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21 - 서영남
19일(토)은 초복입니다.
아침에 민들레국수집에 왔더니 태영 씨는 이층방 제 침대에서 자지 않고 바닥에서 잤다고 합니다. 문규 씨는 아이들과 태영 씨 방에서 잤는데 고생을 좀 했나봅니다. 태영 씨가 방에 전등이 나갔는데도 돈이 들까봐 저에게 말하지 않고 그냥 지냈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얼마나 투덜거렸을까요. 도와줄려면 제대로 도와주지, 방에 불도 들어오지 않고, 텔레비전도 없고, 철제 셔터를 내리니 감옥같고 그랬을 것입니다. 문규 씨가 불평하는 아이들을 겨우 달래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고 합니다.
빨리 반찬을 차려서 문규 씨 가족이 식사하도록 했습니다.
닭죽을 끓이기 위해서 큰 닭 열다섯 마리를 푹 고아서 뼈를 발라내고 닭죽을 끓였습니다. 아가다 자매님은 죽을 끓일 자신이 없다고 하셔서 제가 끓였습니다. 대추도 넣고 마늘도 듬뿍 넣고 닭고기도 듬뿍 넣고 맛있게 끓였습니다.
새민들레식구인 해기 씨가 무엇 도울 일이 없는지 왔습니다. 오늘은 자유공원까지 산책하고 왔다고 합니다. 석원씨는 밥 먹는 것보다 잠자는 것이 더 좋다면서 며칠 째 잠만 자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노숙생활이 어려웠으면 잠자는 것이 제일 좋을까요. 해기씨는 노숙할 때는 속에서 증오심만 부글거렸는데 요즘은 이유가 없어도 웃음이 나온다고 합니다. 담배 네 갑을 사서 조금씩 덜 피우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준 아오스딩 형제님이 예진이와 재진이가 먹고싶어하는 햄버거를 사 오셨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잘 먹습니다.
민들레의 꿈 공부방의 데레사 수녀님과 모니카가 차재진과 예진이를 기꺼이 받아주셨습니다. 모니카가 아주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거립니다. 재진이가 두 시간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웅크리고 앉아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더니 저녁무렵에야 웃기 시작하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신나합니다. 재진이와 예진이가 저녁도 잘 먹었다고 합니다.
민들레 신관의 방 전등을 갈았습니다.
내일이 동윤 씨 방세를 내는 날인데 미안한지 밥 먹으러 오질 않습니다. 오후 늦게 가 보았더니 쉬고 있습니다. 왜 밥 먹으러 오질 않는지 물어보았더니 일을 못해서 방세마련을 못했다면서 미안해서 못 가겠다는 것입니다. 내일도 내가 내어줄테니 빨리 일해서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보신탕 먹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문을 닫고 동윤 씨와 성욱 씨 그리고 문규 씨와 태영 씨와 함께 복날 음식을 먹으러 갔습니다. 태영 씨와 문규 씨는 보신탕. 성욱 씨와 동윤 씨는 삼계탕을 먹겠다고 합니다. 저는 보신탕을 시켰습니다. 어제 문규 씨가 이틀을 꿂고 짜장면을 반도 못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괜찮다고 합니다. 제 고기를 태영 씨에게 듬뿍 더 드렸습니다. 꿀맛처럼 맛있게 먹습니다. 옥련동 민들레 식구들을 위해서는 닭백숙을 할 수 있도록 큰닭 두 마리를 성욱 씨 편으로 보냈습니다.
7월 20일(일)
갈매기의 여파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이층은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몇 개의 대야를 펼쳐놓고 새는 물을 받았습니다.
민들레의 꿈의 데레사 수녀님도 혼이 나셨습니다. 전기가 나가고 비도 새고 그랬다고 합니다. 오래된 집이라서 그렇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비애를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폭우가 쏟아질 때는 우리 손님들이 배가 고파도 참습니다. 단 벌 신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배는 고프고 더 참을 수 없을 때 단벌 옷이 젖어도 어쩔수 없이 그 비를 흠뻑 맞고 식사하러 옵니다. 온몸이 다 젖었는데도 갈아입을 엄두도 못내고, 헌옷이라도 없는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옷이 흠뻑 젖은 채 밥을 먹습니다. 눈물이 납니다. 제 옷을 벗어주고 벗은 옷은 아가다 자매님이 빨라서 널어주었습니다.
아침에 문규 씨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오전에 아이들은 민들레국수집 앞의 교회에 갔습니다. 민들레의 꿈 공부방은 수녀님이 계신데 왜 무상으로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아이들을 성당으로 가게 해야지 교회에 가는 것을 그냥 두느냐고 물어봅니다. 전에 청주에 있을 때는 교회에서 노숙자나 노인들에게 밥을 나눠주러 갔을 때는 고맙다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사발면 하나를 주면서도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고 전도를 했는데도 마지막에는 싸우고 그랬는데 여기서는 왜 밥을 그냥 주느냐고 합니다. 그리고 왜 손님들이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가고 그러느냐고 물어봅니다. 사랑은 무조건이어야 합니다. 봉사도 마찬가지로 조건을 달면 봉사가 아니게 됩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점심 쯤에 교회에 갔던 아이들이 왔습니다. 수녀님과 모니카와 함께 오늘은 국수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나 봅니다. 아이들 하나 하나 이름 불러서 인사하게 했습니다. 밥은 양껏 먹고 남기지 말도록 했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에 모니카는 재진이와 예진이를 데리고 베로니카 가게로 다녀오게 했습니다. 아이들과 아이들 아빠의 속옷을 챙겨주기 위해서입니다. 베로니카가 예진이 속옷은 다섯 장, 아빠와 재진이 속옷은 세 장 그리고 슬리퍼도 하나 씩 챙겨주었나봅니다.
점심 후에 동사무소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도와준 물건으로 문규 씨 이삿짐이 제 차로 실어야만 할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차 뒷자리에 짐을 싣고 이사할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착한 총각 배문기 형제가 다음 카페의 그레고리님 가족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그레고리님이 국수집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체면 불구하고 문규 씨 가족을 위한 중고 냉장고와 세탁기 그리고 텔레비전과 가스렌지를 마련해 달라고 했습니다. 함께 중고 가게에 가서 주문을 했습니다.
그레고리님 가족과 아주 행복한 오후를 보냈습니다. 아홉 살 딸과 세 살 아들입니다. 부인도 미인이십니다. 닭죽과 계란프라이로 점심을 드셨습니다. 세 살 꼬마가 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옷이 비에 다 젖어도 좋다고 물장난을 합니다.
엄청 폭우가 몰아칠 때 중고 가게에서 물건을 싣고 왔습니다. 내려서 문규 씨 집에 옮기느라 온몸이 다 젖어버렸습니다.
오후 늦게 국수집에서 그릇과 냄비를 챙겨서 보냈습니다. 이제는 보증금 백만원을 마련하기만 하면 됩니다.
비가 엄청 많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