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음성 감우제 전승기념관 - 충북 음성군
음성시장에서 금왕시장으로 향하던중 감우재를 넘고 있을때 억수같이 쏟아지는 소나기를 만났다. 이
곳은 충주와 음성을 다닐때 주로 쉬다 가던 장소였기에 이날도 나는 감우재 전승기념관으로 들어왔다
비가 금방 그칠것 같지 않기에 전승기념관이나 돌아 보고 나오다가 이 기념관이 언제부터인가 세워져
있던 기념관인가...하는것이 궁금해 졌다. 90년대 초반부터 감우재를 한달에 두번 정도씩은 꼬박 넘어
다녔는데 재작년에 세워진것 같기도 하고 재재 작년에 세워진것 같기도 하고...
하여 관리사무소에 계신분한테 여쭈어 봤더니 벌써 세워진지 5년이나 되었다나...
나참...15년동안 음성시장에서 무극으로 넘어갈때 한 달에 두번 정도 꼬박 쉬어 갔던 장소인데 벌써
그렇게 되었나...하는 의아심과 함께 세월 감각이 둔해져 있는 나를 탓해 보지만 어쪄랴 !
장부책에 적혀 있는 외상값의 내용도 가끔씩 껌뻑 하고 넘어가는 판인데...^ ^
어찌됐든 이곳은 참 조용하니 잠시 쉬어가기는 딱 좋은 장소다
이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마을에서 5십 몇년전에 생사를 건 처절한 전투가 사흘 밤낮이나 벌어졌
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저기 저 충혼탑과 전승 기념관의 총알 맞은 철모를 보면 당시
의 처절했던 참상들이 생생하기만 하다
비 내리는 음성 감우재 전승기념관 - 충북 음성군
음성 감우재는 한국전쟁 초기에 북한군에게 후퇴만 거듭하던 국군이 1950년 7월 5일부터 9일까지, 4
일간 벌어진 전투에서 북한군을 격파하고 첫 승리를 거둔곳이다
하여 음성군은 6.25 한국전쟁 당시 최초의 전승지였던 이곳 감우재에 1985년, 무극전적국민관광지를
조성하고 저기 전승 기념관은 5년전인 2003년도에 건립 했다고 한다
저 전승기념관에는 6.25당시의 전투장비와 전쟁 참상, 그때의 흔적들을 관련자료와 함께 전시하여
당시의 상황들을 생생하게 경험할수 있도록 했다
그때 전승기념관에서 촬영했던 사진이 몇 장 있는데 여기 한 번 올려 볼까 한다
압록강에서 물을 떴다는 수통 (상징성)과 철모, 칼빈소총 탄창
습득지 : 강원 양구 펀치볼 (증) 감곡면 왕장리 고종훈
여기서 상징성의 수통을 이곳에 진열해 놓은 이유는 6.25당시 음성 감우재 전투에서 크게 승리를 했던
국군 제6사단이 압록강까지 진격하여 수통에 물을 떠서 마셨다는 근거에서다
격전의 상흔 (증) 육군 6사단 7연대
녹슬은 포탄의 몸통과 부러진 기관통 총열, 그리고 녹슬은 박격포 받침대, 반찬통, 반합,
수통등이 진열되어 있다
6.25참전 증명서(증) 강석흥, 6.25참전 증명서(증) 이덕수, 월남전 참전 기념패(증) 이용택
이곳은 6.25 전쟁을 참전했다는 증명서와 월남전 참전 기념패, 그리고 당시에 군인들이 쓰던
면도기와 계급장이 전시되어 있다
6.25참전 용사 (육군 제6사단 통신대)
육군통신학교 제2기 졸업 앨범 (1949. 7. 5)
영천지구 유공 대통령 수장 수여증 (1959. 5. 31)
공비토벌 유공기장 수여증 (1956. 4. 16)
6.25사변 종군 기장 수여증 (1956. 4. 46)
만기 제대증 (일등상사) (1956. 4. 2)
(증) 음성읍 읍내리 하영화(1928. 2. 17 생)
이곳은 6.25참전 육군 제6사단 통신대 제2기 졸업 앨범과 대통령 훈장,
공비토벌 유공증, 종군기자 수여증, 제대증등이 전시되어 있다
6.25 참전 용사(제6사단 제7연대) 수훈 훈. 기장
맨 위의 왼쪽부터 화랑무공훈장 (6.25 참전 당시) 또 다른 종류의 화랑무공훈장(6.25참전 당시),
6.25 종군기장, U.N참전 기장, 공비토벌기장
이상...(증) 음성읍 읍내리 최 돈 식 ("예" 육군 대위)
아래는 6.25 및 월남전 수훈 훈장인데 왼쪽부터 금성화랑무공훈장(6.25 전 1950년),
화랑무공훈장 (월남전 1972년) 인헌무공훈장 (월남전 1972년)
이상...(증) 생극면 인곡리 이 용 택 ("예" 육군 중령)
맨 아래 오른쪽 충무무공훈장 (6.25 전 1951년)
이상...(증) 소이면 충도리 김 영기 ("예" 해병 상사)
화폐, 당시 지폐류
가장 위에서 세번째까지는 당시 천원짜리 지폐고 네번째, 다섯번째는 백원짜리 지폐다
그리고 가장 아래에 있는 지폐는 한국은행에서 발행한 십전 짜리 지폐와 오십전 짜리 지폐다
남한 계급장, 북한 계급장, 군용 담배 5종, 위약품 5종
왼쪽은 당시 남한 계급장과 북한 계급장을 진열 해 놓았는데 위에 남한 계급장부터 이야기 하자면
가장 위 왼쪽부터 소령, 중령, 대령...이고 그 다음줄은 소위, 중위, 대위...그리고 가장 아래는 하사,
중사, 상사...뭐...이런 순이다
그리고 북한 계급장...젤 위에 큰 별 두개 짜리는 국군 중령에 해당하는 계급장인것 같고 그 아래
작은별 세개 짜리는 상좌, 두개짜리는 중좌 ?
확실치는 않지만 옛날에 군대서 배웠던 기억을 더듬으면 대충 그런것 같다
그리고 왼쪽 군용 담배의 종류는 화랑담배가 2종이고 "건설"이라고 쓰여진 담배 2종, 그리고 백학이란
담배가 1종이다. 그 아래는 비상 구급약인것 같은데 어디에 사용하는 약인지는 잘 모르겠다
유탄에 깨어진 마을 종
6.25 동란시 음성 감우재 (일명 기름고개) 전투 격전 당시 유탄에 맞아 구멍이 뚫리고 깨어진 체
6.25에 상징인 역할을 하는 종이다
당시 북한군 장교 복장
당시 국군 장교 복장과 군장
위에 있는 총기류는 M60 기관총인데 6.25 당시에는 저 기관총이 없었을 것이고, 아래에 있는 기관
총은 M30이라는 미국산 기관총인데 당시에 사용 되었는지는 나두 잘 모르겠음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대검은 육박전을 치를때 M1 소총에 꼽는 대검이다
가장 위에 있는 총기는 최신형이라는 한국산 K2 소총이고 그 다음번 자빠져 있는 소총은 6.25후에 쓰
던 구닥다리 칼빈소총이다. 그리고 그 아래 총기류는 한국산 최신형 총기라는 K1A1 기관총이고 가장
아랫쪽은 45구경 권총이다
60미리 박격포와 6.25 당시의 사병 완전군장
3.5인치 로켓포와 60미리 박격포
3.5인치 로켓포 사격을 할때 뒤에 서 있다가는 후폭풍에 위하여 사람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6.25 당시 북한군이 사용했다는 R.P.O형 경기관총과 30구경 경기관총
6.25 당시 북한군이 사용했다는 소총 (속칭 따발총)
남한 전차와 북한 전차
남한 전차
중량 : 34.8 톤, 최고 속도 : 42Km, 무장 : 75mm포 1문, 37mm포 1문, 기관총 3정
북한 전차
중량 : 32.5 톤, 최고속도 55Km, 무장 : 85mm D-5T 또는 ZIS- S 53 전차포
소련제 모시칸토 소총과 시모노프 소총
한문으로 보통면허(普通免許)라고 적혀 있는 1953년도 서울특별시 발행 운전 면허증
음성 관광 안내도와 6.25격전 설명서 - 충북 음성군
1950년 6월 25일 국군은 남침을 도발한 북한군을 저지하지 못하고 음성까지 후퇴만을 거듭하게 된다.
이곳은 바로 한국군이 7월 5일 부터 7월 9일까지 음성에서 벌어진 북한군과의 치열한 격전 끝에 대승
을 거둔 첫 전승지이다.
7월 4일 한국군 제6사단 제7연대는 장호원으로부터 장갑차 8대를 선두로 계속 남하하는 북한군 제15
사단을 저지 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7월 5일 무극리에서 음성방면으로 남하하는 북한군 제15사단 제
49연대 1개 정찰소대를 한국군 제7연대 1대대가 소여리 부근에서 포위 섬멸하였다.
7월 8일 한국군 제7연대는 서부에서 전진하여 온 제 1사단에 현 진지인 소여리를 인계하고 원남면 보
천리 방면으로 이동하였으며, 제1사단 제11연대 2대대가 남하하는 북한군 제 49연대 1개중대를 기름
고개(현 감우재)에서 섬멸시키고 또 다시 2개 중대를 격퇴하였다.
7월 9일 한국군 제11연대 제 2대대가 최후의 발악으로 공격하여 오는 북한군 제49연대 1개 대대병력
을 이곳에서 위장전술로 격퇴시켰다. 4차례의 전투에서 북한군 6백명이 사망하였고,
한국군은 18명이 전사했다.
당시 한국군 제 6사단장은 김종오 대령, 제7연대장은 이부택 중령, 제1사단장은 백선엽 대령, 그리고
제11연대장은 최경록 대령이었다.
그날의 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 고귀하게 회생된 용사들의 정신을 기리고자 1986년 6월에 18,481평
방미터 부지에 국비등 3억 5천만원을 투자하여 무극전적관광지를 조성하였다.
- 이상 감우제 전승기념관 안내문판에서 옮겨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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