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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뚝심이 있어야 부자가 된다!! 원문보기 글쓴이: 시노빅
운영자 노광수(55)는 처와 딸 셋 그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7식구가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려서부터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무역을 하는 것이 꿈이라서 외국어공부(영어,일어)를 미친 사람처럼 해온 보람이 있어서 결국은 (주)신창교역 무역부 직원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고 3년동안 무역을 배우기위해서 부산과 서울의 세관,선박회사,통관사,은행을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다보니 저절로 무역실무를 익히게 되었다
외국에 플랜트(공장시설)를 수출하기위해서는 각종 기계와 부품이 많이 들어가게되는데 워낙 열심히 일을 하니까 사장한테 신임을 얻어서 발주 책임을 맡게되어 지방의 공장들을 돌아다니며 주문및 검품을 하는 일을 보게되었는데 거래처 여기저기서 자기네 제품을 서로 납품할려고 돈봉투를 들고 나를 찾아 다녔으나 연락처(그 당시에는 휴대폰이나 삐삐가 없었슴)를 알려주지않고 빈틈없이 청렴 결백하게 일을 처리하며 초년 직장 생활을 보냈다. 한 번은 세관직원이 관세환급을 잘 해주지 않아서 관세청장한테 직접 따지러 갈 정도로 의협심과 정의감이 넘쳐 흘렀다.
무역회사를 3년만에 그만두고 똑바른 길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는 뜻에서 정도교역(正道交易)이라는 회사를 차렸으나 이 때부터 나의 가시밭길은 시작되었다.말이 무역회사지 외국과의 거래가 쉽지가 않았다.오다받을 욕심에 세계각국에 샘플을 보냈으나 결국은 2년만에 샘플비와 항공비,사무실 임대료등으로 적지 않은 돈을 까먹고 회사를 접어야 했다.
우선 처자식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다시 회사에 취직했다.그런데 어느 날 종로 길거리에서 토끼털(주로 전화기 받침대로 사용)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장사가 그렇게 잘 될 수가 없었다.그래서 다음 날로 회사를 때려치고 그 사람한테 토끼털을 받아서 토끼털장사를 시작했는데 하루종일 종로에서 소리치며 장사를 했으나 어두워질 때까지 한 장도 못팔았다.집에서 나갈때는 호주머니에 돈을 빵빵하게 넣어갖고 과일이라도 한봉다리 사서 들어오겠다는 생각에 돌아올 차비도 없이 떠났는데 결국은 한 장도 안 팔려서 집에 돌아 갈 차비가 없어서 결국은 지나가는 나이드신 분을 붙잡고 자초지종 얘기를 하고 원가에 한장 팔아서 겨우 집에 올 수가 있었다.
다음 날은 아침 일찍 사람이 더 많은 명동으로 나갔다.그러나 자리를 잡은지 한 시간도 안돼서 한 장도 팔지 못한채 팔에 도로 단속반이라는 노란 완장을 찬 중구청 도로 단속반차량에 걸려서 물건을 몽땅 뺐겼다.그야말로 피 눈물이 쏟아졌다.길거리에 흩어진 토끼털을 담은 커다란 가방을 뺏기지 않을려고 몸부림을 쳤으나 그들은 피도 눈물도없이 나를 번쩍 들어서 가방채 차에 실어버렸다.그 트럭뒤에는 나같은 사람 몇명이 쭈구린채 실려 있었다 .구청에 끌려가게되면 벌금 물게된다는 그들의 말을 들으니 겁이 났다. 다른 노점상들을 붙잡을려고 차가 길가에 멈추면서 단속반이 차에서 내려서 뛰기 시작했다.때는 이 때다 하면서 나도 커다란 가방을 메고 차에서 뛰어 내렷다.그리고 한참동안 정신없이 골목길을 달렸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토끼털 장사가 잘 된 이유는 10 여명이나 되는 들러리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들이 전부 손님인 줄 알았다.
어느 날은 연탄집게 장사를 만났는데 참으로 신기했다.옛날에는 전부 연탄을 사용했었는데 연탄을 갈려면 연탄가스를 맡으면서 구멍을 맞추는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위 아래 구멍을 빨리 맞추지 않으면 연탄가스를 계속 마시게 되니까 가능하면 빨리 맞추어야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팔고 있던 연탄집게는 길어서 한번에 밑에 있는 연탄 구멍까지 찌를 수가 있어서 구멍을 보지도 않고 맞추는 그런 집게였다.이번에도 그 집게를 받아서 판매를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 뒤로도 신발장사,옷장사를 해보았으나 도데체가 단속반때문에 장사를 할 수가 없었다.그래서 밑천이 안들어가고 단속반이 오면 쉽게 도망갈 수 있는 무슨 그런 장사가 없을까 하고 궁리끝에 드디어 찾았다.그것은 종로3가 파고다 공원앞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상대로 사주팔자와 작명을 봐주는 것 이었다.학창시절에 취미삼아 공부한 것을 정리해서 노트를 만들고 커다란 삿갓을 하나 구하고 흰 도포자락을 입고 파고다공원앞에 가부좌를 틀고 삿갓을 푹 눌러쓰고 앉아 있었다.사주팔자,성명철학 봐주는데 "단 돈 천원" 이렇게 종이에 적어서 펼쳐놓고 앉아 있었다.오다 가다 한 두명씩 보는 사람이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았다.그래도 토끼털장사 할 때보다는 행복했다.단속반이 와도 가져 갈게 있어야지,내가 길거리에 앉아서 물건을 파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과 동양철학 얘기하고 있는데, 도로 단속반도 무서울 것도 없고 세상 편했다.
어느 날은 중절모를 쓴 나이 드신 노신사가 자기 이름을 좀 봐달라는 것이 아닌가.그래서 음양오행,수리학.사주에 맞춰서 이름을 풀어주면서 어르신 이름은 100점 짜리 입니다하고 말을 건네니, 그 노인하는 말이 "젊은 사람이 공부는 제대로 했구먼.나 저기 앞 건물에 있는데...저기 간판 보이나?" 하는 것 이엇다.
그 간판에는 송원식선생 작명 철학원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나는 앗차 하면서 가슴이 철렁했다. 그 노인 하는 말이 "그래 장사할 데 가 없어서 남의 작명철학 간판밑에서 장사를 하나?"고 야단을 쳤다... 나는 너무나 죄송해서 조용히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었다.나중에 안 내용이지만 그 사람은 동양 철학 계통에서는 유명한 사람이었으며 그 일대 주변이 그런 곳이 많아서 그 나마 장사가 되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남의 텃밭에 들어가서 장사를 했으니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가를 깨달았다.얼마전에 가봤는데 지금은 간판이 안보인다.아마도 돌아 가셨는가보다.20년이 훌쩍 넘어 버렸으니 아직도 살아 계실리가 없겠지.우리집 애들 조카들 이름을 전부 내가 지어 주었는데 어디 작명소에 가서 풀어봐도 전부 100점이라고 한다면서 동생 식구들은 오늘 날까지도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니까 식구들이 전부 굶어 죽는다고 난리가 났다.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직장에 취직을 했다.이번에는 좀 오래 있을 생각으로 취업 정보를 열심히 뒤져서 내가 원하는 무역회사의 과장(그동안 쓸데없는 경력이 많이 붙은 것을 높이 평가한 모양이다.)으로 입사를 해서 눈 코 뜰 새 없이 열심히 일을 했다.전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수출입 상담을 하면서 3년동안 정신없이 보냈다.그런데 또 내 사업을 하고 싶은 병이 도지기 시작했다.식구들이 밥을 먹고 사니까 또 내 사업을 하고 싶었다.다시 회사를 차렸다.회사 이름은 동인상사(東寅商社)였다.소위 동쪽의 호랑이라는 뜻이다.작명을 공부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누가봐도 회사 이름은 그럴 듯 했다.
그때가 1989년이니까 그동안 회사를 (주)RTC 라는 법인으로 바꾸고 지금까지 망하지않고 끌고 오면서 벌써 1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회사 역사로는 중견 회사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주방용품,가정 생활용품을 주로 일본,미국,독일등에서 수입을 해서 국내의 남대문 도깨비사장,부산 국제시장,전국의 도매유통단지,백화점,할인매장에 납품을 하는 회사다.그런데 그 당시에 수입 전문회사들이 전부 그랬지만 1998년도에 IMF를 만나면서 많은 회사들이 쓰러졌다.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환율때문에 도저히 수입을 할 수가 없었다.겨우 회사 간판만 붙들고 있었다.거래처들도 어려우니까 수금이 안돼고,연락도 없이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리고,결제받은 수표는 부도가 펑펑 터지고 ,수년동안 형 아우처럼 지내던 거래처들도 언제 그런 사이였나는 듯이 안면을 싹 바꾸고 돈을 떼먹는 게 다반사였다.어쨌든 IMF터진 뒤로는 사업도 제대로 못하고 미수금 받으러 거래처 쫓아 다니다가 세월을 보낸 것 같다.
남대문 수입상가는 골목이 많다.한 동에 수맣은 가게들이 즐비하게 있는데 나는 돈 받을 거래처가 있으면 그 사람이 날 보면 수금을 못해줘서 미안해 할까봐 그 거래처를 피해서 다른 골목으로 다닌 적도 많았다,그렇게 그들의 입장을 배려해준 내 마음과는 틀리게 그들은 결국은 내 돈을 안주고 가게 문을 닫고 사라지곤 했었다.그렇게해서 남대문,부산 국제시장,전국의 유통 도매단지등에서 받지 못한 돈이 엄청나다.받지도 못할 미수금을 받으러 다닌다고 사방 팔방을 밤낮없이 돌아 다니다 보니 건강도 나빠질때로 나빠지고 돈을 받기는 커녕 내 명대로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그야말로 잠 자다가도 미수금 생각만 하면 벌떡 벌떡 일어나서 베란다에 쭈그리고 앚아서 담배를 끝없이 피워대곤 했으니,몸이 성할리가 있겠나.그래서 돈 떼이고 사업망하면 많은 사람들이 병들고 스트레스 받아서 일찍 죽는구가 하고 생각을 하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직 한 번 뿐인 인생을 그렇게 살다 갈 수는 없었다.그래서 나는 로또 당첨에 버금가는 미수금 장부를 전부 찢어 버렷다.그리고 아예 기억속에서 지워 버렷다. 내가 다시 태어나도 부모 형제라도 외상 거래는 하지 않으리라 결심을 하고 20여년동안 쌓아왔던 나의 무형의 재산이나 다름없는 모든 거래선 연락처를 전부 찢어 버리고 새 출발을 시작 하였다.
과거에 내가 알던 거래처의 연락은 일체 끊어 버리고 세로운 제2의 삶을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식구들은 부모가 돌아 가셔도 문상객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걱정할 정도다.
한 때 나의 별명은 워킹호구였다.걸어 다니는 호구라는 뜻 이다.여기저기 물건만 퍼주고 돈은 받지를 못하니까 남대문 시장사람들이 나한테 붙여준 별명이다.
내가 다시 정열을 바쳐서 1999년부터 시작한 것이 인터넷 쇼핑몰이다.이것은 오프라인처럼 돈을 못 받을 일도 없고 성실히 열심히 고객을 대한다면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 당시에는 옥션이 생긴지가 얼마 안되었을 때다.그동안 수입하면서 쌓인 재고를 옥션을 통해서 판매도하고 인터넷경험도 쌓고 열심히 살아왔다.한때는 옥션 최고등급 사파이어까지 올라갔으며 물품 판매수량이 10만건을 넘을 정도였으니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하루에 택배 물량이 650건이나 나갈 때도 있었는데, 그 시절이 옥션의 공동구매방식이 최고 상한가를 치던 때이다.그 당시에는 일주일동안 공동구매를 진행하는데 옥션공동구매에 선정돼서 메인에 실리게되면 기본이 몇 천개다 .그야말로 두 세가지가 실리게되면 엄청난 수량이 팔리게되는 것 이다.세계각국에서 국내에 소개 되지않은 히트 아이템을 수입해서 옥션 MD들하고 상담을 하면 대부분이 받아 주었다.어떤 때는 수입한 물량이 모자라서 중도에 경매를 중단 해야하는 불상사도 생긴 적도 있었지만. 그 시절이 행복했었던 것 같았다.그 당시에 옥션에서 히트를 쳤던 물건들이 많았지만 킥보드,일제 선글라스,발바닥에 붙이는 수액시트,에어베드,옥매트,의류등이었다.이제는 공동구매도 의미가 퇴색되고 사방에서 G마켓같은 경쟁 사이트가 생기면서 앞으로는 예전의 인기는 찾기가 힘들것 같다.
옥션의 인기가 시들면서 최근 7년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건강,다이어트 관련 용품이다.옥션에 의지하지않고 오로지 나홀로 서기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 것이다.
옥션같은 곳에는 사이트를 선전할 수 없기때문에 물건을 팔아도 소비자들은 판매자의 사이트를 알지 못한다.그래서 옥션거래를 중지하고 어렵더라도 나홀로 서기를 힘들게 하고 있는 중이다.광고비가 많이 들어가는 관계로 국내 주요 포탈사이트에 홍보를 할 수 도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다가 우연히 겐꼬를 찾아온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서 온 정성을 다하는 일 뿐 이다. 이렇게 5년동안 열심히 성실하게 운영을 해왔더니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현재 회원 수가 8천명에 이르고 있으니 그 동안 저희 사이트를 찾아주신 회원들께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팻킬러 판매한지도 어느 새 4년이 지났다.팻킬러를 처음 만들게 된 동기는 아주 우연이었다.하루는 집사람이 동네 목욕탕을 갔다와서 하는 말이 "배가 너무 나와서 뱃살을 빼야겠다"고 하는 것이엇다.그런데 이상한 것은 뱃살을 빼는 데 접시로 문질러서 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세상에 무슨 접시로 뱃살을 빼냐!그런 엉터리 같은 말을 어디서 주어들었느냐...때려치워!"하면서 하지 못하게 했는데,집사람 하는 말이 목욕탕에서 어떤 사람이 그러는데 어디가면 여자들만 들어가는 사우나가 있는데 거기에 갔다 온 사람한테 들은 얘기인데 그 사우나에 가면 배나온 여자가 한 명도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왜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몸에 비누칠을 하고 접시로 뱃살을 문지른 다는 것이었다그야말로 뱃살이 벌겋게 닳아오르고 붓고,멍이 드는 것도 아랑곳없이 문지르더라는 것이었다.등어리는 서로 밀어주고...집 사람이 나가고 난 뒤로 나는 곰곰히 생각을 했다.
"지금 전 세계의 트랜드는 비만퇴치인데,그 중에서도 뱃살은 특히 골칫덩어리 아닌가..."
"정말로 접시로 문지르면 뱃살이 빠지는지 먼저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각종 자료를 모으고 전문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젊었을 때 경희대교수한테 한의학과 침술공부를 하면서 각종 한의학 서적을 공부한 탓에 이해하는 데는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직접 경혈학 연구원론책을 만들었으며, 한 때는 중국침구연구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었다. 인체의 12경락 365혈을 노래 부르듯이 따라 부르게되면 그것을 전부 외울 수 있도록 표를 만들었으며, 한글만 알아도 침술을 공부 할 수 있도록 아주 쉽게 만든 경혈학연구원론이라는 책은 스님및 소일거리가 없는 중년층이상의 사람들한테 인기가 있었다.하루는 노스님이 찾아와서 침술을 배워야겠다고 하길래 제가 가리칠게 없을 것 같다고 말했더니, 그 스님 말이 "신도들이 절에오면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서 그냥 눕는다.여기 저기 침 좀 놓아달라고 부탁을 하는데..그런데 어깨 너머로 침놓는 것은 알겠는데 이론적으로 모르니까 불안해서 이론 공부할려고 왔다" 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스님에게 책을 주면서 설명을 해주었더니 혼자서 공부할 수 있겠다고 하면서 책을 받아쥐고 돌아갔다.노 스님의 뒷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언젠가는 겐꼬 사이트에서 12경락 365혈에 대해서 침술 명강의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문지르면 살이 빠진다는 것에 대해서 각종 자료를 조사해보니 의외로 자료도 방대하고 역사도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더욱이 그것을 응용해서 오늘 날 각 병원이나 한의원에서 활발하게 시술을 하고 있다.
중국의 북경 중문의대에 꽈샤학과가 있는데 이것이 소위 온 몸을 문지르는 것이다.
화투모양으로 생긴 것으로 온 몸을 가마솥의 누룽지 긁어주듯이 박박 긁어 주는 것이다.
몸에서 피가 나고 상처가 생길 때까지 문지르는 것이다.그렇게하면 몸안의 더러운 피를 밖으로 내보내고 혈액순환을 시켜줘서 건강에도 좋고 부위별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현재 대만같은 곳에는 우리나라 비만센타처럼 여기저기 꽈샤업소가 많이 있다.한국 관광객들도 대만 가면 꽈샤요법을 받고 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국내외에 꽈샤학회,연구회,동호회가 많다.
한국의 전통 민간 요법중에는 전신경락 청혈요법과 접시경락 맛사지라고 있는데 이것 역시 중국의 꽈샤하고 똑같은 방식인데 이름만 다를 뿐이다.국내에서 연구가 활발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외에도 국내외에 대부분의 병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복부비만 치료인 엔더몰러지(뱃살감압요법),메조테라피요법(지방분해주사) 복부비만 센타에서 주로 시행하고 있는 복부 맛사지 요법,다이어트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중에 뱃살을 문질러주고,꼬집으면좋다,저주파치료기.국내외의 진동안마 기구,의자,헬스장의 벨트맛사지기,고급욕실의 월풀 ,한의원의 지방분해 자극 침,부항,사혈,침술,뜸등..피부에 자극을 줘서 치료하는 한방적인 것들,많은 찜질방에서 주로 여성들이 접시로 뱃살을 문지르는 방법등이 근간은 전부 똑 같다는 것을 알았다.
엊그제 뉴스를 보니까 현재 국내에 맛사지관련 업소가 3만군데가 넘는다고한다.한번 맛사지받는데 5만~10만원 정도 받는다고 하는데 맛사지라는 것이 효과가 있으니까 그렇게 많은 업소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뱃살을 자극하고 문질러주고,맛사지해주면 지방이 분해되고 살이 빠진다는 이론은 일치하는 것 같다.그러다 나는 문득 "왜 문지르는 도구를 아프게 만들었는가?" 하는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왜 문지르는 것이 살 빼는데 좋은가 하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것 이었는데 연구조사를 하다보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것 이었다.아니 왜 이렇게 훌륭한 전통 민간요법을 그동안 개선할 생각은 안하고 피가 나도록 문지르는 것만 수천년전부터 오늘 날까지 해오고 있었는가??어느 날 우리 사무실에 중년의 여성이 팻킬러를 사러 왔다.그런데 목 부위에 벌겋게 긁힌 자국이 많았다.나는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그 사람 하는 말이 "어제 접시 경락을 받고 왔더니 이렇게 됐다"하는게 아닌가...참으로 어이없고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문질러도 피가 나지않고 아프지않은 팻킬러를 만들게 된 것이다.시행착오가 2년 가까이 걸렸다.팻킬러관련 특허가 5건이나 될 정도로 시행착오를 겪은 제품이다.그냥 볼때는 단순히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오늘 날의 팻킬러가 탄생하기까지는 전국의 많은 공장들을 돌아다니면서 샘플을 만들어서 실험을 하고 실패하면 다시 또 만들어서 오늘 날의 팻킬러가 만들어진 것이다.
노 광수는 별명처럼 한 평생 워킹호구처럼 살아왔습니다.앞으로도 희생정신으로 남을 먼저 배려하면서 한 점 거짓이나 부끄럼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겠습니다.사이트에 올라오는 모든 답변은 제가 직접 하고 있습니다.눈 만 뜨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새벽 두세시가 되었든 언제든지 겐꼬사이트와함께 호흡을 같이하고 있습니다.혹시라도 우리 고객님들이 무슨 질문 올린 것이 있으면 빠른 시간내에 제가 아는 범위내에서 답변을 드리고 있습니다.제가 아는 범위를 벗어나는 질문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를 해서라도 정확한 답변을 드리고 있습니다.현재도 고객님들과 호흡을 같이하기위해서 매일 매일 다이어트,건강관련 자료수집과 독서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왜 물만먹어도 살이 찌는가? 올바른 다이어트는 무엇인가?도데체 식이요법을하고 운동을해도 나는 왜 살이 안 빠지는가? 정체기에서 탈출하는 법은 무엇인가? 뱃살을 확 빼는 방법은 없는가?비만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질병은 무엇인가? 생활속에서 간단하게 할 수있는 운동은 무엇이 있는가? 왜 운동을 하는 사람은 빨리 늙는가? 아마 밤새도록 질문을 던져도 끝이 없는게 다이어트 분야가 아닌가 싶다.
운영자 노광수는 성숙하고 지적인 고객님들과 호흡을 같이하기 위해서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변하고 대중을 상대로 비만관련에 대해서 연설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비록 나이는 53살이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은 아직도 20대 초반에 머물러 있습니다.언제까지나 늙지않고 고객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사무실에서는 일하는 틈틈히 덤벨과 팻킬러를 하고 있습니다.집에 도착해서는 쇼파에 앉아서 TV볼때도 덤벨과 팻킬러를 하고,쇼파에서 다리를 들어올리기도 하곤 합니다.그리고 가끔 쇼파밑에다 발집어놓고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습니다.새벽이든 저녁이든 하루 중에 짬을 내서 매일 10킬로씩 뛰고 있습니다.건강이나 다이어트는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고 몸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 입니다.쉬지않고 움직여주는 것 입니다.제가 때로는 여러분의 질문에 실감나게 답변을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 이유는 제 자신이 이렇게 철저하게 운동을 하고 식이요법을 하고 몸매관리를 하고 있기때문에 경험에 의한 답변을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근력운동,유산소운동,다이어트,인체의 건강,질병,한의학에 관한 어떤 것이라도 여러분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성심껏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저희 사이트가 다른 사이트에 비해서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하지만 체험사례나 자유게시판은 세계 제일이라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계속 지켜봐주시면 더욱 노력하여 고객님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지금 팻킬러는 일본,미국,유럽지역의 바이어들과 활발한 상담을 벌이고 있습니다.팻킬러가 전 세계에서 뜨는 그 날까지 다 함께 응원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