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중국의 대안시장이다. 미국·중국 갈등의 완충지대로서 베트남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포스트차이나 베트남]④베트남의 민낯…장밋빛 전망은 금물© 제공: 아시아경제
미·중 갈등의 최대 수혜지로 베트남이 부상하면서 베트남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이어지고 있지만 베트남 전문가들은 지난해와 같은 성과가 올해에도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에 올해 1분기 베트남 경제 지표가 고꾸라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주요국들의 통화긴축이 가속화된 데다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 수요가 감소하면서 '글로벌 생산기지' 베트남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3.32%로 13년래 최저 수준에 그쳤다. 베트남중앙은행(SVB)은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금리를 인하, 개발도상국 중 처음으로 피봇(PIVOT·통화정책 전환)에 나서며 경기부양에 힘쓰고 있지만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인 6.5% 달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올해 1분기 베트남 수출이 꺾이면서 지난해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 입지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베트남이 글로벌 경기에 쉽게 휘청일 수 있는 시장인 만큼 정교하고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달 말 베트남 인구가 1억명을 돌파하면서 생산기지가 아닌 소비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현지 기업들의 목소리는 사뭇 다르다. 인구를 등에 업은 베트남 소비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면서 현지화에 실패해 철수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기업 타코그룹은 지난 2021년 10월 이마트 베트남법인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공격적으로 매장을 확장했는데, 인수 후 성장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씁쓸한 상황이다.
대(對) 베트남 수출 중간재 비중 90% 달해…소비재 비중 4% 불과
대(對) 베트남 가공단계별 수출현황을 봐도 아직 소비시장을 본격 공략하기는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베트남 수출은 중간재가 88.8%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한국과 베트남의 교역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생산공장)에 중간재를 수출해 완제품을 생산한 후 베트남에서 세계나 한국으로 수출하는 구조다. 지난해 대(對)베트남 수출의 소비재 비중은 4.2%에 불과했다. 장상식 무역협회 글로벌공급망분석센터 동향분석실장은 "2020년 이후 지속적으로 중간재의 수출 비중은 늘고 있으나, 그 외 1차산품, 소비재, 자본재의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라며 "베트남이 한국제품에 대한 구매 의지가 높고, 베트남 소비자의 구매력도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 소비시장으로서 본격화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포스트차이나 베트남]④베트남의 민낯…장밋빛 전망은 금물© 제공: 아시아경제
미·중 완충지대 베트남, 우회수출 기지 적극 활용해야 전문가들은 베트남을 미국과 중국의 완충지대로 접근하는 전략이 효율적이라고 조언한다.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경제안보전략실장은 "중국과 날을 세우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 베트남은 절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라며 "미국도 좋아하고 중국도 좋아하는 베트남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1위 투자국인 한국은 베트남을 우회수출 기지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은 베트남 시장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14일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해 권력 서열 1위인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과 팜 민 찐 총리 등 지도부와 만나 양국 관계 증진 방안을 적극 논의했다. 미국과 베트남은 올해 7월 포괄적 파트너십 체결 1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가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베트남은 이미 한국, 중국, 러시아와는 가장 공고한 수준의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은 블링컨 장관의 베트남 방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유연하게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대나무 외교'를 추구해 온 베트남이 미·중 갈등 속에서 향후 어떤 전략을 취할 지도 새로운 관전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한·베 교역액 2022년 877억달러→2030년 1900억달러로 성장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베트남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탈중국화로 중국을 대체하는 생산기지이자 신시장으로서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20년간(2013~2022년) 한국과 베트남의 교역액은 연평균 15.6%의 빠른 증가율을 나타냈다. 한·베 교역액은 지난해 877억달러에서 오는 2030년 1900억달러로 약 1.1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1분기 베트남이 글로벌 경기둔화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 세계 평균을 상회하는 경제성장률도 투자 매력도를 높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2년부터 2027년까지 베트남이 연평균 6.6%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포스트차이나 베트남]④베트남의 민낯…장밋빛 전망은 금물© 제공: 아시아경제
전문가들은 삼성·LG 등 대기업을 비롯해 국내 중소기업까지 적극 진출해 있는 베트남 시장에 한국 기업들의 생태계가 이미 구축된 만큼 이를 활용해 좋은 관계를 유지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삼성은 지난해 한·베 수교 30주년에 맞춰 2200여명이 근무하는 대규모 연구개발(R&D)센터를 준공했으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준공식에 직접 참여해 동반협력 의지를 보여줬다. LG전자 하이퐁 공장은 자동차 전기전자장치·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베트남 하노이에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소프트웨어(SW) 개발과 검증을 담당하는 'LG전자 베트남 R&D 법인'을 열었다. 앞으로는 IT기술이 발달한 베트남 스타트업 시장을 적극 공략해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베트남 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베트남의 스타트업은 약 3800개 정도로 급증했다. 곽 실장은 "베트남 소비자들이 디지털 중심으로 소비 방식이 변화하면서 오는 2025년까지 베트남 전자상거래는 오프라인 식료품 소매업과 비슷한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라며 "1980~2012년 사이 출생자로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를 모두 포함하는 세대인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오는 2030년까지 베트남 소비의 4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스타트업 시장의 기회가 커지고 있다"
고 강조했다. 한 예로 성인 인구의 90% 이상이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베트남에서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중고 오토바이 거래 플랫폼 ‘오케이쎄(OKXE)’의 창업자는 한국인이다.
베트남 인구가족계획국 자문을 맡았던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IT기술이 발달했지만 규제의 벽에 막혀 신산업 기회를 놓치고 있는 국내와 달리 베트남은 새로운 시도와 가능성이 열려있다"면서 "베트남도 고령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중위 연령이 32세로 젊은 국가인데다 하노이와 호치민시와 더불어 소규모 도시 또한 새로운 소비 중심지역으로 발전하고 있어 신사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