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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미답(前人未踏),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을 걸어간 사람의 전통이 있다. 우리 역사에서 이런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한 전통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구도(求道)의 길을 따라 인도까지 걸어서 갔다 온 순례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 사람 아리나발마는 처음에 불교의 본디 모습을 보러 중국에 들어갔는데, 용기가 더욱 솟아 결국 오천축국까지 이르렀다. 오천축국이란 인도 북부 지방에 있었던, 부처님이 나신 나라를 비롯한 다섯 천축국을 말한다. 중천축국과 동서남북의 넷, 그래서 오천축국이다. 아리나발마는 나란타사에 머물며 ‘율론을 많이 열람하고 패협에다 베껴 썼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웬만한 학문적 성취를 이루어 낸 모양이다.
패협은 패엽이라고도 쓰며, 경전을 기록하는 기다란 나뭇잎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뭇잎을 재료로 한 고급 종이인데, 살생을 금한 불교의 법칙에 따라 동물 가죽 대신 썼던 것이다. 지금도 남아있는 패협은 무척 고급스럽게 보인다. 가난한 순례자들은 제 몸의 치장 대신 이 종이를 사는 데 재물을 모두 바쳤으리라. 나란타사는 중인도 마갈타국에 있던 절인데, 5세기에서 12세기까지 불교를 가르치던 대학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서유기]로 잘 알려진 손오공의 스승 현장도 이 절에서 5년간이나 머물며 공부했다.
이 같은 이야기를 일연은 중국 승려 의정의 [구법고승전]에서 전적으로 인용해 [삼국유사]에 적어놓았다. 본디 이름이 [대당서역구법고승전]으로, 7세기 말 의정이 스스로 인도순례를 하며 지은 책이다. 인도까지 구법 여행을 한 승려들의 전기를 실은 것인데, 아리나발마를 비롯한 모두 60인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동국(東國)인 곧 신라 사람이 무려 9명이나 된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15%에 달한다. 한편 각훈의 [해동고승전]에는 의정의 승전에 없는 현조와 현대범이란 이름이 보인다. 의정의 승전에 나오는 현태와 구본이 이들일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숫자는 더 불어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