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보고 전화했는데요. 국토대장정하는 단체 맞죠? 제가 딸아이를 둘이나 보내려고 해서 그런데...(조심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이런거 물어 봐도 실례가 아닐지..."
" 네. 물어보세요." (친절한 말투보다는 무슨 말을 할지 다 안다는 듯한 말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 요즘 하도 성관련 범죄가 많아서요. 너무 불쾌하게는 생각하지 말고 딸가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시고 들어주세요. 저는 딸아이를 둘이나 처음으로 집 밖에서 재워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아이들이 한번도 부모 곁을 떠나 지내 본적이 없어서요. 혹시 이번 캠프에 지도자 선생님들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인솔 선생님 중에 여자 선생님은 안 계시나요? 그리고 또...(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서) 인솔하시는 남자 선생님들에 대해 성범죄 관련 여부를 조회 하실건지요? 너무 불쾌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무례한 말 인줄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물어보게 됩니다." (주눅든 목소리로 무슨 큰 죄를 저지른 사람마냥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저자세로 묻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 뭐라구요? (뜻밖에 물음이였나 보다.) 그렇게 못 믿으면 집에 그냥 데리고 계세요. 제가 국토대장정을 35년이나 하면서 한번도 그런 일이 발생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면 제가 이 행사를 아직까지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불안하고 못 믿으면 보내지 말고 집에 데리고 계세요."
전화기를 내려놓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에게 '혹시 당신이나 당신이 하고자 하는 행사에 진행요원들이 잠정적인 성범죄자가 아닌가요? 혹은 그 전에 성범죄와 관련된 일을 한 이력은 없나요? 라고 묻고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모 방송국의 개그프로그램에 나오는 '용감한 녀석들'처럼 '용감한 엄마'가 되어 내 딸아이들을 안전한 캠프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나를 무례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왜 이런 걸 물어보면서 내가 죄진 사람마냥 굴어야 하지? 당연히 물어 볼 수도 있는 문제고 본인이 범법자가 아니라면 화를 낼 필요도 없잖아'라는 생각이 미치자 되려 내가 불쾌해졌다.
인지도가 높은 일간지 신문에 전면광고를 보고 직접 프로그램을 이끈다는 사람과 전화 인터뷰를 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검색포털 사이트에 캠프를 이끄는 사람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별다른 기사가 없었다. 아들과 함께 세계 여행을 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린 정도였다.
그리고 캠프를 주최하는 단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를 찾아 보았다. 홈페이지에는 유명인사들이 많은 메시지와 일간지 신문사와 방송국에 소개된 기사와 사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홈페이지에 부모들이 참여한 댓글이 없었다는 점과 글을 쓸 수 없도록 차단되어 있었다는 것이였다.
'그래, 국토대장정을 35년이나 진행해 왔다고 하니 믿어보자'라며 마음을 달랬다.
큰 애는 수자원 공사에서 주최하는 물길 답사에 당첨이 돼서 순천으로 떠났고 작은 애는 당첨 되지 않아 울릉도,독도를 출발해서 서울로 걸어 올라오는 국토대장정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새벽 2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저 린인데요. 경찰 아저씨 바꿔 줄께요." 작은애가 경찰과 함께 집으로 전화를 했다. 경찰의 말에 따르면 국토대장정을 이끄는 남자 인솔자에 의해 아이들이 폭행을 당하고 몇몇 여학생들은 성추행을 당해서 행사가 중단되었고 신변보호를 하고 있다는 것이였다.
딸아이를 찾아 서울에서 동해까지 정신없이 달려갔다. 딸아이는 텐트지지대로 종아리를 맞아서 가로로 까맣게 멍이 들어 있었다.
엄마들은 방학이 되면 공부보다는 학기 중에 경험해보지 못한 여러 가지 체험행사나 캠프에 아이들을 보낸다. 더구나 요즘같이 쉽게 가지고 쉽게 소비하고 쉽게 포기하는 아이들에게 조금 힘든 캠프를 통해 참고 견디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한다. 나 역시 이런 마음으로 보낸 캠프였다.
내가 다른 부모들보다 더욱 분노한 이유는 전화 인터뷰할 때 물어보았던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번일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폭행 사실은 배 선원에게 알려 신변보호요청을 했던 여학생과 성추행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여학생들의 용기있는 신고 때문이였다. 학교나 여러 루트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성추행이나 성폭행 혹은 폭력에 대처하는 교육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부모들은 아이를 보낼 캠프를 선정할 때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 인솔 선생님, 프로그램 내용, 참가비용, 참가하는 아이들의 연령등 모든 변수에 대한 것들까지 고민을 하고 거듭 확인하고 또 준비해서 보낸다.
"린이 엄마~ 어떻게 그런 캠프를 보냈어. 돈도 적지 않던데.. 그래도 다행이야. 린이가
많이 안 다치고 성추행 안 당해서.. 그냥 잊어버려."
주변 사람들이 내게 보낸 위로였다.
과연 내 아이가 많이 안 다치고 성추행 안 당해서 감사해야 하나 생각하니 씁쓸했다.
내가 캠프를 주최하는 홈페이지를 열었을때 교과부나 여성가족부 혹은 그밖에 믿을수 있는 정부기관의 인증번호가 있었다면 단체장의 범법사실이나 성범죄 여부가 오픈되어 있었다면 과연 많은 부모님들이 이런 캠프에 아이를 보낼 수 있었을까?
이번일로 딸아이에게 "미안하다. 린아~ 엄마가 좋은데 보낸다는 것이..." 말을 잇지 못하는 내게 "엄마 잘못 아니야. 그 사람이 그 아저씨가 나쁜거야. 괜찮아."하는데 눈물이 핑돌았다.이 제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물러난 이번일이 그냥 해프닝으로 끝나지 말고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인 제도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2012년 박채원 서울 상수초등학교 6학년으로 주암호 물길답사에 참가시켰던 엄마입니다.
원이는 주암호 물길답사에 당첨이 되어 안전하고 즐거운 방학을 보낸데 비해
작은 녀석은 당첨이 되지 않아 끔직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은 원이에 대한 체험을 써야하는데... 이 글을 읽고 나면 주암호 물길답사가 얼마나
투명하고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걷기 행사인지 알수 있을겁니다.
채원이를 즐겁고 행복하게 건강하게 돌려 보내질수 있도록 노력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걱정많이 했습니다. 인터넷뉴스보고 아 채원이 동생이 간 국토순례프로그램인데..하고..
연락도 안되시고..ㅎㅎ 그래도 늦게 나마 이렇게 알려주시니 걱정을 더네요. ^^
올해 동생에게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혹여라도 신청전 보시면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