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초고] 석전 박한영 스님이라면, 어떤 포석을 두었을까ㅡ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와 K불교의 30년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고창 선운사에서 도솔암으로 오르는 길목에 석전기념관이 있다.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 법명 정호(鼎鎬), 법호 영호(映湖). 1870년 완주에서 나서 1948년 내장사에서 입적한 근대 한국불교의 대강백이다. 추사 김정희가 벗 백파에게 건넨 '돌이마'라는 호가 문중 일곱 대를 내려와 그에게 이르렀고, 그 인연으로 그는 승적을 선운사에 두었다. 지금도 이 절에는 영호당비가 서 있고 해마다 추모 다례재가 봉행된다.
9월 3일, 조계종 제38대 총무원장 선거가 치러진다. 9년 만의 경선이고 세 후보가 나섰다. 공교롭게도 그중 한 분이 그 선운사의 주지를 지냈다. 그래서 한 번 물어보고 싶어졌다. 석전이라면 지금 무엇을 두었을까.
그의 포석은 강원이었다
석전의 생애에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자리가 아니라 강원이었다. 1926년 개운사 대원암에 문을 연 전문강원에서 그는 학인들에게 경전만 읽히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루소의 『에밀』을 함께 읽혔다. 세상을 알아야 민족의 내일을 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문 세대의 대강백이면서 조선어 잡지를 냈고, 최남선과 정인보와 홍명희가 그 앞에서 손을 모았다. 종단 바깥의 최고 지성을 안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금강산에서 백두산까지, 한라산에서 묘향산까지 걸으며 국토를 사상으로 삼기도 했다.
그가 자리를 몰랐던 것이 아니다. 1929년 예순에 일곱 교정(敎正)의 하나로 추대되었고, 해방 뒤 일흔여섯에는 조선불교 초대 교정으로 추대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산문 밖을 나서지 않고 강원을 지켰다. 십년수목 백년수인(十年樹木 百年樹人)이라 했다. 나무를 기르는 데 십 년이면 족하나 사람을 기르는 데는 백 년이 든다. 그는 백 년 쪽에 돌을 놓았다.
주목할 것은 그 포석이 대개 지는 판에서 놓였다는 점이다. 일본 조동종과의 합병 음모에 맞선 임제종 운동은 결과만 보면 좌절했다. 사찰령과 본산제 앞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만해·성월·금봉·진응과 엮인 사람의 그물이 남았고, 그 사람들이 이후 삼십 년의 불교계를 떠받쳤다. 석전에게 연합은 이기기 위한 전술이 아니었다. 져도 남는 것을 만드는 방법이었다.
4년으로 할 수 있는 최대치
이 눈으로 보면 이번 선거의 의미도 달리 잡힌다.
총무원장의 임기는 4년이다. 4년으로 종단을 바꿀 수는 없다. 4년으로 할 수 있는 최대치는 그다음 삼십 년을 둘 사람이 일할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총무원장 단임의 종헌 명문화, 선거인단의 단계적 확대, 재정의 투명한 공개, 중앙 권한의 교구 이양. 이 넷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삼십 년짜리 포석이 놓일 수 있도록 판을 고정시키는 일이다. 지금처럼 4년마다 판이 통째로 뒤집히는 구조에서는 아무도 삼십 년을 계획하지 않는다. 계획해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세 후보의 공약을 나란히 놓고 보면 방향이 그리 멀지 않다. 교구 중심제와 승려복지, 선거제도 개선은 세 분이 다 말한다. 문제는 말이 아니라 구속력이다. 공약은 4년 뒤 사라지지만 종헌은 남는다.
그래서 지금 논의되는 후보 단일화도, 그 명분을 승리에 두면 오히려 초라해진다. 산술만 보면 전망은 불투명하다. 선거인단 321명 가운데 4분의 3에 해당하는 240명이 교구종회에서 뽑히고, 중앙종회에서는 이미 과반이 넘는 지지 선언이 나왔다. 단일화를 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나 두 후보가 공동의 강령을 문서로 합의하고 그 위에서 하나로 선다면, 설령 이번에 지더라도 그 문서는 남는다. 4년 뒤 종헌 개정 논의의 출발점이 되고, 그 사이 각 교구에서 먼저 시행할 수도 있다. 반대로 각자도생으로 표만 흩어놓고 헤어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남는 것을 만드는 연합, 그것이 석전의 방식이었다.
정작 급한 것은 사람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여전히 종단 내부의 이야기다. 석전이라면 아마 더 멀리 보았을 것이다.
연간 출가자가 1999년 532명에서 2024년 81명으로 줄었다. 청년·청소년 불자는 전체의 4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처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왜 출가하는가'에 대한 답이 소진된 문제다. 그 답을 다시 만드는 일이야말로 삼십 년이 드는 일이고, 그래서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삼십 년 뒤에도 같은 자리다.
다행히 재료는 이미 우리 안에 있다. 연기(緣起)와 화엄의 상즉상입은 기후위기 시대에 지구를 하나의 몸으로 사유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다. 무소유의 수행은 무한성장을 멈추자는 오늘의 논의보다 천 년이 앞서 있다. 무주상보시와 회향은 데이터와 관계가 부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그 부를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하는 물음에 이미 답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 언어들이 아직 오늘의 말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석전이 식민지 한복판에서 학인들에게 칸트와 마르크스를 읽힌 이유가 여기 있다. 불교가 세상의 언어를 알아야 세상이 불교의 언어를 알아듣는다. K불교가 세계로 나간다는 말이 관광이나 상표에 머물지 않으려면, 화엄을 기후의 언어로, 무주상보시를 경제의 언어로, 인드라망을 인공지능의 언어로 옮길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길러야 한다.
등은 여럿을 켜야 한다
바둑에서 포석의 고수는 중앙의 한 점을 두고 다투지 않는다. 귀를 굳히고 변을 벌린 다음, 중앙이 저절로 따라오게 만든다. 석전이 평생 둔 자리가 그러했다. 교정의 자리는 추대받고도 나서지 않았고, 대신 강원의 등을 켰다. 그 등이 백 년을 갔다.
9월 3일에 결정되는 것은 한 사람의 이름이다. 결정되지 않는 것은 그다음 삼십 년이다. 누가 되든, 그가 남길 것은 자기 이름이 아니라 다음 사람이 놓을 자리여야 한다.
화엄의 인드라망에서는 구슬 하나가 아무리 밝아도 혼자서는 빛나지 않는다. 옆의 구슬을 비추고 그 구슬에 다시 비쳐야 비로소 빛이 된다. 등은 여럿을 켜야 한다. 돌이마라는 우스운 호를 삼십 년 웃으며 지고 다녔던 그 어른이, 지금 우리에게 이르는 말도 그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