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척 등 보존 처리의 과학적 방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1843년 이후 지난해부터 첫 세척작업이 계획됐다. 이탈리아 정부는 증류수를 이용해 화학적으로 이물질을 제거할 방침.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이 방법이 다비드상의 표면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레이저에 박테리아까지 동원되는 ‘종합과학’
최근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다비드 조각상의 보존을 둘러싸고 과학계와 문화계 등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탈리아 정부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색이 바래고 부분적으로 파손된 다비드상을 복원하려는 계획을 발표하자 일부에서 ‘원작 훼손’이라며 반발한 것이다. 문화재 보존이 인류적 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산업적 측면에서도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과학자들은 손상되기 쉬운 작품의 보존·복원을 위해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 다비드상을 되살려라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은 1504년 완성된 이래 수많은 훼손을 겪어왔다. 1527년 폭동 당시에는 의자에 맞아 왼쪽 팔이 세 조각 났고, 1991년에는 한 예술가가 망치를 집어던져 발가락이 부서지기도 했다.
전면적인 세척작업도 1843년 이래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세척을 담당한 아리스토데모 코스톨리라는 복원가는 거칠기 그지없는 독한 염산을 세척액으로 사용할 만큼 문화재 보존에 무지함을 드러냈다.
이렇게 수난을 겪은 다비드상은 과거의 멋진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노후화했다. 따라서 이탈리아 정부가 최근 새로운 보존 처리 방침을 밝히자 전문가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탈리아 정부는 다비드의 상태에 대해 수개월간의 조사를 벌였다.
이 같은 조사 기법을 통해 이탈리아 정부는 다비드상에 묻어 있는 황산칼슘(석고·CaSO4)들이 가장 큰 이물질이라고 파악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 정부는 증류수를 뿌린 습포제를 이용, 이물질을 제거하는 동시에 구멍의 먼지들을 제거하는 1석 2조의 방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를 비롯, 미국·유럽의 언론들은 이 방식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물을 사용하는 방법이 다비드상 표면을 먼지 등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름기까지 제거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습포제를 이용한 압착법이 구멍의 때를 빼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논란 속에 다비드상 복원을 담당하던 기술자는 솔·걸레·지우개 등을 이용한 전통적인 세척 방법을 주장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임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증류수를 이용한 세척 방침을 고수하고 있지만, 현재도 어느 쪽이 옳은가에 대해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 문화재 보존기술은 통합과학 =문화재 보존·복원은 물리·화학은 물론, 생물이나 우주과학까지 총동원되는 통합과학이다. 수천년간 잠자던 고대 유물이 19세기에 대거 발굴돼 유럽 박물관에 유입되면서 발굴품의 보존 문제가 큰 이슈로 등장했다. 특히 1차 세계대전 당시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은 지하에 보관한 소장품에서 대리석의 색상 변화, 금속품의 부식 등으로 골치를 앓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20년 화학자 알렉산더 스콧(Alexander Scott) 박사가 문화재에 대한 과학적 보존 연구를 체계적으로 시작했다. 이것이 과학자가 박물관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이다. 이후 방사성 동위원소 판별법 도입을 시작으로 점차 다양한 화학기법 및 광학·컴퓨터 기술이 문화재의 보존 복원에 사용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연구팀은 현재 레이저를 이용해, 문화재를 침범하는 습기 제거법을 연구 중이다. 또 도자기나 가구에 코팅제로 쓰이는 유약(釉藥)에도 주목하고 있다. 연구팀은 유약을 칠한 문화재의 경우 물리·화학적 변형이 거의 일어나지 않게 습기를 제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화학적 방법으로는 산소를 이용, 문화재를 오염시키는 탄수화물을 화학반응으로 제거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사이버 문화재 복원 작업도 한창이다. 최근 이라크 전쟁 때 주민들이 이라크 국립박물관의 유물을 대거 약탈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미국 버클리대학의 컴퓨터 과학자와 고고학자들은 도난 또는 훼손된 문화재를 온라인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도난품이 국제 암시장에서 밀거래되는 것을 막고, 원본의 가치를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해서다.
문화재의 훼손여부를 점검하는 조사 기법도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3차원 초음파 조사는 기본이다. 조각물에 작은 구멍을 뚫은 다음 미니카메라를 내부에 삽입하는 방식도 사용된다. 구멍난 곳이 발견되면 탄산 석회를 만드는 박테리아를 이용해 구멍을 메운다.
◆ 제작당시 모습까지 재창조 =과학기술은 문화재 보존·복원은 물론이고 제작연대 및 지역 추정, 사용 원료의 조성, 그리고 제작 방법 등에 대해서도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박물관과 로체스터 공학연구소가 연구하고 있는 ‘색깔 복원’ 연구가 대표적인 사례. 로체스터 공학연구소 연구팀은 고미술품이 갖고 있던 원래의 색깔을 광학 스펙트럼을 이용해 찾아내는 기기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사람이 보는 방식으로 미술품을 보는 대신, 여러 가지 빛을 쬐어 미술품이 어떤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지 등을 파악한다. 미술품의 고유한 광학 정보를 모두 모으는 이 방법은 미술품의 원래 색깔은 물론, 어떤 물감이 쓰였는지, 세월에 따라 색깔이 어떻게 변했는지 등을 가르쳐준다. 연구팀은 각각의 색이 갖는 정보들을 저장, 다른 미술품과의 비교에도 사용할 계획이다.
문화재 내부의 정보를 얻는 데에는 그동안 X선이 대표적으로 쓰였지만, 최근에는 다른 방사선이나 적외선 등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19세기 미국 화가인 앨버트 핑크햄 라이더의 작품을 복원하기 위해 핵 발전소의 방사선을 이용해 작품을 촬영했다. 당시 찍은 사진은 작품에 색이 칠해진 과정을 여실히 보여줬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술관 등이 과학적 장비로 문화재 보존·복원 작업을 벌이지만, 외국 유명 박물관에 비하면 장비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올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았다. 눅눅한 습기와 고온은 사람들을 지치게 하지만, 문화재로서도 견디기 어려운 환경이다. 최근 청와대에서는 국내외 귀빈들이 기증한 그림이나 예술품 중 다수를 일반 창고에 방치해두다 화폭이 갈라지고 색이 바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화재 보존과 복원에 대한 관심과 기술개발, 체계적인 지원 등이 필요한 이유다.
조선일보 2003.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