있지요. 이 무기의 한도는 무한정입니다. 또한 이 무기의 생명은 영원합니다. 절대 불량품이 없구요, 고장나는 법이 없고,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하는 아주 완벽한 무기입니다. 여러분 이 무기가 아주 매력적이지 않나요? 이 무기에 구미가 땡기지 않나요?
이무기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영접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따르면 됩니다. 다른 무기는 구입을 하기 위해 매우 많은 시간과 많은 돈이 들어가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이 무기는 돈도 들지 않고 많은 시간도 들지 않습니다.
바로 이 무기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마리아에게 잉태되고 태어나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이요, 마귀의 육혹을 이기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요, 죄와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마귀(귀신)가 제일 듣기 싫어하며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 나사렛 예수입니다. 능력기도(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하면 그 순간 마귀(귀신)은 도망치고 맙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마귀(귀신)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경계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이 무기를 알지 못하고,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침몰하는 어리석은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주향기교회 모든 성도들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신 나사렛 예수 이름의 무기를 잘 사용하여 마귀가 가져다 주는 모든 유혹에서 해방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무기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귀는 항상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기회를 놓지게 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 이것은 현실의 삶을 바꿀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꿈꾸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잘 파악하고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복의 근원이 되었지요. <본토 친척 아비집 떠나는 것,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것>
불의 선지자 엘리야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였습니다.<갈멜산에서 바알선지자 800명을 죽이고 사막 한가운데 로뎀나무 그늘에 앉아 죽여달라고 원망하고 인생을 포기하고 잠듬- 천사가 엘리야를 깨워 먹으라함,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생선이 있음/ 이것을 먹음> 엘리야에게 주신 또하나의 기회는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음식을 주셔서 먹으라 한 것입니다. 인생을 포기했던 엘리야는 이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음식을 먹고 제 2의 인생을 살게 되었음.
이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드는 지혜는 난 도저히 안되, 이제 기도할 힘도 없어 할 때 한번더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디매오는 바로 주어진 짧은 기회를 잘 선용하여 자기의 불행을 큰 축복으로 바꾼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 4가지를 같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그는 자기의 시급한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문제는 요약해서 소경이요, 거지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오직 메시아, 곧 예수라는 확고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고 소개를 받았지만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부르짖은 데서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3년 동안 다져온 그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영적인 소경, 영적인 거지의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영적인 소경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교회를 다니면서 나사렛 예수로는 인정하지만 다윗의 자손으로는 시인하지 못한 자, 즉 예수님을 성자요, 기독교의 창시자로는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아들로는 시인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깨달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자만하지만 속사람은 변화되지 않고 아는 것과 생활이 일치되지 않는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눈이 어두우면 자연히 영적 가난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입으로는 온갖 아름다운 단어들을 다 사용하여 하나님을 부르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사랑의 부요함을 체험하지는 못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그래서 늘 마음은 비어 있는 가난한 거지와 같습니다.
둘째, 그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든 사람입니다. 지금 여리고를 지나가는 예수님은 며칠 후면 십자가에 못 박혀 전 인류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셔야 할 분입니다. 그분은 또 다시 여리고를 지나가지 않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가 지나가신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났습니다. 그는 필사적으로 어두움에서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붙잡으려 행동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이 며칠이 바로 이와 같은 마지막 지나가는 순간일지 모릅니다. 주님을 놓치지 마십시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사55:6).
셋째,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예수님께 부르짖은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란 말을 듣자 소리를 질렀다고 했는데 이것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르는 비명과 같은 의미입니다. 계속해서 들어 줄 때까지 소리치는 것입니다. 얼마나 부르짖었는지 무리들이 꾸중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 무리 가운데 지나가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습니까?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외침은 그의 진실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주님의 긍휼을 바라는 겸손의 자세가 있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피맺힌 절규가 지나가는 주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있었습니다.
넷째, 그는 응답 받은 사람입니다. 그를 나무라던 사람들이 드디어 동정하는 사람으로 바뀌었고 주님의 부르심이 있게 됩니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지 그는 겉옷을 내팽개치고 뛰어나갔습니다. 마침내 그는 해방의 음성을 주님에게서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영·육간에 소경의 문제, 거지의 문제가 있습니까? 바디매오와 같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기도를 하십시오. 부자이신 아버지, 전능하신 하나님,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그 분께 한 번 더 부르짖어 봅시다. 그럴 때 분명히 우리 주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무기를 사용하는 것도 내게 주어진 귀회를 포착하는 것입니다. 다같이 따라해 보세요.
내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의심을 주는 마귀야 내 속에서 떠날지어다.
내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하나님을 가까이 못하게 하는 마귀야 내 속에서 떠날지어다.
내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하나님이 주신 무기를 불신하게 만드는 마귀야 내 속에서 떠날지어다.
내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삶을 어렵게 하는 마귀야 내 속에서 떠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