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五樂
文 熙 鳳
우리들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는 네 친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는 그 친구들 중에서 희(喜)와 낙(樂)이 달아나 버린 것 같다. 노(怒)와 애(哀)만 남아 있는 것 같다. '노애'(怒哀)를 상쇄시키는 것은 '희락'(喜樂)인데, 그것들이 달아났으니 걱정이다. 생각 끝에 다른 사람이 나를 즐겁게 해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달래주고, 기쁘게 해주고, 위로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숙고 끝에 나는 5가지 낙(樂)을 개발하여 실천하기로 한다.
첫째는 건강한 육신을 다지는 일이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규칙적으로 기상하여 귀에 리시버를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체조를 한다. 체조를 두 번 반복하고 팔굽혀펴기를 한다. 그리고 나서 헬스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한 시간 가량 스트레칭과 트레이닝을 한다. 나이 들어 근육량이 줄어듦은 저승으로 가는 단초를 제공해주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 대전 둘레의 산들의 품에 안겨 사는 일이다. 나의 거처 가까이에는 보문산, 식장산, 계족산, 구봉산, 빈계산 등이 건강한 수목들과 동물들을 대동하고 살고 있다. 그곳에는 각종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이름 모를 새들의 합창소리를 들으며 2~3시간 걷다 보면 마음에 평화가 온다. 특히 흐린 날에는 저기압이 깔려 있어서 나무 향이 더 짙게 코로 들어온다. 새벽과 저녁 석양이 질 무렵에도 나무의 향이 진하게 몸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송진향이 풍기는 소나무 숲과 오리나무, 서양 아가씨의 허벅지처럼 쭉쭉 벋은 키큰 나무들이 어울려 뿜어내는 피톤치드 향은 나를 춤추게 한다. 이상하게도 숲속을 걷다 보면 근심 걱정이 줄어들고 삶에 의욕이 생긴다.
둘째는 친구들과 같이 여행을 하면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이다. 어렸을 때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우연히 들른 음식점에서 맛보게 되면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면서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음식을 앞에 놓고 바라만 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어렵게 먹긴 먹었는데 소화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라. 음식을 앞에 놓고 뜻이 맞는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친구는 수효의 많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깊이가 중요하다. 엊그제는 동태찌개를 잘한다는 집을 찾아 찹쌀밥과 함께 찌개를 먹으면서 유년시절을 떠올리는 영광을 누렸다.
셋째는 아내와의 대화를 끊임없이 지속하는 일이다. 꼭 할 얘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할 얘기가 없으면 만들어서 한다. 아내를 칭찬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는다. 아내만큼 소중한 존재가 어디 또 있는가. 아내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돕는다. 그러니 얘깃거리가 저절로 생긴다. 식사 때는 텔레비전을 끈다. 젊었을 적 찍은 사진을 보면 아내가 내 곁에 가까이 서 기대고 있는 모습이다. 요즈음 찍은 사진을 보면 내가 아내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는 형상이다. 젊었을 때는 아내가 나에게 기대어 살고, 지금은 내가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부부란 서로에게 가장 귀한 보배요 끝까지 함께 할 사람이다.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줄 사람이다. 젊은 시절엔 애인이요 중년엔 아내요 늘그막엔 간호사인 아내와의 오랜 대화는 나를 원숙한 노년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넷째는 봉사하는 일이다. 나의 도움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눠 줄 것이다. 매월 첫째 일요일 아파트 대청소 봉사도 열심히 하고, 보호위원으로 활동 중인 소년원에도 자주 찾아가서 멘토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다. 본디부터 악한 존재가 아니었다면 바른 심성의 소유자로 돌아올 수 있도록 내 영혼을 쪼개 넣어줄 것이다. 오래 전부터 봉사를 하고 있는 요양원에도 계속 나가고, 또 찾아서 베푸는 삶을 살 것이다. 한글수업을 원하는 다문화가정 식구들에게도 내가 가진 국어지식을 나눠주는 데에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는 창작하는 일이다. 중년 이후부터 사귀기 시작한 문학이란 친구와의 교분을 더욱 돈독하게 다질 것이다. 문학과 가까이 하는 삶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한다. 참 다행이란 생각이다. 조물주는 누구에게나 한 가지 재주는 나눠주셨다지만 나에게 글 쓰는 조그마한 재주를 주신 것에 감사한다. 말 그대로 창작은 산고와 다름 아니다. 진통을 겪으며 출산하는 창작품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 삶의 보람을 느낀다.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되어 어깨를 으쓱거리기도 한다. 이 세상 소풍 끝내는 전날까지 나는 글 쓰는 일에 소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