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리베로의 부재에서 오는 커뮤니케이션 문제이다. 집단적인 쏠림 현상을 경계하고 냉정한 가슴으로 합리성을 추구하는 그룹. 그러한 완충그룹이 있어야만 조직의 입체적 커뮤니케이션이 강화되고, 건강한 피드백 문화가 자리잡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6시그마는 블랙벨트나 마스터블랙벨트 같은 내부전문가를 육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축구로 치자면 리베로를 육성하 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터페이스 문제를 아예 전문인력을 양성해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리베로를 조직 경쟁력의 새로운 축으로 볼 필요가있다. 어떤 그룹이 리베로의 역할을 하 고 있는가에 깨어있어야 한다. 베켄바워의 리더십은 경영환경에서도 리베로를 키워야한다는 지혜를 가르쳐준다.
베켄바워 원칙: 이성적인 판단력을 중시하라.
베켄바워는 1966년부터 1974년까지 세 차례 월드컵에서 뛰었다. 이 시기는 펠레, 요한 크 라이프, 보비 찰튼, 에우제비오 등 대스타가 많이배출된때이기도하다. 이들모두화려한 공격력을 선보이며 스타로 부상했다. 유일하게 수비수로서 스타 반열에 오른 사람이 바로 베켄바워다. 그의 팀 기여도가 단연 압권이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오늘날 베켄바워의 리더십이 가장 돋보인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가 지도자 수업을 받지 않고도 대표감독을 역임 했다는 사실이 흥미를 더해준다. 대개 코치를 몇 년 간 하고 난 후 감독직에 추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베켄바워는 그런 전례를 깨고 단숨에 감독 직을 맡았으며 물론 멋지게 성공했다. 가히 천부적인 자질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베켄바워의 리더십은 늘 관심의 대상이 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월반을 하도록 만들어 줬을까? 대중은 베켄바워의 뛰어난 업적보다는 흔들림 없는 ‘냉정함’과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 스마’에 더욱 감명받았다. 90분 내내 공수를 넘나드는 투지와 함께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모습에 반한 기자들이 ‘카이저’라고 칭송할 정도였다. 리더 이미지를 필드에서 모든 사람에게 각인시켰던 셈이다. 게다가 베켄바워는 리베로로 활동했다. 축구는 게임의 흐름과 전체적인 조화를 올바르게 보지 못하면 오히려 다른 포지션의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 만큼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력을 강하게 요구하는 포지션이다. 다시 말해, 베켄바워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리더훈련을 끊임없이 받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성적인 판단력이 베켄바워 리더십의 근원임을 기억하라. 능동적인 태도로 일처리를 하는 사람이 탁월한 직원이다. 왜냐하면 스스로 시도하지 않고서는 판단력을 강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방향설정에 강한 셀프 리더를 키우는 것을 즐겨야한다.
베켄바워 태도: 리더의 품위를 지켜라.
베켄바워의 행보 중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이 바로 미국 코스모스 팀에서의 활동이다. 북미 대륙에 축구를 상륙시키기 위해 펠레와 더불어 축구 전도사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미식축구,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가 탄탄하게 기반을 잡은 상태에서 축구의 정착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베켄바워가 리더의 길을 선 택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리더는 새로 운 영역을 개척해 발전 가능성을 제공해야 한다. 성공이 보장된 쉬운 길이 아니라 좋은 가치를 추구하는 일에 도전해야 하는 것이다. 황제 베켄바워의 성공은 바로 그러한 리더 정신에 기인한다. 그의 행동, 복장, 웅변, 투지, 결 단력. 모든 순간에 리더로서의 품위를 유지하 는데초점을 맞췄다. 1970년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와 맞붙었을 때의 일이다. 베켄바워는 어깨에 부상을 입어 웬만한 경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붕대로 어깨를 감고도 흐트러짐 없이 연장전까지 뛰었다. 자신의 이상향은 리베로 포지션처럼 도전적이지만 그 여정을 달려가는 모습에서는 철저하게 리더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진정한 리더를 찾는 목소리가 높다. 탁월한 성공을 성취하는 리더가 아 니라, 리더의 품위를 지키는 리더를 아쉬워하고 있다. 베켄바워의 월드베스트 리더십은 리더는 리더로서의 품위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권위가 아니라 품위로 리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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