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관음도. 고려후기. 비단에 색. 142.0x61.5cm.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
위의 그림1,그림2는 그림3의 부분그림으로 그림1은 선재동자 그림2는 머리와 몸통부분
700년을 이어준 눈물 정진홍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2010 10/30 P34)
# 한 폭의 불화(佛畵) 앞에서 정말이지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불자도 아니고 대단한 심미안을 가진 사람도 아니지만 가로·세로 크기가 61.5cm와 142cm에 불과한 그다지 크지 않은 그림 앞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불화의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혜허(慧虛)’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것을 그린 승려화가의 법명이리라. 말뜻 그대로 ‘빈 지혜, 혹은 지혜의 비움, 앎의 허허로움’이라고나 할까. 그 법명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700여 년 전 한 승려화가의 말없는 부름에 나 역시 말을 삼킨 채 마음으로 끝없는 얘기를 건네고 있었다.
# 며칠 전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700년 만의 해후’란 부제가 붙은 ‘고려불화대전’을 보러 갔을 때 일이다. 여러 개의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중 으뜸으로 치는 속칭 ‘물방울관음’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나의 모습을 누군가 옆에서 봤다면 넋 나갔다고 했을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관음보살이 버들가지로 정병의 물을 찍어 공중에 흩뿌리자 이것이 버들잎 끝에서 튕겨 떨어져 녹청색의 물방울을 이루고 이 속에 다시 관음보살이 현현하는 놀라운 상상력의 표현이 내 눈 앞에서 70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재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선 녹청색의 물방울 자체가 관음의 구제력을 상징하는 버들잎의 형상과 같고 그 녹청색 물방울 혹은 버들잎 모양이 광배(光背)로 인식되기도 한다. 어떤 해석을 취하든 ‘물방울 관음’이란 별칭을 지닌 이 작품은 고려 불화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그 작품 앞에 선 나 스스로가 물방울 모양의 광배 안에 담겨진 느낌이었다. 아니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가히 ‘진품의 위력’이었다.
# 그것은 그림 이상이었고 종교마저 뛰어넘은 그 무엇이었다. 머리로 헤아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앎과 삶의 허허로움 속에서 그저 느껴지는 것이었다. 700여 년 전 승려화가 혜허가 스스로를 비워내며 그린 수월관음도는 현재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 센소지(淺草寺)에 소장돼 있다. 전문연구자들마저 도록(圖錄)으로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을 만큼 진품이 공개된 적이 거의 없는 혜허의 수월관음도가 700여 년 만에 모국의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작은 기적이었다.
# 국립중앙박물관 최광식 관장이 전시대여 교섭차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만 해도 센소지에 소장된 혜허의 수월관음도 자체를 실제 볼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전설처럼 회자되기만 하던 ‘물방울 관음’을 마주하게 된 최 관장은 자신도 모르게 그 불화 앞에 엎드려 삼배를 했다. 마음 같아선 108배를 할 요량이었지만 공식적인 자리라 그러진 못했다. 센소지 주지는 말없이 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최 관장이 한국으로 돌아온 후 얼마 안 있어 ‘물방울 관음’을 한국의 고려불화대전 전시에 내놓겠다는 믿기지 않는 연락이 왔다. 아마도 불화를 보자마자 전시대여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세상 셈법을 다 접고 허허로이 삼배부터 한 최 관장의 마음모양새에 센소지 주지의 마음도 움직였으리라. 그렇다. 세상만사 마음문제다. 욕심내지 말고 앎을 자랑하지 말며 그저 허허로운 마음으로 대하면 만사가 스스로 풀리는 법!
# 108점에 달하는 고려불화대전의 전시작품을 모두 둘러본 후 나오던 걸음을 되돌려 ‘물방울 관음’ 앞에 다시 섰다. 전시실의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시간이어서인지 더욱 텅 빈 그 공간에서 홀로 물끄러미 그림을 바라보았다. 나의 눈물과 ‘물방울 관음’의 커다란 녹청색의 물방울이 포개져 시야가 어른거렸다. 어느새 그 버들잎 형상의 물방울은 내 눈물이 돼 있었고 내 눈물방울 안에 다시 혜허의 ‘물방울 관음’이 담겨졌다. 지극히 짧은 만남이었고, 아마 내 평생에 다시 못 볼지도 모를 일이지만 버들잎 형상의 물방울은 눈물이 돼 혜허와 나 사이의 700년 세월을 녹였다. 700년 만의 해후는 그렇게 나를 울렸다.
신문에는 글만 적혀있었습니다. 사진 자료는 제가 인터넷을 뒤져서 올립니다. 조승호배
첫댓글 좋은 작품 즐감했습니다.
조원장님 참 귀한 사진 올려주셔 감사하오. 몇년전에 통도사성보박물관에서 고려불화 전시회를 본적이 있는데 역시 수월관음도는 일품입니다. 千江千月, 천개의 강에 천개의 달이 꼭같이 비치듯...불가에서 자비의 화신으로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는데....지극 정성 기도하는 중생들 앞에 한결같이 평등한 모습으로 나투신다는 의미를 내포.... 관세음보살의 다른 명칭이 水月보살입니다.
두분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대단한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소중한 자료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