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운림산방을 거의 10년만에 다시 왔습니다
완전히 재정비를 거쳐 예전의 소박한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답니다.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나름 반듯한 모습도 괜찮았답니다.
운림산방은 남종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 선생이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화실로 사용했던 고택이랍니다.
새벽이면 산안개, 물안개가 일어나
구름처럼 주변을 감쌌다고 지어진 당호지요.
동백꽃이 무리지어 떨어져 있었고,
운림지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오래 전, 6월의 어느 날 새벽에 왔을 때
물안개가 자욱하게 일어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몽환적으로 만들었던
그 풍경을 잊을 수가 없네요.
연못 가운데 섬에 심은 배롱나무와,
연못가의 자목련과,
아직은 어려 보이는 일지매가
소치 선생이 심었다는 3대 나무들이랍니다.
일지매는 초의선사가 거주했던 '일지암'에서 매화를 분주하여
소치가 운림산방을 열자, 선물로 보낸 것이지요.
그러나 그 나무는 1995년경 고사했고,
죽기 전 뿌리나눔으로 길러낸 2대 매화가 이 나무라고 합니다.
3월 16일 아침,
이제 막 꽃망울 열기 시작하고 있었답니다.
기와를 얹어 깔끔하게 새로 지은 이 운림산방은 후대,
그러니까 소치 선생의 손자인
남농 허건 화백이 신축한 건물이랍니다.
한 쪽 방안에 소치 선생의 밀랍인형이 앉아 계셔요
뒷쪽에 있는 이 초가집이 실제로 소치 선생이 거주했던 집이랍니다.
'소허암'이란 당호가 붙었는데,
아마도 추사 선생이나 초의 선사가 내린 당호가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소허암 화단에는 흰수선화가 무리지어 피었는데
꼭 선생에게 바치는 조화(弔花)처럼 느껴졌답니다.
예전에는 없었던 전시관 두 동이 신축되어
소치 선생 후대의 5대손까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답니다.
한 분의 특출한 화가를 탄생시킨 집안이
5대를 이어 계속 화풍을 유지시키며
호남 화단을 넘어, 대한민국의 화단을 이끌어 가는 일은
전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대단한 일이랍니다.
후손들의 학력이 거의 서울대 미대 아니면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한국 미술계의 핵심을 이끌어가는 분들이라
더더욱 놀랍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소치 선생의 매화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진도에서 태어난 소치 선생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성년이 되어, 해남으로 건너가 초의 선사에게
학문과 인격수양을 두루 배우게 됩니다.
초의 선사 추천으로 서울로 입성하여
추사 선생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시, 서, 화를 배우고
헌종 임금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영광까지 누립니다.
'소치'란 호도, 중국의 대화가인
'대치' 황공망에 비교하여, 겸손의 의미로 추사가 내렸습니다.
서로를 단단히 껴앉고 있는 팽나무 한 그루에 한참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초의 선사는 소치 선생보다 23살 연상이었고
초의와 추사는 동갑내기 친구였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주고 안아준 모습이
이 나무와 자꾸 겹쳐져 묘한 끌림이 있었답니다.
전시실 앞쪽 화단에 화사하게 피어난 매화 아래서
친구랑 한참을 매화향기에 취해
호사스런 봄날의 여유를 즐겼답니다.
해남의 천일식당으로 점저를 먹으러 가다가
강진의 '다산초당'에 잠시 들렀습니다.
다산 선생이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는동안 머물렀던 초가를
기와로 재건축해서 새로 잘 만들어둔 집입니다.
학생들 가르치던 시기에, 꼭 함께 읽었던 필독서 중에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슬하에 8남매를 낳았으나
6남매를 먼저 떠나보내고, 남은 두 아들
학연이와 학유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엄한 가르침이 담긴 편지이자
이 시대 모든 아버지들이 읽어야하는 필독서라고 생각한 책이랍니다.
폐족의 자식이 되어, 미래에 대한 꿈이 좌절되고
허랑방탕하게 젊은 시절을 허비하게 될까봐 염려한 아버지의
철두철미한 가르침과 숙제가 제시되는 것도 놀랍지만,
밭갈이 방법과 심어야할 채소의 종류까지도 자세하게 적어보낸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감탄을 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답니다.
천일각이란 정자가 있는 이 자리에 올라
흑산도로 유배간 약전 형님을 그리워했다는 곳에
후대에 정자를 세워 지금까지 자리합니다.
강진만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고,
산길을 넘어 백련사로 가면
오랜 유배생활 동안, 벗이자 스승이 되어준
혜장선사가 있었답니다.
내려오는 산길에 유난히 많이 보였던
야생 황칠나무인데, 정말 흔하게 자라고 있더군요
10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해남의 천일식당
오래 전부터 해남에 가면 찾아가는 곳이지만,
지금은 음식 가짓수도 많이 줄어들고
예전 같지는 않은 맛이지만, 그런대로 남도의 맛을 즐겼답니다.
천일식당의 떡갈비는 담양의 떡갈비와 비교할 수 없는 맛이예요
언양 불고기와 비슷한 맛이지만, 또 다른 맛~! ㅎㅎ
늦은 점심을 거하게 먹고, 느긋하게
해남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넘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