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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외국민 학부모들이 지닌 문제
특례입시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진행되는 요즘은 입시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현지학습>이다. 예전의 특례입시라면 사실 너무나 쉽게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현지학습보다는 귀국 후 학원 학습이 더 중요했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현지학습의 중요성>은 있었다. 하지만 그 대상은 <서울대와 연세대 그리고 의약한의대>를 지원하는 수험생들에 국한되었다. 지금은 인서울을 위해서 난리를 치고 지방 국공립이 상전이 되어 있지만 적어도 그 당시에는 이곳의 합격을 위해서 <현지학습>이건 <죽어라 공부하기>는 다른 나라 이야기였었다.
이러한 학습효과가 무서운 것이다.
재외국민 특례자격이 되는지 조차 몰랐던 시대에서 이제는 어느 전문가 뺨칠 정도로 자격 요건 등등에 익숙하게 된 학부모들이 아직도 버리지 못한 인식 중 하나가, <특례는 쉽게 대학 간다>다. 아무리 어려워지고 경쟁률 평균이 30:1이라는 얘기들과 줄줄이 떨어졌다는 한인사회의 횡횡한 입소문들을 듣고 긴장을 한다 하더라도 그 약효는 길어야 10일이다.
그동안 마르고 닳게 들어온 소리들의 세뇌가, 회사 누구누구 애들은 그리 판판 놀았는데도 어느 대학갔다네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난리꾼이었던 뉘집 애도 글쎄 인서울 갔네 라는 풍문들 속에서 어렵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어디는 가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가 현지 재외국민 수험생과 학부모의 잠재된 의식이다.
어느 누구나 ‘내 자식’은 노력을 안 해서 그럴 뿐이지 ‘머리가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과 머리는 좋은데 ‘게을러서’ ‘환경 때문에’ 성적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한다. 마찬가지로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대학에 떨어져도 그것은 남의 나라 얘기지 우리 아이에게 만큼은 비켜갈 것이라는 ‘피상성’이 재외국민 특례입시 자격을 통한 쉬운 전형이라는 경험들과 맞물려 ‘쉬운 전형임에도 어려운 전형>으로 만드는 과오를 너무도 쉽게 범하게 한다.
이러한 잠재된 ‘재외국민 수험생’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앞으로 거론할 다른 요소들과 더해져 <현지학습>의 집중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2. 입시 교육 경험의 부재로 인한 문제
예전에도 거론한 적이 있지만 재외국민 학부모들이 지닌 본질적인 문제는,
한국대학 입시 교육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통계청과 해외동포 연합, 외무부, 그리고 코트라의 자료를 보면
해외 주재원으로 파견되는 일가의 평균 연령과 한국 거주지 및 자녀 현황 등을 조감할 수 있다.
그것을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핵심적인 사항은 입시교육의 핵심에서 다소 빗겨나 있다는 점이다.
즉 한국 대학 입시의 일번지라고 할 수 있는 강남권과 송파를 주거주지가 된 경우는 10%에 미치지도 못한다. 서울이 25%미만정도이고 대체로 수도권과 경상권이 해외 재외국민 파견 근무자의 대체적 현황이다.
아울러 한국대학 진학을 염두에둔 재외국민생 중에서 주재원의 비율은 약 35-40% 사이이며
나머지 60% 이상이 소위 3년 이상 특례생들 중 해외 자영업 및 선교사 등 기타재외국민이다.
또하나의 문제는 한국 대학입시 성공을 위한 자녀 학습관리의 부재가 가장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경쟁을 해야 주요 대학에 합격을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이 없다보니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인 중학교~고2까지의 집중 선행학습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여기에는 해외 현지 도착 후 복잡한 여러 상황에 의해 경황이 없었다는 상황이 이해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자녀를 그 시기에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예비 수험생을 둔 학부모라면 <무엇을 어떻게> 일상생활 속에서 해야만 하는 지와, <어디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시행착오>의 연속이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에 반복되는 악순환이며, 재외국민 해외 교육 현장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중요한 것은 입시에 성공을 하느냐 실패하느냐의 8할은 학부모의 책임이다.
천재만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대학입시는 천재냐 둔재냐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학습에 성실했느냐 불성실했느냐를 평가하는 것이고,
길게는 12년 동안 짧게는 3년동안 얼마나 열심히 학습에 노력했느냐를 가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미성년자 자녀의 학습태도의 노력 및 성실도는 아이의 몫이 아니라 학부모의 몫이기 때문이다.
재외국민 학부모들이 해야 할 과제라는 주제의 선결문제인 <재외국민 학부모들의 문제>는,
현지교육이 지닌 가장 큰 선결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지 아이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재외국민 특례입시라는 전형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현지교육>이 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하겠다.
3. 재외국민 학부모들이 해야 할 과제
(1) 학교가 아니라 학과다.
우리는 보통 아이의 목표대학을 우선적으로 생각을 한다.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재외국민의 특성상 학교 보다는 학과를 우선적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학과 선택에서 꼭 주지해야 할 것은 <가급적>이면 이과 보다는 <문과>를 선택하라는 것을 제시하고 싶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재외국민의 학과 선택 진로-문과냐 이과냐]에서 따로 논의하도록 하겠지만, 그 논의의 결론은 <반드시> 문과 선택이어야 추후 대학진학 및 사회진출에서 매우 유리하다는 점을 밝혀둔다. 물론 객관적인 매우 특출난 재능을 이미 발휘하고 있는 경우는 예외다.
재외국민은 이미 다른 칼럼에서 얘기한 것처럼 <해외졸업>이냐 <국내졸업>이냐에 의해서 그 전략이 크게 변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학과>를 우선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주요한 이유는 한국의 바뀐 입시제도인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효율적인 대비를 사전에 준비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제는 현재 보다 앞으로 그 범위가 더욱 확산될 것이며 그 평가기준 또한 더욱 세밀화되고 정예화될 것이다. 즉 지금 당장의 기준과는 전혀 그 양상이 다르게 전개될 수 있고, 한국 수험생들보다 다양성이 더욱 많은 재외국민의 경우 과거처럼 일반화된 자신의 스펙으로는 결코 앞으로 전개될 입시에서 효과를 얻어내기는 힘들어진다.
또한 학과선택의 중요성은 필요/불필요 과목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물론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아이가 최선이기는 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대학을 어떻게 보내는가는 부모의 몫이겠지만 대학에서 어떻게 생활하는가는 전적으로 아이들의 몫이고, 부모는 아이들이 대학 이후까지 어떻게 보낼까 노심초사할 이유가 없다. 결국 제대로 아이들의 특성과 시대의 추세와 흐름을 관통해서 아이에게 최적의 전공을 선택하여 주고, 그것에 충족될 수 있는 기간학문을 수득하게 한 후 입시에 성공하게 하면 부모가 해야 될 우선적인 의무는 이행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아이의 인생에 최대한 개입이 되는 입시의 과정에 부모로서 충실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입시에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최적화된 학습과정을 제시하고 수행하도록 독려해야만 한다. 더욱이 입학사정관이 적용되고 확대되는 앞으로의 대학입시에서는 수험생들의 <수행평가 항목>에 대한 세분화된 평가가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수행평가에서는 교내외의 활동, 그 중에서도 학교 외적 활동이 수험생이 지원하는 전공에 충실했는가와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는가와 전공을 이수하고자 하는 동기가 충분한가와 그에 따른 성과가 있는가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룬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대비를 위해서는 전공의 조기 확정과 함께 위의 항목들을 충족할 수 있는 외적 활동을 구비해야만 한다. 물론 이는 학생이 알아서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러기 때문에 학부모의 계획과 전략이 주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2) 자녀에게 냉정하라.
유대인의 교육방법 중에는 <큰 부자에게는 자녀가 없다. 오직 상속자만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큰 부자라는 전제를 버리고 <모든 부모에게는>으로 바꾸고 싶다. 왜냐하면 재산의 다소와 관계없이 부모에게 있어서 자녀는 사회에 기여하고 한 가정을 잘 가꾸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면서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의 편식을 꾸짖고 이기심을 타일르며 선행을 권장하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마음에 기인할 것이다. <상속자>라는 것은 비단 재산만이 아니라 가치관과 세계관 그리고 식생활까지 포괄하는 것이며 그러한<상속자>로서의 자녀가 전제될 때 우리는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할 수 있게 된다. 하물면 입시교육에 있어서랴.
부모는 어쩔 수 없이 부모인지라 머리로 키운다고 해도 가슴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아예 그 출발을 가슴으로 시작할 때 결국 남는 것은 자식일 뿐이고 그 때 그 아이는 <스스로 커 버리게> 된다.
재외국민들에게 <상속자>로서의 자녀 교육이 더욱 유효한 이유는 재외국민이라는 조건 때문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잘 있던 한국을 떠나 쌩판 황당한 최소 6개월의 이방인을 겪게 되는 것이 재외국민생이다. 멀쩡한 아이가 완전히 다른 학교 커리큐럼 속에서 헤메면서 바보아닌 바보가 되어 지내는 언어적/문화적 이질성은 아이에게 큰 고통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부모는 늘 안쓰럽고 안타깝다. <적응>이라는 이유로 아이에 대한 관대함은 그 시기가 지난 이후까지 관성으로 작용한다. 6개월이 지나서 언어가 적응되어 나름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일 때 아이가 참 대견하게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어느 누구나 해외로 나갔을 때 겪게되는 일반적인 경우에 불과하다. 누구나 6개월 정도는 뜸금없이 지내고 누구나 6개월 이후에는 현지에 잘 적응한다. 결코 이것이 안타까울 필요도 그리고 대견할 필요도 없는 필연적 과정일 뿐이다. 이러한 필연적 과정을 <우리 아이에게만>이라고 생각할 때 멀쩡히 잘 다니던 애를 부모 일 때문에 해외로 끌고와서 망치는게 아닌가 라는 걱정과 함께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더욱 마음은 연약해 지는 것이 재외국민 학부모의 해외 이주 첫 1년 상황이다.
그러나 <상속자>로서의 자녀 교육 입장에서 보면 해외 이주 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아이에게 제공해 주는 큰 혜택이 된다. 더욱이 한국 입시 교육이라는 황량한 환경에서 나아가 글로벌 사회라는 현재의 추세에서 외국생활과 교육의 경험은 자녀의 삶 속에 엄청난 경쟁력을 만들어 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즉, 해외에서의 자녀관리의 첫 출발점은 <이렇게 좋은 혜택을 네게 제공했다>가 전제되어야 하며 그러한 전제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느냐>가, <그렇기 때문에 부모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수반되어야 한다.
자녀에게 여유를 주지 않아도 그 아이는 자신의 생활을 위해서 현지 적응을 위해서 만큼은 스스로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기간을 부모의 입장에서 방치할 때 아이는 현지 적응은 할 수 있을 지언정 다가올 <한국 귀국 후의 적응>에 대한 부분은 무방비 상태에 처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고민은 <아이가 어떻게 현지에 적응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아이가 차후 한국에 귀국한 후 어떻게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에 집중해야만이 자녀의 미래를 설계할 부모다운 현실적 고민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는 고민의 시점이 늦었고 그만큼 현지에서의 자녀 교육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현지에서의 적응에 대한 고민은 한국에서 이미 했어야 했고 그 대안도 제대로 마련했어야 했다. 아울러 <귀국 후 적응>은 현지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해야 하고 그 방안도 마련함이 타당하다. 아이에게 귀국 후 적응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 하게 할 수는 없다. 더욱이 그것에 대한 대책을 위해 스스로 공부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결국 이는 부모의 몫이고 그 시점이 언제인가가 현지교육의 성패를 가름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하겠다.
(3) ABC만 공부해라.
공부라는 것은 주어진 환경과 시기적 상황 그리고 실력적 단계 등에 의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결정된다. 위의 세가지 조건에서 하나라도 벗어난다면 크든 작든 간에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입시에서는 반드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재외국민의 현지 학습 역시 위의 세가지 조건을 면밀하게 파악해서 자녀의 학습관리가 진행되어야만 한다. <해외 교육의 중심>은 학부모의 인식과 판단에 있다고 믿는 필자는, 위의 세가지 조건에 대한 학부모의 정확한 인식에 바탕을 둔 <현지에서의 자녀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주어진 환경>을 보자.
솔직한 말로 특별한 몇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해외 입시 교육 여건은 많은 학원이 있건 없건 간에 그리 큰 차이가 없다. 아니 오히려 많은 곳이 입시를 위한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대치동에서 최종 입시 과정을 학습시켜보면 나타난다. 학원은 많은데, 그래서 입시준비를 위해 배우는 곳은 많은데 어떻게 최종입시 학력평가에서는 그렇지 않은 <입시오지>보다 더 떨어지는가?
재국동이나 글로벌 학원에서 해외 곳곳의 많은 학부모들과 직접 상담을 해보면, <입시오지>라 일컬어지는 미국, 유럽, 동유럽 등의 학부모들이 근심은 매우 크다. 아무런 입시 대비 학습방법이 없는 현지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특례입시는 날로 치열해진다는데 그리고 중국 등 입시 수험생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권은 특례입시 학원들도 많아서 오래전부터 특례입시 준비를 한다는데 우리 아이들은 입시에서 소외된 채 있으니 <특례 중에서 또다른 특례>를 뽑아야 공평하지 않겠는가는 하소연이 상담 내용에 반드시 포함된다.
하지만 막상 입시결과를 보면 그와는 정반대적 현상이 나타난다.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오는 수험생들이 과연 그만큼 잘 대학에 진학을 했는가? 그리고 유럽 등등 <입시 오지>에서 귀국한 수험생들이 그들의 염려처럼 참혹한 실패를 했는가? 아시아권 수험생들이 많이 합격한 것은 말 그대로 수적 다수이기에 보이는 착시다. 얼마나 많이 보냈는가는 대중적 호소를 획득할 수는 있어도 입시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데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즉 합격자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합격률>이 중요하다.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인 북경과 상해 그리고 청도의 경우 인서울의 합격률과 인서울 주요대의 합격률을 산출해보면 도대체 그렇게도 특례교육 인프라가 잘 되어 있는 곳이라는 지역의 합격률이 어떻게 <입시오지>인 곳과 비교해서 이렇게도 열악한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알다시피 위의 지역은 내노라 하는 크기의 한국국제학교도 있고 입시 학원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도 말이다. 그나마 북경/상해가 해외 특례입시 학습의 중심 도시로 부각되는 이유는, 주재원이 많고 소수지만 매우 우수한 스펙의 학생들이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합격률 무시한 절대 합격자수가 많은 입시생으로 인해서 확보되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욕을 먹을지는 모르지만 필자는 단호히 위의 지역 그리고 더 나아가 아시아권의 여러 지역들인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등의 특례입시 성과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공개하기는 힘들지만 각 국가별 지원자 및 합격자 수치만 비교해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아주 쉬운 판단이다. 문제는 실패니 성공이니를 떠나서 왜 성공을 하는가와 왜 실패를 하는가에 대한 분석이고 그 중에서도 <왜 실패를 하는가?>를 알 수 있다면 성공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적어도 <실패하지는 않을>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현지 입시학습이 잘못 꿰어지는 첫 단추는 <안일함>에서 시작하고 그 다음이 <측은함에 의한 방치>로 진행이 되며 마지막이 <기본기의 부실>로 완성이된다. 첫째와 둘째는 위에서 충분히 거론하였기 때문에 마지막 문제인 <기본기의 부실>에 대해서 논의해 보도록 하자.
<기본기의 부실>은 비단 학부모의 문제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학원과 수험생>이 지닌 태도도 크게 <기본기의 부실함>을 조장하고 있다. 특례라는 자격조건에 의해서 해외 이주의 학생 연령은 대체로 중학교 2학년 부터가 일반적이다. 한국에서 중1 혹은 2학년을 마치고 현지로 출국하는 경우인데 고1까지는 어느 누구나 <영어 말하기>에 집중해서 학습을 한다. <특례는 곧 영어>라는 인식이 전제된 상황에서 보면 당연한 과정이라 여기기 쉽다. 일부분 맞는 말이지만 일부분 분명 잘못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의 잘못이 입시 학습과정 전체로 보면 크게 어긋나게 만드는 단초가 된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해외로 이주하게 되는, 혹은 이주된 상태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대학진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막연하게 <미국으로 갈 것인가>, <현지 대학으로 갈 것인가>라는 인식은 전체적 학습방향을 왜곡시키는 대표적인 사례다. 일반적으로 재외국민생의 경우 다소 우여곡절을 겪는다고 해도 <한국대학>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 대학과 국내 대학의 진로에 대한 문제는 전의 다른 입시칼럼에서 거론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유학생 신분이 아닌 이상 결국 특례자격을 획득해서 한국 대학에 특례입시와 함께 수시2차 전형으로 진로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논의의 전제가 되었을 때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합리적인 방법이 만들어진다.
재외국민생에게 있어서 <영어>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영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제를 충족할 수 있는 영어>가 중요한 것이다. 소위 <라이프 잉글리쉬>와 <아카데믹 잉글리쉬>로 영어를 분류할 때 <라이프>는 자녀 스스로에게 맡겨야 하고 <아카데믹>을 부모의 관리하에 [강제적] 학습을 시켜야 한다. <영어를 잘해도 영어를 못하는> 경우가 수없이 발생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토플은 좀 나오는데 SAT에서 2000점 이하로 죽쑤는 경우의 원인 역시 그렇다. 학부모와 자녀가 공동으로 느끼는 두려움인 <현지적응>이라는 것의 트라우마가 <라이프>에 목매게 만들고 6개월의 적응기를 거쳐 나름 잘 생활하고 있는 자녀를 보며 안도감과 보람을 느끼는 과정이 <잘하는데 못하는> 모순상태를 만들게 된다.
귀국 수험생들이 지닌 영어의 문제는 첫째가 <어휘>고 둘째가 <문법>이다. 어휘의 폭이 매우 좁고 문법적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채 쓰는 영어는 생활은 가능하게 할 지언정 학문의 밑바탕을 형성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아울러 특례입시 영어의 8할은 쉽게 올라가도 나머지 2할에서 버벅이게 만들고, 그 2할이 변별력으로 작용하여 입시의 성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이 고비를 넘지 못하고 좌절에 빠지게 됨을 유념해야만 한다.
현지 학습 초창기에 하루 24시간 동안 라이프에만 집중하지 말고 한국에서 공부했던 패턴 그대로 <국어>와 <수학> 그리고 영어의 학문적 기초를 튼튼하게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활용한다면 입시를 위한 충분한 대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지 초창기 6개월이 지나면 주의해야 할 두번째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6개월 이후 나름의 적응기를 마치게 되면 애들은 여지없이 <놀게되고>
학부모 역시 자신의 현지 적응의 시기를 맞게 된다. 초창기의 긴장이 풀리면서 생활환경의 주변을 둘러보게 됨과 동시에 <한인사회와의 유대>와 현지 음식점의 섭렵과 골프장의 섭외가 주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자녀에 대한 <방치>가 본의아니게, 아무 소리없이 진행이 된다.
6개월~1년 사이의 기간에 자녀의 학습습관과 학습진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부지불식간 아이는 입시와는 동떨어진, 학부모는 가늠치 못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이 시기가 한국대학 입시를 위한 학습과정에서 구체적이고도 명백한 오류를 가져오는 때다. 물론 그 본질적인 원인은 첫 도착시기이지만 그것의 작용에 의해서 또한 <관성>에 의해서 실질적인 간극을 만들어내고 현실화되는 시기가 바로 6개월 이후의 시기다.
고교 2학년이 되면 비로소 <입시>라는 당면의 과제에 회귀되고 이에 대한 나름의 준비를 하게 된다.
여기에서의 딜레마는,
입시는 당면의 과제인데도 불구하고 아이의 실제적인 학력지수는 입시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서 객관적인 쓴소리를 하지 않고 학부모와 아이는 그것을 수용하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데 <결정적인 오류>가 만들어진다.
필자가 해외에서 설명회를 할 때는 반드시 <학부모와 학생>과의 개별상담을 진행한다. 그 중 공통적인 상담의 내용 중 하나는 <떨어진 학력지수>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인식하되 <입시의 결과>에 대해서는 희망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현지에서 나름대로 경험한 여러 가지 입시 성공의 사례들에 대해서 <자기화>하고 이제 정신 차렸으니 <하면 된다>는 생각은 물론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철저하게 과거에 대한 <자기반성>과 입시 경쟁에서 매우 뒤떨어진 자기 실력에 대한 <현실인식>이 바탕이 된 미래의지만이 긍정적인 것이지, 과거의 사례에 대한 자기화라는 일반화는 결코 집중적인 학습 태도를 이끌어내지 못함과 동시에 <입시결과의 실패>를 자초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와같은 경우를 통칭해서 <성급한 입시 성공 욕구>라고 부른다. 부족한 것 만큼 그 부족한 부분에 대한 정비를 우선적으로 해야 할 시기에, 그것을 채우고도 남을 어떤 <스킬>과 <특수과정>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더 큰 실패를 유발함을 인식하여야 한다. 즉,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특례입시에서는 결코 늦어서 못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그 시기에 오히려 기본과정에 대한 학습이 반드시 수반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는 현지의 공/사교육의 이해와 직결되기에 더더욱 학부모와 학생의 판단 오류를 조장하는 면이 많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이렇게 <급해진> 학부모와 학생의 심리를 이용하여 현지교육은 그들의 역량과 준비과정과 제공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서 입시의 스킬로만 집중화되는 경향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일반적인 기초 다지기나 개념 학습으로는 현지 교육 소비자인 학부모와 학생의 관심을 끌 수도 없기 때문에 <기출문제풀이>나 <실전문제풀이> 등으로 교육기관의 커리큐럼이 만들어진다는 것.
특례입시에 불필요한 과정이 과장되어 상담되고 그것이 정규 커리큐럼으로 확정된다는 것.
입시의 한 측면만 편향되게 증폭하여 수험생 개개인의 적절한 입시대비 준비를 분산시키는 것.
등등이 교육기관의 경쟁력과 맞물려 학부모와 수험생에게 제공되니 제대로 된 입시학습의 길을 간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불안해지는 상황을 조장하게 된다. 이러한 현지 상황에서 제대로된 고2 이후의 수험생들의 입시학습을 기대하기는 어떤 면에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생각해 보시라.
입시 문제풀이나 실전풀이를 능동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상태의 수험생에게도 이러한 과정을 교육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한 교육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얼마나 되겠는가? 아니 오히려 그들의 학력지수를 거품화시키고 학문에 대해서 교만하게 만들어내는, 그래서 수험생다운 생활학습은 커녕 가볍고 조악한, 학부모 입장에서는 눈뜨고 보지 못할 정도의 공부만 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솔직히 70-80년대 대학입시를 준비했던 학부모의 관점에서 보면 자녀의 특례입시 대학준비 학습은 <찌질한 모습> 그 차제다. 저 따위로 해서 대학을 가겠다고 하니 그게 옳은 건지 아니면 특례입시의 혜택인지 모를 정도다.
그러나 걱정마시라.
<이제는 못 간다, 그렇게 해서는, 특례입시도!>
현지 교육기관은 현지 교육기관 답게 커리를 짜고 가르쳐야 하며,
학부모는 입시가 얼마나 남았든지 간에 급하게 마음 먹지 말고 기초부터 단단하게 만들도록 관리해야 하며,
수험생은 자기의 객관적 실력을 <제발> 깨닫고 자기 수준에 맞게,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낮춰서 기본기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학습해야만 한다.
<재외국민 학부모들이 해야 할 과제>를 쓰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이 글로 인해서 상처를 받으실 수 있고 때로는 반감이 날 수도 있는 여지가 다분함을 느낍니다. 지나치게 일반화한 모습도 감지할 수 있지만 그대로 수정없이 올린 것은 제 본심과 의도가 <자극을 통해서 비판하고자>함이 아니라 현지학습의 일부 문제점을 일반화함으로써 <보편적인 현지학습의 대안>을 도출하고자 함에 있으니 혹시라도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회원님이 계시다면 노여움을 푸시라 위로를 드립니다.
재외국민 현지교육의, 그 중에서도 학부모님들께서 하셔야 할 과제는,
1) 초심을 새기고 일관되자.
2) 현지교육에 맞는 학습을 시키자.
3) 자녀의 생활관리와 학습관리는 철저하게 하자 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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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타문화권에서 학부모들이 알아야 할 내용을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특례를 준비하는 학부모들이 읽은면 좋은 내용이네요.감사합니다
특례 학부모로 정보가 많지 않아 늘 불안했는데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