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그랬었지..~!!
백화 문상희/ 산문 수필
정말로 그때는 그랬었다~!!
설 전날 잠자면 눈썹이 하얗게 쉰다고 하였고,
섣달 그믐날 뜨는 달은 눈썹달이라 부르기도 했었다
부모님 살아계실제 필자의 집은 종갓집이었다
설 전날이면 사랑방엔 집안 어른들 다 모였었고
한쪽은 장기판에 또 한쪽은 육백 화투놀이에..
설은 내일인데 벌써 명절 기분이었으니..
정지간에는 주안상 내오느라 정신없이 바빴고,
곳간에 담가놓은 커다란 막걸리 단지
바닥 긁는 바가지 소리가 났었다
작은방엔 사촌에 오촌까지 대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웠으며,
나이 어린 동생들은 벌써 구석지에서 코를 골았고
읍내에 사는 사촌 형은 도심 자랑에 열중이었으니
그렇게 노닥거리다 잠이 들었고
호통소리에 놀라 일어나면 설날 아침이었다
어른들은 화투놀이 삼매경이었지만
어린 우리들은 설날 십 원짜리 지폐 세뱃돈에,
과연 무슨 선물을 받을까 궁금증에 잠을 설쳤다
일 년에 두 번 돌아오는 설, 추석 명절
선물로 받아 드는 검정 고무신
운 좋으면 밋밋한 실내화도 고학년 형들것이고
설날 운동복 한벌은 최고급 선물이었으니,
오죽하면 꼬까옷 꼬까신이라 했을까~!
1970년대 춥고 배고픈 시절,
삼시세끼 때꺼리가 걱정이었으니..
선물이라는 게 있을 리가 만무하다
생일 선물~?"
받아본 역사가 없다
산골에서 케이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으니
그저 굶지 않고 배부르면 그만이요,
겉옷에 심지어 내복까지 대물림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두메산골 촌놈이었다
933m 백화산 아래 살던 집은 500 고지요,
학교 운동장도 300 고지다
시오리 길 등교하면 바짓가랑이는 이슬에 젖고,
고무신엔 물이 가득해 양말을 짜면 물이 뚝뚝
떨어졌다
2교시 끝나면 배가 등짝에 붙었으니 허허 참,
점심 도시락은 엄두도 못 내고 학교 옥수수 죽
배식이 최고급 특식이었다
혹시나 배식이 남으면 더 먹을 수 있을까 해서
후다닥 먹어치우고 다시 줄을 선적도 있었지
지금 와서 생각하니 아련한 추억에 젖어 피식,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런 이야기를 새삼스레 왜 할까?"
나름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변해 디지털 시대다
먹거리는 넘쳐나고 무엇이든 못 사는 게 없으니..
시대적 변화로 현금도 필요가 없다
카드 하나면 모든 것이 만사 OK,
그것도 불편하다고 폰에 카드를 내장해서 쓰고
폰으로 현장에서 계좌이체로 결재하는 세상이다
어려운 시절을 겪어서인지
필자는 오래된 옷도 버리지를 못한다
행여나 필요할 때가 있으려니 하면서 말이다
나이 들어 낙향하면 요긴하게 입을 텐데 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말이다
요즘 시대에 자식을 키우다 보니 그렇다,
아이들 신발도 외투도 여러 벌이 있다 보니
헤지고 바래서 못 입고 못 신는 게 아니라
그저 싫증 나면 내다 버리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의류 재활용 통은 항상 가득하다
우리 세대가 살던 시대와는 너무도 천양지차다
먹거리도 입을 옷도 흔하디 흔한 시대,
넘쳐나는 쓰레기로 인한 지구촌 몸살이라
포만감에 젖어사는 현시점에서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지만
명절이면 해외여행 비행기표가 매진이라니..
쯔쯔쯔.. 제발, 제발,
낭비가 심한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시점이요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도 해보고
아끼고 절약하고 때로는 재활용도 하고
그래도 남는다면 작은 기부도 좋은 것 아닐까 한다
나눔과 베풂으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이웃도 보살피고
홀로 살아가는 어르신들과 작은 나눔으로
설 명절이 따뜻한 온정으로 가득했으면,
다 함께 웃음소리 가득한 명절이 되었으면,
보잘것없는 이 글 나부랭이가
행복한 삶의 촉진제가 되었으면 바렘이다.
*섣달 그믐날 즉흥적으로 쓴 산문 수필입니다*
*아래는 작가 미상의 벽화를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