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 노아Noah 그리고 술
인류의 역사에서 술의 기원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 고대 이집트·그리스·로마와 중국과 우리나라 건국 신화에도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술이 인간의 역사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홍수심판 이후 노아가 정착한 곳은 아라라트산(터키 동쪽에 있는 해발 5,165m) 근처인데 이곳은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의 소아시아 지방으로 포도의 원산지로 알려진 곳이다.술의 원료가 되는 포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생산량을 기록하는 대표적 과일이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포도를 재배했고 약재와 술로 빚어 사용해왔다.
구약성경에서는 의인 노아 Noah는 대홍수 이후, 포도를 가꾼 첫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 채 자기 천막 안에 누워 있었다. 그때 노아의 큰아들 함이 아버지의 알몸을 보았다. 그리고 밖에 있는 자기 두 동생에게 아버지가 술에 취해 알몸으로 누워 있다고 알렸다. 그런데 노아의 작은 아들 야펫과 막내아들 셈은 같이 겉옷을 집어 걸치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알몸을 덮어 드렸다. 두 사람은 얼굴을 돌린 채 아버지의 알몸을 보지 않았다. 술에서 깨어난 노아는 아들들이 한 일을 보고 가나안에게는 저주를 야펫 특히 셈에게는 구원자 계승을 축복한다.
어떤 성서 학자는 노아가 원조 아담이 금기 선악과를 먹은 뒤 죄를 지었듯이 노아도 과음하지 말아야 할 술을 마시는 주사를 부리는 죄를 졌다고 한다. 그러나 창세기 저자의 이 본문에서 요점은 술이 아니다. 어떻게 장자권 구원의 역사를 셈이 이어가게 되었는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창세기는 사회종교 질서를 상당 부분 조직화 체계화한 유다인들이 주전 500년경 저술한 책이다. 창세기보다 더 늦게 저술된 레위기에는 인간이 하느님을 닮아 거룩해야 한다고 한다. 특히 18-20장까지는 길고 자세하게 인간의 성性) 존재에 대한 거룩함을 제시하고 있다. 이 내용에 의하면 부모 형제와 그의 가까운 일가친척의 성은 금기 영역이다. 공동 번역은 ‘부끄러운 곳’ 새 성경은 ‘치부恥部’라고 하는데, 내 판단에는 존재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으로 치부도 부끄러운 곳도 아닌 ‘성스러운 곳’이다. 윤리신학을 공부하던 시절 가장 기억되는 것이 “성性은 구원의 도구”라고 한 정의와도 연결된다. 이때 성性은 신체의 한 부분이 아닌, 존재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우리 말에도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持父母’ 라고 하는 말이 있다. 몸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기에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도라는 뜻이다. 성경은 성)존재를 구원의 도구를 넘어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무한 확장한다.(1코린 3,16-17;6,19).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어 하느님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존재를 존중하지 않고 경시하고 폭력을 행하는 태도는 저주와 심판으로 이어졌다.
성조 시대 야곱의 첫 아들은 르우벤이다. 르우벤은 장자로서의 일면도 있었지만(창 37,21~22), 아버지인 야곱의 소실 빌하를 성추행한 추악한 죄로 장자권)구원자 계승을 받을 수 없었다. 그의 몫은 유다가 받았다. 왕조 시대 다윗 왕은 왕권 강화를 위해 여러 여성과 정략 결혼을 하였다. 다윗 왕이 죽은 후 왕권쟁탈을 위해 몇 차례 왕자의 난이 벌어졌다. 다윗의 생물학적 맏아들은 암논이었는데, 그는 배다른 공주 타마르를 범한 뒤 타마르의 친오빠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했다. 아들 서열 3위 압살롬은 그수르 왕국의 공주 출신 마아카의 아들로 왕족 출신이다. 게다가 온 이스라엘에서 가장 잘생기고 흠잡을 데 없이 칭찬받는 왕자였다. 잘만했으면 왕권은 압살롬 것이었다. 그런데 이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에게 반역을 일으켰다. 게다가 아버지 다윗의 책사인 아히토펠의 책략에 넘어가 온 이스라엘에 소문이 나도록 아버지의 여자 후궁 10명을 성추행하였다. 막강한 권력을 앞두고 아버지 다윗을 넘어선다는 과시와 우월 행위였지만, 그로써 왕권을 압살롬에게 돌아갈 수 없는 강이 되었다. 그러자 서열 4위 아도니야가 또 왕위에 침을 흘렸고 사태가 어렵게 돌아가자 아버지가 늘그막에 취한 수넴 여자 아비삭을 청했다. 이 역시 왕권 도전에 대한 심각하고 노골적인 행위였으므로, 다윗과 바쎄바에게서 태어난 솔로몬에게 제거되는 운명을 겪어야 했다. 세 왕자가 모두 레위기의 성결법을 거스리는 죄를 범했기에 왕권을 계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솔로몬도 다윗과 부하 우리야의 아내였던 바쎄바의 불륜 관계로 태어난 아들이다. 그러나 솔로몬이 예사롭지 않은 인물됨을 알아 그 줄에서서 지지하던 예언자 나탄과 어머니 바쎄바의 치맛 바람과 용사 브나야와 상당수 유력한 세력들이 솔로몬을 밀었고 아버지 다윗의 요지부동 유언으로 왕권을 계승할 수 있었다.
창세기 9,18-29의 본문에서 요점은 술이 아닌 장자권 즉 구원자 계승에 대한 이야기다. 노아의 맏아들 함은 어쩌다 아버지의 저주를 받고 장자권을 상실하고 비천한 가나안족의 조상으로 전락했는지, 야펫과 특히 막내아들 셈은 어떻게 형을 장자권을 받아 구원자 반열에 들 수 있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입력:최 마리 에스텔 수녀/ 2024년 10월 02일 PM 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