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참나무 그 여자
윤명수
몸을 보면 살아온 길을 짐작 할 수 있다
온몸에 거미줄처럼 처져 있는
계곡 같이 깊이 팬 주름이 그 증거다
딸린 자식이 하도 많아
하늘을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한 줌의 햇빛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첩첩나무들과 아귀다툼질을 한다
가장 가까운 이웃이 가장 먼 이웃이다
옆집 다래나무가 넝쿨손을 쓰윽 뻗어
허리를 휘감고 찝쩍거리고
염치도 없는 혹 벌은 남의집에다 무허가로
굴피집을 짓고 아예 배 째라 하고
애지중지 키운 자식마저도 털어가는
이웃 도둑들과는 또 싸워야 한다
오죽이나 애가 탔을까
새까맣게 탄 가슴만 내 보이고 있다
만행(卍行)
윤명수
저 많은 돌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개천바닥에서
돌밭에서 천덕꾸러기로 발길에 차였다
때로는 내 발길질에 내가 차이기도 했다
돌로 태어난 죄로
늘 돌 속에서 울었다
맨발로 태어나
맨땅을 밟고
맨발로 돌아다니던 돌 하나가
돌다리를 건넜다
어느 지붕 낮은 집으로 들어가
밑바닥돌이 되었다가
비탈진 곳에 옹벽이 되기도 하고
강이 일어설 때면
등짝을 내주어 디딤돌이 되었다
발목이 시큰 거리도록
돌고 돌다가
이제는 발 뿌리를 내 보이고 있다
맨발이다
고려장 (3)
윤명수
할머니가 지팡이를 휘저으며
빗자루를 들고 뒤란으로 간다
가랑잎들이 귀를 세우고
우르르 몰려와 발등을 덮는다
시간은 멈춰져 있고
손발이 오그라들어 있다
실핏줄까지 앙상하다
한 살림 다 거덜 낸 팔자들이 모여
이빨을 바드득 바드득 갈며
어깨를 떨고 있다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할머니를 빤히 쳐다본다
그런 몰골들이 보기 싫다며
쓸어내고 또 쓸어낸다
앞에서 몰려오고 뒤에서 또 몰려온다
가랑잎들이
자꾸 할머니를 쓸어다 버리고 있다
경북영천 출생
연세대 사회교육원 시창작 수료
월간 문학세계등단
한국문협 경기지부 공로상수상
시집 [풀꽃만찬] [청개구라가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