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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보령 61코스 역방향
충청수영성-오천보건지소-밤까시-갈매못순교성지-
수해마을-교성천 둑방길-수정마을-지풍골마을 입구
20230809
1.보령 산업단지의 광채(光彩)는 휘황(輝煌)하여라
보령시(保寧市) 오천면(鰲川面) 소성리(蘇城里)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 서문(西門)인 망화문(望華門) 아래서 서해랑길 61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한다. 음력 6월 23일 수영성 새벽 하늘에 하현달이 또렷이 떠 있고 주변에는 작은 별들이 달빛에 스러지는 듯 그러나 제 밝은 빛을 반짝인다. 충청수영성은 서해랑길 62코스 탐방에서 북진하며 살펴보게 될 것이기에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서문 아래에서 서문을 살펴보았다. 수영성 서문인 망화문 입구에는 새벽의 어둠 속에서도 무성한 푸른 잎을 휘날리는 팽나무가 긴 역사를 뛰어넘어 증인처럼 서 있다. 그 풍경을 뒤로 하고 충청수영로를 따라 남진한다. 오천항과 오천항 여객선터미널 때문인지 오천면 소성리 거리는 가로등이 환하게 밝아서 헤드랜턴 불을 끄고서 소성리 번화가를 지난다.
오천보건지소를 지나 오천해안로 언덕을 오르면서부터는 가로등 거리가 길어져서인지 헤드랜턴 불을 켜고 이어간다. 어둠 속에서 아쉬운 것은 언제나 풍경을 감상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더욱 아쉽다. 안면도로부터 오천항으로 이어지는 천수만 해안을 조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안면도가 섬일까, 육지일까? 섬이기도 하고 육지이기도 하다. 일설에는 육지와 이어져 있었는데 조선시대에 그 사이를 갈랐다는 설이 있으며, 이제는 다리로 육지와 이어져 있다. 서해 바다는 안면도 안쪽으로 깊숙하게 파고들어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와 천북면 학성리 사이로 더 파고 든다. 천수만 해안은 북쪽으로 보령시 해안에서 홍성군 남당항과 궁리항으로 이어지며 안면도 안쪽에 호수 같은 바다를 연출한다. 그런 풍경을 상상하기만 할 뿐이지 오천해안로를 남쪽으로 내려가며 오른쪽인 서쪽 천수만 바다와 해안을 살필 수 없음이 아쉽기만 하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따라 위치를 확인한다. 여남조선소를 지나 방가시 버스정류소가 나온다. 방가시? 방가시가 무엇이지? 버스정류소 옆 길은 밤까시마을로 가는 밤까시길이다. 그렇다면 방가시는 이곳 지역민들이 밤까시를 방가시로 발음하기 때문에 그 고유성을 수용하여 버스정류소 이름을 '방가시'라고 적은 것 같다. 이러한 일은 60코스 종점이자 61코스 시작점인 깊은골길 입구에 세워져 있는 깊은골마을 표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표석에 '지풍골'이라고 적혀 있다. 이 지역민들은 구개음화된 소리로 발음하는 것 같다. 그래서 깊은골은 '지픈골'로 발음하고, 이 지픈골이 자음동화에 의하여 '지풍골'로, 다시 모음조화에 의해 '지풍굴'로 변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을 표석에 지역민들의 토박이 발음을 적어 그 고유성을 지키는 것은 모든 것이 표준화에 의해 획일화되는 것을 거부하며 지역의 중심을 찾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일은 지역민들의 소중한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수만 남쪽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 해안의 오천해안로를 '도미부인 솔바람길'이라 명명하는 것 같다. 오천해안로 길가에 이 도로명을 적은 안내판이 밤까시마을 남쪽 출입구 해안도로에 세워져 있다. 백제 시대 열녀 도미부인(都彌夫人)은 판소리 '춘향가'의 근원설화가 아닌가? 그래서 하남 검단산성 아래가 도미부인 설화의 근원지이며 한강 하구 유도섬에서 도미와 도미부인(都彌夫人)이 재회하여 살았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그런데 보령시에서는 이 지역에 도미설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지명을 근거로 하여, 오천면 소성리 상사봉(想思峯) 아래에 도미부인을 기리는 사당 '정절사(貞節祠)'를 1994년에 세우고, 1996년 도미부인 영정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정절사 옆에 도미와 도미부인의 분묘를 조성하였다. 각 지역에서 설화의 관광지화를 앞세우다 보니 불분명한 근원을 역사적 사실이나 설화의 근원지처럼 포장하는 일이 많다. 조그만 단서를 가지고 설화와 지역을 연결하여 관광 상품화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설화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한 설화에서 갈래친 그와 유사한 설화들이 각 지역에 분포한다는 생각으로,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지역의 도미부인 정절사와 영정 그리고 분묘를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설화는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이지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설화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 일쑤이다.
오천해안로 나즈막한 언덕을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천수만 건너 보령시 천북면 학성리 지역의 해안과 북서쪽 태안군 안면도 해안을 가늠하지만 불분명하다. 밝은 대낮이라면 지금 저기 불빛 반짝이는 곳을 훤하게 볼 수 있을텐데 그 풍경을 감상하지 못하고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해안로를 따라간다. 원룸 임대업체 '예랑'을 지나 갈매못순교성지 입구에 이르렀다. 이곳은 설화를 사실로 포장한 도미부인의 '정절사'와는 다른 역사적 사실의 장소이다. 이곳은 근대 개항기 천주교 박해기에 프랑스인 선교사 등 천주교 사제와 신자들이 집단으로 처형된 장소이다. 1866년 병인박해에서 순교한 다블뤼(1818~1866) 주교, 오메트로(1837~1866) 신부, 위앵(1836~1866) 신부, 황석두(黃錫斗, 1814~1866) 신자, 장주기(張周基, 1803~1866) 신자 등 5명은 교황청에 의해 성인(聖人)으로 시성(諡聖)<천주교에서 죽은 후에 성인품(聖人品)으로 올리는 일>되었다고 한다. 갈매못순교성지는 1920년대부터 천주교 성지로 조성되기 시작하여 2006년 기념성당을 건립하였으며, 2013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순교지를 확인해 보고 싶지만 까만 어둠이 덮고 있는 순교지에 들어가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담장 너머로 들여다 보니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이곳 탐방은 뒷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갈매못순교성지 앞 바다는 열려 있다. 바닷가에는 해안 가드레일에 긴 줄로 매여 있는 배 한 척이 모랫벌에 정박해 있고, 천수만 해안 건너편과 안면도에 가까운 섬들이 불빛을 반짝이고 있을 뿐 고적하다. 바닷물 소리가 그 고적을 깨뜨린다. 바로 이곳 모래밭이 충청수영성 수군들의 훈련장이었으며, 병인박해의 형장(刑場)이 맞을까? 157년 전 1866년 봄, 이 바닷가 모래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천주교 신자들의 고통의 소리들이 들려온다. 무엇 때문에 그들이 처형되는 것일까? 갈매못에서 순교한 5명의 성인 중 황석두 신자를 제외한 4명의 성인(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장주기 신자) 유해는 교인들에 의해 서짓골에 안장되었다가 1882년 일본 나가사키로 이장되었고, 1894년 다시 명동성당으로 이장되었다가, 절두산순교성지 성당으로 옮겨 안치되었다고 한다. 슬픈 역사의 현장은 성지(聖地)로 꾸며져 있고, 새벽의 어둠을 헤치는 한 길손은 바닷가 철썩이는 물결 소리를 울음 소리로 환청하며 목이 멘다.
갈매못순교성지 남쪽 해안에 조선업소 공장이 자리하고, 천수만 해안은 남쪽 보령항 방향으로 굴곡져 내려가며 바다에는 안면도와 주위의 섬들이 불빛을 반짝이며 제 존재를 드러낸다. 그 불빛의 위치를 가늠하며 나즈막한 언덕을 오른쪽으로 돌아 넘으면 보령의 존재를 밝히는 불빛이 해안에서 휘황하다. 보령 영보일반산업단지 LNG터미널 공장의 불빛이 어둠 속 길손을 반긴다. 공장의 대낮 같은 불빛은 환희이다. 그 광채는 태양처럼 절대적인 것 같다. 언덕의 더반힐 글램핑&리조트 펜션 입구를 지나 영보2리 수해마을 입구에서 서해랑길은 왼쪽 주포 방향으로 이어가야 한다. 잠시 수해마을로 진입하여 수해마을회관과 영보2리 노인회관을 살폈다. 수해마을회관은 쉼터정자 뒤쪽에 으슥하게 숨어 있는데, 영보2리 노인회관은 길가에 수해마을회관보다 더 크고 넓게 자리하여 으스대고 있다. 마을회관이 노인회관에 뒤쳐져 있는 모양새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그런데 '수해'라는 뜻이 궁금하다. 단서를 찾을 만한 것을 살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水害는 아닐 것이다. 서울에 올라와 보령문화원에 문의해 보았더니 역시 그 뜻을 모르고 <보령시 지명유래> 책의 몇 페이지를 보내주었다. 그 페이지에 이렇게 적혀 있다. "수해 : 영보리의 서쪽에 있는 마을. 수해염전 : 수해마을 서쪽, 벗너머골 남쪽에 있는 작은 염전. 현재도 소금을 생산한다." 이것이 지명 유래일까? 지명의 유래를 밝혀야 하는데 위치만을 알리는 빈껍데기를 보고 있자니, 어처구니가 없다. 수해의 한자가 무엇일까? 水海, 修海, 戍海, 水亥,水蟹? 이 의문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수해마을을 지나 오천해안로를 따라간다. 보령LNG터미널 불빛은 천수만을 물들이는 듯 주변의 새벽 어둠을 환하게 밝힌다. 수해마을 주민 여성 한 분을 만났다. 새벽 4시도 안 된 시각에 산책하느냐고 묻자 보령 LNG터미널 공장으로 출근한다고 한다. 친구가 휴가를 가서 대체 근무를 위해 일찍 출근하여 사무실 청소 등을 한다고 한다. 중부교를 건넌다. 중부교는 영보저수지에서 흘러내려와 천수만으로 유입하는 하천 위에 놓여 있다. 아주머니는 한참 멀찍이 앞서간다. 새벽 바닷바람이 불어와 코 끝에 옅은 갯내음을 간질이며 날아간다. 태풍 영향인지 비교적 강한 바닷바람이 새벽의 습기를 씻어주어 상쾌하다. 나즈막한 고개를 넘는다. 언덕 해안 쪽에 보령 영보일반산업단지 보령LNG터미널 건설현장 입구가 있다. 보령의 산업과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 영보일반산업단지와 고정국가산업단지이며 영보일반산업단지의 중핵은 보령LNG터미널인 것 같다.
고개의 보령LNG터미널 건설현장 입구와 영보1리 지역 진골 입구를 지나 보령LNG터미널 본사 입구 삼거리에서 오천해안로는 왼쪽으로 꺾어지는데, 이곳은 교성천 하구인 것 같다. 교성천(校成川)은 오천면 교성리(校成里) 옥녀봉 자락에서 발원하여 만세저수지에 갇혀있다가 흘러내려 천수만에 유입되는 하천으로, 그 주변에 넓은 충적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 교성천 하구를 경계로 북쪽에 영보일반산업단지, 남쪽에 보령항과 고정국가산업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보령LNG터미널 삼거리에서 교성천의 영보교까지는 여러 공장들과 농장이 자리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불빛의 위치를 확인하며 띠아골 입구를 지나 교성천 영보교 앞에 이르렀다. 건너편 남쪽은 보령항과 고정국가산업단지가 자리하는데 그 중핵은 보령화력발전소라고 생각한다. 영보교에서 북쪽 해안을 바라보면 영보일반산업단지의 보령LNG터미널 불빛이 하늘을 찌르고 바다에 환하게 내려앉는 것 같다.
서해랑길은 영보교 앞에서 새벽 3시 10분경부터 지금까지 길게 이어오던 오천해안로와 헤어져 교성천 둑방길로 동진한다. 이곳에서 서해랑길을 따르지 않고 영보교를 건너 오천해안로를 따라가면, 주포 방향과 보령화력본부 방향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주포 방향으로 올라가면 오천면 오포3리 수정마을 입구에서 서해랑길과 재회하고, 보령화력본부 방향으로 오천해안로를 계속 따라가면 서해랑길 60코스 종점이며 61코스 시작점인 지픈골길 입구에 이른다. 길손은 서해랑길 정코스를 따라 교성천 북쪽 둑방길을 따라 동진한다. 뒤돌아보면 해안의 보령LNG터미널 불빛은 휘황하게 빛나고 교성천 둑방길을 따라가면 하천 양쪽의 들녘은 어둠 속에서 푸른 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교성천 북쪽 들녘은 개건너들, 남쪽 들녘은 수정들이라 이르는 것 같다. 둑방길에서 교성천 건너편 불빛 환한 곳은 오포3리 수정마을일 것이다. 둑방길을 따라가다가 교성천에 놓인 두 번째 시멘트 다리를 건너 수정들을 가로질러 오천중앙로로 나갔다. 왼쪽은 오천면 오포2리 매미골과 1리 오동골, 교성리 방향이고, 오른쪽은 오포3리 수정골 방향이다.
오천면 오포3리 수정마을 입구에 표석이 세워져 있다. 오천면(鰲川面)의 마을 표석들에는 모두 오천면을 표상하는 자라 문양이 새겨져 있다. 왜 자라 문양일까? "천수만(淺水灣) 양쪽 하단이 자라 모양과 같고, 양쪽에서 천수만을 지켜주는 중간을 천수(川水)가 흐른다고 하여 자라 ‘오(鰲)’ 자와 내 ‘천(川)’ 자를 합하여 ‘오천(鰲川)’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천면은 보령시 북서부에 위치하여 보령항과 오천항을 품고 있으며 천수만 입구의 여러 유인도와 무인도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이들 중 유인도를 불러보면, 원산도(元山島), 삽시도(揷矢島), 외연도(外煙島), 고도(孤島), 고대도(古代島), 장고도(長古島), 효자도(孝子島), 녹도(鹿島), 호도(狐島), 허육도(虛陸島), 추도(抽島), 소도(蔬島), 빙도(氷島), 월도(月島) 등이 있다. 이들 중 빙도(氷島)는방조제 건설로 주변 바다가 담수화되고, 연육교가 놓여 있으며, ‘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보통 ‘달월이’라고 부르는 월도(月島)는 보령화력발전소 앞에 있다고 한다. 안면도 영목항 남쪽 천수만 입구의 오천면 소속의 여러 섬들을 조망하는 즐거움은 이런 어둠 속에서는 불가능하다. 오포3리수정마을 수정길로 들어간다.
수정골에 자리한 수정마을의 여러 갈래의 길들은 모두 수정길이라 명명된다. 수정마을 입구의 복지교회 아래 수정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빙 돌아서 수정마을 앞 들녘길을 돌아나간다. 어둠 속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빛나지만 마을 전체 풍경과 구석진 주요 장소를 살필 수가 없다. 잠시 길을 잘못들었지만 서해랑길은 오포3리 사무소&부녀회 앞을 거쳐 수정골 고개로 이어진다. 수정골 고개에서 거쳐온 수정마을을 내려보지만 불분명하다. 동이 트는지 산줄기에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다. 수정골 고개를 넘으면 시멘트 길이 이어지고 양쪽으로 태양광 발전시설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산마루에는 송전탑들이 줄서서 안전경고등 붉은 불빛을 반짝거린다. 동이 텄다. 헤드랜턴 불을 껐다. 10분 정도 걸으니 태양광 발전시설이 끝나고 지픈골길이 이어진다. 아, 앞쪽에 신천지 불빛이 솟아서 휘황하다. 고정국가산업단지의 중핵 보령화력발전소 불빛이다. 저 불빛 속에서 전기가 생산되고 그 전기는 산마루 송전탑 송전선을 타고 전송된다.
송전탑은 근대문명화의 상징이다. 그 우뚝선 송전탑에 의해 전송된 전기는 마을의 전신주들을 타고 가정에 들어와 등불로 켜진다. 저 풍경은 김광균(金光均, 1914~1993) 시인의 '외인촌(外人村)'을 꼭 닮은 것 같다. "하이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단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루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김광균의 '外人村'(1935) 1연) 노을진 산협촌의 정경이 고독하게 사무친다. 이 정경 속에 새벽에서 아침에 이르는 보령시 오천면 오포3리 지픈골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현실적으로 나타난다. 환히 붉밝히는 화력발전소의 불빛과 산마루에 즐비한 송전탑, 길손은 이 풍경에 환장하였다. 대한민국 기간(基幹)산업 화력발전소의 으뜸이요, 보령의 자랑인 보령화력발전소가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달뜬 마음이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었다. 길손은 환경친화론자이다. 그렇지만 환경 오염 때문에 산업화를 중단할 것이 아니고 인간을 중시하고 자연과 친화하는 산업, 그 길이 인간 문명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 문명의 풍경을 아름답게 꾸미는 노력 또한 인간이 멈출 수 없는 길이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9.12km
전체 소요 시간 : 2시간 14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 서문(西門) 출입구 아래에 서해랑길 62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다.
오천면은 본토와 16개 유인도, 67개 무인도 그리고 10개 법정리로 구성되며 활력 넘치게 살아가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백제시대 회이포로 불리던 오천항은 당나라와의 교역의 교두보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왜적의 침입을 막고 세곡수송을 맡았던 조운선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충청수영을 세웠는데, 서해안의 수군사령부로서 규모가 군선 140여 척에 병력이 8,400여 명에 달했습니다. 우리나라 5개 수군영 중에서 보존이 제일 잘되어 국가사적 501호로 지정되었으며 지금 한창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복원된 수영성내 영보정은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과 이항복, 송시열 등 세도가들이 아름다움을 극찬하며 찾던 주변 경관이 뛰어난 곳입니다. 또 오천면에는 정절의 표상이 된 도미부인 설화를 품고 있는 도미의 묘지와 도미부인사당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오천면은 역사성과 관광소재를 많이 갖추고 있습니다. 보령 8경의 하나인 오천항에는 키조개, 쭈꾸미 등 각종 수산물의 특산지로서 다양한 먹거리도 갖추고 있으며, 200여 척의 유어선이 연중 낚시객을 맞는 등 연간30여만 명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오천면 설명안내판)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 서문(西門)인 망화문(望華門) 출입구 아래 충청수영성 안내도와 설명안내판, 오천면 종합안내도 및 '동백꽃 필 무렵' 촬영장소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기둥에 서해랑길 62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다.
조선 초기에 설치된 충청수영은 충청도 해안을 방어하는 최고 사령부 역할을 하였으며, 조운선의 보호와 안내 그리고 외적 방어 역할을 하다가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되었다.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은 1510년 수사 이장성(李長生)이 돌로 쌓은 성이며, 현재는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인 서문을 비롯하여 1,650m가 남아 있다. 북벽과 남벽은 산등성이를 따라 쌓았고, 서벽은 바다와 면한 지점에 쌓았으며, 서벽 앞은 유(U)자 모양의 포구를 이루어 전형적인 조선 시대 수군진(水軍鎭)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성내에는 많은 건물이 있었는데 그 중 영보정(永保亭)은 천하 명승으로 알려져 조선 시대 유명 시인 묵객들이 방문하여 많은 시문을 남기기도 했다. 충청수군은 임진왜란 때는 남해 바다에서 통제사 이순신과 연합 작전을 전개하였고, 특히 칠천량 해전(1597)에서는 수사 최호(崔湖)가 통제사 원균과 연합하여 싸우다가 함께 전사하였다. 병자호란(1636) 때는 수사 강진흔(姜晉昕)이 강화도 갑곶에서 청군을 방어하는 등 국가 위기 시에 큰 역할을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다른 수영성 유적은 훼손되어 원래의 경관을 잃어 버렸지만 이곳 충청수영성은 지형과 함께 경관이 잘 보존되고 있다.(충청수영성 설명안내판)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 서문(西門) 망화문(望華門)은 무지개문(虹霓門)이다. 망화문 앞 팽나무 잎들이 무성하다.
음력 6월 23일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 성곽 위 새벽 하늘에 하현달이 떠 있다. 수많은 별들이 깜빡거린다.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 망화문(望華門) 출입구 아래서 출발하여 정면의 충청수영로를 따라간다.
서해랑길 62코스는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 망화문(望華門)으로 들어가 충청수영성을 통과하여 북진하는 것 같다.
서해랑길 61코스를 역방향으로 출발하며 서해랑길 62코스 시작점 표지판 앞에서 기념한다.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 망화문(望華門) 출입구에 문화관광해설 안내소가 있으며 도로 끝에 오천파출소가 있다.
오천면(鰲川面) 소성리(蘇城里) 충청수영로를 따라 직진한다. 오천슈퍼 오른쪽은 오천항으로 가는 길이다.
본래 오천군(鰲川郡) 천동면(川東面)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의 별칭(別稱)이던 ‘고소성(姑蘇城)’의 이름을 따서 ‘소성리(蘇城里)’라 하여 보령군 오천면(鰲川面)에 편입되었다. 오천항(鰲川港) 주변과 북동부 일부에는 간척평야가 조성되어 있으나, 그 규모는 크지 않다. 북동부 일부의 간척평야는 교성리·장곡리와 청소면 진죽리 사이에 조성된 비교적 대규모의 간척평야의 일부이다. 천수만(淺水灣) 연안에는 여러 종류의 해안지형들이 형성되어 있다. 보령방조제(保寧防潮堤) 안쪽의 북배산[82.7m] 일대의 해안에 비교적 규모가 큰 갯벌이 형성되어 있고, 보령방조제와 오천항 사이에 사빈해안이 형성되어 있다. 소성리는 오천면의 북서부 끝 부분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은 교성리에, 서쪽 및 북쪽은 보령방조제 내외의 갯골에, 그리고 남쪽은 영보리·교성리에 각각 접하고 있다. 행정리는 소성1~2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소성1리에 서문밖, 남문밖, 동문밖 등이, 소성2리에 소성, 신촌 등이 각각 있다. 명승고적으로는 소성1리에 보령 충청수영성이 있고, 소성2리에 도미부인사당이 있다. 사찰로는 소성2리에 선림사(禪林寺)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오천면(鰲川面) 소성리(蘇城里) 오천해안로를 따라 직진한다. 오천청년회 오른쪽에 오천복지회관이 있다.
오른쪽에 오천보건지소가 있으며, 서해랑길은 오천해안로를 따라 직진하여 고개를 올라간다.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오천보건지소 버스정류소를 지나서 오천보건지소를 뒤돌아보았다.
언덕의 구세군오천영문교회를 지나 지방도 제 610호선 오천해안로 언덕을 넘어간다.
지방도 제610호선 오천해안로 언덕을 넘어 내려간다. 오른쪽 길가에 서해랑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오천해안로 언덕을 내려가면, 61코스 시점 6.5km, 종점 500m를 알리는 서해랑길 이정목이 길가에 세워져 있다.
천수만이 보령시 천북면 천북항과 오포면 오천항 사이로 깊숙하게 파고들고 있다. 건너편 해안은 보령시 천북면 해안이다.
지방도 제610호선 오천해안로를 따라 여남조선소 앞을 지나간다.
방가시 버스정류소 옆은 밤까시마을로 가는 밤까시길이다. 이 지역민들은 밤까시를 방가시로 발음하는 것 같다.
중앙 뒤쪽은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 보령엘엔지터미널 불빛이고, 오른쪽은 천북면 학성리 회변항 불빛이라고 가늠한다.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서 영보리(永保里) 로 넘어왔다. 밤까시마을 입구에 밤까시펜션&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본래 오천군(鰲川郡) 천동면(川東面)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율변동(栗邊洞), 갈마연동(葛馬淵洞), 우티리[牛峙里], 석소탕동(石所湯洞), 우포리(牛浦里), 진곶지리(津串之里)를 병합하고 ‘영보리(永保里)’라 해서 보령군 오천면(鰲川面)에 편입되었다. 영보리의 동부 저평지의 북동쪽에는 저수지인 영보지(永保池)가 있어서 저평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남부의 경계 일대에서는 비교적 대규모의 간척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천수만(淺水灣)에 접한 해안에는 사빈해안이 비교적 대규모로 형성되어 있고, 갯벌, 바위 형태의 암석지형인 해안바위가 발달하여 있다. 영보리는 오천면의 중서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은 오포리·교성리에, 서쪽은 서해에, 남쪽은 오포리에, 그리고 북쪽은 소성리 및 보령방조제 밖의 갯골에 각각 접하고 있다. 행정리는 영보1~2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영보1리에 소재, 중부뜸, 진골, 석소탕 등이, 영보2리에 밤까시, 갈마무시, 소해, 가숭구지 등이 각각 있다. 지방도 제610호선이 영보리의 서부와 남부를 남북방향으로 지나면서 개설되어 있다. 주요 시설로는 영보2리에 보령일반산업단지, 유적으로는 영보2리에 보령 갈매못순교성지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지방도 제610호선 오천해안로를 따라간다. 이 길은 '도미부인' 솔바람길이라 명명되어 있는 것 같다.
정절사(貞節祠)는 백제 시대 열녀 도미부인(都彌夫人)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도미부인은 백제 개루왕(蓋婁王)[재위: 128~166] 시기 인물로 왕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부부의 신의와 절개를 지킨 설화로 알려져 있다. 정절사가 있는 오천면 주변에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도미설화’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사당이 있는 뒷산의 봉우리 명칭이 ‘상사봉(想思峯)’이고, 오천면 교성리의 도미항, 천북면 낙동리에 있는 빙도(氷島) 등 도미설화와 관련된 지명이 전하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사당을 건립하였다. 정절사는 오천면 소성리 상사봉 아래에 있다. 충청수영성에서 동쪽으로 약 2.2㎞ 떨어져 있으며, 인근에 선림사(禪林寺)가 있다. 1992년 도미부인을 기리는 정절각이 소성리 상사봉에 세워지고, 1994년 산 중턱에 사당인 정절사가 건립되었다. 이때 도미부인의 영정이 새롭게 그려지고 봉안되었다. 이 영정은 윤여환 화백이 그렸으며, 문화부에서 대한민국 표준영정[60호, 1996년]으로 지정하였다. 2003년에 경남 진해시 청안동에 예부터 전해오는 도미의 무덤이 개발 지역으로 편입됨에 따라 정절사 옆에 지름 5m, 높이 2m의 거대한 분묘로 조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절사 옆에는 도미와 도미부인의 분묘가 조성되어 있다. 상사봉 정상에는 도미부인을 기리는 누각인 정절각이 있다. 1994년 사당이 건립되었으며, 1995년 이후로는 여성 단체, 성주 도씨 종중, 지역 주민들이 참석하는 ‘도미부인 경모제’가 거행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오천면 영보리 소영마을 양식장 구역의 오천해안로를 지난다. 건너편은 천북면 학성리 천수만 해안일 것이라 가늠한다.
오천해안로 길가의 예랑은 원룸임대 기업인 것 같다.
왼쪽으로 진입하면 갈매못순교성지로 이어지는 것 같다.
갈매못은 예로부터 이곳의 산세가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과도 같은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명당이라 하여 '갈마연', '갈마연동(渴馬淵洞)'이라 불렸던 곳이다. 샤를 달래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에서는 갈매못 성지를 "형장(刑場)으로 택한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형장은 바로 수군들의 훈련장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프랑스에서 온 세 분의 선교사인 조선 제5대 교구장 다블뤼 주교와 오메트르 신부, 위앵 신부, 그리고 평신도회장으로 활동하던 황석두 루카 회장, 장주기 요셉 회장이 한양에서부터 충청 수영까지 끌려왔다. 충청 수영에서는 갈매못을 처형장으로 정해 처형했고, 천주교는 이들을 순교로써 신앙을 증언한 성인(聖人)으로 공경함으로써 이곳이 순교 성지가 된 것이다. 다섯 순교 성인 이외에도 약 500여 명의 무명 순교자들이 이곳과 앞바다에서 순교하였다.(설명안내판)
갈매못순교성지 앞 수군들의 훈련장인 바닷가 모래밭에서 천주교인들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이곳이 처형장소였을까?
오천해안로에서 어둠 속 갈매못순교성지를 들여다 보았다.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오천해안로 갈매못순교성지 제2주차장 입구를 거쳐 갈마가든 앞으로 진행한다.
흑염소전문음식점 갈마가든 앞을 거쳐 오천해안로를 돌아나간다. 건너편에 선박&보트 건조업체 금강조선(주) 회사가 있다.
금강조선(주) 표석 오른쪽 뒤 불빛 반짝이는 곳에 선박&보트 건조업체 금강조선(주) 공장이 보인다.
오천해안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간다.
언덕을 올라서면 오른쪽은 더반힐 글램핑&리조트 펜션 입구이며, 정면 아래 해안에 보령LNG터미널 불빛이 휘황하다.
더반힐 글램핑&리조트 펜션은 언덕에 있어서 천수만(淺水灣) 전망이 좋을 것 같다.
오천해안로를 따라 영보2리 수해마을로 내려가며 새벽의 휘황 찬란한 보령LNG터미널 불빛을 바라본다.
서해랑길은 왼쪽 오천해안로로 이어진다. 잠시 오른쪽 영보2리 수해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마을회관을 살피고 되돌아온다.
오천해안로 삼거리 수해마을 입구에 수해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다. 오천면(鰲川面)을 표상하는 자라 그림이 새겨져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에 1개 읍 및 5개 동 외에 10개 면이 있는데, 오천면(鰲川面)은 그중 한 면이다. 천수만 양쪽 하단이 자라 모양과 같고, 양쪽에서 천수만을 지켜주는 중간을 천수(川水)가 흐른다고 하여 자라 ‘오(鰲)’ 자와 내 ‘천(川)’ 자를 합하여 ‘오천(鰲川)’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즉, 조선 시대부터 ‘오천’이라는 지명이 존재하였지만, 1901년에 뜻이 좋은 글자로 한자 표기가 변경된 듯하다. 본래 오천군 지역으로 오천군의 동쪽이 되므로 천동면(川東面)이라 하여 27개 동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남면(河南面)의 24개 리, 하서면(河西面)의 18개 리 및 보령군 장척면의 조곡(鳥谷)·구수(九水)의 2개 동리를 병합하여 오천군의 이름을 따라 ‘오천면(鰲川面)’이라 하여 보령군에 편입되어 소성(蘇城)·영보(永保)·오포(烏浦)·교성(校成)·갈현(葛峴)·효자도(孝子島)·원산도(元山島)·삽시도(揷矢島)·녹도(鹿島)·외연도(外烟島) 등 10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의 일부 개편으로 삽시도리 내의 외파수도(外波水島)·내파수도(內波水島)·외도(外島)를 충청남도 서산군 안면면에 이관하고 갈현리(葛峴里)를 분할하여 갈현2리 즉, 연정(蓮亭)[연적굴], 갈두(葛頭)[칙머리], 지동(芝洞)[가줄]을 분리하여 주포면에 이관하였다. 1983년에 오천면 어항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94년에는 오천면 원산도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95년에 보령군과 충청남도 대천시가 통합되어 보령시가 출범하면서 보령시 오천면으로 그 소속과 명칭이 변경되었다.오포리 일대의 곡저지에는 교성천(校成川)이 흐르면서 소규모의 범람원 충적지를 형성하고 있다. 오천면은 보령시의 북서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은 청소면·주포면에, 서쪽은 천수만에, 남쪽은 주교면에, 그리고 북쪽은 천수만에 각각 접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수해부락청년회와 함께 사용하는 회관이다. 그런데 수해라는 뜻이 궁금하다. 水害는 아닐 것이다.
영보2리 노인회관이 수해마을회관보다 더 크고 넓다.
수해마을회관을 살피고 되돌아와사 오천해안로를 따라가다가 뒤돌아보았다. 언덕 위에 더반힐 글램핑&리조트 펜션이 보인다.
오천해안로 중부교를 건너며 영보일반산업단지 보령LNG터미널을 다시 바라본다.
오천해안로 중부2교에서 뒤돌아보았다. 왼쪽에 영보2리 수해마을, 언덕에 더반힐 글램핑&리조트 펜션이 있다. 중부교는 영보저수지에서 흘러내려와 천수만으로 유입하는 하천 위에 놓여 있다.
오천해안로 고개를 넘어 영보일반산업단지 방향으로 내려간다.
오천해안로 고개에 보령 영보일반산업단지 보령LNG터미널 건설현장 입구가 있다.
고개의 보령LNG터미널 건설현장 입구를 지나 오천해안로를 따라 내려간다.
오천해안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뒤돌아보면 고개 서쪽에 보령LNG터미널 건설현장 입구가 있다.
오천해안로 횡단보도 건너편 아래 동쪽으로 오천면 영보2리 진골 가는 입구가 보인다. 그 아래에 (주)세광인성이 있다.
오천해안로 진골 입구에 드론 비행 촬영금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 지역에 보령시의 국가중요 기간산업이 위치하고 있다.
설치용 및 위생용 플라스틱제품 제조업체 (주)세광인성이 오천해안로 진골 입구 아래쪽에 있다.
300m 아래 삼거리에서 서해랑길은 주포 방향으로 오천해안로를 따라간다.
앞쪽 삼거리에서 오른쪽은 보령 영보일반산업단지 보령엘엔지터머널 방향이고, 서해랑길은 왼쪽 주포 방향으로 이어진다.
앞의 갈림목에서 영보일반산업단지 보령화력과 보령엘엔지터미널은 오른쪽 방향, 서해랑길은 왼쪽 주포 방향이다.
보령 61코스 종점 3.2km, 시점 3.8km 지점이다. 61코스 시점인 왼쪽 주포 방향으로 진행한다.
영보일반산업단지 보령화력 삼거리에서 영보2리 가숭구지 방향의 보령엘엔지터미널을 바라보았다.
주포 방향 오천해안로에서 보령화력 삼거리를 뒤돌아보았다. 직진은 영보2리 가숭구지, 오른쪽은 영보2리 수해 방향이다.
축산물 가공업체인 금화식품(주) 보령공장 앞 오천해안로를 따라간다.
비금속원료 재생산 업종 에스피에스엔에이 보령FA 공장 앞 오천해안로를 지나간다.
"닭은 가축(家畜)이 아니다. 산업(産業)이다." 청보농장(淸保農場) 입구 표석에 적힌 문구가 농업의 산업화를 강조하고 있다.
청보농장(淸保農場) 입구 오른쪽에는 비료 및 질소 화합물 제조업체 한국도시녹화 주식회사가 자리한다.
오천면 영보리 띠아골 버스정류소 앞을 통과하여 오천해안로를 따라간다. 오천해안로 오른쪽 아래로는 교성천이 흐른다.
앞에 보이는 교성천의 영보교 앞에서 왼쪽 교성천 둑방길로 진입한다.
오천해안로 300m 앞 삼거리에서 주포와 보령화력본부 가는 길이 갈라진다.
오천해안로 영보교 앞에서 서해랑길은 오랫동안 함께해온 오천해안로와 헤어져 왼쪽 교성천 둑방길로 진입한다.
중앙 뒤 주포와 보령화력본부 삼거리에 초록 도로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저곳에서 오천해안로는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왼쪽은 주포 방향의 오천중앙로이다. 오천해안로를 계속 따라가면 서해랑길 61코스 시작점으로이어지고, 오천중앙로를 따라가면 오포리 수정마을 입구에서 서해랑길과 재회한다.
영보교에서 서쪽 보령항 방향을 조망하면 왼쪽에 보령화력발전소, 오른쪽에 보령엘엔지터미널이 보인다.
보령화력발전소(保寧火力發電所)는 화력, 복합화력, 소수력, 태양광, 연료전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있으며, 주로 사용하는 연료는 유연탄, LNG, 신재생에너지 등이다. 준공 당시 명칭은 고정화력발전소(高亭火力發電所)였으나 1984년부터 보령화력발전소로 개칭되었다. 1979년 12월에 착공해 1983년 12월에 1호기, 1984년 9월에 2호기를 준공했다. 총면적 3.83㎢로 화력발전소로는 한국 최대의 면적이다. 해일이나 폭풍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호안, 원료 수송용 11만t급 대형선박이 운항할 수 있는 부두와 하역설비를 갖추고 있다. 공사는 대림산업에서 시행했고 주요기기인 보일러는 한국중공업과 미국의 바브콕월콕스(B & W)사, 터빈 발전기는 대우중공업과 일본의 도시바(東芝)사가 공급했다. 그밖에 8.99㎞의 진입로, 해일이나 폭풍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호안, 원료 수송용 11만t급 대형선박이 운항할 수 있는 부두와 하역설비를 갖추었다. 연료는 주로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수입하는 유연탄이며, 중유 등을 이용한 복합발전도 가능하다. 또한 집진률 99.3%의 고성능 고온전기집진기와 150m의 배기 가스 배출용 굴뚝, 종합폐수시설, 소음방지시설, 기름 및 오물 철거선 등 세심한 공해방지시설을 갖추고 있다. 1994년 6월 50만kW급 유연탄 발전설비 3~6호기가 완공되었다. 보령화력발전소는 국내 최대 면적의 화력발전소로 유연탄과 중유 및 복합화력을 사용한 석탄화력 8기, 복합화력 9기, 소수력 등으로 설비용량 5358MW를 갖춰 연간 55백만 MWh를 생산하고 있다.(다음백과)
서해랑길 정방향에서는 잘 보이지만 역방향에서는 찾기가 힘들다. 역방향 파란 표지판은 앞쪽에 붙여야 한다.
오천면 영보리에서 오포리로 넘어와 교성천(校成川) 둑방길을 따라가다가 뒤돌아보니 보령화력발전소 불빛이 빛난다.
교성천(校成川) 둑방길을 계속 따라간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교성천을 건너는 다리가 있다.
이 시멘트다리를 건너면 맞은편은 오천면 오포3리 수정마을일 것이다.
본래 오천군(鰲川郡) 천동면(川東面)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호포리(狐浦里), 심동(深洞), 수정동(水晶洞), 선동(蟬洞), 양촌(陽村), 금암리(金岩里) 일부를 병합하고 ‘오동(烏洞)’과 ‘호포(狐浦)’의 이름을 따서 ‘오포리(烏浦里)’라 하여 보령군 오천면(鰲川面)에 편입하였다. 이후, 1995년 1월 1일 보령군이 시로 승격하면서 보령시 오천면 오포리로 변경되었다. 중부·서부 일부에는 교성천(校成川)의 범람원 충적지가 적지 않은 규모로 형성되어 있고, 충적지의 우측에는 오포저수지가 축조되어 있다. 천수만(淺水灣)에 접하여 있는 서부의 끝부분에서는 간척사업이 진행 중인데, 북쪽으로 인접한 영보리의 간척사업지구와 연결되어 있다. 오포리는 오천면의 동남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은 교성리에, 서쪽은 서해에, 남쪽은 주교면 고정리에, 그리고 북쪽은 소성리 및 보령방조제 갯골 입구에 각각 접하고 있다. 행정리는 오포1~3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오포1리에 양촌, 오동, 사락배 등이, 오포2리에 개건너, 매미골 등이, 오포3리에 수정동, 깊은골 등이 각각 있다.(디지털보령문화대전)
계속하여 교성천(校成川) 둑방길을 따라간다. 왼쪽 들녘은 '개건너들'이라 이르는 것 같다.
교성천 둑방길을 따라 오르다가 두 번째 시멘트다리에서 교성천을 건넌다.
영보교에서 교성천(校成川) 둑방길을 따라 오르다가 두 번째 시멘트다리를 통해 교성천을 건넌다.
오포리 '수정들'에서 서쪽 보령항의 보령화력발전소를 바라본다. 보령화력발전소 앞 바다에는 월도(月島)라는 섬이 있는데, ‘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보통 ‘달월이’라고 부르며, 0.45㎢의 면적에 15가구 5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수정들' 농로에서 보령화력본부 삼거리에서 올라오는 오천중앙로로 나간다. 오른쪽에 오포3리 수정마을 입구가 보인다. 서해랑길은 오른쪽 불빛 반짝이는 송전탑을 넘어서 오포3리 마을회관으로 내려간다.
61코스 종점 4.7km, 시점 2.3km 지점이다. 위쪽은 오포2리 매미골, 오포1리 오동골, 오천면 교성리 방향이며, 오른쪽이 서해랑길 오포3리 방향이다. 이정목의 오천향교 날개는 위쪽 오천면 교성리 방향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
서해랑길은 오포3리 수정마을을 통과하여 낮은 구릉지를 넘어간다.
왼쪽 수정길로 진입하여 수정마을을 통과한다.
뒤쪽은 수정저수지이다. 오천면 오포3리 수정마을 표석에도 오천면을 표상하는 자라 문양이 새겨져 있다.
수정마을 입구 언덕에 복지교회가 있다. 수정길을 따라 오른쪽 불빛 비치는 곳으로 이어간다.
수정길을 따라 왼쪽 가로등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오른쪽 뒤의 가로등이 있는 수정길로 이어간다.
수정마을 입구에서 복지교회 아래의 수정길을 따라왔다.
수정길 삼거리에서 비탈진 수정길로 올라갔다가 되돌아왔다. 이 수정길을 따라가도 오포3리 사무소에서 만난다.
수정골 수정마을의 모든 길 이름이 수정길이다. 수정길 삼거리에서 오포3리 사무소 방향의 평탄한 수정길을 따라간다.
수정길 삼거리에서 왼쪽 비탈진 수정길로 올라갔다가 되돌아와 서해랑길 정코스인 평탄한 수정길로 들어왔다.
평탄한 수정길을 따라 오포3리 사무소&부녀회 앞을 거쳐 오른쪽으로 돌아나간다.
오포3리 사무소 앞을 통과하여 수정골의 나즈막한 고갯길로 오른다.
수정골 고갯길을 오르다가 뒤돌아서서 수정골 수정마을을 내려보았다. 동이 트고 하늘에 붉은 기운이 번지고 있다.
수정골 고개를 넘어 지픈골로 내려간다.
지픈골 내려가는 길 양쪽으로 태양광 발전시설이 펼쳐져 있다. 송전탑의 안전깜빡이등 불빛을 바라보며 내려간다.
수정골 고개에서 양쪽에 펼쳐진 태양광 발전시설 사이의 시멘트도로를 따라 내려왔다.
지픈골길을 따라가는데 정면에 고정국가산업단지(高亭國家産業團地) 시설이 솟아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과 주교면 일원에 자리한 국가기간산업 등을 육성하기 위하여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정한 산업단지의 하나로, 국가기간산업 및 첨단과학기술산업 등을 육성하기 위한 곳이다. 국가산업단지는 정부가 전략적 차원에서 조성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분양가가 싸고, 연결 도로와 R&D(연구·개발) 시설을 비롯한 각종 기관을 쉽게 유치할 수 있다. 고정국가산업단지는 우리나라의 장기 전원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시행하는 보령화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부지를 국가산업단지로 지정함에 따라 건립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계속하여 지픈골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고정국가산업단지(高亭國家産業團地)의 시설물과 불빛이 눈길을 끈다.
고정국가산업단지는 1979년 4월 9일 ‘고정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지정되었고, 1979년 8월 3일 사업 시행자가 지정되었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남부회처리장이 준공되었고,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중부발전 신보령발전본부가 준공되는 등 현재 99%가 조성된 상태이다. 고정국가산업단지와 전원개발구역으로 구분되어 관리된 보령화력발전소를 2021년 9월 30일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반영에 따라 보령화력발전소의 설비 증설 건설 부지를 국가산업단지로 통합 지정하였고, 현재 43개 업체가 100% 입주를 완료한 상태이다. 고정국가산업단지는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과 주교면 일원 6,309천㎡에 2,439억 원의 예산으로 2023년까지 단지 조성을 완료하는 국가산업단지이다. 현재 입주업체는 43개 업체이다. 입주 업종으로는 전기, 가스, 중기 및 공기조절 공급업, 식료품 제조업,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제조업[의약품 제외] 등으로 나타나 있다.(디지털보령문화대전)
서해랑길은 왼쪽 지픈골길을 따라 오포3리 마을회관과 지픈골마을로 향한다.
지픈골마을 삼거리에서 지픈골길로 들어와 뒤돌아보니 능선에 송전탑이 즐비하게 설치되어 있다.
오포3리에 속하는 수정동마을과 지픈골마을이 너무 떨어져 있는데 마을회관은 지픈골마을에 있다.
지픈골길을 따라 오천중앙로 위로 향한다.
지픈골길 오른쪽에 서해교회가 흰 건물로 단아하게 자리하고 있다.
지픈골길에서 토정로로 올라간다. 토정로 지픈골길 입구에 지픈골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다.
토정로 지픈골길 입구에 오천면 오포3리 지풍굴 표석과 서해랑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지풍굴은 깊은골이 구개음화와 자음동화에 의하여 지풍굴로 변하였을 것이다.
서해랑길 61코스 역방향 탐방을 마치며 서해랑길 이정목과 함께 기념한다.
직진하면 보령발전본부, 오른쪽은 지방도 제610호선 '오천해안로'로 오포리 교성천 영보교로 이어진다. 서해랑길 60코스 역방향은 이 길의 반대쪽 토정로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