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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설교(87)
므나의 비유
본문 : 눅 19:11-27 (신128)
<비유의 배경>
누가복음의 마지막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다
예루살렘 근교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최후로 들려주신 비유입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를 듣는 대상은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11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제자들의 기대를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당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죽으러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과는 정반대로 제자들은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기회 있는 대로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나라의 지도자(왕)이
되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죽고
부할 승천하신 후 다시 오실 때까지......
제자들이 이 땅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실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비유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2절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런데 오늘 비유는 역사적 사건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전 63년에 로마의 폼페이 장군에게
정복된 유다는......
이제 대제사장은 정치적인 권력은
박탈당하고 종교적인 기능만
하도록 허락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유대인들에게
대제사장 이상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유대인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으로
헤롯 가문을 '유대인의 왕'으로
등장시켰습니다. 한마디로......
- 종교적으로는 유대인 대제사장이,.....
- 정치적으로는 헤롯 가문이.....
- 군사적으로는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로마 제국이 팔레스틴을 지배하는
체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성도님들도 아시다시피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유대의 왕은 헤롯대왕이었습니다.
그 헤롯대왕은 유대인이 아니라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에돔 사람이고 어머니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가 로마의 황제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이 되자....
당연히 유대 백성들의 반대가
너무나 극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에서의 후예인 에돔 사람이
자신들의 왕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로마를 등에 업고
많은 사람을 학살한 끝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왕권을 차지한 후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성전을 재건해 주기도 하고,
세금을 깎아주기도 하면서
37년간이나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예수님 탄생시 유아학살로 유명하지요.
그러다가 BC 4년경
헤롯 대왕이 죽었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자신의 세 아들에게
(헤롯 아켈라우스, 헤롯 안티파스, 헤롯 빌립) ......
자기 왕국을 삼등분해
줄 것을 유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 가운데 하나였던
헤롯 아켈라우스가 유대지역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 로마의 황제이던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그의 허락을 받으려고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켈라우스가 왕위를
계승하기 위하여 로마로 간다는 소문이 퍼지자 ....
유대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아켈라우스의 인격이 부족함을 들어....
(세 아들 거운데 아버지의 잔인함을 가장 많이 닮음)
그가 유대지역의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그런데다가 헤롯 아켈라우스의 어머니는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아버지도 에돔인에다가 어머니마저
사마리아인이었으니
유대인들이 좋아했을 리가 만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50명을
그들의 대표로 로마에 파송해서 .....
아켈라우스가 왕이 되려는 것을
반대하는 로비를 벌었습니다
(14절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그러나 결국 반대로비에도
불구하고 아켈라우스는 ...
로마의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유대 땅을 다스리는 분봉왕이 됩니다.
그가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물론 피의 보복입니다.
로마까지 따라와서 반대 로비를 벌였던 50명은
물론 자기를 반대했던 수천 명의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도 나오지요?.....
‘나의 왕 됨을 반대하던 자들을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27절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모두가 잘 아는 사건이었기에
얼마나 실감나는 비유인지 모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잘 아는 것들을 이용하여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비유의 내용과 목적>
그러면 비유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3절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귀인은 종 열 명을 불러
각기 한 므나씩을 나누어주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오늘 비유는 마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와 비슷합니다.
- 그런데 달란트 비유에서는
주인이 세 사람에게 각자의 재능에 따라
각각 다른 달란트를 나누어 주었는데,
- 므나 비유에서는 열 명에게
똑같이 한 므나씩 주었습니다
(1 달란트는 60 므나이고, 1 므나는 50세겔,
1 세겔은 4 데나리온).
* 달란트 비유에서는...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와 재능이
다 다르지만 각자 자기가 받은 은사대로
충성스럽게 봉사하면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똑같은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 그러나 오늘 므나 비유에서는
‘똑같이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다르게 주신 것도 있지만 똑같이 주신 것도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 재능이나 능력에 상관없이
똑같이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한 번의 기회입니다.
주님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의
생애를 주셨습니다.
누구도 지금까지의 생애를
취소하고 다시 시작할 수 없습니다.
Reset 증후군 :
컴퓨터를 마구 두드리다가 잘못되면
reset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얼마나 편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reset이 안됩니다.
한 30년쯤 살가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reset을 누르면 다시 처음부터
인생이 시작됩니까?
잃어버린 시간(기회)은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고......
한 번 잘못된 것은
일생 그 짐을 지고 살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우리 인생을 생방송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녹화방송은 잘못되면 몇 번이고
다시 찍으면 됩니다.
잘된 것만 편집하면 됩니다.
그러나 생방송은 실수하는 모든 것이
천하에 드러납니다.
편집이 되질 않습니다.
한 번의 실수가 방송을 망칠 수 있듯이...,
한 번의 실수가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재주와 능력을 소유하고 있든지 간에
주님 앞에 단 한 번의 기회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길든지 짧든지 단 한 번의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또한 능력과 은사에 관계없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똑같이 주신 명령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모아서 명령을 내리시는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마28:19-20 읽어라>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
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명령은 누구를 향한 명령입니까?...
목회자들을 향한 명령입니까?....
“복음을 전하라”는
이 명령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명령은 오늘 우리에게
똑같이 주어진 한 므나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가
순종해야 할 사명(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
그럼 오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앞서 언급했지만 지금 누가복음에서
이 본문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는 ......
예루살렘성에 입성하기 직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기만 하면.....
뭔가 큰 역사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순간 제자들은 얼마나 실망이 크겠습니까?
그들이 받았던 사명까지도 잃어버릴 것이
뻔한 상황입니다.
실제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자기 생업을 찾아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이 마지막이 아님을
말씀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방해하고 핍박하고
심지어 육신적으로 죽인다 할지라도
반드시 부활 승천하셔서,
즉 모든 무릎을 그 앞에 꿇게 하실
만왕의 왕이 되셔서 ....
장차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실 것임을
예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15절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27절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셔서
반드시 사명받은 자들이(제자들이),...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그 사명을
감당했는지를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맡겨진 사명에
충성을 다할 것을 권면하시는 말씀입니다.
<두 부류 종들>....
그러면 한 므나씩을 받은 종들은......
귀인이 떠난 후 어떻게 했습니까?
두부류의 사람들로 나뉘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본문 16-19절 읽어라>
16절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절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절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절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작은 것에 충성하여 큰 이익을 남긴
‘착하고 충성된 종’들입니다.
- 달란트 비유에서는 많은 이익을 남긴
두 사람이 균등한 상금을 받았는데.....
- 므나 비유에서는 보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많이 남긴 사람에게 많은 보상이 있습니다.
모두 한 므나를 가지고 시작하였습니다.
-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한 므나를 가지고
열 므나를 만들었고....
- 어떤 사람은 다섯 므나를 남겼습니다.
모두 작은 것에 충성한 것에
대하여서는 칭찬을 받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받은 상급의 크
기가 달랐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남긴 것에 상응하는 상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가 충성하고
헌신한 것들에 대하여 그에 상응하게
보상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또 다른 부류의 종이 있었습니다.
<본문 20-21절 읽어라>
20절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절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자기가 받았던 한 므나를
그대로 내어놓은 종입니다.
수건에 싸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핑계가 재미있습니다.
그는 주인이 엄하고
대단히 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한 므나를 잃어버리면
주인이 크게 책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서워서 써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보관하여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장사하지 않은 이유요.....,
활동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이 종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우선 주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잘못된 사람입니다.
그는 주인은 무자비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계신 분이
없는가 모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사랑과 자비와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또 이 종은 아부를 통하여
위기를 모면하려고 합니다.
21절b "```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이 말은 중동지역에 살던 베드윈 족의 추장에게
사용했던 당시의 아부형 표현입니다.
즉 이 말은 용맹스러운 베드윈 족 추장의
지도력을 칭송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보면
이런 말입니다.
“용맹하시어 적국을 정복하시고,
그 곳에서 우리가 심지 않은 곡식들을 거두어
백성을 배불리 먹이시고,
또 두지 않은 재산들을 취해
백성들을 부요하게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지도자님)이시여!”
결국 이 말은 신하가 왕에게 하는
최대의 아부형적인 칭송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주인의 대답은 무엇인가?
<본문 22-26절 읽어라>
22절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23절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24절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절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절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주인은 그의 아부에도
결코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악한 종”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고 그의 소유이시지만,...
하나님 스스로도 당신께서
세우신 법칙을 존중하십니다.
그 법칙이 무엇입니까?
바로 심은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심지 않고 거두기를 바라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불한당과 같은 태도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24)고 하셨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것”이
하늘의 법칙입니다.
많이 심은 자가 많은 열매를
거두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하나님은 사명자들을
세우셔서 일하십니다.
혼자 독단적으로 일하시지 않고
일꾼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오늘 우리 시대 이 비유의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성도님들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님들을 통하여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열심히 헌신하십시다.
열심히 일하십시다.
많이 심읍시다.
그러면 곧 많은 열매를 거두는 날이
속히 올 것입니다.
이 시간...,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님 앞에,.....
심판주로 반드시 다시 오실 예수님 앞에 ....
부끄러움이 없는 선한 종으로
세움을 입는 귀한 결단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