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아사왕에 이어 여호사밧의 이야기다.
마치 영화를 보듯 흥미진진하고 감정이입이 된다.
두 왕은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공통점이 하나 보인다.
처음은 순전했지만, 어느 지점에서 균열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아사왕은 이스라엘의 도발 앞에서
이전과 달리 하나님이 아닌 아람을 의지하며 균열이 시작되었고,
말년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거나 백성을 학대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하나님은 그의 삶 전체를 어떻게 보셨을까.
이어 여호사밧이 왕이 된다.
그 역시 하나님과 동행하며 복을 누린다.
그런데 더 큰 안정과 이익을 위해
불순한 이스라엘 왕과 손을 잡는다.
길르앗 라못 전투를 앞두고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예언자들을 부른다.
그러나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다수의 예언자들은 한 목소리로 승리를 말하고,
단 한 사람, 미가야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밝힌다.
이 장면은 시대를 초월한 현실을 보여준다.
권력과 이익을 쥔 자들은 언제나 다수를 형성하고,
그 다수는 힘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많은 이들이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휩쓸린다.
더 무서운 것은, 그 흐름이 종교의 이름을 입을 때다.
미가야의 설명처럼, 세상을 속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거짓 예언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념이나 사상보다 더 돌이키기 어려운 것이 종교성이다.
아무리 문제가 드러나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 지도자를 분별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역사 속에서
거짓되고 왜곡된 지도자들은 늘 존재해 왔고,
그들은 인간의 죄성과 욕망을 이용해
세력을 키우고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여호사밧은 지금
다수의 확신과 한 사람의 진실 사이에 서 있다.
결국 이 장면이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참과 거짓이 공존하는 현실 속에서
분별하고 선택하는 것은 결국 ‘내 몫’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이 없다면
우리는 쉽게 다수의 소리에 기대어
왜곡된 선택을 하게 된다.
결국 나는,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목소리를 따라 선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