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소시지처럼...
김은이 집사 (페루목장)
“엄마,오늘 학교급식은 당근밥에 건새우 아욱국,함박스테이크,버섯잡채,단배추
생채,김치,우유 나와.”
“와우! 맛있겠다.”
매일 아침 아이는 아침밥을 먹으며 냉장고에 붙어있는 학교급식 메뉴를 읽어준다.
마치,엄마가 해 주는 음식과 5대 영양소가 골고루 갖추어진 급식을 비교하는
것처럼....
하기야, 영양사 선생님과 조리원 아주머니들이 세밀하고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시는 음식이 아이의 영양 상태와 발육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은 나도 인정하는 바니.....
지금은 이렇게 학교급식이 이루어져 엄마의 노고도 덜고,아이들이 먹는 식단의 질도
좋아졌지만,내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엔,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다녔다.도시락 반찬을 보며 아이들의 가정환경을 대충 짐작했듯이 그 당시 도시락 반찬
때문에 어머니들의 걱정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내 자녀가 반찬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이 될까봐서......
그 중 가장 비싸고 귀한 반찬이 소시지와 계란말이였는데, 이 메뉴를 싸서 온 아이들은 도시락 뚜껑을 열기 바쁘게 다른 친구들의 몫이 될만큼 희소성의 가치를 가진 음식이었다. 이 분홍 소시지는 지금도 슈퍼에 가면 소시지의 원조인냥, 가장 크면서도 저렴한 가격으로 냉장코너에서 자리를 잘 잡고 있다.
분홍소시지의 아련한 추억의 여운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어,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햄과 소시지 중에서 난 이 분홍소시지를 가장 좋아한다.
초등 6학년 때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또래 아이들보다 2살이 더 많았는데,가정형편이 어려워 점심시간이면 조용히 밖에 나가거나 자신의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친구였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이 친구는 늘 부끄러움이 많고 학교를 결석하는 일도 많았는데,선생님은 이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1번 학생부터 67번 학생까지 매일 돌아가며 도시락을 하나씩 더 싸 오라고 말씀하셨고,그 날 당번을 맡은 아이는 꼭 이 친구와 점심을 같이 먹게 하셨다.당번을 맡은 아이들은 그 날 만큼은 소시지,멸치볶음 등 평소보다 더 맛있는 반찬을 싸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이 친구는 몸과 머리에서 악취조차 심하게 나서, 아이들은 함께 도시락 먹는 것을 많이 힘들어했다
그래도, 친구는 돌아가며 반 친구들이 자신과 짝꿍이 되어 매일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시간엔,평소에 볼 수 없었던 잔잔한 미소가 비추어지곤 했다.
어느날 갑자기 학교에 오랫동안 나오지 않아, 졸업할 때까지 자세한 소식을 모른 채 이 친구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 났지만, 구세군 냄비와 불우이웃돕기 박스를 보게 되는 연말엔 아주 가끔씩 그 친구의 소식이 궁금해진다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그래도 예전보다는
더 나은 삶을 향유하며 살고 있을거라 믿고 싶다.그 친구도 힘들고 어려웠던 유년시절이 오히려 가난을 극복하는데 더 큰 힘이 되었을지도 모르니까....
누구나 다 추억과 기억들을 가슴 속 한 켠에 묻어두고 산다.
그 추억이 좋은 것이면 낭만적인 흑백영화처럼 아름답게 남지만,별로 좋은 것이 아니면 추억보다는 기억으로 남듯이 말이다.
주변의 사람들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하는 연말이다.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감수성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겨울이다.
며칠이면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인생살이가, 매일 바뀌어 나오는 아이들의 급식메뉴처럼
다양한 컬러로 색감을 입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빨강은 내가 사랑을 나누어 준 색,노랑은 내 스스로에게 뽀뽀해 주고 싶은 색,파랑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색...등으로 색깔마다 해야 할 역할을 주면서 나만의 색달력을 만들어 타인에게 추억을 남겨주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
고급 수제 소시지보다, 더 마음이 가 장바구니에 담는 분홍소시지처럼......
첫댓글 참 어릴 때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네요.
도시락에 얽힌 사연들은 참 많죠. 그 땐 도시락이라고
부르지 않고 일본말인 뺀또라고 불렀어요. 누런 뺀또를
책보(가방도 없어 보자기 사용)에 넣고 촌에서 20리 길을
달려서 오면 수저흔들리는 소리가 요란했죠?
계란말이요? 소세지? 이건 진짜 잘 사는 집안 이야기고
일년 내도록 김치만 싸오는 아이들, 감자만 삼년 싸오는
애도 봤어요. 우리 고향은 춥기로 유명한데
난로 위에다 주욱 차례로 올려놓으면 맨 밑에 애 거는
완전 밥이 다 타서 엉망이 되고 맨 위에는 온기가
있는지 없는지 그렇고 그나마 2~3번째 올려논 애들 밥이 김이
모락모락 참 맛있었죠. 요즘 애들 그런 밥
먹으라고 하면 아마도 입에 대지도 않을거예요.
요즘은 귀한 대접을 받는 감자, 조, 보리 등이 그 땐 왜 그리
천덕꾸러기였는지... 저는 보리밥 감자 옥수수 같은 잡곡을 너무 좋아하는데
애들하고 입맛이 서로 안 맞으니 같이 해먹기도 힘들어요.
그 때 그 시절 이야기를 모처럼 보니 너무 반갑네요...
저도 이번에 이런 주제로 한 번 써 보려고 했는데,
한 발 늦었네요. ㅋㅋㅋ
그죠? 그래도 제가 집사님보단 젊어서..ㅋㅋ 양은도시락도 있었지만 보온도시락도 있었어요.^^
난로에다 도시락 올려놓기 위해서 남자애들이 석탄을 창고에서 가져와 아궁이에 집어넣고..
그래도 이런 아련한 추억이 마음에 오래 남아요.그래서인지 저는 예전에 드라마 중에서도 70년대 배경으로
하는 은실이 같은 드라마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은실이? 제가 드라마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빼놓지 않고 본 건 그 것 하나 뿐인데...
성동일 빨간 양말... 똑(떡) 사세요...
아주 침착하고 예쁜 은실이... 은실이도 이젠
숙녀 다됐을텐데... 요즘은 뭐하나 모르겠어요...
똑 사세요... 하고 장미희가 나온 프로는 다른 프론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 이경영 나오고, 빨간양말 나오고...
아~ 그건 육남매였나보다. 헷갈리네요...
똑사세요는..육남매고요..빨간양말은 은실이가 맞네요..^^
저는 보온도시락 들고 다닌거 같은데..쫌..살은게..되나요..^^
저도 쏘세지 보다 맞있는 반찬은 없다고 생각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요즘은 가공식품보다..나물이나 뭐..그런 쪽으로 젓가락이 가는걸 보면..
나이가..슬슬..ㅠㅠ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좋은글..감사합니당..
다들..갑자기 추워진 날씨..건강들 하시죠.??
저는 이제야 겨우 감기에서 벗어나는듯 합니다..
어저께 제품 상담하다가 설아줌마가 저보고 그러던데요? 장미희 말투랑 너무 닮았다고..ㅋ
별로 칭찬처럼 들리지 않던데 언제 한번 들려줄까요? 똑 사세요~~~
공감이 가는 이야기예요.
분홍 소시지는 그때 구경도 못하고 오뎅도 구경도 못하고 맨날 콩조림에
김치만 죽어라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밴또..ㅋㅋ 그말도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검정고무신 세대라 저는 드라마보다 오진희 작가의 짱뚱이라는 만화보면 그때 그시절로 돌아간 것 같이
얼마나 재미 있던지, 이런 얘기하면 끝이 안날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해요. 은이집사님 ~~
다들 잘 지내셨죠? 애가 아파서 컴퓨터 볼 여유가 없었답니다... 그래도 오늘은 좀 잠잠히 잠을 자는 것 같아 카페에 들어왔답니다... 저도 얼른 글 올려야는데 좀처럼 속도도 안 나구... 형편도 안되고...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케찹이 나왔었죠... 엄마가 분홍 소세지 구워서 반찬으로 주고 그 귀함 케찹을 통체로 주셨는데... 담임 선생님이 홀라당 가져가서 드셨다는... 흑흑흑 슬픈 소세지에 얽힌 사연이 있답니다....
겨울이 되니 정말 추억할 게 많아지네요... 돌아 볼 것도 많아지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