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축총림 통도사 - 겨울 수련회
내겐 인연이 많은 절이다.
수련회도 두 번째고 잠간씩 들른 것도 여러 번이니 내가 사는 서울에서 먼 거리로 따진다면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통도사의 위상이 큰 것이고,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신 불보사찰로서 불자면 누구나 오고 싶은 곳이 아니겠는가.
내가 처음 교사 불자회와 인연을 맺은 곳도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10년 전쯤 겨울. 낯선 사람들 속에서 예불도 경도 절하는 방법도 제대로 모른 채,
불교의 교리가 무엇 인지,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그 열망만으로 동참했던 그때가 새삼스럽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 무언가 조금 알 듯도 싶은데, 들어갈수록 혼란스럽고 더욱 모를 뿐. 하지만 거부감 없이 그 끝없는 매력에 더욱 빠지고 싶은 것이 작은 기쁨이랄까?
금년도 겨울수련회는 지난 1월21부터 24일 까지 부산 파라미타 청소년협회 주최로 교원 특수 분야 직무연수와 함께 3박4일의 일정이었다. 이미 퇴임한 나로선 전 일정을 참여하기가 조금 어려울 것 같아 하루를 줄이고 2박3일로 여정을 잡았다. 나를 불자회로 이끈 임완숙회장과 함께 둘이서 통도사를 찾아가는 길이 꽤 설레기도 한다.
주말 Ktx표를 예매하지 못해 서울역에서 입석이라도 타려했던 우리 생각은 어긋났다. 입석표도 매진이란다. 사람들의 이동량이 이렇게 많으리라곤 정말 상상하지 못했다.
동서울터미널로 방향을 바꿔 양산행 직행버스를 탔다. 좌석은 더 넓고 편한데 시간은 배로 걸린다. 4시간 30분. 오후 수업 시간에 도착은 못하겠지만 차창 밖으로 우리의 아기자기한 겨울 산들을 감상할 수 있는 즐거움이 덤으로 주어졌다.
요즘 이 친구와 자주 여행을 함께한다. 지난여름 둔황에서, 지난 가을 축서사, 그리고 또.
서로 배려해주는 친구와 불편함이 없는 참 느긋한 여행이다.
늦은 오후의 경내는 참 한가롭다. 전보다 더 잘 정비된 깨끗한 사찰. 입구에서부터 굵직한 소나무들이 반겨준다. 서로 어울려 휘어진 곡선들이 예술품을 보는 듯 멋스럽다. 이곳 소나무들은 곧게 자란 것보다 서로 조우하듯 어울려져 긴 터널을 이룬다. 전에는 못 느꼈는데 그사이 굽어진 것도 아닐 테고, 그 땐 내 마음이 나무를 바라 볼 여유가 없었던 걸까?
반가운 얼굴들이 우리를 맞아준다. 전에 묵었던 선방엔 선생님들이 비좁을 만큼 가득했다.
150분이 넘는 선생님이 참석하셨다니 많은 분이 함께 할 수 있어 기쁘다.
저녁 공양 후 강의에 함께 했다.
조성래 교수의 「멈춤과 관찰을 함께하는 지관(止觀)수행」 첫 시간 강의는 못 들었으나
부처님의 선정법 멈춤(samatha, 止)과 관찰(vipassana, 觀)에 대한 것이었다.
멈춤과 관찰을 반복하여 닦아, 오온(色受想行識)이 허망함(개공)을 깨달았을 때, 반야지혜가 나타나고 지혜의 눈으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色受想行識)을 꿰뚫어 보아 無常, 苦, 無我를 깨닫게 된다는 것. 깨달음으로 인해 모든 탐욕과 집착심을 여의고 결국에는 열반을 이루게 된다.
멈춤은 마음을 한 대상에 묶어놓아 현재 이 순간에 내 마음에서 탐진치의 번뇌가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마음의 선한 자질을 길러 더 이상 업을 짓지 않게 하고 이미 형성된 업을 소멸시킨다. 그러나 멈춤 수행만으로는 마음속 깊이 숨어 있는 번뇌를 뿌리까지 제거할 수가 없다. 그래서 관찰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고요함과 깨어있음을 동시에 유지하기 위해 마음이 의지하여 머물 곳을 만들어 주셨다. 곧 사념처(몸[身], 느낌[受], 마음[心], 법[法])이다.
몸의 움직임과 들숨, 날숨을 관찰하고,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관찰하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나 욕구, 의도, 싫어함, 화냄, 어리석음 등을 관찰해가며 고요함과 깨어있음을 유지해가면 궁극에 가서는 무상, 고, 무아의 법을 보라 하신다.
한 순간도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나. 아상, 아만, 아집으로 똘똘 뭉쳐 그 껍질을 깨트리지 못하고 언제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만 무장하는 나에게 어느 스님의 말씀처럼 내안에 있는 붓다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영원히 불가능한 것은 아닌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십악 참회를 외우면서 더 이상 죄 짓지 않게 해달라고 매달리고 노력하는 그것조차도 탐욕적인 바램 뿐 인 것을..
잠을 설치고 새벽예불 올릴 준비를 마쳤는데, 도량석 소리는 기척도 없다. 문득 시계를 쳐다보니 아직 1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각이다. 어둠 속에 앉아 어저녁 강의를 떠올리며 내 호흡을 느껴본다. 코로 배로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다 어느 사이 생각에 빠져든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망상들. 언제나 멈춤을 얻을 수 있는가?
설법당 너른 방안에 부처님의 빈 방석이 적적하다. 정우 주지스님을 모시고 여러 스님들과 함께 새벽 예불을 올리는 자리라 더 경건해짐을 느낀다. 좀 더 많은 선생님들이 이 느낌을 함께 받았으면 좋으련만...
어둠을 헤치고 금강계단 앞 대웅전으로 올랐다. 몇 개의 촛불만 켜놓은 어두운 법당 안에서 유리를 통해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을 바라보며 마음 속 가득한 번뇌를 내려놓는다.
오전부터 다시 강의가 시작 된다.
사실 이번 연수는 -전통문화 바로 알기-가 주제였다.
우인보 박사님의 한국 사찰의 탑과 불상. 서치상 교수의 전통 사찰의 가람배치.
흥미로운 내용에 귀를 기우리다가 꿈뻑 졸음을 이기지 못한다. 거의 잠을 못잔 탓이다.
최은령 문화재 감정위원의 석굴암의 미와 정신세계.
오래 전 어느 교수님이 흥분하셔서 열강 하시던 기억이 새롭다. 연화대좌 위에 높이 앉으신 부처님이 바라보고 계신 곳.
동동남 방위로만 알고 있던 그곳, 동해구 바다 속에서 대왕암이 발견된 것이다. 죽어서 해신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하신 유언대로 바다에 수장했던 통일신라 문무대왕의 능.
부처님은 그 곳을 지키고 계셨음이니. 교수님의 그 감동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강사의 맑은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석굴암의 의미를 짚어본다.
월요일(24일) 연수 끝날.
새벽에 대웅전 예불을 끝내고 내려오다 어둠 속에서 발목을 접질러 넘어졌다. 다행히 심한 것은 아닌 듯. 절둑거리며 암자순례에 나섰다. 걷지 않아도 차로 암자까지 도착할 수 있어 다행이다.
통도사 창건주 자장율사가 수도하신 자장암, 금와 보살의 설화가 유명하다. 차디찬 바위 구멍에 열심히 눈을 대고 들여다보아도 캄캄한 어둠 뿐. 이 엄동설한에 보살님 동면하시고 계시겠지…
암자를 찾아 가는 길에 병풍처럼 둘러 처진 영축산의 모습이 이채롭다. 밝은 재빛의 바위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여느 산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정말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법하신 인도의 영축산을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 여기 산 이름을 영축산이라 하고 통도사를 지어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었는가!
관음암, 반야암, 서축암, 몇군데의 암자를 둘러 보았다. 모두 암자라기 보다는 어엿한 절 한 채라는 느낌이다. 반야암의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경내가 오래 전 와 보았던 기억을 되살려준다.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 오니 영남 사람들의 지극한 불심을 알 것만 같다.
점심 공양 후 부산 석포여중 전정옥 교사의 청소년 지도 요령 강의. 내게는 젊어만 보이는 여선생님이 어떻게 그런 인내심과 학생에 대한 사랑, 그리고 지도가 있었는지 감동스럽다. 학교에 근무하던 때를 생각하며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반성이 나를 씁쓸하게 한다,
마지막 우리에게 큰 선물이 남아 있었다. 통도사 회주 지안 큰스님 설법을 듣게 된 것.
탐진치 삼독에서 모진 마음이 생기니 이것을 순화시켜 인간 본래의 마음을 찾아가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라 하신다.
‘마음이 곧 부처다’ ‘마음 밖에 법이 없다’ 이 말을 참구해 나가면, 결국 우리의 행동과 말을 참하는 마음을 가지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 번뇌를 극복할 때 참 나를 찾을 수 있다. 내 속의 부처의 마음을 찾아야 한다. 귀일심(歸一心)
너무나 길고 추운 겨울이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 따사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겨울 수련회.
큰스님 말씀대로 모든 욕망과 어리석음을 놓아버리고 내 마음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 안경희
첫댓글 서울지부 안경희 선생님의 통도사 겨울수련회 소감문 서울지부에 올린글을 여기에 옮겼습니다.
다시 읽어도 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좋은 글입니다. 이렇게 수련회나 사찰순례를 할때마다 꼭 좋은 글 올려주시는 안경희 대보살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사불자회의 역사를 쓰고 계신 거지요,...
네 정말 고마우신 우리 안경희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전국교사 불자연합회 사무실 지킴이도 봉사를 해주십니다. 덕분에 우리 불자회는 더욱 발전을 합니다. 다시금 안경희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겨울 수련회 글 잘 읽었습니다. 전 이곳 가입은 오래전에 했는데 수련회는 한번도 참석을 못했습니다. 이제 둘째도 대학교를 보냈으니 이제부터는 수련회나 모임 꼭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다음에 이글 너무 맛깔나게 쓰신 선생님도 뵙게 되길 기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