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열정과 기쁨을 가진 듯
흥분과 혐오를 가진 듯
일을 주도하는 듯
인내하는 듯
오, 영웅이여,
집착이 없이 이 세상에서 유희하십시오.
집착이 없는
평온한 마음으로
겉으로는
모든 상황 속에서
그대가 맡은 역할을 하십시오.
오, 영웅이여,
세상에서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유희하십시오.
[요가 바시슈타, 5-18, v.24-26]
28
아트만의 지식으로 진리에 자리 잡고
다섯 감각들을 정복한 사람을
지식의 불, 지식의 번개를 휘두르는 사람으로,
시간을 정복한 사람으로
죽음을 살해한 영웅이라 부르십시오.
[요가 바시슈타, 미확인 시]
29.
대지 위에 봄이 오면
나무들이 잎을 내어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듯이
진리를 본 사람은
점점 더해가는 빛, 지성, 힘으로 빛날 것입니다.
[요가 바시슈타, 5-76, v.20]
30.
이야기를 들을 때
생각들을 멀리로 보낸 사람처럼
집착에서 벗어난 마음은
행위를 하는 동안에도 움직임이 없습니다.
집착하는 마음은
비록 가만히 있어도 행위를 합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잠자는 듯하지만
그는 꿈속에서
산을 오르고 떨어지기도 합니다.
[요가 바시슈타, 5-56, v.13, 14]
31.
잠자는 승객은
소가 끄는 수레가 출발하고, 가고, 멈추어도
그것들을 알지 못합니다.
이처럼 신체라는 수레에서 잠자고 있는 현자는
행위, 명상, 잠과 같은 것들을 그는 알지 못합니다.
[바가반]
32. 탐구를 하면
깨어있음, 꿈과 잠을 넘어서는 상태를 발견합니다.
그 상태를 깨어있는 잠 혹은 투리야 라고 합니다.
이 투리야 상태만이 실재이고
세 상태들은 환영들에 불과합니다.
이 ‘네 번째’를 초월의 상태라 합니다.
[바가반]
33.
갸니는
과거에 축적한 카르마와 미래에 펼쳐질 카르마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갸니가 현생에 펼쳐지는 카르마를 가진다는 말은
무지한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형식적인 답변일 뿐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들은
모두 과부가 됩니다.
이와 마찬지로 행위자가 사라지면,
세 가지 카르마들 모두는 사라집니다.
[바가반]
34.
배움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내, 아이들과 딸린 식객들 등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가족밖에 없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의 마음에는
요가의 장애물인
책들, 이론들, 견해들로 된 많은 가족들이 있습니다.
[수바쉬타 라트나 반다가라, 프라카라나 VI, 샹타 라사 니르데샤, v. 13.]
35.
‘나는 어디로부터 태어났는가?’라고 물어
운명을 지워버리지 않는
배운 사람들에게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 아루나찰라의 신이시여,
그들은 녹음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의미도 모른 채 말만 배워 반복합니다.
[바가반]
36.
학식은 있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사람들보다
학식이 없는 사람들이 더 쉽게 구원을 받습니다.
학식이 없는 사람들은
자만심이라는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어
소용돌이치는 많은 생각들과 말의 병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들은 부에 대한 강박적인 추구를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많은 질병들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바가반]
37.
사람이 세상을 한 가닥 지푸라기로 여기고
자신의 손에 온갖 신성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만약 그가 매춘부 같은 아첨에게 굴복한다면
속박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입니다.
[슈리 사다쉬바 브라멘드라의 사다카 아바스타]
38.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참된 상태를 벗어나지 않고
항상 자신의 나 안에 있다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그에게 무슨 말을 한들 무슨 상관이 입습니까?
누가 자신을 칭찬하거나 비난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바가반]
39.
마음으로 아드바이타를 간직하되
절대 행동으로는 옮기지 마십시오.
설령 그대가 아트바이타를 세 세상에 적용한다 할지라도,
오, 아들이여, 그것을 구루에게는 적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샹카라차리야의 타트보파데사,v.87]
40.
나는 베단타 신조의 마지막 정수를 선언할 것입니다.
자아가 죽어 그것이 되면
그것만이 홀로 존재합니다.
그것은 순수한 자각입니다.
그것이 나입니다.
[산스크리트 시를 바가반이 타밀 어로 바꾼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