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엑스포의 진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기를 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 70% 정도는 그런 인상이다.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심신관리상 좋은 것이지만 아무리 그렇더래도 그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 여수라는 곳이 교통이 불편하고 인구 30만 정도의 시세(市勢) 약한 도시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별 볼거리도 없는 박람회를 그리도 선전하고 호들갑을 떨었는가 싶으니 부아가 솟는다. 특히 삼성관 앞에서 뙤약볕 아래 3시간 넘게 다리 아프게 서서 기다렸던 것을 생각하면 더 참기 힘든다. 25분 짜리 무엇인가의 상연물을 보여주려고 한꺼번에 500명씩 입장시켰는데 들어가 보니 색색의 빛을 배경으로 기껏 서커스공연 같은 것을 보여 주었다. 제주도에 서 본, 중국서커스 공연단이 와서 그네를 타고 올라가기도 하고 펄떡펄떡 고기가 뒤집는 체조 같은 것으로 재주넘기를 하던 것이었다. 오전 9시에 기다리기 시작하여 오후 1시가 되어서야 겨우 관람을 했는데 지치고 힘들어 두 번째 관람은 포기해야 했다. 어느 기업관 앞에서나 끝도 없이 늘어진 대기대열을 보고 기가 죽어버렸다.
정식 입장권을 구매하여 이틀간이나 관람한 것이 더 바보 같았다. 엑스포 개막 두 달이 지나도 내 주위의 사람들은 여수엑스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거기 가 보아야 두 시간 줄서서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고 볼거리가 빈약하다고 코웃음을 쳤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인지 KBS가 앞장서서 선전하는데도 믿지 않았다. 몇 사람 정도는 다녀와서 참 좋더라고 가 볼 것을 권하기도 해야 하는데 도통 그런 기미가 없었다.
막판이 되자 마누라가 나를 졸라대었다. 폐막 나흘 전이었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참지를 못했다. 이번 기회 놓치면 큰 손해라고 설레발을 치는 KBS아침 홍보방송도 한 몫을 했다. 더구나 1일에 3만원이 넘는 정식 입장권을 구매한 우리로서는 3,000원만 내고 집단으로 몰려온 사람들 틈에 끼어 있으니 대략 속은 기분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손님이 기대치에 못 미치니 전국 각 지자체 단위로 싸구려 입장권을 대량으로 뿌려 관람을 권장한 탓이었다.
정말 뭐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 같은 기대와 착각 속에 구름 같은 인파가 들끓었고 공연이든 뭐든 그들이 준비한 컨텐츠를 보려고 볼거리에 굶주린 사람들 속에 서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인기가 있다는 LG나 포스코 같은 기업관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사람들 앞으로 진행요원들이 다가와 ‘여기서부터는 지금부터 2시간입니다.’ 하다가 줄이 늘어나니까 금방 “여기서부터는 3시간입니다.” 하였다. 들어가면 내 몸이 공중에 붕 떠오르는 어지러움을 주는 20분짜리 선진IT 기술을 이용한 영상물이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가끔 성질 급한 어른 몇 사람이 “에잇, 미쳤지. 3시간이 뭐야!” 하며 열을 빠져나갔지만 대부분은 30분 정도 기다린 것이 아까워서도 대열을 이탈하지 않았다. 아예 관람을 포기한 사람들은 길바닥에 누워 일행이 올 때까지 낮잠 속에 폭 빠져 있었다. 북새통도 그런 북새통이 없었다.
여수엑스포의 주제는 미래의 바다, 바다 자원의 친환경적 이용 등인데, 크게 한국관, 국제관, 기업협찬관의 세 군데로 지역을 나누어 각 국의 바다환경을 이용하는 지혜와 실태를 보여주고 바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훈적 엑스포였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아쿠아리움을 만들어 신비한 바다고기를 보여주고 각국의 거리공연과 신기한 쇼 등을 매일 펼치며 한편으로 상징적인 몇 가지 대형 인형을 끌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밤에도 빛과 물을 이용하여 신기한 빛의 향연 속으로 이끌었다. 또한 IT산업의 선진국답게 국제관에는 운동장만한 넓이의 천장을 만들어 거기다 대형 TV 모니터 기술을 접목하여 초단위로 변화하는 온갖 바다속 생물들을 보여주는 기술은 특이했다. 하지만 구태여 여수엑스포에 가지 않더라도 이런 기술은 어디 가더라도 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볼거리가 빈약한 가난한 나라들이 꾸며 놓은 국제관은 입장이 수월했으나 일본, 중국, 러시아 같은 국력이 강한 나라의 국제관의 두 시간 대기는 보통이었다. 그 많은 나라들 중 일본만은 유일하게 정식박람회를 이미 개회한 나라답게 손님들을 배려했는데, 무작정 줄서서 기다리게 하지 않고 시간대별로 ‘정리권’을 나누어 주고 그 시간에 도착하면 입장시켰다. 고객을 고생시키지 않은 그들의 사전 배려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미국은 이번 여수엑스포 같은 것은 코딱지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힐러리 국무장관과 오바마 대통령의 영상인사가 있을 때는 거창한 무엇이 있을 줄 알았으나 ‘미래의 인류자산인 바다를 위해 다 같이 노력합시다’라는 연설 한 마디가 고작이었다.
국제관이란 게 다 그저 그랬다. 초등학교 교실 환경꾸미기 같은, 자국의 특징을 나타내는 산이나 주요인물, 명승지, 바다 이용 시설 같은 사진 자료를 쭈욱 붙여놓고 출구 앞에서는 자국의 토산물을 판매하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목걸이와 팔찌, 반지 판매대 앞에서 수많은 여자들이 즐겁게 흥정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의 목걸이와 비교해서 싸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와 중동국가의 토산물은 신기한 것이 많았다. 마누라도 그 틈에 끼어 고르고 또 골랐다. 진주나 자수정 목걸이의 값이 국내산은 보통 8~10만원인데 잘만 흥정하면 3만~4만원에 낙찰되니 몇 개나 욕심을 내었다.
여수엑스포 관람 덕에 여수시 학동에 집단으로 건설된 고급관광호텔 촌에서 일박에 20만원 주고 하룻밤 숙박하면서 남해 쪽으로 펼쳐진 호수 같은 아름다운 바다를 실컷 본 것이 그마나 위안이었고, 마누라는 몇 개 목걸이와 향기가 기막힌 르완다 커피 한 봉지를 구매한 것이 수확이라며 웃었다. 오랜만에 비싼 숙박 한번 한 것이다. 나는 1박에 5만원 주는 여관이나 모텔에 묵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에는 엑스포장 가까운 곳에 숙박지가 있는지 컴퓨터에서 차례대로 검색해도 싼 곳이 없어 도리 없이 그곳에 자야 했다. (우리 부부는 이번에 한 50만 원 지출했다.)
여수박람회가 이렇게 실망을 안겨준 데는 이유가 숨어 있었다. 녹초가 되어 돌아온 다음 날 지인들과 산행을 했는데 거기서 여수이야기를 털어놓았더니, J라는 과학교사가 엑스포 관련 비화를 알기 쉽게 들려주었다.
‘엑스포도 정식 엑스포와 간이엑스포가 있지요. 5년 단위로 하는 것은 국제엑스포기구가 인정하는 정식박람회이고 그 중도에 하는 것은 약식박람회 같은 것이랍니다. 개최하고자 하는 나라가 많다 보니, 2년 단위로 그 사이사이에 끼워 넣어 대회 성격을 애매하게 얼버무리고 크게 선전하면서 개최하는 것입니다. 5년이 너무 기니까 중간에 간이대회라도 개최하겠다는 나라들이 많아 국제엑스포기구가 순서대로 허가를 내어주고는 관련인사가 와서 대충 개․폐회 때 인사 몇 마디 해주고 마는 것입니다. 국제기구의 지원금은 한 푼도 안 준다는 것이지요. 중국의 상해엑스포 같은 것은 정식이고 여수는 약식엑스포라고 할 수 있답니다. 크게 다른 점은 정식엑스포는 국제관 하나를 만들더라도 참여하고픈 나라들이 자국의 홍보를 위해 돈을 들여 아주 성의껏 내용물이 알차게 꾸미고 폐막 후에는 그 나라에 기부를 하는데, 여수박람회는 시설을 모두 우리 돈으로 만들어 놓고 그 나라에 애걸복걸하여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니까 대충 꾸며주는 나라가 많다는 것입니다. 기간도 정식은 6개월이지만 간이엑스포는 3개월이지요. 관심이 적으니 공짜 손님이 많고 적자는 불 보듯 뻔하지요.’
그럼 이런 박람회를 왜 개최하느냐 하는 문제인데, 내가 보기에는 낙후된 여수시 입장으로서는 60년대까지 굳어진 밀수도시란 이미지도 벗겨내고 나아가 명색이 시(市)인데도 천년 만년 시골 같은 동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니 이 기회에 국비를 받아 한 50%는 여수시 리모델링 비용으로 사용하고 50% 가지고 시설을 꾸미고 관련 비용을 충당한 느낌이다. 여수시장과 참모들이 한번 꾀를 내어 정식박람회인 것처럼 개최한 셈이다. 실제로 여수 외곽도로와 엑스포장 코앞까지 닿는 KTX기차역을 건설했으며, 곳곳에 공원과 화단, 크고 작은 관련시설 사업을 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런 비화는 CBS 방송의 ‘김현정 뉴스 쇼'의 <알려주지 않는 엑스포의 진실>이란 프로 같은 곳이나 변상욱 기자의 <기자수첩>이란 고정 컬럼을 통해 널리 알렸다는데 나만 과문하여 사전에 몰랐던 것이다. 20년의 대전엑스포도 같은 성격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대형사업이 자주 있어야 토목사업자들이 크게 돈벌이가 된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도 같은 맥락이다. 강원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만 크게 훼손되는데 이런 것을 깨닫는 데는 세월이 오래 걸리지요. 독일이 유리했지만 해당지역민들이 생활터전인 환경이 돈벌이보다 중요하다고 핏대를 세워 반대를 하니 덕분에 김연아까지 나서서 홍보하는 한국이 유리하였지요. 우리나라 같으면 이런 경우 반대시위를 하면 국익에 손해될 뿐 아니라 무얼 한참 모르는 무식한 강원도촌놈들이라고 비웃으면서 용역패거리와 경찰을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을 것이다. 이런 잔치 하고 나면 남는 것은 흉물스럽게 훼손된 자연환경, 그리고 토목업자들과 몇 대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세어보며 남몰래 크게 웃음 짓는 모습뿐이다. 이런 진실에 대해 이번에도 주요언론들은 모두 눈을 감았다. 왜냐 하면 그들도 무엇인가 이익을 얻으니까.
그렇다 해도, 부모 손잡고 땀을 흘리면서 기다린 수많은 어린이와 학생들에게는 이번의 체험이 신기하고 유익한 체험이 되어 인상 깊은 추억으로 오래도록 남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