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2: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어디‘ hYea' (346 아이예 C. ABT hYEa'w]) 어디에 (존재하지 않다는 뜻에서 유래)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믿음 생활의 기본 행동이며 중요한 순종이다. 예배하지 않고 하나님께 복을 받겠다는 것은 자기 욕심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므로 받는 축복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복의 법칙은 심고 거두는 것이다. 이 법칙에 따라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라고 말씀하신다(고후 9:6). 사람들은 적게 심고 많이 거두기를 바라고 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거나(교만의 마음으로 하찮게 봄)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십일조와 제물 드림을 게을리하지 않고 철저히 하였다. 이 사실을 이삭은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번제를 드리러 산으로 오르는 아브라함에게 뭔가 잘못됨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은 번제 할 어린 양이 없는 것이다. 제물 없이 예배할 수 하는 없음을 알기에 아브라함에게 ’번제 할 어린 양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제물은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리는 것이다. 억지와 인색함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즐겨내는 자를 하나님은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신다(고후 9:7).
많은 사람이 예배의 참석으로 믿음의 도리를 다한다고 생각한다. 예배는 출석 도장 찍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번제물과 함께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우리에게 ’번제 할 어린 양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신다. 하나님은 예배의 번제물을 통해 응답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번제 할 어린 양’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보신다. 만약에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제사하는 법을 올바르게 배우지 않았더라면 ’번제 할 어린 양‘의 중요성도 몰랐을 것이다. 올바른 제사를 위한 이삭의 질문은 아브라함의 가정에 새로운 축복과 기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