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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ipunan Aeta 선교를 하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의 선교 후기지만 감상부탁드립니다.
최대한 순수 한국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읽기가 수월하실 겁니다.
까띠뿌난 : 필리핀 딸락지방 까빠스 오지마을 아직 문명의 영향이 거의 없는 곳.
공교롭게도 까띠뿌난은 스페인어이다. 필리핀에서, 스페인의 통치권에 반대해 원주민의 무장 봉기를 촉진할 목적으로 1892년에 창립된 비밀 결사라는 뜻입니다.
12월 16일.
글이 써지지 않는다. 진부한 표현, 클리셰(cliché).
난 마르코 폴로처럼 방대한 견문록은 전혀 아니다.
더군다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스테디셀러.
「슬픈 열대」처럼 수려한 묘사와 그만의 독특한 철학적 뉘앙스(nuance)를 자아낼 수 없다. 투박하지만 억지로 쓴다. 이렇게 기록해야 나중에 도움이 될 듯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하늘을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잿빛 하늘은 마치 필름 누아르(Film Noir)를 상영하는 듯하였다.
창백한 겨울 공기는 가슴을 옥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륙 시간 전까지 나의 영혼은 이렇게 바싹 죄여들었다.
숨 가쁘게 지내온 2013년. 난 누구인지 전혀 모를 만큼 학교생활은 지루해져만 간다.
포스트-모던 시대(post-modernity)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특징은 바로 공허감이다.
물질의 풍요로움과 사고방식의 다양성. 뚜렷한 개성 시대.
쏜살같이 변하는 시류時流 속에서 변하지 않을 무언가가 분명하게 있다.
영혼을 채울 무언가가 절실하다. 그것은 진리. 결국 진리는 전혀 찾을 수 없다.
나 스스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만 했다.
목마름을 적실 무언가는 어디에 있는가?
나의 마음은 왜 이토록 무뎌져만 가는지?
밤하늘은 어두컴컴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문 틈에서 희끄무레한 구름의 잔영殘影이 언뜻 눈에 띄기는 했다.
디스토피아 흑백 컬트 무비의 한 장면처럼 빛바래져만 가는 마음.
(Dystopia Monochrom Cult movie)
기도할 때마다 날 스스로 내던지고 싶은 곳이 있었다.
나의 무뎌진 가슴은 푸른 꿈으로 채색해야만 했다.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땅에서...
12월 17일.
무더위가 한결 가라앉은 자정 즈음 도착한 필리핀 마닐라.
공항 주차장과 정류장에서 사람들의 북새통.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런지 별빛 네온사인으로 반짝이는 마닐라의 번화가와 호텔.
무더위를 피해서 활동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길거리를 배회하는 학생들(방황하는 기색은 전혀 없는 모습).
모터사이클을 타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보도블록을 정비하는 작업 인부들.
편의점 앞의 안락의자에 파묻혀 축 늘어져 자는 아주머니.
무더위를 피해서 이슥한 밤에 활동하는 사람들. 어쩌면 야행성은 전형적인 열대지방 사람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서 그런지 자정이 훌쩍 지나도 필리핀 사람들이 자유분방하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다가 어느새 도착지에 다다랐다.
무려 2시간 반씩이나 걸렸다.
필리핀 현지의 딸락교회(Tarlac United Methodist Church)의
‘미나’라는 성도께서 운영하는 농장하우스(farm house)에서 짐을 풀었다.
딸락 교회 성도분들은 선교팀 사람들을 포옹해 주면서 환영해주었다.
‘Amor Village’(스페인어: 사랑의 집)이라는 정부가 운영하는 고아와 장애우 복지시설을 방문하였다.
장애우들이 자기들만의 축제를 열고 있었다. 그들만의 장기 자랑의 시간을 진행하고 있었다.
정신 지체우 몇 명이 눈에 띠었다. 장애우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린다.
내가 손을 내밀기도 전에 그들이 숫제 해맑은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현대인들이 각성해야 할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직 자기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사치레만 할 뿐. 예의에 인색한 현대인들.
글로벌 시대 문화의 다양성은 타 문화권 사람들 저마다의 행동양식으로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
매너와 에티켓은 다르다. 매너(Manner)의 어원인 라틴어 manuarius는 manus+arius의 합성어이다.
'손(hand)'을 뜻하는 manus는 '행동이나 습관'이라는 의미.
'arius'는 '방법 또는 방식'을 의미한다. 즉, 매너란 인간의 '행동방식'을 의미한다.
메너와 에티켓은 다르다. 에티켓(Etiquette)은 원래 명찰이나 꼬리표라는 의미이다.
바르세유 궁전에 출입할 수 있는 티켓에서 유래했다.
당시 귀족들이 이 에티켓을 통해서 부르주아지(bourgeoisie)와의 신분상의 차이를 시도한다.
또 다른 설은, Estiquier라는 출입금지표시를 뜻한다. 베르사이유 궁전 주변 화원에 말뚝을 박아 행동이 나쁜 사람의 출입을 금지하기 위함이다. 상류층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이다.
noblesse oblige,(-gee)(노블리스 오블리주(-제)).
오늘의 에티켓은 인간관계를 원활히 하기 위한 사회적인 불문율로써 하나의 규범이다.
반면 매너는 에티켓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에티켓은 형식이며, 매너는 방식이다. 매너는 타인과 타문화에 대한 배려의 표현이다.
12월 17일 저녁과 12월 18일.
새벽 5시에 딸락 교회(tarlac church)에서 대강절 특별 기도회에 참석했다.
아이타 부족 어린이들의 수학 여행날. 아이타 부족 학교 학생들만 참여하는 날.
필리핀의 클락(clack)이라는 도시에 있는 원주민 민속촌(Nayong Pilipino)과
놀이동산, 필리핀 클락 역사박물관과 아이스크림 공장 견학을 하게 되었다.
우선 마을 입구 쪽에 있는 시냇가 근처에서 마냥 기다린 아이들.
아이들이 잠을 설치며 기다렸다고 한다.
필리핀 정부에서 파견한 여자 선생님과 현지 교회에서 지원하는 여자 선생님의 인솔 하에 아이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아이들의 모습은 역시 볼썽사나웠다. 도저히 다가갈 수 없었다.
너절한 옷차림과 몸에서 퀴퀴한 냄새가 날 만큼 전혀 씻지를 않았다.
흙먼지 풀풀 날리며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자.
이윽고 선교팀원들은 아이들의 꼬질꼬질한 손가락과 팔, 종아리와 발을 물티슈로 일일이 닦아 주었다. 짙은 하늘색으로 된 단체 티셔츠도 입혀주었다.
아이들에게 도심지에서 구입한, 아기자기하게 생긴 슬리퍼도 신겨 주었다.
담임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가 죄인에게 입혀지므로 의인이 되었다.
아이들이 단체 티셔츠를 입음으로써 현지 아이들과 견주어 부족할 것이 없게 되었다고 감동하셨다.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입혀지는 순간으로 빗대어 표현하신 것이다(굳이 정확히 말하자면 비유로 표현).
예수의 피와 의
내 아름다움, 내 영광의 옷이니
불타는 세상 속에서 이 옷 차려입고
기쁨으로 내 머리를 들리이다.
-친젠도르프 Nikolaus von Zinzendorf.
난생 처음 버스를 타는 아이들이 수두룩했다. 사려 깊은 선교팀원들이 아이들에게 멀미약을 먹였다.
이윽고 아이들을 버스로 꾸역꾸역 몰아서 태웠다. 깜짝 놀랐다. 수공업으로 만든 버스였다.
비록 70-80년대식의 오래된 버스였지만,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버스에서 몇 명 아이들의 속이 메스꺼운 듯이 괴로워했다.
멀미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구토를 하고 말았다.
먹은 것이 전혀 없어서 위액만 왈칵 쏟아져 나왔다. 차마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깜짝 놀란 것은 전혀 보채지 않는 것이다.
짐짓 아픈 기색을 감춘다. 아득바득 참으려 애쓰는 듯했다.
난생처음 소풍을 가는 아이들. 설렘과 기쁨으로 흘러넘치는 아이들을 도저히 막을 수 없다.
아이들이 하늘을 산책하는 듯한 기분은 도저히 이루 표현할 수 없었다.
맥도날드. 난생처음 먹어보는 햄버거. 먹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
선교 팀원들이 먼저 시범을 보이자 아이들이 따라 한다.
우리 그룹의 여학생 메이안. 얼떨결에 따라하는 메이안이 난색을 보였다.
“you have to smile.”라고 영어로 표현했다(나는 영어 회화 구사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
내가 양손의 집게손가락으로 입술 언저리를 치켜세우며 미소를 띠는 시늉을 했다.
그제야 메이안은 입술을 방긋거리며 미소를 머금은 듯했다.
내가 담당한 그룹의 멤버. 꼬마 천사 메이안.
아이스크림 공장에서 아이스크림 제조 공정을 지켜보았다.
한 줄씩 나란히 세워놓았다.
선교 팀원과 선생님의 꽁무니를 올망졸망하게 뒤좇는 아이들.
아이들은 아이스케이크(꼬챙이를 끼워 만든 얼음과자)만 알고 있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아이스크림.
버스 안으로 억지로 갖고 들어가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손에 녹아서 온통 뒤범벅이 되도록 간직하는 아이들.
“내가 세상에 남긴 유일한 재산은 때로 눈물을 흘렸다는 것뿐이다”
-프랑스 낭만주의 시인 뮈세의 '비애' 中-
철퍽거리며 시냇물을 건넜다.
피나투보 화산재가 뒤섞인 잿빛 진창이 몹시 눈에 거슬렸다.
마침 필리핀 까띠뿌난 원주민 아이타족 마을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문명화가 시작되었다. 도로를 새로이 내기 위한 공사 작업이 시작되었다. 전기선도 유입될 조짐이 보였다. 땅에 전봇대들이 가지런히 눕혀 있었다.
굴착기. 트럭들. 고막이 터져버릴지도 모를 만큼 굉음을 내고 있었다.
우리 교회는 필리핀 까띠부난 드림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지방자치단체와 현지 교회(tarlac chruch)와 우리 교회가 서로 협력하는 선교를 꿈꾸신다.
딸락 교회 선교 위원회와 원주민 리더들과 우리 교회 선교팀 위원들이 회의(meeting)를 갖게 되었다.
까띠뿌난의 각 가정마다 비전(vision)을 세워주는 프로그램을 기획을 마련하게 되었다.
원주민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세워주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원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그룹을 형성하도록 한다.
원주민들이 조직을 만들면서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한다.
그것을 토대로 개선하는 방향을 갖도록 한다. 필요조건을 바로 모색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요컨대, 바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효율적으로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만 한다.
반 정부 세력과 친 정부 세력, 원주민을 아우르는
실질적인 세도가勢道家 ‘몰리나’씨라는 분이 있다.
몰리나씨는 원주민 아이타족의 피가 흐르는 실세實勢이다.
아이타족의 대부代父라 일컬어지는 사람이다.
그분이 까띠뿌난 마을의 땅을 원주민들이 대대손손 거주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느닷없이 나타나서 마을의 땅을 기증한 ‘쿠체레스’씨.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음이 분명하다.
마을 소유의 땅으로 정부 기관에 등록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마을의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그마한 댐을 만들기를 허락하셨다.
마을 사람들이 텃밭을 일구며 사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원주민, 아이타 부족은 도시에 사는 필리핀 사람에 비해서 키가 왜소하고 얼굴이 볼품사납다.
따라서 도시인들에게 차별과 편견과 멸시를 받는 종족이다.
아이타 부족들은 산에서 벌목작업을 한 후에 숯을 만들어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역시 숯을 만드는 일은 불법이다. 나무 벌목만 하고 나무를 전혀 심지 않고 있다.
원주민들이 기술을 연마하는 커리큘럼이 있는 학교에 다녀야 한다.
물론 정부에게도 원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 문제는 원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직업교육이었다. 참여율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담임목사님께서 제안하셨다. 정부와 협력하는 프로그램. 즉, 현실적인 인재 개발 육성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을 말씀하셨다.
예컨대, 피나투보 화산volcano 안내 가이드나 정글 관광 안내 가이드.
여름에 올린 선교 후기를 발췌한다.
열악한 환경에 불구하고 선교사님의 사역으로 장학금 제도를 마련하여,
원주민들이 더욱 나은 미래와 비전을 발견할 수 있도록 교육과 문화 환경을 제공하고자 애쓰신다.
학업을 마치고 도시에 진출하는 아이타족 청년들.
도시에 사는 필리핀 사람들의 냉대와 멸시와 편견을 받게 마련이다.
결국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금 까띠뿌난(원주민 사는 지역)으로 되돌아와 살게 된다.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선교사님은 앞으로 선교 사역 계획을 알려 주셨다.
21세기에 한국은 경제가 대규모로 발전하자 젊은 부부들이 자녀 없이 여유롭게 살고자 하는 추세이다.
결국에는 한국의 출생률이 저조하면서 인구가 감소하게 되었다.
때문에 여러 지방 대학이 대부분 학생 유치를 외국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한국 교회와 연결된 필리핀 원주민 학생들이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영어로 용돈을 벌면서 학업에 전념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계획을 준비 중이시라고 하셨다.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
-김윤환-
달력도 없고 신문도 없는
까띠뿌난 마을에
손톱에 때를 묻히며 그는 서있었네
십자가도 초라한 예배당 모퉁이에
뽀얀 살의 내가 부끄러이 고개 숙이니
곱슬머리 맑은 눈의 그가
잘 왔다 인사하시네
내가 기다리던 그가
나를 기다리던 그가
온 마을을 사랑으로 불을 밝히고
함께 노래하자 하시네
함께 부르는 노래 가락
흔드는 손끝마다
환한 웃음 눈물겹네
물소 달구지를 타고
도시로 떠나는 형제를 위하여
손 흔드는 까띠뿌난의 예수
다시보자
거룩한 손 오늘도 흔드시네.
하지만, 지금 까띠뿌난 마을의 영적인 상태는 암울했다.
예배가 2달여 동안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현지 담당 목사님이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수수방관하시는 듯하다.
다시금 심기일전하는 까띠뿌난 아이타족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담임 목사님은 현지 감리사님(Methodist District Superintendent)과
까띠뿌난 아이타족 리더들과 우리 교회 선교팀원들과 더불어 합심 기도를 인도하셨다.
마을 사람들과 현지 교회(Local church)의 변화되기 위해서
영향력 있는 애정이 있는 리더들의 변화를 주문하셨다.
까띠뿌난의 어린이들의 눈물어린 기도가 이 땅을 변화시키리라 믿는다.
만일 내가 무엇인가로 돌아온다면
눈물로 돌아오길 바래요.
까띠뿌난 어린이의 영혼에서 잉태되고
까띠뿌난 어린이의 눈에서 태어나
까띠뿌난 어린이의 뺨에서 살고
까띠뿌난 어린이의 입술에서 죽기를 바래요.
눈물처럼.
-작자 미상의 글을 인용-
12월 19일. 길묵이 생일.
담담한 기분으로 맞이한 생일. 아랑곳없이 지내야만 했다.
오후에는 아이들과 레크리에이션(recreation).
아이들이 장기 자랑과 달리기 경주를 가졌다. 장난감과 학용품을 일일이 나누어 준다.
너털웃음을 호탕하게 터뜨리는 선교 팀원들과 현지 교회 성도들의 모습.
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키는 것만 수동적으로 했다.
원래 야행성이라 이런 분위기는 여전히 낯설다.
이슥한 밤. 나지막한 동산 위에 자리잡은, 홈 스테이(Home Stay) 했던 집을 묘사해본다.
내가 찾아 간 아이타 부족의 집 구조는 한국의 초가집과 사뭇 비슷했다.
직사각형의 집 구조로 단칸방과 툇마루 각각 하나씩만 달랑 있었다.
이엉을 엮어서 회색빛 슬레이트 지붕에 얹었다.
지붕 구조는 모임지붕의 형식인 듯하다.
필리핀 전통 가옥처럼 지붕 용마루의 양쪽에 까치중지를 닮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판잣집에 가까울 만큼 보기가 민망한 집도 더러 있었다.
골격은 일반 나무나 대나무살로 기억된다. 지붕 밑 가운데로 지붕보가 받쳐 있었다.
지붕보를 주축으로 들보 두 개가 X자 형태로 가로놓였다.
지붕의 뼈대를 이루는 서까래가 지붕 물매의 방향을 따라서 걸쳐 대었다(한국의 초가집 지붕을 연상하면 된다).
댓살을 아기자기하게 엮어서 체크무늬로 벽을 만들었다. 죽공예(竹工藝) 같아 예뻤다.
부엌과 단칸방 사이에 대나무 발(편책)로 걸쳐진 툇마루.
베란다 형식이었다. 삐쩍 마른 두 사람이 겨우 드러누울 너비로 이루어졌다.
툇마루와 단칸방이 서로 연결되어 완충미를 드러냈다.
단칸방 건너편 부엌과 연결된 협소한 복도에 대나무로 된 긴 의자가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의 유일한 아랫목과 같았다. 즉, 훈훈한 대화를 나눌 유일한 공간 같았다.
부엌세간은 기본적인 것만 갖추었다. 불을 피울 때는 직접 부싯돌로 붙여야만 했다.
새벽 4시 즈음에 일어나는 아이타 부족. 역시 시골 사람들은 부지런하다.
아늑한 실내 공간.
고온다습한 열기를 극도로 낮출 수 있을 만큼 기술집약적 구조였다.
머리가 홀랑 벗겨진 듯했다.
비록 밤에는 쌀쌀했지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낮에는 상쾌함을 자아낼 것만 같았다.
20대 후반의 젊은 부부와 1살짜리 여자아기가 집 주인이었다.
라면과 밥을 저녁으로 대접 받았다.
따갈로그어(필리핀어)를 모르니 그저 엉뚱한 제스처만 연발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동네 꼬마 아이들이 놀러왔다.
랜턴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손목을 360도 빙빙 돌리면서 몽환적인 세계로 만들었다.
아이들과 신명난 댄싱 타임을 가졌다. 영화 「늑대와 춤을」과 중첩(overlap)되었다.
난 케빈 코스트너가 되었다.
툇마루에서 침낭을 피고 잠을 청했다.
12월 20일 - 21일 새벽 인천.
필리핀 마닐라의 아얄라 센터.
까띠뿌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골만의 정취가 없는 쇼핑센터였다.
주머니는 관념적이었다. 사람들이 들붐볐다.
쇼윈도마다 마네킹이 물끄러미 건너편 쇼윈도만 응시한 채로 서 있었다.
또다시 공허감이 치밀었다.
나는 여전히 집에 처박혀 지내게 되겠지.
여기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까띠뿌난의 추억을 되새긴다.
그리움이 없다면 상대방에 대하여 느끼던
소중함이란 감정이 빛바래질 것이다.
추억은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유로움 속에서
잠시나마 숨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랑) 추억은 천국으로 가져가서
영원까지 간직할 수 있는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것이다.
-오길묵-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 벧전 4:8
선교 찬송 「우리 오늘 눈물로」
우리 오늘 눈물로
한 알의 씨앗을 심는다.
꿈꿀 수 없어 무너진
가슴에 저들의 푸른 꿈
다시 돋아나도록
우리 함께 땀 흘려
소망의 길을 만든다
내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던
저들 노래하며
달려갈 그 길
그날에 우리 보리라
새벽 이슬같은 저들 일어나
뜨거운 가슴 사랑의 손으로
이 땅 치유하며 행진할 때
오래 황폐하였던 이 땅 어디서나
순결한 꽃들 피어나고
푸른 의의 나무가 가득한 세상
우리 함께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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