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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爾時五百萬億諸梵天王 與宮殿俱 各以衣裓 盛諸天華 共詣下方
이시오백만억제범천왕 여궁전구 각이의극 성제천화 공예하방
推尋是相 見大通智勝如來 處于道場菩提樹下 坐師子座 諸天龍王
추심시상 견대통지승여래 처우도장보리수하 좌사자좌 제천용왕
乾闥婆緊那羅 摩睺羅伽人非人等 恭敬圍繞 及見十六王子請佛轉法輪
건달바긴나라 마후라가인비인등 공경위요 급견십육왕자청불전법륜
爾時五百萬億諸梵天王이 與宮殿俱하며
그때 五百萬億諸梵天王이 宮殿으로 더불어 함께 해서
各以衣裓으로 盛諸天華하고 共詣下方하야
각각 옷바구니로써 여러 하늘꽃을 담아가지고 下方에 나아갔다. 上方 이제 범천왕이니까 上方에 있는 사람이니까 밑으로 내려가야죠. 그래서 下方으로 나아가서
推尋是相타가 見大通智勝如來가
이 상을 推尋해보다. 찾아보다가 보았다. 무엇을 보았는고 하니? 대통지승여래께서
處于道場菩提樹下하사 坐師子座하시니
道場 菩提樹下에 계시사 師子座에 앉아계시니
諸天龍王과 乾闥婆緊那羅와 摩睺羅伽人非人等이
諸天龍王과 건달바, 긴나라와 마후라가 人 非人等이
恭敬圍繞하며 及見十六王子請佛轉法輪하고
圍繞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또 보았는데 십육왕자가 부처님이, 부처님께서 법륜 굴려주기를 청하는 것을 보고는
81 時諸梵天王 頭面禮佛 繞百千匝 卽以天華 而散佛上 所散之華
시제범천왕 두면예불 요백천잡 즉이천화 이산불상 소산지화
如須彌山 幷以供養佛菩提樹 華供養已 各以宮殿 捧上彼佛 而作是言
여수미산 병이공양불보리수 화공양이 각이궁전 봉상피불 이작시언
時諸梵天王이 頭面禮佛하야 繞百千匝하며
그때에 諸梵天王이 머리로써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百千 바퀴를 돌고나서
卽以天華로 而散佛上하니 所散之華가
곧 하늘의 꽃으로써 부처님 위에다가 흩고 그 흩은 바의 꽃들이
如須彌山이라 幷以供養佛菩提樹하고
마치 수미산만큼 쌓였더라. 아울러 부처님 보리수에도 공양하고 나서
이런 말들 거기 저 부처님 성도하신 곳‘부다가야’그 보리수. 지금 그 보리수가 뭐 손자 보리순가 되는데, 옛날에 부처님이 계셨을때 보리수가 벌써 죽고 2600년이나 됐으니까 또 그다음 보리수도 또 죽고 뿌리에서 계속 새로운 보리수가 나고 나고 해서 지금 뭐 손잔가, 증손잔가 된 보리수가 있는데. 커~요.
거기 가면 뭐 티벳 사람들이 온갖 그런 오색천을 갖다가 달아가지고는, 꼭 우리나라에서 보면 꼭 무당해 놓은것같이 꼭 그래요. 어째 티벳 사람들이 그런걸 좋아해. 또 그런식 어떤 생각을 하면은 그렇게 모든 그 유치한 색깔 오색찬란한 그런걸 내걸고 흔들고 하는걸 좋아하는 가봐. 그 우리나라 무당들이 꼭 그런식으로 하잖아요. 그 한국 사람들은 가면‘이 무슨 무당들이 이렇게 많나?’하는 식으로 생각이 들 정도라.
그래 나무는 나무대로 잘 그 나무모습이 잘 드러나게 그 주변에다 아무것도 안하고 우리 보기에는 좋겠더만은, 거기다가 온갖 천을 다 갖다 걸고 또 오래돼가지고 퇴색하고 또 갖다 걸고 그렇게 해놨어요. 그게 자기들의 신심의 표현이야. 그게, 신심이 있으니까 그 어떤 당신들의 신심의 표현을 갖다가 그런식으로 이제 하는 거죠.
그 보리수에다 공양한다고 하는것 보니까 보리수, 부처님 보리수에도 공양을 하고
華供養已에 各以宮殿으로 捧上彼佛하고 而作是言하대
꽃을 공양하고 나서 각각 궁전으로써 저 부처님에게 捧上 받들어서 올리고 이러한 말을 하대
82 唯見哀愍 饒益我等 所獻宮殿 願垂納處
유견애민 요익아등 소현궁전 원수납처
唯見哀愍하사 饒益我等하시며
오직 哀愍하게 보시사. 우리를, 우리들을 饒益 아주 이익하게 하시며
所獻宮殿을 願垂納處하소서
우리들이 바친 궁전을, 여기 處자 있네요. 원컨대 納자, 받아가지고 거기 사심을 드리우소서. 살아주십시오. 이 말이야. 處해주십시오. 거기에 계셔주십시오.
그렇죠. 절을 잘 지어가지고 바쳤는데 거기에 안살아주면 섭하죠. 그러니까 여기에 處자를 놓은 것은, 다른데도 보면 가끔 나오는데 거기에 계셔주십시오. 이런 말이라. 處자가, 훨씬 아주 친근한 말이죠. 내가 지은 절에 거기 계셔주십시오. 궁전을 바치고는 이제 부처님 계셔달라고 그렇게 이제 청합니다.
83 時諸梵天王 卽於佛前 一心同聲 以偈頌曰
시제범천왕 즉어불전 일심동성 이게송왈
時諸梵天王이 卽於佛前에 一心同聲으로 以偈頌曰
時에 모든 범천왕들이 부처님 앞에서 一心同聲으로써 偈頌을 설할 때
84 善哉見諸佛 求世之聖尊 能於三界獄 勉出諸衆生 普智天人尊
선재견제불 구세지성존 능어삼계옥 면출제중생 보지천인존
哀愍群萌類 能開甘露門 廣度於一切
애민군맹류 능개감로문 광도어일체
善哉見諸佛 求世之聖尊호니
훌륭하여라. 善哉라 하는 말은 훌륭하여라. 諸佛 모든 부처님, 세상을 구제하는 聖尊 성인이시며 어른을 보니, 뵈니 이런 말이야. 뵈노니
能於三界獄에 勉出諸衆生이로다
능히 三界라고 하는 욕계, 색계, 무색계 三界라고 하는 감옥에서 모든 중생을 힘써 구출하신다. 그 삼계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의 어리석은 마음이 만든 거죠. 어리석은 마음이 삼계를 만들지 어리석은 마음이 없는 사람은 삼계가 없어요. 그러니까 어리석은 마음으로 이치를 모르고 三界라고 하는 감옥에 갇혀있는데, 부처님은 진리를 설해가지고 그 감옥에 있는 중생들을 힘써 구출하신다.
普智天人尊이 哀愍群萌類하사
넓은 지혜를 가지신 천상과 인간의 어른이 群萌類 아주 많은 새싹같은 그런 이들을 哀愍히 여기사. 아주 표현이 좋죠. 萌자가, 새싹이라는 싹 맹(萌)자거든요.
말하자면 아주 그 봄날되면은 어린 싹들이 올라오잖아요. 거기에 손이 조금만 거칠게 움직여버리면 그만 싹이 뿌러지거나 상처를 받고 멍이 들잖아요. 그와같이 중생들을 보는 거야. 아주 갓난아기같이, 그런 우리 중생들을 哀愍히 여기사
能開甘露門하야 廣度於一切삿다
능히 甘露의 문을 열어서. 甘露 이건 이제 부처님 법의 문이라. 법문을, 甘露門이라고 하는 것은 단 이슬 문. 글자는 그런 뜻이지만은 단 이슬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 그런 말이죠. 진리의 말씀의 문을 열어서 一切를 널리 제도하신다.
85 於昔無量劫 空過無有佛 世尊未出時 十方常闇瞑 三惡道增長
어석무량겁 공과무유불 세존미출시 시방상암명 삼악도증장
阿修羅亦盛 諸天衆轉減 死多墮惡道 不從佛聞法 常行不善事
아수라역성 제천중전감 사다타악도 부종불문법 상행불선사
色力及智慧 斯等皆減少
색력급지혜 사등개감소
於昔無量劫에 空過無有佛하며
저 옛날 한량없는 劫에 부처님도 없이 헛되게 지냈으며 空過 헛되게 지냈다.
부처님없이, 불법없이 지금 우리가 불교가 있으니까 불법이 있는거고 말하자면 부처님이 계시는 거에요. 불교가 있다는 것이 곧 부처님이 있다는 뜻입니다. 또 부처님이 있다는 뜻은 뭐 성불한 그 사람만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다는 뜻이에요. 다 성불해가지고도 그 분들의 진리에 대한 가르침이 없는 사람은, 없으면은 그건 없는 거에요. 그 불교가 있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있다는 뜻이고 부처님이 있다는 뜻은 불교,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알아야 돼요.
空過無有佛하며, 부처님없이 헛되게 지냈다. 오랜세월동안, 그렇죠. 뭐 우리도 이 세상에 오래오래 살았어도 불교를 만나기 전에는 空過야. 부처님없이 세상을 지냈고 지금도 불교를 모르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는 부처님없이 세상을 지내가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 불교를 알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떤 그 인생의 눈을 뜨는 사람은 그 사람은 정말 부처님하고 함께 세상을 사는 것이고 그 사람에게는 불교로써 세상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거에요.
이게 뭐 이 시대에 있느냐 없느냐 그거 하곤 아무 상관없어요. 나하고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거지. 이 시대에 있느냐 없느냐 그건 아무 의미없어요. 나하고 있느냐 없느냐. 나에게 없으면 없는 거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이제 옛날에 한량없는 세월을 부처님 안계신 상태로 空過 헛되게 지냈다.
世尊未出時에 十方常闇瞑하야
세존이 세상에 나오지 아니했을때에 시방세계가 항상 어두웠다. 캄캄했다. 어두울 암(闇), 어두울 명(瞑). 캄캄하고 어두웠었다.
이거 참 중요한 말이죠. 정말 인생을 살아가는데 우리가 뭐 안다고 불법을 안다고 다 불법대로 행하면서 사는 것은 아니지만은 그래도 이리 듣고 저리 배우고해서 암암리에 누적돼있는 우리의 그 의식속에 진리의 말씀, 부처님의 그 어떤 삶의 교훈이 녹아있어서 그것이 나를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때 이렇게 생각하게 만들고 또 저렇게 생각하게 만들고 어떤 물건을 봤을때도, 불교공부한 사람은 거기에 대해서 생각한 방향이 다르고 그렇게 이제 가피력이 있는 거요. 말하자면 이제 그게 명훈가피력이여. 자기도 모르게 어떤 그 불교적 소양이 어떤 그 영햐을 발휘하게 돼있다하는 것입니다.
그 불교를 모를때에는 캄캄하죠. 전혀 자기 그냥 상식대로 자기 배운대로 또 본능대로만 사는거야. 그게 世尊未出時에 十方常闇瞑이라. 이 세상이 전부 캄캄해가지고 자기 본능대로 그저 아무렇게나 그렇게 사는거죠. 아직도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또 많습니까?
三惡道增長하고 阿修羅亦盛하며
삼악도가 더욱 많이 불어나고 아수라도 또한 더욱 성했다.
그저 싸우기를 좋아하고 시시비비 싸우기를 좋아하는게 아수라죠.
諸天衆轉減하야 死多墮惡道하며
天衆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주 훌륭한 사람들은 더욱 더 감소해지고 죽으면은 많이 악도에 떨어진다.
죽으면은 좋은데 이제 잘 살면은 또 사람으로 태어나고 더 좋게 태어나야되는데 자꾸 이제 사람몸 받아가지고 못사니까, 바르게 못살고 정직하게 못살고 선량하게 못사니까 또 이제 더 못한데로 이제 떨어지는 거죠. 그래서 死多墮惡道란 말이 죽어서 많이 악도에 떨어진다.
그러니까 성인이 있음을 우리가 알고 성인의 가르침을 배워서 하나하나 우리가 본받고 고쳐나가고 마음의 반성을 해가면 자꾸 이제 삶이 달라지는거죠. 삶의 질이 높아지고 그러다보면 죽은 뒤에는, 우리가 죽은 뒤에는 또 보다 더 좋은 곳으로 태어날 수가 있는거죠. 그런 이치를 배우는게 불교인거라. 그래서 뭐‘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인댄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요.’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내가 전생에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한가? 지금 이 세상에 지금, 금생에 지금 수용하고 있는 그것이 바로 전생에 내가 지어놓는거다.‘욕지내생사(欲知來生事)인댄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라.’다음 생에 내가 어떻게 인생을 살것인가? 라고 하는 문제는 今生作者是여. 지금 금생에 내가 하고 있는 그 모습이 그대로 다음 생에 내가 받아서 살 모습이다하는 것입니다.
금생에 우리가 공부 열심히 하고 부처님 이치, 그것도 대승경전을 가지고 이렇게 자꾸 읽고 쓰고 나이 들으면 잠 안오잖아요. 잠 안오면 이거가지고 읽어보는거야.‘諸天衆減少하고 死多墮惡道하며’아 음달아놨으니까 요 좀 읽기 좋아. 그렇게 자꾸 읽는거야. 그렇게 읽으면 이게요. 그 뭐 하면 뭐하노? 해서 헛공부처럼 헛일같이 생각하는 세속 사람들이 많아. 참 안타까운 일이야. 결코 헛된게 아니야. 사람이 아주 작은 그런 행위라 하더라도 말이 됐든, 행동이 됐든 작은 행위라 하더라도 그것은 금방은 없는것같죠. 금방은 없는것같지만, 천만의 말씀. 다~ 우리의 아뢰야식속에, 나의 업장을 갈무리하는 내 아뢰야식속에 다 저장외 돼가지고 한 구절 읽는거하고 두 구절 읽는거하고 달라요.
내가 학인들에게는 늘 그래요. 백 번 읽는거하고 백한 번 읽는거하고 차이가 없는것 같지? 천만에, 엄청난 차이다. 예를 들어서 백 번을 다같이 해버리면 한 번 남잖아요. 그러면 한 번 남은것은 한 사람은 읽은 사람이고 한 사람은 안읽은 사람이잖아. 안그래요? 한 번가지고 계산하면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거야. 100에서 101번 차이는 큰 차이가 아닌것같지만은 100을 다 제해버리고나면은, 제해질때가 있어요. 우리가 살다보면 어느 순간에, 그럼 101번 읽은 사람은 읽은 사람이 되고 100번 읽은 사람은 못읽은 사람이 돼버려.
그 만 원 가진 사람하고 만천 원 가진 사람하고 별 차이없죠? 근데 만 원을 똑같이 다썼다. 그러면 한 사람은 돈이 있는 사람이라서 집에 돌아갈 수 있고 한 사람은 돈이 없어서 전화도 못거는거야. 이제, 그렇게된다구요. 그래서 학인들에게 내~ 그런 이야기해. 100번 읽은거하고 101번 읽은거하고는 이게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면 욕심내서 좀 읽을거 아닙니까? 사실 그래요. 이치가 그렇습니다. 이건 이치대로 이야기하는거지. 무슨 뭐 누구 유혹하자고 하는것도 아니고‘공부해서 남주나? 정말’
그래서 우리가 지은데로 모든 것이 가기 때문에 그리고 가능하면 눈을 잘 떠가지고 바르게 해야되요. 이 불법안에서도 다 불법이라고 하면서 하지만은 평생을 그냥 자기 딴에는 애써 한다고 했지만은 사실은 나중에 허송세월이 되는 경우. 그래서 내가 근래에 자꾸 이제 좀 불교는 우리 부처님 제자는 누구보다도 유식한 사람이 돼야된다. 부처님이 남겨놓으신 저 해인사에 팔만대장경이 그게 전부 우리가 공부해야할 과제물이다. 과제물을 그렇게 잔뜩 쌓아놓고 그냥“이뭐꼬?”만 하고 평생을 보낸다든지‘관세음보살’하나로써 평생을 보낸다든지하면은 순수한 것같지만은 사실은 그건 이제 좀 더 크게 눈을 뜨고 보면은 참 부족한 수행이에요. 아주 부족한 수행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정말 세상에 제일 가는 교과서 한 권의 책을 선택하라면은『법화경』두 말할 여지없이『법화경』이다라고 이제 주장할 수 있는 이런 경전을 우리가 인연을 맺었을때『법화경』에 대해서 소상하게 한문까지도, 그 글자까지도, 해석하는 법까지도, 그 속에 담긴 숨은 뜻까지도 다~ 이렇게 밝혀내서 이해하고 하는 이런 공부를 함으로해서 유식한 불자가 되는거요. 유식한 불자가 되는거요. 유식한 불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이치를 아는 불자가 되는 겁니다. 진리를 아는 불자가 된다구요. 참 이치를, 세상과 인생에 대한 참 이치를 아는 불자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그 쪽을 내가 근래에 많이 주장하는 편입니다. 사실은,
지금까지 가만히 여러 수십 년 동안을 살아오면서 이 불법 세계속에서 스님들이고 신도고 뭐 누구간에 다~ 살아가는 과정과 모든 것을 소상하게 뭐 하루도 안빠트리고 다 살펴보니까 결국은 그 길이야. 그래서 내가 이제『법화경』을 자꾸 주장하고 또 읽고 쓰고 해서 좀 유식해지는 불자가 되기를 바라는거요. 아직도 허황한 꿈을 꾸고 뭐 일확천금(一攫千金)하듯이 불교다니면서 로또복권터지는 것처럼 불교를 그렇게 이해하면은 그건 큰 오산입니다. 세상에는 그런 이치는, 그런 것은 그런데로 가버려요. 불교는 그런 것을 이제 권장하는 가르침은 아니니까
不從佛聞法하고 常行不善事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이 없는 까닭에,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지도 못하고 不從佛聞法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지도 못하고 항상 不善한 일만 행하는거야. 不善한 일.
그니까 못배웠으니까 보는대로, 지하고싶은대로, 성질나는대로 사는거요. 그러면 뭐 무슨 좋은 일하겠어요. 不善事만 자꾸 행하게되면
色力及智慧가 斯等皆減少라
그러면은 이제 반대로 살았으니까 육체적인 힘도 떨어지는거야. 色力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적인 힘 그리고 智慧 이건 정신적인 힘 그런거요. 육신의 어떤 현상적인 힘이나 지혜의 힘이나 이런 것들이 자꾸 감소해가. 이러한 것들이 다 감소해진다.
86 罪業因緣故 失樂及樂相 住於邪見法 不識善儀則 不蒙佛所化
죄업인연고 실락급락상 주어사견법 불식선의측 불몽불소화
常墮於惡道
상타어악도
罪業因緣故로 失樂及樂相하고
죄업의 인연 때문에 즐거움과 그리고 즐거움에 대한 사고, 생각을 잃어버린다. 그래 진정 즐거운 것이 무엇인가? 판단이 서지 않는거죠. 죄업 입장에 있는 사람이 뭐 무슨 즐거운 생각이 떠오르고 즐거운 일이 있겠습니까?
住於邪見法하며 不識善儀則하고
邪見法에 머물며, 삿된 소견의 법. 불교는 삿된 소견 또는 정견(正見) 이런 것에 대해서 아주 많이 이제 이야길하죠. 그래 바른 소견을 가져야된다. 뭐든지 아주 바른 소견 그런데 住於邪見法이라 했잖아요. 삿된 소견의 법에 머무르며 좋은 거동과 법칙을 알지를 못한다. 不識 알지 못한다.
이게 이제 참 훌륭하고 좋은 그런 그 행동거지와 그리고 법칙인가? 규칙인가? 그걸 모르고는 그냥 제멋대로 이제 살게되는거죠. 그게 다 삿된 법에 머물러서 그렇죠.
不蒙佛所化하며 常墮於惡道러니
부처님의 교화하는 바를 얻지를 못하고, 우리는 뭐『법화경』을 통해서 결국은 부처님의 교화하는 바를 입고 사는거에요. 석가모니 부처님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서 우리에게 가르치겠습니까? 바로『법화경』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가르친거에요. 그겁니다. 그렇게 알아야돼요. 그러니까 부처님의 교화하는 바를 입지를 못하고 항상 악도에 떨어지더라.
87 佛爲世間眼 久遠時乃出 哀愍諸衆生 故現於世間 超出成正覺
불위세간안 구원시내출 애민제중생 고현어세간 초출성정각
我等甚欣慶 及餘一切衆 喜歎未曾有
아등심흔경 급여일체중 희탄미증유
佛爲世間眼하사 久遠時乃出하야
부처님은 세간의 눈이야. 이 세상의 눈이야. 안목이야. 멋진 표현이죠. 부처님은 세간의 안목이 되어서 오랜 세월에 이에 출현하시어.
哀愍諸衆生일새 故現於世間하야
많은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실새 그러므로 세간에 출현해서.
세간에 있잖아요. 이렇게,『법화경』으로 부처님이 계시는거요. 불상이 아무리 있다한들 어떻게『법화경』만합니까? 또 살아있는 석가모니가 있다한들 어떻게 내~『법화경』만 설합니까? 안되는거요. 그것도, 설사 석가모니가 있다한들 그 분 역시 인간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은 늙어서 돌아가실 수 밖에 없는거요. 그래서 돌아가셨었잖아요. 그런데 이 훌륭한 가르침을 남겨놨기 때문에 이것은 이제 만대에 영원히 살아있는 부처님이라.
超出成正覺하시니 我等甚欣慶하고
뛰어나서 超出해서, 세간을 뛰어나가지고 세간에 출현했지만은 세간에서 超出해가지고 正覺을 이뤘다. 바른 깨달음을 이루시니 우리들이 매우 欣慶 기쁠 흔(欣), 경사스러울 경(慶). 그렇죠. 우리들은 아주 기쁘고 경사스러워하고
及餘一切衆도 喜歎未曾有이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체 중생들도 기뻐서 未曾有를 찬탄합니다. 일찍이 있지 않던 일이다.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법화경』을 가지고 未曾有라고 늘 그래야 됩니다. 정말 경전중에 왕이고 경전중에 경인 이『법화경』을 미증유라고, 부처님을 바로 대신한 것이라고 이렇게 우리가 믿어야되요. 또 그게 사실이고
88 我等諸宮殿 蒙光故嚴飾 今以捧世尊 唯垂哀納受
아등제궁전 몽광고엄식 금이봉세존 유수애납수
我等諸宮殿이 蒙光故嚴飾이라
우리들의 모든 궁전이 광명을 입은 까닭에 잘 꾸며졌다. 그래 저 앞에도 있었던 구절이죠.
今以捧世尊하노니 唯垂哀納受하소서
지금 세존께 받들어옵나니 오직 불쌍히 여겨서 받아들임을 드리우소서. 받아 주십시오.
89 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衆生 皆共成佛道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개공성불도
願以此功德으로 普及於一切하야
유명한 게송이죠. 회향게(回向偈) 그래요.‘願以此功德으로 普及於一切하야 我等與衆生이 皆共成佛道하리다.’이게 이제 불사를 하거나 하다못해 울력을 하거나 어디 가서 법문을 듣거나 불교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항상 끝에는 이거합니다. 이 게송을 해요.‘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뭐 어디 가서 급식활동을 했다하면은‘願以此功德으로 普及於一切’이 선한 마음, 이 좋은일이 일체 사람들에게 다 미쳐져서
我等與衆生이 皆共成佛道하야지이다
나와 그리고 여러 중생들이 다 함께 佛道를 이루어지리다.
참 좋은 말이죠. 결국은 불도 이루는게 목표라구요.‘모두가 성불하고 부처의 안목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갑시다.’이 뜻입니다. 그 이제 불교의식집에도 뭐 지맘대로 지은 것이 아니라 경전에 있는 이러한 말씀을 적재적소(適材適所)에서 뽑아다가 딱 고자리에 딱 딱 갖다 넣어 놓은거죠. 그래서 의식집에 자주 나오는 말이죠.‘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衆生 皆共成佛道하리라.’
90 爾時五百萬億諸梵天王 偈讚佛已 各白佛言
이시오백만억제범천왕 게찬불이 각백불언
爾時五百萬億諸梵天王이 偈讚佛已하시고 各白佛言하사대
그때 五百萬億 여러 범천왕들이 게송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해마치고 각각 부처님께 고해 말하대
91 唯願世尊 轉於法輪 多所安穩 多所度脫
유원세존 전어법륜 다소안온 다소도탈
唯願世尊은 轉於法輪하사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께서는 법륜을 굴리시라. 법륜을 굴리시라.
多所安穩하시며 多所度脫케하소서
많이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우리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安穩하게 해주십시오. 많이 많이 제도해서 해탈케 해주십시오. 그 多자가 두 개나 있죠. 많이 많이 편안하게 해주시고 많이 많이 제도해서 해탈케 해주십시오. 제발 좀 많이 많이 그렇게 법문설해서 해주십시오. 보통 뭐 우리식으로 그대로 표현을 했습니다.
92 時諸梵天王 而說偈言
시제범천왕 이설게언
時諸梵天王이 而說偈言하사대
그때 諸梵天王이 이 게송으로 설하대. 또 게송으로 거듭 설합니다.
93 世尊轉法輪 擊甘露法鼓 度苦惱衆生 開示涅槃道 唯願受我請
세존전법륜 격감로법고 도고뇌중생 개시열반도 유원수아청
以大微妙音 哀愍而敷演 無量劫習法
이대미묘음 애민이부연 무량겁습법
世尊轉法輪하실새 擊甘露法鼓하사
세존께서 법륜을 굴리실새 감로법의 북을 치시사.
度苦惱衆生하야 開示涅槃道하시니
고뇌에 빠져있는 중생들을 제도하사 열반의 길을 開示 열어 보이시니
唯願受我請하사 以大微妙音으로
오직 원하옵나니 우리들의 청을 받아들이사. 우리들의 청을 받아들이사 크고 미묘한 음성으로써, 크고 미묘한 음성으로써
哀愍而敷演 無量劫習法하소서
哀愍히 여겨서 우리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고 어여삐 여겨서 한량없는 세월동안 우리가 익히고 배울 그런 법을 敷演해 주십시오. 연설해 주십시오. 이 말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익혀야 할 법. 세세생생 우리가 닦고 배워야 할 이치를 좀 설명해 주십시오. 참 욕심도 많죠. 세세생생 우리가 익힐 법을,
이 옛날에 어떤 사람이 농사를 아주 열심히 열심히 지어가지고 쌀을 모으고 모아가지고 모두 다른 사람들은 뭐 쌀들고 늘 이제 초파일이다 정초다해서 저 산에 있는, 뒷 산에 있는 절에 가서 불공을 하고 내려오는데 그 밑에 마을에 어떤 사람이 이제 한 번도 간 적이 없어. 그러다가 어느날 쌀을 한 됫박 아까운 쌀, 마음에 내키지않지만 그래도‘나도 한 번 가서 뭐 좋은 이야기 들어야되겠다.’하고 가서 청하는거야. 쌀 한 됫박 주고서 딱 이제“스님 자주는 못옵니다. 저 평생 처음 왔는데 평생 익힐 그런 법문 한 마디만 해주십시오.”無量劫習法 요대로 이야기한거요. 無量劫習法을 한 마디 일러주십시오.
그러니까 스님이 가만히 이렇게 있다가 암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었어. 그러니까 이건‘처음 오면서 쌀을 너무 적게 가져왔나?’하고 그런 생각이 드는거야. 처음갈때부터 너무 적게 가져갔다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이제 좀 멋쩍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내려갔어. 내려가가지고 한참 앉아있다 그냥 내려가가지고는 그 다음날엔 이제 잔뜩 이제 마음을 먹고는 한 말을 가져왔어. 쌀 한 말을, 큰 마음내서 한 말을 갖다놓고는 無量劫習法을 청한거야. 평생 내가 의지해서 배울 법문 한 마디만 해주십시오. 그래도 아무 말이 없는거요.
그래서 이제 다시 내려가서 그때는‘에라 모르겠다.’큰 마음먹고 한 가마를 짊어지고왔어. 쌀 한 가마. 그래도 한 포대 10kg짜리 한 포대를 지고온거지. 그래가지고 이제‘이번에 안해주면 그냥 갖다놓은거 그전것까지 다 가지고 내려간다고’그리 하는데, 스님이 이제 조그만한 종이에다가 뭘 써가지고 그걸 떡 내밀어.“집에가서 풀어봐라.”그럼 뭐 그거라도 주니까 신기한거다 싶어서 이제, 그래 집에와서 내려와서 풀어보니까 참을 인(忍)자가 딱 적혀있더라. 참을 인자.
평생 의지해야할 법 그것은 참을 忍자다.‘참을 인자 석 자면 살인도 면한다.’그런 말이 있듯이 그래서 뭐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길고 있긴 있어요. 어쨌든 참을 인자 가지고 큰~ 덕을 이제 본 그런 이야기가 있는데, 어 보통 우리가 세속을 사는데는 참을 인자가 참 중요한 법입니다. 그것도 無量劫習法이에요.
여기서 이제 이 범천왕들은 참 아주 법을 청해도 아주 제대로 청했죠.‘無量劫동안, 한량없는 세월 세세생생 익혀야 할 법 그걸 좀 연설해 주십시오.’라고 이렇게 청하고 있습니다.
94 爾時大通智勝如來 受十方諸梵天王 及十六王子請 卽時
이시대통지승여래 수시방제범천왕 급십육왕자청 즉시
三轉十二行法輪
삼전십이행법륜
爾時大通智勝如來가 受十方諸梵天王과 及十六王子請하시고
그때 대통지승여래가 受十方諸梵天王하고 그리고 십육 왕자들 청, 십육 왕자들도 법문을 청한거 그걸 이제 받아들여서 受 받아들이고
卽時에 三轉十二行法輪하시니
즉시에 三轉十二行法輪했다. 그랬어요. 三轉十二行 삼 사 십이가 되요. 사제법문(四諦法門) 고 집 멸 도 사제법문을 세 번 그 굴려주니까 삼 사 십이가 되는거에요.
세 번 청하는 것은 이제 그냥 똑같이 세 번 굴려주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은 苦 인생은 苦다. 시상전(示相轉)이라 그래. 처음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 苦라고 하는 것만 이렇게 이야기해주는거라.“여기도 봐라. 이렇게 사는 것도 고통스럽지 않냐? 저기도 봐라. 저것도 고통스럽지 않냐?”이런 식으로 이제 해주고, 그 다음에 이제 그 두 번째는 권수전(勸修轉) 그래서 苦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남의 고통을 이렇게 알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고통에 대해서 좀 우리가 어떤 수행을 통해서 좀 깊이 알 필요가 있다. 권할 권(勸)자요.
그 앞에는 시상(示相)이라. 보일 시(示)자, 모양 상(相)자. 보여만 주는거야. 고통은 이렇고 이렇고 여기도 고통, 저기도 고통. 인생은 고통 보여주기야 좀 쉽습니까? 곳곳이죠. 그래 勸修轉이라. 고통에 대해서 우리가 좀 심도있게 한 번 생각해보자. 부처님은 두 번째 그렇게 이야기해요. 고통을 이야기해도
그 다음에 이제 작증전(作證轉)이라. 고통을 이제 뽑아야 될 거 아니냐? 고통 이거 그냥 완전히 뿌리를 뽑아야 된다. 그게 지을 작(作)자, 증득할 증(證)자 그래. 作證轉 轉자는 이제 전할 전(轉)자. 삼전(三轉)할 때 전자야. 그래 示相轉 勸修轉 그 다음에 作證轉 이렇게 이제 표현을 합니다. 교리적으로
그런식으로 이제 고 집 集이라고 하더라도‘아 고통은 이렇게 해서 이러한 원인으로 있는거야.’이렇게할 때 평면적으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그냥 시상전이야. 集을 가지고 이야기하더라도, 그냥 고통의 이치는 이것저것 모여서 생긴 것이 고통이다.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두 사람 만났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거죠. 그래서 모였기 때문에 고통이 생겼다 이런 식으로 이제 남의 이야기같이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에 이제 그것을 또 이제 우리가 이 이 문제에 대해서 보다 더 깊이있게 생각을 해야된다. 그리고는 이제 이걸 이제 말하자면 해체를 해야되지 않냐? 이걸 말하자면은 떠날 수 있는 길을 찾아야되지 않냐? 이런 식으로 이제 삼 단계로써 이야기를 합니다. 고 집 멸 도 이것을 삼 단계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三轉十二行法輪 그렇게 합니다. 삼 사 십이가 되니까
그 부처님께서 처음에 성도하셔가지고 석가모니도 마찬가지죠. 여기 대통지승불 이야기지만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렇게 하신 내용을 고대로 대통지승불 이야기에다 적용시켜서 이야기를 만든거에요. 이거는, 그러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이 처음에 성도하신 뒤에 말하자면은 부다가야에서 삼칠 일 동안 사유하고는 와가지고 오면서 사유를 했죠. 깊이 그래가지고는 이제 녹야원 최초 설법지인 녹야원에 와가지고 그 오 비구들, 같이 수행하던 다섯 명 비구들을 앉혀놓고 처음에 설명한 것이 苦集滅道다. 이렇게 설명했다는거요.“인생은 고통스러운거다. 고통은 왜 생겼을까? 集 때문에 생겼다.”고 밑에 있죠? 是苦 있어요.
그 다음에 보면은
95 若沙門婆羅門 若天魔梵 及餘世間 所不能轉
약사문바라문 약천마범 급여세간 소불능전
若沙門婆羅門과 若天魔梵과
若 沙門婆羅門과 그리고 若 천신들이나 마구니나 범천과
及餘世間의 所不能轉이니
그리고 나머지 세간의 所不能轉이다 그랬어요.
누구도 이 세상의 누구도 능히 굴리지 못한 그런 법륜이다 했습니다. 苦集滅道를 세 가지 방향으로 설명을 해서 그것을 떠나게 하는 것은, 이것은 세상의 누구도 사문도 바라문도 天도 魔도 梵天도 그리고 다른 세상 사람들이 능히 가르치지 못한 것이다 라고 하고
96 謂是苦 是苦集 是苦滅 是苦滅道
위시고 시고집 시고멸 시고멸도
謂是苦며 是苦集이며
이를테면 이것은 고통이야. 이것은 고통이 모인 것이야. 고통이 모인 것이다.
苦는 결과에요. 苦集은 因입니다. 모였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생긴거요. 둘이 만났기 때문에 싸우는거야. 그 다음에
是苦滅이며
요거는 결과야. 고통이 소멸했다 그 말이요. 고통이 소멸했다. 그 다음에
是苦滅道며
요거는 원인이야. 道라고 하는건 팔정도(八正道)를 통해서 말하자면은 고통을 소멸하는거죠. 그래서 苦滅道 그랬어요. 是苦滅이며 是苦滅道며 그렇게 했잖아요.
이렇게 이제 苦集滅道는 고통은 결과고 集은 그 고통의 원인이고 또 소멸하는 것은 결과고 소멸하기 위해서는 원인이 있어야되는데 수행이야. 그건 팔정도, 苦滅道하는 것은 이제 도를 닦아야 말하자면은 소멸할 수 있다. 소멸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래요. 果因果因 그렇게 됩니다. 현재 있는 고통도 말하자면 因과 果가 있고 또 고통을 없애는 데도 因이 있고 果가 있고 고렇게 돼있어요.
그러니까 수행하는 道는, 소멸하는 道는 원인이 되고 소멸이 된 것은 苦滅 苦가 滅해진 것은 결과가 되고 그 다음에 集 네하고 내하고 만났고 또 이 육신이 아픈 것은 지 수 화 풍이 만났기 때문에 이 육신이 형성되었고 그래서 몸에 고통이 있는거고 이렇게 이제 보는거죠. 그래 그건 苦의 集, 苦의 集은 원인이 되고 그 苦는 말하자면 결과가 되고, 요렇게 이제 사성제(四聖諦)를 이야기하는거죠.
이런 식으로 이제 자세하게 부처님이 설명을했거늘, 요건 이제 하근기를 위한거요. 사실은, 보살행하는 사람들은 상근기는 그 고통 그거 관심없습니다. 그 의례히 세상사 고통있는건데하고 전혀 관심없어요. 그리고 뭐 누구하고 무슨 뭐 시시비비가 생겨도 그거 크게 안따져. 넘어가버려 그냥 넘어가버리고 정말 중생들을 위해서 나보다 더 고통스럽고 더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말하자면은 보살행을 하는거. 이게 이제 최상근기야. 고 요거는 하근기라. 苦集滅道를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 다음에 밑에 이제 다음 시간에 이야기할 것은 십이인연(十二因緣)이야기라. 요건 이제 중근기라 그래요. 인연법(因緣法). 요 苦集滅道는 因緣法도 아니여. 이거는, 그냥 고통스러우니까 고통부터 소멸하자 이거여. 소멸하는데는 뭐가 필요한가? 도가 필요하다. 도닦는 것이 필요하다. 팔정도를 닦는게 필요하다. 요 이야기에요. 苦集滅道는
그 다음에 이제 四諦 十二因緣 그러죠? 四諦 十二因緣 그래 십이인연은 말하자면은 중근기, 중근기로서 말하자면은 여기는 성문이라면, 여긴 연각 인연의 도리. 십이인연하는게 인연도리거든요. 그렇게 이제 불교의 교리체계가 그렇게 돼있습니다.
그 다음에 인연법에 대한 그 더 한 걸음 나아가면 육바라밀(六婆羅密) 그러거든요. 四諦 十二因緣 六婆羅密 요렇게 딱 정해져있지 않습니까? 그럼 상근기는 육바라밀 보살행하는거에요. 육바라밀 닦아서 보살행하는걸로, 그럼 보살행하는 사람들에게는 十二因緣이고 뭐 苦集滅道 사성제고 별 관심없습니다. 벌써 그것을 초월했기 때문에, 뛰어넘었기 때문에‘어떻게하면 중생들을 위해줄까?’하는것이 그 사람들의 관심사야. 그런 식으로 이제 교리체계가 돼있는 것입니다. 우리들 자신이 어디까지 가 있느냐? 하는 것은 이제 남의 일로 하고 경전에 나타난 교리체계만 이야기하면 그렇다는거죠.
아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늘 3주고 4주 네 번째 금요일은 사경하는 날이죠? (네) 사경하는 날 꼭 많이 오시고 또 오늘 오후에도 사경반이 있으니까 앉아서 사경하실 분은 차담 드시고 남아서 사경하는데 동참하면은 또 사경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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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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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衆生 皆共成佛道...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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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爲世間眼(불위세간안)...부처님은 세간의 안목(눈)...고맙습니다._()()()_
유식한 불자===.유식한 불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이치를 아는 불자가 되는 겁니다. 진리를 아는 불자. 세상과 인생에 대한 참 이치를 아는 불자...고맙습니다._()()()_
[世尊未出時에 十方常闇瞑하야...세존이 세상에 나오지 아니했을때에 시방세계가 항상 캄캄하고 어두웠다]..화풍정 님! 수고 하셨습니다.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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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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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衆生 皆共成佛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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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願以此攻德 普及於一切我等輿衆生 皆共成佛道
--법화경이 출처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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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2번째 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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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묘법연화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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