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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급 게시판에 있던 나름 비밀한 글인데, 5월 한 달 동안 자유게시판에 걸어둔다.
- 현재를 바꾸면 과거가 바뀐다
1. 기억은 과거로 들어가는 문이다
과거의 문을 지나 다시 문을 열면 거기가 미래다(라고 쿠마라 지바가 말했다)
알츠하이머 환자에게는 <기억>이 없다.
당신이 누구냐고 물으면 그들은 자기가 누군지 진짜로 모른다고 한다. 이름도 모르고, 집도 주소도 모르고, 생일도 모르고, 직업도 모르고, 가족도 모른다.
그렇다. 해마를 통해 대뇌에 장기저장돼 있는 이 ‘기억’을 통하지 않고는 <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붓다는, ‘나’라는 인식(我相)은 본디 없는 것이며, 언제나 무아(無我)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몸부림쳐봐야 기억덩어리일 뿐이다.
<반야심경>에서는, 불교의 오온(五蘊) 이론 중, 인간이 생각하는 '상(想, 지각과 기억)'과 '식(識, 분별과 인식)‘이 다 텅 비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거짓으로, 거품으로, 환영으로 만들어진 생각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반야심경>이 이처럼 "네 생각은 사실 아무것도 실체가 없다(空)"고 가르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자각과 기억(想), 분별과 인식(識)은 얽히고설킨 기억의 오류이거나 찌꺼기이거나 거울에 비친 상과 같은 거짓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오류이며 가짜라는 걸 알아내는 순간 모든 괴로움과 어려움(苦厄)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는 설명이다.
지금 나는 '현재를 바꾸면 과거가 바뀐다'는 말을 풀고 있다.
기억의 문을 열지 않고 갈 수 있는 과거나 미래는 없다. 우리가 기억이라는 방에 들어가 있는 한, 이 기억의 방 안에 갇힌 과거 현재 미래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뒤섞여 함께 존재한다.
그러므로 과거를 바꾸고 싶다면 현재를 닦거나 고치면 된다. 또 현재를 바꾸고 싶다면 미래를 닦거나 고치든지 과거를 고치면 된다.
다만 우리는 시간이라는 타임랩에 걸려 있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를 직접 바꾸지는 못한다. 속임수로야 거짓말로 가득 담은 책을 낼 수도 있고, 왕조실록 같은 것도 거짓으로 쓸 수 있고, 역사쯤이야 독재자 마음대로 고쳐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반드시 들통난다.
여기 들통나지 않고, 진짜 과거가 바뀌는 진짜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바로 현재를 고쳐 과거를 바꾸거나 미래를 바꾸는 것뿐이다.
이 말을 잘 이해해야 한다.
현재를 바꾸면 어째서 과거가 바뀌는가?
현재를 바꾼다는 건 과거의 어떤 기억에 새로운 가치를 새로 매겨주고, 그것으로부터 해방, 해탈되어 완전히 벗어난다는 뜻이다. 아무리 나쁜 기억도 현재를 확실히 바꾸면 아름다운 기억으로 바뀐다. 그러면 지금까지 아픔이나 고통으로 지녔던 과거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난다.
이것이 과거, 현재, 미래가 엮고 짜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서로 이어져 있으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불교의 연기법(緣起法)과 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의 원리에 이 과거 – 현재 – 미래는 서로 끈끈하게 실시각으로 연결돼 있다. 무엇이 앞이고, 무엇이 뒤도 없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만 흐르는다는 것도 없다. 동시에 존재하며 따로 존재한다.
화엄경의 핵심 사상 '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이 ’마음이 곧 세상의 창조주다‘라는 뜻이자 유식학의 가르침이 곧 이 말이다. 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이란, ’마음이 일어나면 여러 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여러 가지 법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여기서 법(法)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사물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해 느끼는 감정, 판단, 가치관 등 세상의 모든 현상을 아우른다.
- 심생(心生) : 마음이 어떤 대상을 향해 움직이거나 분별심을 내는 상태다.
- 종종법생(種種法生) : 그 마음의 결에 따라 세상이 천 가지, 만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의미다.
- 시원한 해골물은 어째서 하룻만에 먹지 못할 물이 되었나?
원효 스님이 당나라 유학길에 지친 몸으로 동굴에서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셨다. 마른 목이 시원해졌다. 덕분에 편안하게 더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 동굴을 둘러보니 뼈만 남은 유골이 있고, 그 가운데 해골에 물이 들어 있었다. 바로 그가 지난 밤 잠결에 마신 물이었다.
원효는 깜짝 놀랐다. 그 즉시 구역질이 나더니 그는 켁켁거리며 마신 해골물을 토하려고 애썼다. 아무리 애써도 이미 마신 해골물은 토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깨우쳤다. 해골물을 자세히 바라보니, 수십 년이나 수백 년 그 자리에 있던 빈 해골에 동굴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이 저절로 괸 것이었다. 물을 들여다보니 맑고 깨끗했다. 먼지도 없고, 흙도 가라앉지 않은 맑은 물이었다.
그러자 구역질나던 몸이 저절로 차분해지더니 몸도 마음도 금세 가뿐해졌다. 현재를 고쳐 과거를 바꾼 것이다.
그는 목이 말라 물을 마셨을 뿐이다. 이 사실은 변함이 없다.
잘 자고 일어나 해골을 본 순간 본능적으로 구역질하던 원효는 잘못된 마음을 냈을 뿐이다. 이게 심생(心生)이다.
불끄다가 사람이 불에 타죽는 것을 본 소방관, 총을 맞거나 폭탄으로 몸이 찢어지며 죽는 적을 지켜본 군인 들은 종종 트라우마를 겪고, 증세가 심하면 평생 고생한다. 전쟁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마음이 곧 창조주‘지만 편도체가 오류 나고 잘못 얽히고 설킨 대뇌 신경세포까지 흔들리면 스스로 악마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지옥을 만들기도 한다.
공포, 불안, 욕망, 감정 따위를 주도하는, 소방관과 군인의 편도체(Amygdala) 뇌는 그 현장을 벗어난 지 오래 지났는데도, 시간이 흘러 과거가 되었는데도 끊임없이 불에 타죽는 장면과 적군이 몸이 찢어지는 장면을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쉬지 않고 틀어대는 것이다. 이 가짜 필름만 하루 종일 틀어대고, 몇 년이 지나도 같은 가짜 필름만 틀어대는 것이다. 영사기인 편도체가 너무 큰 충격으로 고장났기 것이다.
트라우마라는 나쁜 경험, 나쁜 과거는 과거 어느 한때의 망령이 현재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마음이 과거의 영상을 잘못 또는 지나치게 과장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라는 빛으로 영사기의 렌즈를 닦아내면, 지옥 같던 과거의 영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맑은 현재의 숨결이 차오른다. 이처럼 현재를 뜯어 고쳐야만 과거가 고쳐지지, 현재를 고치지 않고는 과거가 고쳐질 수가 없다.
그래서 트라우마는 그대로 두면 안된다. 종기처럼 더 커지고 더 나빠진다. 반드시 치료해야만 한다. 이렇게 현재를 치료하면 과거도 치료될 수 있다. 그렇게 치료된 과거는 더 이상 현재를 괴롭히거나 나쁜 재앙(苦厄)을 불러오지 않는다.
세상은 내 마음 바깥에 따로 존재하는 단단한 덩어리가 아니다. 내 마음이라는 영사기가, 허공이라는 스크린에 쏘아 올린 빛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낸 가짜 영상이다. 그러므로 현재를 올바르고 끈기있고 지혜롭게 사는 것은 단순히 미래와 현재와 과거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우주 자체를 새로 빚는는 거룩한 작업이다.
"나"는 내 세상의 창조주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당신의 과거가 만들어낸 거미줄 같은 망상에 사로잡혀 내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 더 설명이 필요하다.한 마디 말로 바뀐다면 그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니다. 세상은 훨씬 더 복잡하다.
몇 가지 사례를 읽으면서 스스로 현재를 치료해보기 바란다.
독일의 화학자 0460 프리츠 하버(Fritz Haber, 1868.12.09.)는 1차 대전 때 독가스를 만들어 연합군을 많이 죽게 했다. 하지만 그는 똑같은 기술로 질소와 수소를 결합한 암모니아를 대량 생산하여 비료를 만들어냈다. 당시 20억 명이던 인류가 오늘날 80억 명으로 늘어난 것은 오로지 그의 비료 덕분이다. 덕분에 노벨화학상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아내 0630 클라라 헬레네는 여성 최초의 화학박사로서 남편과 연구실에서 함께 하던 동료였지만, 1차대전 참호에서 그의 남편이 만든 독가스로 수없는 군인들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권총 자살한다. 그 또한 독일군을 위해 이토록 헌신했지만 단지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나 났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이 말 한 마디로 고쳤다. "과학자는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세계에 속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조국에 속한다.” 그는 나중에 이스라엘이 되는 팔레스타인의 유대인정착촌에 있던 다니엘시프연구소(지금의 와이즈만과학연구소 전신)로 가던 중 스위스 바젤의 여인숙에서 심장마비로 쓸쓸히 죽었다. 스스로 과학자로서만 살았다는 현재 가치를 지킴으로써 그의 과거 업장을 녹인 것이다.
그의 부인은 트라우마를 벗지 못한 채 자살했지만, 막상 독가스로 수만 명을 죽인 0460 프리츠 하버는 "과학자는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세계에 속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조국에 속한다.”는 말로 수많은 연합군을 그가 만든 독가스로 질식해 죽이고, 아내마저 자살하게 만든 자신을 트라우마에서 건져내고, 새로운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한 독일을 떠나 고향 땅 팔레스타인(오늘의 이스라엘)을 향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이렇게 현재를 고쳐 과거를 치료하지 않는다면, 숱한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고 있는 총과 탄알과 폭탄, 미사일을 만드는 사람들은 또 다른 프린츠 하버가 되는 것이다.
이 말은, 핵폭탄을 만들어 일본인 수십 만 명을 죽게 한 오펜하이머에게도 그대로 따라붙는다. 그는 나중에 핵폭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수소폭탄 개발이 시작되자 이를 격렬하게 반대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일본인 수십 만 명이 자기가 만든 핵폭탄으로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오펜하이머로서는 누군가 그의 귀에 확성기를 대고 “살인마! 살인마!”라고 외치는 것같았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은 안된다며 수소폭탄 개발 반대를 주장하고, 몸부림치며 저항했다. 미국 정부는 그를 청문회로 불러내 모욕하고 증오하였다. 때마침 불어닥친 매카시 열풍(반공 열풍)에 오펜하이머의 학문·사회의 명예가 줄줄이 벗겨지거나 훼손되고, 국가 최고 수준에 있던 공직에서 모조리 쫓겨나고 권한을 빼앗기고, 날마다 언론과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욕설과 비난으로 극심한 스트레스 암에 걸려 그만 일찍 죽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수소폭탄 개발에 저항암으로써, 핵폭탄으로 일본인 수십 만 명을 죽인 자신의 끔찍한 기억을, 그 두꺼운 업장(業障)을 녹여낸 것이다.
이번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현실 지옥인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심리학자 0515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사례를 보자.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 정신과 의사이던 그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죽음의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이유는 딱 하나,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냥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수용소에서 부모와 아내를 모두 잃었다. 수용소는 지옥이었다.
그는 인간이 가진 최후의 자유는 상황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권리임을 깨달았다. 즉 현재를 깨우쳐 새로운 해석을 내리는 것뿐이었다.
수없는 사람이 죽어나가고, 그런 중에도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그는 미치지 않고, 지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서 있는 그 지옥을 끝까지 관찰했다. 결코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사람이 죽어도, 목을 매거나 총살이 이뤄져도 흔들리지 않았다. 더러운 옷, 형편없고도 늘 모자라는 음식, 쥐가 들끓는 숙소에도 그는 스스로 ’나는 정신과 의사다‘라고 되풀이 외우며 결코 존엄을 잃지 않았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 수용소에 끌려오기 전,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로서 3000명이 넘는 자살 충동 여성들을 치료한 경험이 있었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한 뒤 그는 독일인인 아리안은 치료하지 못했다. 더러운 유대인이 아리안족의 몸에 손을 안된다는 나치의 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당시 나치는 'T4 작전(장애인 및 병약자 안락사 프로그램)'으로 안락사를 자주 시키곤 했는데, 그는 진단서를 고쳐 그런 위험에 빠진 환자들을 구해냈다. 그래도 전쟁이 격화되자 1942년, 그는 게토로 추방되고, 거기서 나치 명령으로 정신과 및 신경외과 의사로 일했다. 수용소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자살을 줄이기 위해 나치가 그를 의사로 쓴 것이다. 그 사이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죽고, 동생이 죽고, 아내도 죽었다. 가족 중에 나치수용소로 끌려오지 않은 단 한 사람은 여동생 스텔라 뿐이었다. 스텔라는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다는 소문을 듣고 미리 호주로 이주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가족은 수많은 소문이 들리는데도 행동하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그 대가를 치렀다.
이 모든 것을 겪고 과거를 되새김한 빅토르 프랑클은 철저히 현재를 고쳤다. 아우슈비츠 경험을 기초로 생각하고 또 살피면서, 불안과 고통은 인간의 삶과 죽음의 양면성으로부터 오는 어쩔 수 없는 유한함(결국은 누구나 다 죽는다는 좌절)과 한계(아우슈비츠와 나치의 광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에 막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금 그리고 여기(Here and Now)’에 특별하고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유한함과 한계에서 오는 공포와 좌절과 포기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수용소라는 이 끔찍한 현실을 지켜보니, 그 지옥에서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니 “하루하루 공포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처지를 다시 해석하거나 ‘지금 그리고 여기(Here and Now)’에 살아야 할 이유와 의미를 찾은 사람만이 끝까지 살아남더라”는 진실이었다.
마침내 1945년 수용소가 해방되어 겨우 목숨을 건진 그는 인간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생존의 가장 큰 동력이라는 로고테라피(Logotherapy, 의미치료)를 창시했다.
그는 고통 자체가 아니라 고통을 따라오는 여러 현실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면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히고, 그렇게 되면 인간성을 파괴당하거나 혹은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며, 로고테라피를 알렸다.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삶의 목적을 일깨워준 고전이 되었다. 현재를 고쳐 과거를 바꾼 이야기다.
그는 아무리 참혹한 과거라도 현재의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변한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사상은 현대 심리학에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데 핵심적인 기둥이 되고 있다.
지옥 같은 스크린 위로 의미라는 빛을 쏘아 올려 자신의 우주를 재창조한 그는 진정한 정신의 승리자였다.
이런 사례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현재를 다시 해석하고, 다른 의미를 새로 부여하고, 그 가치를 더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과거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과거가 바뀌면 당연히 현재가 바뀌고, 현재가 바뀌면 미래가 바뀐다.
한편 미래를 바꾼다는 것은 비전을 세우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래를 바꿔 현실을 고치고, 과거도 고친다는 말은 언뜻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런 사례는 매우 많다.
이것은 마치 기도의 원리와 비슷하다. 기도란 붓다나 하느님이나 귀신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된다는 이미지를 굳게 믿는 것이어야 한다.
새해 세배를 받는 노인들이 결혼한 아들에게 “올해 아들을 낳았다지?” 하면서 덕담하는 것은, 아들을 낳아달라는 희망의 언어다. 그 말을 마치 현실 속에서 이미 일어난 일처럼 말함으로써 미래를 먼저 완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는 그 미래에 맞춰 재설정될 수밖에 없다.
보통은 과거가 현재를 만든다고 믿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나 현실을 새로 창조하는 사람은 미래(목적)를 분명하고 선명하게 설정하여 현재(수단)를 움직여버린다. 미래에 목적이 적힌 표지판을 설치하고 현재를 그 미래로 이끄는 것이다.
미래의 비전이 성공하면, 과거의 모든 시련은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라는 훈장으로 바뀐다. 즉, 미래가 찬란하면 과거의 흙수저 삶은 '영웅의 고난 서사'로 고쳐지는 것이다.
여기 그 사례를 보자.
- 케네디의 문샷(Moonshot)
1962년, 0525 케네디 대통령은 "우리는 10년 안에 달에 가기로 결정했다"고 선포했다. 당시 미국은 우주 분야에서 소련에 크게 뒤처져 패배주의에 빠진 과거와 혼란스러운 현재를 겪고 있었다.
대통령인 케네디가 나서서 '달 착륙'이라는 1970년대의 미래를 확정하자, 1960년대라는 현재를 사는 미국 청년들의 전공이 바뀌고 수만 개의 기업이 새로운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미래의 목표가 정해지는 순간, 아무 의미 없던 오늘의 연구와 실패는 '인류의 위대한 도약'을 위한 소중한 과정으로 그 가치가 재평가되었다. 미래가 현재의 게으름과 과거의 패배감을 고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어이 현재를 바꾸고, 미래마저 자신들의 상상대로 고쳐버렸다. 케네디가 목표로 세운 ‘10년 안’이라는 1969년 7월 20일에 아폴로 11호는 달 착륙에 성공했다. 과거가 현재를 바꾸고, 현재가 미래를 바꾼 문샷(Moonshot)이 바로 아폴로 11호다.
- 우리 흑인에게는 꿈이 있다
미국 흑인 인권 운동가 0455 마틴 루터 킹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차별과 멸시를 받던 흑인들에게 미래를 고쳐 현재를 바꾸자는 유명한 연설을 한다.
아직은 흑인 차별이 심하던 1963년, 링컨 기념관 앞에서 울려 퍼진 이 연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현재로 끌어온 대표적 사례다.
이 날, 흑인들이 어둡고 쓸쓸하고 힘든 현실을 듣고 우뚝 일어나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을 듣는 순간, 그들의 미래가 선포되었다.
그 즉시 백인들에게 차별받던 흑인들은 자신들이 '피해자'가 아닌 '미래의 주인'으로 다시 해석했다.
이렇게 미래의 비전이 세워지자 핍박받던 흑인들의 현재의 고통은 '새 시대를 열기 위한 산고(産苦)'로 바뀌었다. 미래의 빛이 현재의 어둠을 고친 셈이다.
- 정주영의 거북선 지폐와 조선소
정주영의 이야기는 미래로 현재를 바꾸고, 과거로 현재와 미래를 바꾼 사례이기도 하다
그는 배를 짓고 싶었다. 그는 겂싼 울산 백사장만 갖고 있었다.
정주영은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에 찾아가서 차관을 빌리면서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권 지폐를 내밀었다.
"우리는 이미 1500년대에 철갑선을 만들었다."
사실 그의 ‘현재’는 조선조 부지 사진 한 장 없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미래의 울산 백사장에 '세계 최대의 조선소'라는 이미지를 그려, 이 미래를 바클레이스 은행에 팔았다.
그의 배짱에 놀란 바클레이스 은행은 “그러면 배를 주문
미래의 성공을 확신하자 가난했던 과거는 '잠재력을 가진 민족의 저력'으로 재해석되었고, 황량한 백사장은 세계적인 공업 단지로 탈바꿈했다.
- 엘리우드 킵초케의 위대한 실험
스포츠에서 여러 조건이 맞으면 신기록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에게 최적의 조건을 맞춰준다면 세상은 훨씬 더 좋아질 것이다.
1250+ 엘리우드 킵초케는 마라톤 선수로서 2020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하지만 2시간 벽을 깰 가능성이 높은 선수로 평가받았지만 그는 이 기록에는 실패했다. 이후에도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자 엘리우드 킵초케는, 인간의 신체 능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마라톤 2시간 완주’라는 목표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는 온도, 습도, 시간, 신체 컨디션을 체크하여 최적일 때 달리고, 공기 저항을 막기 위해 페이스메이커 41명이 그를 둘러싼 채 달리는 미래를 그렸다.
그렇게 하여 꿈과 과학이 만든 ‘INEOS 1:59 Challenge 대회’가 열렸다. 이 날 그의 목표는 과학자들이 규정한 인간의 마라톤 한계 2시간이라는 벽을 직접 깨는 것일뿐 상금도,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을 수도 없는 이벤트였다.
대회라기에 참가 선수는 오직 킵초케 딱 1명이었다. 무려 41명이나 되는 페이스메이커도 중장거리 및 마라톤 엘리트 선수들이었다. 도로 곳곳에 레이저를 설치하여 현재 거리, 습도, 기온까지 볼 수 있게 했다. 음료는 자전거를 탄 주최측 요원이 건네주는 것을 받아마셔 시간을 아꼈다. 신발은 나이키가 킵초케 발에 가장 알맞도록 특수 제작한 것이었다(공식 경기가 되려면, 4개월 이상 일반인에게 시판된 운동화만 사용할 수 있다)
그러고도 페이스메이커를 기러기들이 날아가는 안행(雁行)처럼 두 줄로 늘여세워 공기저항을 줄이고, 선도차가 호흡 주기를 깜박이로 표시해주는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렇게 미래를 꿈꾸어, 미래를 바꾸는 꿈으로 그는 출발선에 섰다.
마침내 그는 이 날, 공기 저항을 최대한 줄이고, 자신의 신체 능력을 최적으로 조절하고, 페이스메이커들의 응원을 받으며 달린 끝에 인류 중 누구도 해내지 못한 1시간 59분 40초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냈다. 미래를 꿈꾼 그가 마침내 현재를 바꾼 것이다.
- 인간 한계를 바꾼 옥스퍼드 의대생
20세기 중반, 영국에서는 1마일(1609m)을 4분 안에 달리는 것은 인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집단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생리학자들조차 4분벽을 깨려 하면 심장이 터지거나 허파가 찢어질 것이라 경고하며 과학의 이름으로 불가능의 빗장을 걸어 잠갔다.
인류는 이 집단 미신에 갇혀 100년이 넘도록 단 1초의 벽도 넘어서지 못한 채 스스로 한계로 규정해 놓고 살았다.
1954년 5월 6일, 옥스퍼드 의대생이던 0515 로저 배니스터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미래를 정밀한 계산과 비전으로 바꿔놓고 출발선에 섰다. 그는 미래를 바꿔놓고 그 힘으로 현재까지 바꾸고자 직접 나선 것이다.
그는 400미터 트랙 네 바퀴를 각각 1분 안에 달린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거대한 장벽을 실천 가능한 현재의 과제로 쪼개어 재구성했다.
마침내 그가 3분 59초 4라는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자, 인류를 가두었던 불가능이라는 과거의 유령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벽을 깨자마자 1년 안에 37명의 선수가, 2년 뒤에는 300명이 넘는 선수가 4분벽을 돌파했다는 점이다.
이는 한 사람의 비전이 확정된 미래가 되었을 때, 인류 전체의 집단 무의식과 신체적 한계라는 현재가 어떻게 고쳐지는지 보여주는 실증 사례다.
불가능하다는 ‘과거의 기억’이 가능이라는 ‘미래의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인류의 해마에 저장된 한계의 데이터는 완전히 새로 쓰였다.
배니스터는 단순히 기록을 세운 것이 아니라, 미래를 선점하여 인류의 정신적 영사기에 박혀 있던 절망의 필름을 희망으로 갈아 끼운 창조주였던 것이다.
미래를 미리 내다보는 비전은 단순히 내일의 계획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강력한 중력으로 오늘의 나태함을 끌어당기고, 어제의 상처에 '승리의 흉터'라는 새로운 훈장을 붙여주는 마법이다. 미래를 먼저 확정 짓는 순간, 우리는 시간의 노예에서 시간의 주인이 된다. 그것도 과거에 묻히지 않고, 현재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바꾸고 고칠 수 있는 시간의 주재자가 되는 것이다.
”업장(業障)이 두텁네, 집안이 좋지 않아서, 배운 게 없어서, 죄를 많이 지어서, 가진 게 없어서“ 같은 말은 상상하지도 말고 내뱉지도 말아야 한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왜 내게 이런 일이” 같은 넋두리로 현실의 포로가 돼서도 안된다. 그런 말과 상상은 입밖으로 내지도 말아야 한다. 한숨을 쉴 때마다 공포와 불안에 빠진 편도체의 포로가 되어 지옥으로 끌려가니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
현재를 치열하게 사는 것이 곧바로 과거를 고치는 것이요, 미래도 바꾸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굳센 믿음이 현재를 바꾸고, 과거도 바꿔준다. 과거가 바뀌는데 왜 과거에 매달릴 것인가.
이 도리를 알면 그가 바로 자유인이요, 해탈자다.
“현재를 고치고 닦아 과거를 바꾼다”
“과거를 고치고 닦아 현재를 고친다”
“미래를 고치고 닦아 현재와 과거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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