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시는 고대 중국의 궁중과 민간에서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잡귀를 쫓아낸다는 뜻으로 베푼 나례(儺禮) 의식에서 사용되던 대표적인 신이다. 『주례(周禮)』에서는 방상시의 모습을 “곰 가죽을 쓰고, 황금빛 눈을 4개 달고, 검은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고 창과 방패를 든다.”(掌蒙熊皮 黃金四目 玄衣朱裳 執伐揚盾)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로부터 잡귀를 쫓는 방법은 수없이 나타났는데, 황금 눈과 검고 붉은 옷을 입은 방상시도 그 소산이라고 하겠다. 그 후 차차 용도가 변하여 장례행렬의 맨 앞에서 춤을 추며 잡귀를 물리치고, 묘지에 도착해서는 시신을 안치하는 광중(壙中)의 네 귀퉁이를 찔러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하였다.
이와 같이 벽사(?邪)의 기능을 지닌 방상시는 이미 오래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1946년 경주 노서리 호우총 고분에서 옻칠을 한 나무 탈이 발굴되었다. ‘목심칠면(木心漆面)’으로 불리는 이 탈의 눈알은 유리로 되었고, 두 눈에는 황금 환이 그려졌다. 이것으로 보아 신라에서는 5~6세기경부터 방상시를 장례에 사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고려사(高麗史』와 『문헌비고(文獻備考)』등에는 궁중의 나례 의식, 임금의 행차, 사신의 영접 등에도 방상시를 사용했다는 기록을 쉽게 찾아 볼 수가 있다. 장례의식에 한 번 쓴 탈은 무덤 근처에서 묻거나 태워 버려 장례 때마다 나무, 종이, 짚 등으로 새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나무로 된 방상시는 궁궐이나 세력가에서, 종이로 된 것은 양반가에서, 짚으로 엮어서 만든 것은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였다.
본 그림의 원제는 ‘상여 앞에 방상제’이며, 채색화가 아니기 때문에 방상시의 옷 색깔을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방상시의 일반적인 차림새에 근거할 때 검은 저고리에 붉은 치마임을 충분히 연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규태의 『한국인의 생활문화』1(2000, 신원문화사)에 보면 “사안 방상은 4품 이상의 벼슬아치, 이안 방상은 4품 이하의 벼슬아치의 초상에 쓰도록 신분에 차별을 두고 있다. -중략- 오른 손에는 장도나 창을,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이를 휘두르며 전진한다. -중략- 주로 형장에서 참수를 하는 망나니가 방상시로 선택받았던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그림 속의 방상시들은 무기를 서로 대칭되게 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방패를 대신하여 쇠망치로 보이는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매우 특이하다. 아울러 방상시의 눈이 4개인 것으로 보아 상여에 모신 망자는 종4품 이상의 벼슬아치이며, 방상시들은 19세기 말의 혼란기에 참수를 집행하던 형장의 망나니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