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한 커피를 만나다
커피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개인적으로 요즘 한 커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브라질 농장에서 돌아와 보니, ‘2009~2010 에디오피아 시다모’로 약간의 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문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올해 들여온 시다모 커피가 ‘시다모’ 답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앞선 글에서 말씀 드린 적이 있는 것처럼 현재 에티오피아에서 좋은 커피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시작한 ‘ECX_Ethiopia Commodity Exchange’시스템은 에티오피아에서 생산되는 모든 커피를 지역별로 묶어 판매하는 방식이다. 잠시 설명을 하자면 에티오피아 커피 농부는 정부로부터 공인받은 국내 업자에게만 커피를 팔 수 있고, 이 국내 업자와 인증 받은 국내 바이어 사이의 거래가 ‘ECX’에서 진행된다. 인증 받은 국내 바이어는 곧 수출업자(에티오피아 내 커피 도매업자)를 통해 에티오피아의 모든 커피는 ‘ECX’를 통해서만 거래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거래의 범주가 너무 넓어서 바이어가 원하는 특정 농장의 커피를 사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에티오피아의 시다모 지역은 굉장히 넓은 지역이다. 하지만 현재 ECX에서는 시다모를 지역에 따라 3지역으로 나눕니다. ‘시다모 A’와 ‘시다모 B’, ‘시다모 C’.
시다모 A지역: 보레나Borena(제레나Gelena/아바야Abaya 제외), 벤싸Benssa, 구지Guji, 치레Chire, 보나 주리아Bona Zuria, 아르로레싸Arroressa, 아리비고나Aribigona, 바레Bale, 아리스 앤 웨스트 아리스Aris and West Aris
시다모 B지역: 아레타 웬도Aleta Wendo, 다레Dale, 치코Chiko, 다라Dara, 쉬헤베디노Shhebedino, 아마로Amaro, 딜라 주리아Dilla Zuria, 웬스노 앤 로코 아바야Wensno and Loko Abaya
시다모 C지역: 켐바타&팀바로Kembata&Timbaro, 웰레이타Wellayta, 사우스 오모 앤 게라South Omo and Gera
이렇듯 여러 지역을 묶어서 경매하다보니 시다모A지역의 커피라 하더라도 정확히 어느 지역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날은 시다모 A지역 중에 보레나Borena커피를, 어떤 날은 구지Guji 커피를 구매하게 된다. 이 조차도 대체 어느 지역의 커피인지를 정확히 밝힐 수는 없고, ‘시다모 A’라는 이름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짐작으로 알 수 밖에 없다. 이런 시스템은 도입된 해인 2009년 초부터 스페셜티커피 바이어들에게 강렬한 항의를 받았다. 왜냐하면, 에티오피아 정부의 이러한 시스템은 점점 더 세분화 되고 있는 다른 생산지의 ‘생산이력추적’을 생각해 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며, 오히려 그 품질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흔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스페셜티커피 바이어들의 강렬한 항의에 대한 답을 2가지 정책으로 제시하였다. 첫째가 올해부터 에티오피아 정부는 지역연합Cooperative 커피와 지역조합Union의 커피에 한해 직거래를 허용하는 정책을 올해 초부터 시작하였다. 두 번째로는 ECX시스템 내에 품질 규정을 두어 커머셜커피Commercial Coffee와 스페셜티커피Specialty를 나누어 거래하게 한 것이다. 즉, 시다모 A(washed) 지역의 커피를 커머셜 커피의 경우‘Grade 3에서부터9등급 그리고 등외Under Grade’로 나누고, 스페셜티커피의 경우에는 ‘Q1/ Q2Specialty Coffee’로 등급을 나누어 거래하게끔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 역시 바이어들이 아닌 에티오피아 현지 커퍼의 품질 평가이다 보니 그들이 말하는 것만큼 Q1, Q2 정도의 품질이 되지 않는 경우가 하다하다고 한다.
다만 조합의 커피를 사면, 최소한 커피가 타 지역의 커피와 섞이지 않고 그 조합내의 조합원들의 커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최소한 어디 커피인지를 알 수 있다. 이렇듯 에티오피아 커피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하게 많다.
이번 시다모 커피와 관련된 일들을 겪으면서 품은 의문은 ‘과연 내가 한 가지 커피가 지니고 있는 맛의 이미지가 정말 그 커피의 진정한 맛일까?’하는 부분이다. 시다모의 경우처럼 한 가지 커피를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굉장히 복잡하며 또 정확히 알았다하더라도 항상 같은 품질의 커피를 구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다모 지역이 너무 넓다보니 동-서 지역에 따라 맛과 향이 많이 다르다. 예를 들면, 서쪽 지역의 시다모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시다모 커피의 풍미를 지니고 있다. 즉, 베리Berry향과 플로랄Floral, 자스민Jasmine, 밝은 레몬의 산미 등이 서쪽 시다모 커피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반면 동쪽 시다모 커피는 플로랄Floral, 자스민Jasmine보다는 삼나무향Cedar, 강한 풀내음, 균형적인 산미가 특징이다. 그래서 서쪽 시다모 맛에 익숙하신 분들에게는 동쪽 시다모는 시다모 커피가 아닌 것처럼 인식될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시다모 커피이다. 서쪽 시다모, 동쪽 시다모 모두 나름대로의 맛과 향이 있는 것이지 서쪽 시다모와 같지 않다고 해서 ‘잘못되었다’는 것을 잘못된 생각이다.
C.O.E Cup of Excellence에서도 이런 ‘다름’은 끊임없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2010 과테말라 COE의 경우 1등을 한 인헤르토 농장Finca Injerto의 ‘파카마라Pacamara’는 정말 특색 있는 커피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과테말라 커피에서 연상되는 맛과 향을 지닌 커피들과는 맛과 향이 전혀 달랐다. 그래서 저를 포함한 몇몇의 심사관은 강하고 파카마라의 낯선 풍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특히 나에게는 강하게 발산하는 낯선 풍미가 그리 호감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반대로 몇몇의 심사관들은 화려한 미사여구로 커피의 매력을 묘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COE에서도 커피의 기호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이 커피가 절대적으로 질 좋은 커피라는 것을. 낯설기는 했으나 매우 좋은 촉감과 단단한 구조, 깊고 은은하게 오래 지속되는 풍미 등을 통해 이 커피의 풍미가 기존의 과테말라와는 사뭇 다른 남다른 ‘커피’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이 커피에 높은 점수를 주었고, 개인적으로도 별로 호감적이지 않았지만, 단지 저에게 익숙지 않을 뿐 좋은 커피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단 과테말라 뿐 아니라 지금 커피 시장에서 회자되고 있는 최고의 커피들은 기존의 우리의 고정관념을 벗어나게 하는 커피들이 대부분이다. 과테말라 커피이지만 과테말라 커피의 특징은 물론 다른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커피, 파나마 커피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파나마 커피가 지닌 특징 외에 또 다른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커피, 브라질 커피이지만 그간의 브라질 커피가 지니고 있지 못했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커피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이런 커피가 우리 머릿속에 고정되어 있는 이미지를 많이 벗어난 커피이다. 절대적 품질을 바탕으로 색다른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커피. 이 커피들이 바로 ‘스페셜티’가 아닐는지.
내가 너무 길게 마치 제 변명처럼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우리가 혹은 한국의 커피시장이 ‘커피’에 대해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느냐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커피를 하는 많은 이들 그리고 커피를 사랑하시는 많은 소비자들이 스페셜티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스페셜티 커피들의 특징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 그렇다면 얼마만큼 그 특징을 이해하고 있는지 등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누구나가 아는 것처럼 스페셜티는 평범한 커피와는 다른 맛과 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등급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이 스페셜 한 커피의 특징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발현시키고 소비자들에게 이해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자문을 하게 된다.
커피를 이해하고자 하는 여러분. 그리고 스페셜티를 사랑하시는 여러분.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커피는 항상 변한다. 변화 자체가 그 특징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열, 습기에 의해 급격히 변화한다. 원재료인 그린빈도 그러하고, 볶아진 원두도 그러하고, 내려진 한 잔의 커피조차 시간에 따라 맛과 향이 변화한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커피를 우리는 얼마나 변화무쌍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 역시도 이 변화무쌍함에 너무 둔감하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된다.
스페셜티 커피의 ‘스페셜함’을 발견할 수 있고, 발견해서 살릴 수 있고, 그래서 인정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커피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출처:아이비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