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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생각할 수 없는 생각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내 비밀 Mysteres을 들을 만한 자에게만 들려준다'
-도마의 복음서
오늘날 로마 교황청이 있는 자리에는 한때 이교도 신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거기서 이교도
사제들은 신성한 의식을 거행했다. 이 의식은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너무나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이 의식이 거행되어 왔다는 증거를 모두 지워 버리려고 했다.
그처럼 충격적이었던 이교도 의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소름 끼치는 희생 제물 바치기였
을까? 아니면 외설적인 술판 벌이기였을까? 그런 허구를 믿도록 우리는 설득 당해 왔다.
그러나 진실은 그런 허구와는 사뭇 다르다.
오늘날 독실한 신도들이 그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숭배하는 그곳에서 고대인들은 다른
구세주 신인(神人)을 숭배하고 찬양했다. 놀랍게도 이 구세주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12월 25
일에 태어났다. 또, 예수와 마찬가지로 하늘로 올라갔으며, 종말의 날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다시 지상에 내려오기로 약속된 존재였다.
오늘날 교황이 성찬 미사를 드리는 그곳에서, 고대의 이교도 사제들 역시 그들의 구세주를
기념하여 빵과 포도주 의식을 치렀다. 뿐만 아니라 이 구세주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되고, 나 또한 너와 더불어 하나가 되도록 내 몸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 그러하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예수 이야기와 이교도 신화가 이토록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경악했다. 우리 두 사람
은 이교 신앙과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관점이 전적으로 대립된다고 믿는 문화 속에서 자라
왔다. 그렇다면 이토록 놀라운 유사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는 강렬한 호기심에
이끌려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더 깊이 파고들수록 더욱 많은 유사성이 드러났다. 우리는
수많은 증거를 발굴해 냈다. 그 많은 증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에 빠진 우리는 그리스도교와 이교 신앙의 관계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고 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믿었던 것들을 의심하며, 처음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여러 가능성을
상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단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결론을 통해 우리는 그 동안 축적해 온
수많은 증거를 더없이 간단하게, 그리고 더없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
예수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메시아의 전기가 아니라, 이교도의 유서 깊은 이야기
들을 토대로 한 하나의 '신화'라고 우리는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교는 새롭고 유일무이한
계시 종교였던 게 아니다. 유대인 방식으로 각색된 고대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우리는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진짜' 예수에 대한 근거
없는 주장을 늘어놓는 책이 허다한 마당에 이런 주장은 처음부터 얼토당토않은 소리로 들릴
수 있다. 우리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렇지만 혁명적인 이론에 대해서는 마땅히 건전한 의심의
눈길을 던져야 한다.
이 책도 물론 아주 예외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그저 여흥을 위한
공상이 아니고, 물의를 일으키기 위한 억측도 아니다. 우리는 이용 가능한 역사적 자료와
가장 최근의 학구적 탐구를 토대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우리의 주장을 아주 철저히 분석하고 싶어하는
독자를 위해 인용문의 출처, 참고 서적, 기타 보충 내용에 대해 풍부한 각주를 달아 놓았다
(각주 분량이 이 책 원서의 3분의 1에 달하고 전문가를 위한 내용이 많아 이 역서에는 '저자
주'로 일부만 옮겨 놓았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우리가 밝힌 수많은 아이디어는 아주 급진적이고 도전적이지만, 사실 새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과거 르네상스 시대에도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 찾았다.
19세기 접어들어서도 몽상적인 학자들은 우리의 결론에 비견되는 추측을 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현대의 고전학자들도 우리가 생각한 가능성들을 되풀이해서 지적해 왔다. 하지만
우리가 끌어낸 것과 같은 명백한 결론을 과감히 진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금기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신성하고 유일무이하며, 이교 신앙은 원시적이고 악마적인 활동이라는 믿음은
지난 2천여 년 동안 서구 세계를 지배해 왔다. 때문에 이교 신앙이 부분적으로 그리스도교와
동일한 전통을 지녔다고 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진실이 처음부터 명백해 보였다 하더라도, 그것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것을 직시하려면 우리의 문화적 전통에 완전히 등을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헌한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며 메마른 학구 서적이 아닌 대중
서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 복잡한 주제에 대한 최후의
결론이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의 결론이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완벽한 재검토를 요청
하는 값진 결론일 수 있기를 바란다.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울려 퍼지는 합창은 주인공의 운명을 예고한다.
이처럼 우리가 가야 할 험난한 길과 목적지를 미리 안다면 그 여정은 한결 쉬워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 섬세한 얘기로 접어들기 전에 우리의 발견 과정을 되짚어 보고 이 책의
간략한 조감도를 먼저 보여 드리고 싶다.
우리 두 사람은 일평생을 온 세계의 신비주의에 대한 깊은 관심을 지닌 채 살아왔고, 최근
들어서는 고대세계의 영적 신앙까지 탐구하기에 이르렀다. 예리한 학구적 탐구의 결과가 대중
에게 널리 이해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우리도 처음에는 대중들과 마찬
가지로 이교 신앙에 대해 부정확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사실 이교 신앙을 원시적인 미신으로 치부하도록 배워 왔다. 이교도들은 우상 숭배와
피의 제사에 사로잡혀 있었고 토가(로마 시민의 외투)를 걸친 삭막한 철학자들은 우리가
오늘날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향해 장님처럼 비틀거리며 걸어왔다고 배웠다. 우리는 올림
포스의 남신과 여신들이 변덕스럽고 파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여러 고대
그리스 신화를 늘 들이 왔다. 대체로 이교 신앙은 원시적이며 근본적으로는 황당해 보였다.
그러나 수년 동안 연구한 후 우리는 전혀 달리 이해하게 되었다.
이교도의 영적 신앙은 사실상 고도로 발전한 문화의 세련된 산물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올림포스 신들을 숭배한 것은 국가적 권장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국교라 할 만한 이 같은
숭배는 화려한 겉치장과 축제 의식에 지나지 않았다.
국민들의 참된 영적 신앙은 신비하고 역동적인 '여러 미스테리아 종교 Mystery religions'를
통해 표출되었다. 미스테리아는 처음에 이단적인 지하 운동을 통해 고대 지중해 전역에 퍼져
번성해 갔고, 이교도 세계의 영적 지도자들을 고무시켰다. 영적 지도자들은 미스테리아를
문명의 원천으로 간주했다.
전통적으로 각각의 미스테리아는 공개적인(외적) 미스테리아나 은밀한(내적) 미스테리아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공개적인 미스테리아는 참여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려 있는
의식과 상식적인 신화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편 은밀한 미스테리아는 강렬한 입문 절차를 거친
자에게만 전해지는 신성한 비밀이었다. 은밀한 미스테리아의 입문자들은 의식의 신비한 의미를
알게 되면서 미스테리아 신화의 비밀을 전수 받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들은 개인적으로
탈바꿈해서 영적 깨달음을 얻었다.
고대세계의 철학자들은 은밀한 미스테리아의 영적 스승들이었다. 그들은 신비주의자였고,
기적을 행하는 자였으며, 케케묵은 학자라기보다는 힌두교의 구루(영적 지도자) 같은 인물
이었다. 예컨대 위대한 그리스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오늘날 수학 정리를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사실 그는 불꽃같은 신비주의 현자였다. 기적적으로 바람을 잠재우는가 하면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로 신봉되었던 것이다.
미스테리아의 핵심에는, 죽어서 부활한 신인(神人)과 관련된 신화가 놓여 있다. 그런데 이
신인은 여러 이름으로 알려졌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이집트어로는 우시르), 고대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이탈리아에서는
바쿠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로 불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들 신인은 모두 동일한
신화적 존재이다.
이 책에서는 일찍이 기원전(BCE) 3세기에 통용된 이름들을 합성해서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이 신인의 세계적이며 혼성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개별적인 미스테리아 전통을 언급할 때는 개별적인 이름을 사용할 것이다
(저자는 기원전을 나타내는 'BC' 대신 'BCE[Before the Common Era]' 를 사용했고 또
AD 대신 CE를 사용하면서 이 용어들의 종교적 중립성을 주목해 달라는 각주를 달았다.
'BCE'는 '예수 이전' 이 아니라 '공동 시대 이전'을 뜻한다. 그러나 역서에서는 독자의 편의를
위해 BC, AD를 사용키로 했다 : 옮긴이 주).
BC 5세기부터 크세노파네스와 엠페도클레스 등의 철학자들은 남신과 여신들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비웃었다. 그들은 그리스 신화를 인간의 영적 경험의 비유로 보았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가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닌 상징적 언어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상징적 언어로 이루어진 신화는 은밀한 미스테리아의 가르침이
암호화된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이 신화는 문화가 다른 곳에서는 다소 다르게 채택되어
발전해 나갔지만, 그 핵심만큼은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미스테리아의 여러 신인들 신화는, 세기적인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동일한 해부 구조'라고
부른 것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모든 인간이 신체적으로 유일무이한 존재이지만 인체의
일반 해부구조는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이들 여러 신화도 유일무이하면서 동시에
근본적으로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사이의 관계와 같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전자는 부유한 이탈리아의 가문에 대해
쓴 16세기 영국의 비극작품이고, 후자는 거리의 갱들에 대해 쓴 20세기 미국의 뮤지컬 작품
이다. 겉보기에는 아주 달라 보인다. 그러나 두 작품은 근본적으로 같은 이야기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교도 미스테리아의 신인들 신화는 형태만 다를 뿐 근본적으로는 같은 이야기
이다.
우리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의 다양한 변형들을 연구하면 할수록 예수의 이야기 역시
그 변형들이 지닌 온갖 특성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우리는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신화의 골자를 추려내면 예수의 전기를 사사건건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육체를 가진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나님God의 아들 이다.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며 어머니는 인간처녀(동정녀)이다
그는 3명의 양치기가 찾아오기 전인 12월 25일에, 동굴이나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난다
그는 신도들에게 세례 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준다.
그는 결혼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
그가 나귀를 타고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찬송하며 그를 맞이한다
그는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부활절 무렵에 죽는다.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해서 영광되이 하늘로 올라간다.
신도들은 최후의 날 심판자로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 기념된다.
이것들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이야기와 예수의 전기에 똑같이 나타나는 것들 가운데 핵심만
추린 것이다. 이처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전혀 몰랐던 것일까? 나중에
우리는 초기 로마 교회가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로마
교회는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을 말살하기 위한 잔혹한 계획을 세우고 이교도의 신성한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말살했다. 이 계획은 너무도 완벽하게 수행되어 오늘날 이교 신앙은
'죽은' 종교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이지만, AD 첫 몇 세기 동안의 작가들에게 있어 새로운
그리스도교와 고대 미스테리아 신앙 사이의 유사성은 명백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교를 비판한 풍자가 켈수스 Celsus(AD 약 170) 같은 이교도는 새롭게 나타난 종교가
자신들의 옛 가르침을 엷게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
(AD 100-165), 테르툴리아누스(AD 160-220), 이레나이우스(AD 130-202) 등 초기 '교회의
아버지(교부(敎父))'들도 분명 너무나 곤혹스러운 나머지, 그 유사성이 악마의 모방 탓이라고
필사적으로 주장했다. 일찍이 제시된 불합리한 주장 가운데 하나였던 악마의 모방 이론을
채택한 그들은 악마가 '예상에 의한 표절'을 했다고 비난한 것이다. 즉 어수룩한 사람들을
오도할 목적으로, 예수의 진짜 이야기가 실제로 발생하기 전에 악마가 미리 예상을 해서
사악하게 모방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이 보기에 이 교부들은 그들이 죄를 덮어씌운 악마들 못지않게 사악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그리스도교 주석가들은 여러 미스테리아 신화가 예수의 실제 도래에 '앞서 울린 메아리',
즉 예언이나 예견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악마의 모방 이론을 좀 누그러뜨린 것이
지만, 여전히 우스꽝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예수 이야기가 그보다 먼저 있었던 수많은 신화의
역사적 완성판이라고 보는 것은 문화적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편견 없이 바라보면, 예수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똑같은 이야기의 또 다른 변형일 뿐이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이교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이교도 신화에서 인기 있던 테마가
예수 전기에 접목되었다고 보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건 다수의 그리스도
교 신학자들이 일찍이 언급한 대로이다. 예컨대 동정녀의 성령 잉태는 후대에 외래신화를 추가
한 것이어서 문자 그대로 이해되면 안 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테마는 이교 신앙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그 같은 차용은 이교도 축제들을 그리스도교 성자들의 날로 삼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축적된 신화의 잔재에 깔려 숨겨진 '진짜' 예수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이론을 받아들인다.
일견 매력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설명이 부적절한 것 같았다. 우리는 유사성
전체를 포괄적으로 대조해 보았다. 그 결과, 예수의 전기 가운데 이교 신앙에 미리 나타나지
않은 테마는 거의 찾아들 수 없었다. 나아가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조차도 독창적인 게
아니라, 이교도 현자들이 이미 앞서 말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모든 것의 배후 어딘가에 '진짜' 예수가 실제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진짜에 대해
서는 아는 것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후대에 이교도 신화를 덧붙인 기록들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도
어쩐지 터무니없어 보였다. 이러한 수수께끼에 대해 좀더 우아한 해답이 분명 있지 않을까?
영지주의
앞서의 발견은 정말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우리는 초기 교회가 받아들인 것들에 하나하나
의문을 제기하면서 스스로 증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성자와 순교자들이 모두 한결같은 믿음을 지닌 것으로 배워 왔다. 그러나
그와는 전혀 달리, 성자와 순교자들은 사실상 여러 이질적인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
했다. 큰 범주로 보면 이들은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문자주의자 Literalists
라고 부르는 집단이다. 이들은 예수 이야기가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AD 4세기에 로마 제국이 받아들인 그리스도교가 바로 그것! 이는 로마 가톨릭 신앙이 되었
으며, 훗날 여러 갈래로 분화되었다.
이와는 급진적으로 다른 그리스도교 집단이 있었는데, 영지주의자 Gnostics가 바로 그들이다
(영지주의자Gnostics를 '정통' 교회 입장에서는 보통 '그노시스파' 라고 번역한다. '그노시스파'의
사전적 의미는 '그노시스[靈知] 개념으로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설명하려던 AD 2세기경의 이단
그리스도교인' 이다 : 옮긴이 주).
영지주의자들은 잊혀진 그리스도교인들이다. 훗날 로마 교회 문자주의자들의 박해를 받아
철저히 말살되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그들을 추적하는 사람들의 저술 외에는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원래의 영지주의 문서가 한줌 남아 있을 뿐인데, 그것도 19세기 이전에는 출판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극적으로 달라졌다. 1945년에 이집트의 한 농부가 나그 함마디 근교의
한 동굴에 감춰져 있던 영지주의 장서를 우연히 발견했다(나그 함마디 Nag Hammadi는
나지 함마디 Naji Hammadi라고도 쓴다 : 옮긴이 주). 이 장서는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널리 배포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장서는 훗날 신약 <성서>에 포함되지 못했다. <도마의
복음서>, <빌립의 복음서>, 베드로와 12 사도의 행적을 기술한 텍스트, <바울의 계시록>
과 <야고보의 계시록>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와 사도들의 가르침을 비롯한 초기 그리스도교 장서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오늘날의 그리스도교인들 가운데 그런 문서가 존재한다는 것
조차도 알고자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교인
들은 새로 발견된 말씀들을 읽어 보려고 안달을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신약 <성서>로
채택된 몇 개의 복음서에만 매달리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물론 영지주의가 추방된 지 2천여 년 가까이 지났고, 그 동안 로마 교회에서 프로테스탄트
(신교)가 갈라져 나갔으며, 수천의 개신교 집단이 생겼지만, 영지주의는 아직도 합법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간주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영지주의 복음서를 탐구해 보면 그들에게 친숙한 종교와는 매우 이질적인 그리스도교의 한
형태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집정관들의 본질>, <노레아의 생각>과 같은 낯선 제목의
문서를 연구하게 되었다. 마치 영화 <스타 트랙> 속으로 빨려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지주의는 진정한 '정신의 우주 비행' 이었다.
영지주의는 생명의 기원과 의미를 탐색했고 내면 우주의 마지막 미개척지를 대담하게
탐구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신비가였으며, 창조적인 자유 사상가였다. 그들이 문자주의자 교회의
주교들에게 왜 그토록 미움을 받았는지는 너무나 명백해 보였다.
문자주의자들에게 영지주의자는 이단자였다. 그것도 매우 위험한 이단자! 반영지주의 저술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영지주의자들이 지녔던 힘과 영향력을 반증하는 자료들---을 보면,
영지주의자들은 '토착화된' 그리스도교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즉, 주위의 이교 신앙에 오염되어
참된 신앙의 순수성을 포기한 사람들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이야말로
전통을 지켜 가는 진정한 그리스도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문자주의자 주교들을
'교회를 위조한 자'라고 생각했다. 또, 문자주의자들이 갖지 못한 은밀한 그리스도교의
미스테리아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영지주의의 믿음과 실천을 탐구하면서, 문자주의자들이 한가지만은 옳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교도와 별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교도의 미스테리아를
논한 철학자들처럼 그들은 다시 육체를 부여받음(환생)을 믿었고, 여신 소피아(지혜)를
찬양했으며, 고대 그리스의 신비한 플라톤 철학에 심취했다.
영지주의자Gnostics란 '아는 자' 라는 뜻이다. 이교도 미스테리아 입문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들의 은밀한 가르침이 영지Gnosis. 곧 직접 경험에 의거한 '신에 대한 앎'을 전하는
힘을 지녔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교도 입문자가 하나의 신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지주의자들이 보기에 그리스도교 입문자의 목표는
하나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었다.
특히 우리가 충격을 받은 것은, 영지주의자들이 예수의 역사성에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예수 이야기가 지닌 의미는, 이교도 철학자들에게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가 지닌
의미와 동일했다. 주 예수 이야기는 은밀하고 신비한 가르침을 암호화한 하나의 비유였다.
이러한 통찰은 우리에게 주목할 만한 가능성 하나를 보여 주었다. 이교도 신화와 예수 전기
사이의 유사성에 대한 설명은 사실 항상 있었지만, 우리는 그 설명의 진위를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비로소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다.
예수의 미스테리아 명제
로마 교회 당국자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역사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는 한 유대인 메시아의
가르침에서 발전했으며, 영지주의는 훗날의 한 분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그림이
뒤집혀서,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영지주의야말로 참된 그리스도교라면 어쩔 것인가?
정통 가톨릭 신앙이 영지주의에서 갈라져 나온 훗날의 한 분파라면? 그리고 영지주의가
유대인과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을 합성한 것이라면? 이러한 생각이 바로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의 출발점이었다.
대담하게 말해서, 우리 앞에 출현한 그림은 다음과 같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는 더 먼
옛날의 미스테리아를 받아들여 민족적 취향에 따라 각색을 했으며, 죽은 후 부활한 신인
신화의 여러 버전을 만들었다. 그 중 일부 유대인들은 이교도의 미스테리아를 받아들여 우리가
오늘날 영지주의로 알고 있는 것을 만들어 냈으며, 유대인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은 오시리스-
디오니소스 신화의 유력한 상징들을 자신들의 신화로 각색했다. 그 신화의 주인공이 바로
죽었다가 부활한 신인 godman 예수이다.
만일 이 같은 대담한 말이 사실이라면 예수 이야기는 결코 전기가 아니라, 유대인 영지주의자
들의 영적 가르침을 암호화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교묘히 꾸며 낸 것이 된다. 이교도 미스테
리아 종교에서처럼, 영지주의의 은밀한 미스테리아에 입문하면 신화의 우의(寓意)적 의미가
밝혀지게 된다. 그런데 어쩌다가 입문을 하지 못한 자가 실수로 예수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간주하는 바람에 문자주의 그리스도교가 탄생했을 수도 있다.
영지주의자들이 가르쳤지만 문자주의자들은 부인해 온 그리스도교의 은밀한 미스테리아에
따르면, 예수 이야기는 하나님이 지구 행성을 유일하게 한 번 방문했다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다. 예수 이야기는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가 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꾸며 낸 신비한
가르침일 뿐이다.
예수 이야기는 신화로서의 속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어차피 새로 발견된 영지주의 복음서를 읽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들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일 사람도 없다. 그 복음서는 당연히 신화로 보인다. 그런데
신약 <성서>의 복음서들을 마찬가지 관점에서 보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문화적 편견의
소산일 뿐이다.
신약 <성서>의 복음서들 또한 우리가 잃어버렸다가 최근에 새로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대체 누가 그 복음서를 열렬히 읽을 것인가? 또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인간이
역사적 실존 인물이며, 물 위를 걸었고, 죽은 후 부활했다는 것을 누가 사실로 믿겠는가?
오시리스 · 디오니소스 · 아도니스 · 아티스 · 미트라스, 기타 이교도 미스테리아 신앙의
구세주 이야기는 모두 비유라고 생각하면서, 근본적으로 똑같은 이야기를 유대인식(式)으로
각색한 베들레헴의 한 목수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믿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교인으로 자라 온 우리 두 사람은 수년 동안 열린 마음으로 영적 탐구를 했으면서도
감히 그런 의문을 갖는다는 것조차 위험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어린 시절에 교리를
주입하면 아주 깊이 침투한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우리는 예수가 이교도의 신이었으며,
그리스도교는 이교 신앙의 이단적 산물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이런 발언은 위험천만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명제에 따르면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들 사이의
유사성이 간명하고 우아하게 설명되었다. 이들 이야기는 발전하고 있는 신화 체계의 일부인
것이다.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는 당혹스러운 많은 질문에 답한다. 하지만 새로운 딜레마를 낳기도
한다.
예수라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증거는 정말이지 전혀 없는가?
가장 초기의 그리스도교인으로 알려진 바울이 반 영지주의를 그토록 크게 부르짖었다는데,
영지주의가 어떻게 원래의 그리스도교 신앙일 수 있는가? 유대인처럼 근성이 강한 반이교도가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믿을 만한가? 의식적으로
꾸며 낸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믿었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영지주의가 진짜
그리스도교를 대표한다면, 문자주의자들의 그리스도교가 시대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로 세계를 장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여러 질문에 모두 만족스럽게 답해야만 우리는 그처럼 급진적인 이론을 진심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거대한 은폐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원에 대한 우리의 새로운 설명이 터무니없는 말로 들린다면, 그 이유는
오직 기존의 견해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구를 더욱 밀어붙이자 전통적인 그림이
완전히 해체되기 시작했다. 종교적 분파와 권력 투쟁, 위조 문서와 허위 인물들, 편집되고
추가된 편지들, 역사적 증거의 대대적인 말살의 세계에서 우리는 허우적거렸다. 결국 우리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에만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는 추리소설 속의 범인을 알아내기 직전에 있는 탐정과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배달 착오로 알려지지 못한 고대의 정의(justice)를 밝히기 직전에 있는 것 같았다.
남아 있는 진짜 증거가 무엇인지를 몇 번이고 거듭해서 엄밀히 검증하는 동안, 우리는
로마 교회가 우리에게 물려준 그리스도교의 역사가 진실을 총체적으로 왜곡한 것임을 알아
냈다. 실제 증거에 따르면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가 전적으로 옳았다. 우리는 기만을 당해
왔으며, 영지주의야말로 원래의 그리스도교였고, 그들의 무정부적인 신비주의는 제도권
당국자들에 의해 말살되었으며 이윽고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은폐 행위가 잔혹하게 자행되었다
는 것이 점점 더 명백해졌다.
이토록 거대한 은폐 행위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은 유세비우스(AD 263-339)라는 인물이다.
그는 AD 4세기 초에 전설을 수집하고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이고 날조해서 오늘날까지 전해
오는 그리스도교의 초기 역사를 집필했다. 이후의 모든 역사는 유세비우스의 의심스러운
주장을 토대로 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인용할 다른 정보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죄다 이단자로 낙인 찍혀서 제거되었다.
이런 식으로 4세기에 편집된 거짓 문서가 우리에게 확고한 사실로 전해 내려왔다.
유세비우스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재위 306-337)에게 고용되었다. 이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았고 문자주의 그리스도교를 믿는 자에게 권력을 부여해서 이교도와
영지주의자들을 말살하게 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주장인 '하나의 제국, 하나의 황제'를
확고히 하기 위해 '하나의 신, 하나의 종교'를 원했다. 그는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신조인 니케아 신경(信經)을 만들게 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이라는 이 신조에 동의하지
않는 그리스도교인은 제국에서 추방되거나 침묵해야 했다.
로마 제국의 재건자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 이 '그리스도교인' 황제는 니케아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 아내를 목졸라 죽였고 아들을 살해했다. 그는 임종할 때까지 일부러 세례를 받지
않았다. 잔혹한 행위를 계속하다가 최후의 순간에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를 용서 받고 천국의
자리를 보장 받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자신의 '교회 박사'인 유세비우스로 하여금 아첨으로 가득한 자기 전기를 쓰게 해서
자신을 미화시켰지만, 사실상 그는 앞서의 로마 황제와 똑같은 괴물이었다.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역사'가 로마인 폭군에게 고용된 한 사람이 지어낸 것이고, 그것이 온통 거짓말인
것으로 드러난다면 정말이지 놀라운 일 아닌가?
초기 그리스도교에 대해 가장 권위 있는 학자 가운데 하나인 일레인 페이절스는 이렇게 썼다.
역사를 쓰는 자는 승리자들이다. 그들은 제멋대로 쓴다 그러니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전통적 설명에서 자기들은 '정통'이고 적들은 '이단'이라고 정의했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다.
나아가 그들은 자신들의 승리가 역사적으로 불가피했다고-종교적 용어로 말해서 '성령의 인도'
를 받은 것이었다고-선전했다. 그들은 자기 만족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그 함마디에서 영지주의 복음서들이 발견됨으로써 근본적인 의문이 다시
제기되었다.
역사는 철저히 승리자에 의해 씌어진다. 적절한 역사를 꾸며 낸다는 것은 항상 정치적 조작을
위한 병기를 제작하는 것과 같았다. 2천여 년 후 할리우드에서 '서구가 어떻게 졌는가'가
아니라 '서구가 어떻게 이겼는가'를 말하기 위해 '카우보이와 인디언' 이야기를 꾸며 내는 것과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로마 교회는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의 승리의 역사를 꾸며 냈다.
역사는 단순히 기술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너무도 빈번하게 역사는 단지 현상을
정당화하고 찬양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역사는 드러내는 것 못지않게 감추는 게 많다.
받아들여진 역사에 감히 의문을 단다는 것은 쉽지 않은 노릇이다.어렸을 때부터 사실이라고
들이 왔던 이야기가, 알고 보니 날조된 허구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친절한
'우리 아저씨' 스탈린 이야기를 들으며 커 온 러시아인들이, 사실은 스탈린 때문에 수백만 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스탈린 정권에 반대한 사람들은 스탈린이 러시아 혁명의 수많은 영웅들을 실제로 살해했다고
주장했는데, 그런 주장도 전혀 믿기지 않았다. 스탈린이, 심지어는 정적들의 이미지를 아예
말살시켜 버렸고 역사적 사건들을 완전히 날조했다고 주장했을 때에도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사실 아닌가!.
다른 모든 사람이 믿는다면 그것은 진실임에 틀림없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진실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을 감히 의심함으로써만 밝혀 질 수 있다. 너무나 널리 믿어져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는 개념도 의심해 봐야 한다.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는 그처럼 열린 정신의 산물이다.
처음 우리에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것은 터무니없고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명백하고 평범해 보인다. 로마 교황청은 고대 이교도의 성지에 세워졌다. ---새로운
것은 항상 옛 것 위에 세워지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자체도 앞서 존재한 이교도의 영적 신앙을 토대로 삼고 있다. 끊이지
않은 역사적 연속체의 형태로 그리스도교가 고대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에서 비롯함으로써,
영적 아이디어가 점진적으로 진화했다고 보는 것보다 더 그럴듯한 가정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런 생각이 이단적이고 충격적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문자주의 그리스도교를 오직 역사적으로
너무나 오래, 너무나 널리 믿어온 탓이다
신비한 그리스도교의 재발견
퍼즐의 마지막 조각들을 끼워 맞추고 있을 때, 우리는 우연히 한 고서(古書)의 부록에 삽입된
작은 그림을 보게 되었다. AD 3세기의 부적 그림이었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인물 그림
인데, 누구나 그걸 보면 예수 그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인물 밑에는 그리스어로
'오르페우스가 바쿠스가 되었다'고 적혀 있다. 우리가 오시리스-디오니소스라고 표기해 온 바로
그 인물인 것이다. ---이 그림이 실린 책의 저자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부적에 그려진 자는 정말 누구였을까? 십자가에 못 박힌 이교도 신격이었을까?
아니면 이교 신앙과 영지주의 그리스도교의 합체였을까?
어느 쪽이든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적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뜻밖에도 이 부적은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가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것은 예수의
이미지일 수도 있고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미스테리아
입문자에게는 둘 다 근본적으로 같은 인물에 대한 두 가지 이름일 뿐이었다.
이 부적의 '우연한' 발견 덕분에 우리는 스스로 알아낸 것들을 세상에 널리 알리라고 우주가
우리를 격려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는 신비가와 학자들이 수세기 동안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주창해 왔지만, 결국에는 항상 무시당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인정받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을 쓴다는 것이 정말 걱정스러웠다. 불가피하게 일부 그리스도교인들의
분노를 살 텐데, 그것은 우리가 전혀 바라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거짓말과 불공정한 판단에
둘러싸여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분명 영지주의에 대한부정적인 허위 진술에 대해 다소간
분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교도 문화가 얼마나 기름진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면,
그 문화가 무도하게 파괴당했다는 것에 대한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 그리스도교를 부르짖을 생각이 전혀 없다.
우리의 다른 저서를 읽으신 분이라면 우리의 관심사가 분열을 조장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아실 것이다. 우리의 관심사는 모든 영적 전통의 심장부에 놓인 통일성을 인식하는 데
있으며, 이 책 또한 예외가 아니다.
초기의 문자주의자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 이야기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이야기와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예수만이 신화적 인물이 아닌 역사적 인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이 다른 신앙과는 반대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 계속 진화하고 있는 보편적 인간의 영적 신앙의 참된 기원을 이해함으로써,
그리스도교가 스스로 부과한 고립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우리는 바라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로 역사를 다시 쓰고자 한다. 그러나 이 글이 참 그리스도교에
해를 미친다고는 보지 않는다. 역으로 이 글은 우리가 이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풍요로운
그리스도교를 제시하는 것일 수 있다. 예수 이야기는 구하는 자에게 영지를 전해주는 힘을
지닌 항구적인 신화이다. 이 신화는 우리 각자를 그리스도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예수 이야기는 약 2천여 년 전에 다른 누군가에게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원래 예수 이야기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교라는 영적 신앙, 곧 공개적 미스테리아
를 믿는 첫 단계였다. 구하는 자가 영적으로 성숙했을 때에는 계몽된 교사로부터 미스테리아의
의미를 전수 받도록 되어 있었다.
이 은밀한 미스테리아는 교리에 대한 단순한 믿음 너머에 있는 신에 대한 신비한 앎을 깨우쳐
주었다.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그리스도교 신비가들은 직관적으로 심오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교 신앙의 공개적 미스테리아만을 하나의 문화로 물려받았다.
우리는 그 형식은 지켜 오면서 내적 의미는 잃어버리고만 것이다. 이 책이 참되고 신비한
그리스도교 유산을 회복하는데 작은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바랄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