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母太皇太后之諱 柳花 姓屋氏 屋氏世守 鯤淵之長屋 以是得姓 長屋者祭淵之屋也 皇祖屋文大王之母后屋氏 浣紗于泽畔 時當盛夏 裸臥當風 大鵞来交生子 背有靑瘜 如大鵞之文 乃名屋文 及長 事孝帝 平南閭之乱 愛鍾之乱與禾相誅鍾 而迎立法帝 以功封靑河伯 命世襲狗加 乃仙相也 文女屋玩爲羊川之妃 生羊聖 屋因爲奧山之妃 生好人 皆漱帝之后妃也 漱帝初年多疾 只娶一后一妃 以屋因爲妃 羊聖爲后 屋因帝之紀甲也 帝自二七寵因三十余年 宮中之事多決於其手 能善蠶織毛氊 帝之袞冕 皆出其手故 帝頗重之 稱姊 而不名 因常淨御饌而掌薬茗 以護聖躬之功莫大 故其子奧川尙長公主凰 而封爲順奴侯 順奴地廣 沃沮東海皆屬於是 文以因之父 功高勳重 爲國柱石 坐鎭天下 年至七十 而疾篤 戒子女以忠 薨 法帝三十四年 癸卯也
성모태황태후의 휘는 유화이고 성은 옥씨이다. 옥씨는 대대로 곤연의 장옥을 지켰는데 이로써 성을 얻었다. 장옥이란 연못에서 제사 지내는 집이다.
황조 옥문대왕의 모후 옥씨가 못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때마침 한여름을 만나 바람을 맞으며 벌거벗고 누워 있었다. 큰 거위가 와서 교미하여 아들을 낳으니, 등 뒤에 푸른 혹이 있어 큰 거위의 무늬와 같았다. 이에 이름을 옥문이라 하였다. 자라나서 효제를 섬겨, 남려의 난을 평정하였고, 애종의 난에 화상과 함께 애종을 베었고, 법제를 맞이하여 세웠다. 공으로 인해 청하백에 봉해졌고, 구가를 대대로 세습하도록 명받으니 곧 선상이다.
옥문의 딸 옥완은 양천의 비가 되어, 양성을 낳았고, 옥인은 오산의 비가 되어, 호인을 낳으니, 모두 모수제의 후와 비이다. 모수제 초년에 병이 많아, 단지 한 명의 황후와 한 명의 후비만을 맞이하였는데, 옥인을 비로 삼고, 양성을 후로 삼으니, 옥인은 황제의 기갑(12살 연상)이다. 황제는 14살때부터 옥인을 30여년 동안 총애하여, 궁중의 일을 그녀의 손에서 많이 결정하였고, 누에치기, 길쌈, 털카펫 짜기를 잘하여, 황제의 곤면이 모두 그녀의 손에서 나온 까닭에, 황제가 자못 그녀를 중히 여겨, 누님이라 부르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옥인은 항상 수라상을 깨끗이 하고 약과 차를 관장하여 황제의 몸을 보호한 공이 막대한 까닭에, 그녀의 아들 옥천이 장공주 황에게 장가들어 순노후로 봉해졌다. 순노는 땅이 넓어, 옥저와 동해가 모두 여기에 속했다.
옥문은 옥인의 아버지로서 공이 높고 훈장이 무거워, 나라의 주석이 되어 천하를 좌진하다가, 나이 70세에 이르러 병이 위독해지자, 자녀들에게 충성으로써 훈계하고 죽으니, 법제 34년 계묘년(BC87년)이다.
*法帝 재위기간: BC120년~BC87년 (재위 34년)
*孝帝 때 南閭의 난 = BC12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