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아름다운 교회, 작지만 건강한 교회, 작지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
평창지방 반석구역 반석교회 송원준 목사
신학교 시절 찬송가 323장(부름 받아 나선 이몸)을 즐겨 부르며 사명감에 불탔었다. 그러나 처음 이곳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에 위치한 반석교회에 왔을 때 나와 아내는 며칠 동안 할 말을 잃었다.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고 버스는 하루에 두 대가 전부인 이곳에서 정말로 바라볼 수 있는 곳은 하늘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삿짐을 정리하고 하루에 한 번씩 운동 삼아 마을을 돌기 시작했다. 소위 ‘땅밟기’를 흉내 내본 것이다. 50호 가량 위치한 마을을 돌면서 이곳으로 인도하신 그분 뜻을 묻고 또 물었다. 그러던 중 가장 먼저 만나게 된 것이 지금 반석교회 교회학교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은 저마다 아픔과 상처를 갖고 있었다. 아직은 아픔과 상처가 아니라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살아야 할 나이이건만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문제, 아버지의 알코올 문제 그리고 가정 폭력 등등 너무 많은 문제 앞에 놓여 있었다.
이 아이들과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두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하나는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나 되는 녀석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녀석이 구구단을 잘 외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일단 녀석들과 책상에 앉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날마다 좀이 쑤셔서 안절부절 못하는 녀석들과 씨름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한 친구는 지금껏 꼴찌를 맡아 놓고 하던 친구였다. 그런데 녀석에게 체육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혹 자신처럼 방황하는 친구가 있으면 자신도 그 친구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멋진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공부와 담을 쌓고 살던 녀석과 6개월간의 사투 끝에 평창고등학교에 합격하는 결과를 얻어 냈다. 얼마나 좋아하던지 그리고 선생님들이 깜짝 놀라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다음 녀석들과 악기를 만지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드럼이니 기타를 자신들도 치고 싶다는 것이다. 꿈만 같던 일들이다. 그러나 함께 바라고 기도했더니 꿈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찬양단을 위한 헌금을 시작하자 정말로 이곳저곳에서 채워주셨다. 그래서 드럼을 사고 음향시설도 새로 장만하고 베이스 기타며 전자 기타도 지원을 받았다. 그때부터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몇 년 만에 다시 기타를 집어야 했고 드럼도 배우러 다녀야 했다. 그런데 악기를 만지며 좋아하던 녀석들 표정, 특히 새로 산 드럼을 닦으며 지르던 함성은 그야말로 내겐 은혜였고 에너지 충전이었다.
학생부가 이렇게 만들어지자 아동부 친구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어린 친구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미탄에서 처음으로 강원외고에 입학한 우정이 형처럼. 그리고 훌륭한 수영선수가 되기 위해서 강원체고로 간 봉기 형처럼 너희들도 피아노를 치고 기타를 치면서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너희들 길을 인도해 주실 거야.”
이 아이들과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요즘은 매일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평창읍내로 피아노와 플롯 그리고 바이올린을 배우러 다닌다. 어쩌면 몇 년 안에 반석 앙상블이 만들어 질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폭력적이던 아이들, 산만하던 아이들 무턱대고 땡깡을 놓던 아이들이 교회로 모여들면서 점점 예배의 도구로 주님의 제자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친구들을 보면서 난색을 표하던 성도들도 지금은 녀석들을 꼭 끌어안고는 축복기도를 빼먹지 않는다.
지난 가을에는 매주일 오후 ‘숲에서 만나는 주님!!’ 이라는 주제로 숲속예배를 드렸다. 어찌나 좋아하던지
“목사님 풀은 자기 몸을 일부러 소나 염소에게 주는 거 맞죠? 그러면 소나 염소가 똥을 싸면 그 속에서 풀씨가…….” 녀석들은 말을 하다 말고 코를 막고는 웃어댄다.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함께 신앙생활 하던 중 요양원으로 가신 한 성도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요양원으로 가신지 한 달이 채 안되었을 때 일이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남일 같지 않으신 모양이다.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저는 요, 제발 요양원 가지 않게 해달라고 지금 기도하고 있어요.”
그렇게 기도하시던 엄 권사님 평생 기도제목은 죽기 전에 교회 근처로 와서 아버지 집을 섬기는 것이었다. 그때껏 살고 계시던 집도 오래된 흙집이라 여기저기 무너지고 있었다.
“목사님 오늘은 이 위로 큰 트럭이 스무 대나 지나갔어요. 무슨 공사를 하나 보지요? 아무개 아배는 트럭에 나무를 잔뜩 실고 내려 가대요.”
심방을 가면 권사님께서 해주시는 이야기 속에서 권사님 일상을 짐작 해볼 수 있다. 그래서 교회 한켠에 작은 집을 하나 짓기 시작했다. ‘안나의 집’
평생 주님을 고대하며 성전에서 살았던 안나처럼(눅2:36-38) 마지막을 성전에서 보내고 싶은 분들이 모여서 살 수 있는 작은 거처가 마련된 샘이다. 그리고 우리 권사님께서 가장 먼저 입주하셨다.
“다들 요양원 가기 싫으시잖아요? 그러면 나중에 몸이 불편해지시면 안나의 집으로 오세요. 같이 모여 살자고요.”
이 말에 다른 분들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낙이 없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분들은 정말로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실버우크(Silver Uke)’라는 우크렐레 찬양단을 만들었다. 처음 우크렐레 찬양단을 모집한다고 했을 때 다들 손을 저었다. 이 나이에 무슨 악기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처음 우크렐레를 만지자마자 다들 반납하셨다. 그런데 맞불을 놓았다. 평창지방연합찬양제에 반석교회 ‘실버우크’이름으로 참가신청서를 낸 것이다. 다들 얼마나 난감해 하시던지……. 그러나 한달을 모여 연습했다. 그리고 무대에 섰는데 그 때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 집사님 딸에게는 전화가 왔다. 엄마가 손에서 우크렐레를 놓지 않으신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말이다.
여름이면 여름 성경학교다. 수련회다. 아이들은 바쁘게 돌아가는데 정작 어른들은 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어른성경학교’다. 특별히 어른 성경학교는 온 마을 어른들을 대상으로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던 분들이 저마다 어른 성경학교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선생님을 따라서 율동도 따라하고 찬양도 부른다. 얼마나 웃고 신나는지 어른성경학교 또 언제하냐고 찾는 분들도 계신다.
언젠가 한 권사님께서 물으셨다.
“목사님은 언제 가실 참이래요?”
“왜요? 빨리 갈까요?”
“목사님은 우리 죽기 전까지 가지 마세요!”
“참말이래요. 이런 말 하는 거 염치없는 거 알지만요 목사님은 오래오래 계시면 좋겠어요.”
저녁 기도회 시간에 맞춰 다들 교회로 오신다. 지팡이를 짚고 유모차를 끌고 말이다.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철원 산골짜기에서 예수원을 일군 대천덕 신부 말을 오늘도 되새겨본다.
믿음으로 사명으로
작지만 아름다운 교회, 작지만 건강한 교회, 작지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평창지방 반석교회
평창지방연합찬양제 당일. 나이 지긋한 어르신 몇 분이 잔뜩 긴장한 채 무대 뒤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손에 든 우크렐레의 미세한 떨림이 지금의 심정을 그대로 전한다. 지난 한 달간의 구슬땀이 무색해지지 않게, 나이를 탓하며 겁먹고 포기하려던 자신들을 다독여 다시 세우신 목사님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잘해내고 내려오리라 다짐해 본다. 그렇게 무대에 오른 반석교회 우크렐레 찬양단 ‘실버우크’(Silver Uku)는 그날 형용할 수 없는 감격을 맛보았다. 한 집사님 따님은 전화까지 했다. “엄마가 손에서 우크렐레를 놓지 않으세요.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고 버스는 하루에 두 대가 전부인 이곳에 반석교회(담임 송원준 목사)가 있다. 보이는 건 하늘뿐인 이곳에 부임한 송 목사 부부는 처음 며칠은 말조차 잃었다. 그저 50호 남짓한 마을을 돌며 그분의 뜻을 묻고 또 물을 뿐이었다. 그러다 만난 것이 지금의 교회학교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아픔과 상처를 안고 있었다. 아직은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나이건만 부모의 이혼, 알코올 중독, 가정폭력 등 그들의 현실은 너무나 가혹했다. 당연히 생활도 제대로일 리 만무했다. 폭력적이며 산만하고 제멋대로인데다 학업도 엉망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나 되는 녀석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초등학교 6학년이 구구단을 더듬는 것을 보면서 일단 책상에 앉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좀이 쑤셔 안절부절못하는 녀석들과의 씨름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한 아이는 소문난 붙박이 꼴찌였다. 그런데 송 목사는 녀석에게 체육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처럼 방황하는 친구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멋진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녀석과 6개월간의 사투 끝에 평창고등학교에 합격을 했어요. 얼마나 좋아하던지…. 선생님들의 깜짝 놀라던 모습도 여전히 눈에 선해요.”
아이들과 악기도 만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드럼이나 기타는 사실 텔레비전에서나 보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함께 바라고 기도했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찬양단을 위한 헌금을 시작하자 정말로 이곳저곳에서 채워 주신 것이다. 송 목사는 더욱 바빠졌다. 몇 년 만에 다시 기타를 잡아야 했고, 드럼도 배우러 다녀야 했다. 하지만 악기를 만지며 좋아하는 얼굴들, 특히 새로 산 드럼을 닦으며 지르던 함성은 그야말로 그에겐 은혜였다.
이렇게 학생부가 만들어지자 아동부도 모여들었다. 그들에게 꿈을 심어 주었다. “미탄에서 처음으로 강원외고에 입학한 우정이 형처럼, 훌륭한 수영선수가 되려고 강원체고에 간 봉기 형처럼 너희도 피아노를 치고 기타를 치면서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너희 길을 인도해 주실 거야.” 요즘은 매일 차로 20분 거리의 평창읍내로 피아노와 플루트, 바이올린을 배우러 다닌다. 몇 년 안에 ‘반석 앙상블’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난색을 표하던 성도들도 지금은 녀석들을 꼭 끌어안고 축복기도를 잊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요양원으로 가신 한 성도님이 한 달이 채 안 돼 갑자기 돌아가시는 일이 생겼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은 남 일 같지 않아하셨다.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저는요, 제발 요양원 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외롭게 살다가 쓸쓸히 가시는 그분들을 위해 송 목사는 교회 한편에 작은 집을 하나 지었다. ‘안나의 집’. 마지막을 성전에서 보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작은 거처다. “다들 요양원 가기 싫으시잖아요. 나중에 몸이 불편해지시면 안나의 집으로 오세요. 같이 모여 살자고요.”
그런데 모여 산다고 끝이 아니었다. 모여서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하루 종일 낙이 없다. 그래서 만든 것이 ‘실버우크’다. 찬양제까지 마치고 난 지금은 처음의 쑥스러워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조차 없다. 여름이면 ‘어른성경학교’도 열린다. 그날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마을 어르신들까지도 함께 모여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율동도 따라하고 찬양도 부른다. 벌써부터 날짜를 묻고 기다리시는 분들이 있단다.
“목사님은 언제 가실 참이래요?” “왜요? 빨리 갈까요?” “목사님은 우리 죽기 전까지 가지 마세요!” “참말이래요. 이런 말 하는 거 염치없는 거 알지만요, 목사님은 오래오래 계시면 좋겠어요.”
반석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목회자와 성도들. 이 아름다운 여정에 ‘작음’이 무슨 문제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