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4일 금요일
Ravus Han
금요 특별 기도회 설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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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중 목사님
느헤미야 2:1~10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었다는 말을 듣고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 근심이 얼굴에 드러난 느헤미야에게 왕은 무엇을 해줄까 하고 물었고, 느헤미야는 대답을 하기 전에 순간적으로 잠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우리는 왜 기도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온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한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다섯 단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째, 느헤미야는 주님을 찬양했다. 둘째, 죄를 고백했다. 셋째,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다. 넷째, 기도하는 나는 주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믿음으로 구했다.
느헤미야의 기도가 들어진 것은 그 후로 4개월 정도 후인 니산 월이었다. 응답이 올 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하박국은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면 지체되지 않고 이루어 질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때에 더 좋은 방법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왜 유대인들은 그렇게 예루살렘 성에 관심을 보였을까? 그것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예루살렘이 파손되었을 때에 느헤미야가 왕의 총애를 받는 술관원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올랐을 때 하나님을 향한 자리였으면 좋겠다. 내 삶의 방향과 목적이 하나님을 향해 집중되어야 한다.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속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방향과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느헤미야가 그 근심을 들킨 것도 섭리였다. 그러자 느헤미야는 두려워했다. 첫째로 그는 왕을 기쁘게 하지는 못하고 근심하게 했으니 면직당할 수 있었고, 둘째로 예루살렘에 대해 말할 기회가 온 것에 대한 책임을 느꼈고, 셋째로 아닥사스다 왕은 예루살렘 재건을 반대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두렵게 행동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구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을 자신의 열조의 묘실이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표현은 조상의 묘가 있는 곳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여기던 페르시아 왕에게 공감과 동정을 살 수 있는 표현이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도우셨다고 고백했다. 도운 것은 왕이지만 본질적으로 도움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셨다. 세상 사람들이라도 우리를 돕는 하나님의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내 생각에는 기도를 받기에도 부족한 사람이 있다. 아니,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자면, 어느 누구도 길가의 돌멩이나 땅에 널린 똥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세상은 참 오묘하다. 내 입장에서는 도저히 봐 줄 수 없는 사람도 누군가의 자식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형제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배우자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부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자면 분명 길가의 돌보다 못한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왜 이 세상에 두고 계실까 싶을 정도로. 다윗도 시편에서 분명 자신의 적들을 저주, 라고 하면 너무 격한 표현이지만 그들을 멸해 달라는 기도를 했다.
나는 좀 더 지혜로운 방법을 선호한다. 물론 억울한 심정을 하나님께 올리는 것도 옳은 일이다. 다만 그 사람이 망하길 바라기 보다는 맞서 보는 것이다. 그 사람을 꺾으려는 것보다는 맞서 보는 것이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시스템이 바르지 않을 때에는 이 정도였어, 하고 안주하지 말고 그것을 바꾸려고 과감히 시도하라는 것. 그리고 나는 말한다. 확실하지 않다면 가치가 없다고.
나는 그 길가의 돌보다 못한 사람을 찾아가서 직접 말하겠다. 나는 자존심때문에라도 내가 싫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을 수모로 여긴다. 그렇지만 그래서라도 나는 그 사람의 말 하나하나를 존중하는 태도로 듣고 나의 의견을 피력하여 조정하겠다. 그것은 비단 그 사람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첫째로 누군가와 나쁜 관계에 있다는 것은 어쨌든 좋을 것 하나 없는 일이며 둘째로 내가 그 사람보다 한 단계 위에 있다는 것을 위해서이다.
그렇다. 그렇게 직접 찾아가 말해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 때까지 관계를 회복하겠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울컥하는 이 성질을 참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변화되려면 한 순간에 갑자기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기회에 제가 온전히 변해서 배운 품성대로 행동하도록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첫댓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귀하고 사랑스럽게 여긴다. 심지어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도 자신에 대한 연민을 다 버릴수는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귀하고 사랑스럽게 여기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여기서 죄악된 인간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오, 우리가 얼마나 자신의 잘못에 대해 관대한지. 그리고 남의 잘못에 대해 가혹한지. 그래서일거야. 예수님이 사랑하라 하신게 그것 없이는 그 어떤 시도도, 그 어떤 노력도 관계에 대해 열매를 얻게 하지 못하니까.
아들아.........참는것도 지혜로운 일이라더구나......그래도, 자기를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과는 관계하지 말아라....어차피 말을 못알아 듣는 사람에겐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그 자리를 피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