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가 살다 간 자리에 부추꽃이 예쁘다.
아침나절 무 심고 남은 공간에 갓을 옮겨 심었다. 열흘 전쯤 심은 배추는 제법 형태를 갖춰 자라고 있다. 얼추 김장농사가 궤도에 오르는 중이다. 가뭄과 작열하는 태양에 곤욕을 치른 들깨들은 찬바람 일고 가을 비 내리면서 제법 몸집이 어금지금해졌다.
여름내 키 큰 도라지에 가려져 가녀리기만 했던 부추는 도라지를 캐내고 난 뒤엔 제 세상을 만난 듯 으쓱으쓱 자라 제법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막 피어난 흰 부추꽃은 살펴볼수록 예쁘다.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올 고추농사는 ‘고추는 빨갛게 되었을 때가 아니라 빨간 고추가 말랑말랑해졌을 때 따는 것’이라는 큰(?) 깨침을 주고는 막바지 풋고추를 매달고 있다.
배롱나무는 치적치적 가을비에 동백마냥 꽃잎을 떨어뜨리며, 가을깊이만큼 짙어진 꽃잎을 연신 피워내고 있다. 마을 주위를 둘러싼 산 기스락 숲정이의 나무들이 시나브로 성기고 헐거워지니, 술처럼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는 긴소매 옷을 걸쳐야 할 정도로 기온이 내려갔지만, 한낮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등골에 땀이 돋을 정도로 아직은 햇볕이 강하다. 그래봐야 얼마 뒤에는 기력을 잃겠지만, 가을 모기의 기승은 예년보다 거세다. 여름 내내 이어진 가뭄으로 움츠렸던 설움을 선선한 가을에 한껏 푸는 것 같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턱이 빠진다는 홍사성 시인의 ‘처서’라는 시도 있지만, 왠지 올해만큼은 예외인 듯싶다.
이래저래 가을은 변화가 많이 느껴지는 계절이다. 변화야 어느 계절이든 쉼 없이 이어지는 것이지만, 오감으로 손쉽게 변화를 느끼는 계절은 단연 가을이다. 그래서인지 시인묵객들은 가을을 노래하며 무상(無常)과 덧없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어찌 무상이 덧없는 것에 한정될 수 있으랴. 무상의 진리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가을처럼 고마운 스승이 따로 없다.
가을비에 떨어진 베롱나무 꽃잎. 동백마냥 붉은 세월을 대지 위로 던진다.
이파리들이 떨어지면서 성글어진 숲정이에서, 떨어진 낙엽과 꽃잎에서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이파리를 덜어내고 줄기 안의 물기를 비우는 나무의 지혜를 읽어낼 수 있다면, 그러나 아주 다 버리지는 않고 봄날 다시 생명을 북돋을 최소한의 물기만을 마중물로 남겨두는 놀라운 절제를 배울 수 있다면, 예서 한 발 더 나아가 제행무상의 가르침을 체득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은 흐르는 것일 뿐 고정된 실체가 없는 무아(無我)임을 깨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는가!
그래서인지 가을에 피는 꽃은 아름다움 자체를 넘어 압정에 꾹 질린 것과 같은 눅진한 교훈을 제공해준다. 가을에 피는 꽃을 보며 많은 시인들이 인생을 노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 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그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꺾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박남준 시 ‘흰 부추꽃으로’ 전문
가을걷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0월 중순까지는 농사일도 비교적 한가롭다. 밭농사보다는 글농사의 계절이 드디어 도래한 것이니, 내겐 기다리던 시기이기도 하다. 글을 쓰다가 졸리거나 머리를 식힐 충동이 느껴지면 미련 없이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선다. 집 앞으로 펼쳐진 마을 전경은 하루가 다르게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다.
마당을 거닐다가 뒤란을 한 바퀴 도노라면 도처에서 무상의 도리를 설하는 법문이 들리는 듯싶다. 초목이 바람결에 실어 전하는 설법을 언뜻언뜻 들으면 설사 찬 기운 섞인 바람이 아니더라도 옷깃을 여미게 된다. 태양이 고르게 온 누리를 차별 없이 비추고 있으나, 그 볕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각각의 그릇크기에 따라 다른 것처럼, 산천이 촌음도 쉬지 않고 진리를 설하고 있으나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함이 서글플 뿐이다.
참새 날아간 청매화가지의 여운..... 이순(耳順)이 가까워도 사는 일이 도무지 서툴다.
청매화나무 가지에 참새 몇 마리 매달려 그네를 타듯 놀고 있다. 선지식에게는 모든 생명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와 식구처럼 어울린다는데, 어찌된 일인지 내가 다가가면 참새들은 경계의 눈초리를 한 채 후드득 날아가 버린다. 아마도 나의 몸짓과 기운에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언제나 심신 깊숙이 깃든 살기를 떨쳐낼 수 있을까. 나지막하게 ‘모든 생명이 행복하기를! 모든 생명에게 고통 없기를! 행복하기를! 고통 없기를!’를 주문처럼 외운다. 이순(耳順)이 가까워도 사는 일이 도무지 서툰 것을 참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