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딸 한비야 경기대 강의 내용 요약
1.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있어야할 곳은 어디인가?
발목이 묶여 있는 아기코끼리를 본적이 있는가? 인도나 태국에서는 야생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일단 어린 코끼리를 유인해서 가둔다. 그리고 발에 어느 정도 길이의 굵은 사슬을 채우고 우람한 나무기둥에 묶어둔다. 아기 코끼리는 어떻게든 쇠사슬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우람한 나무기둥은 꿈쩍하지 않는다. 아기코끼리는 발버둥치기를 반복하면서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렇게 자란 코끼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으며 다 성장한 코끼리는 가느다란 밧줄로 작은 나뭇가지에 묶어놔도 도망가지 못한다.
코끼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밧줄. 월드비전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한비야 자신의 밧줄은 여자, 한국사람 으로서의 제약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있어 밧줄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가 무언가를 하고자 결심할 때 주위에는 많은 제약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이젠 너무 늦었어.’ 라고 흔히들 이야기 한다. 과연 그럴까? 축구는 전반 45분 후반 45분 총 90분이다. 인생을 축구로 비유한다면 1분당 한살 꼴. 대학생들은 이제 막 전반 20~30분이 지난 상황이다. 전반 20분에 한 골 먹었다고 짐 싸서 나온 축구선수가 있는가? 지금은 늦은 때가 아니며 시작인 것이다.
‘사막에 사는 낙타와 숲 속에 사는 호랑이’ 모두 받아들이기에 거리낌이 없는 말이다. 하지만 ‘숲 속에 사는 낙타와 사막에 사는 호랑이’ 는 어떨까? 적응에 실패하여 죽음을 맞거나 적응 했다고 하더라도 제 능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할 곳이 어디인지를 찾아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가장 알맞은 시기는 입시에 시달리는 고등학생이 아닌 바로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바로 이 때다. 자신의 인생을 곰곰이 생각해보라.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내 자신의 능력이 최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2. 세계지도를 가슴 속에 품어라
관광개발학과의 강의시간인 이 시간. 여기에 모인 관광학부 학생들 아니 그 외에 여기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방에 세계지도가 붙어 있는 사람이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방에 지구본이 있는 사람은? 정치 기자로서 청와대 출입이 빈번했던 아버지. 잠시 여유가 생기면 아버지는 우리 남매들에게 세계지도를 보며 퀴즈를 내곤 하셨다.
아버지 : 팔레스타인이 어디에 있지?
남매들 : (한참을 찾아보다가)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요.
아버지 : 물론이지. 팔레스타인은 지도상에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라고 이야기하면서 팔레스타인의 정세 등을 이야기하며 우리들의 관심을 세계를 향하게 해주셨다. 세계지도를 보며 난 아버지에게 물었다.
한비야 : 땅들이 다 붙어 있네요.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서 갈 수 있을까요?
아버지 : 그럼. 당연하지.
한비야 : 그럼 내가 크면 꼭 저 끝까지 걸어서 가 볼 거에요.
어린 나는 이 다짐을 친구들에게 이야기 했다. 친구들의 반응은 모두들 깜짝 놀라며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반응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지역 속의 나, 대한민국 속에서의 나 자신으로서의 좁은 시야를 갖고 있다. 한국은 베이스캠프이다. 험한 산의 정상을 올라가기 위한 전진기지이자 체력을 보충하기 위한 전진기지인 베이스캠프는 무대가 아니다. 우리의 무대는 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 이다. 자신의 방에 세계지도가 없다면 오늘 돌아가서 세계지도를 사서 자신의 방에 붙여놓자. 매일 세계지도를 바라보며 세계를 마음속에 품고 살자.
3.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은 무엇인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우리는 ‘정글의 법칙’을 떠올리게 된다. 약육강식/무한경쟁의 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권모술수를 써가며 강자에 올라선 후 약자를 눌러라 라는 이야기도 서슴치 않는다. 세상에는 이렇게 만연한 정글의 법칙만이 존재할까? 여행을 다니며 발견한 또 다른 법칙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사랑과 은혜의 법칙’이 그것이다.
1950년 6.25전쟁 이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나라가 되었다. 월드비전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고아와 미망인을 돕기 위해 미국 선교사 밥피어스 목사가 설립한 국제구호 및 개발기구이다. 한국에서 첫 구호사업을 시작한 월드비전은 현재 세계 최대의 기독교 구호단체로서 전 세계 100여 개 국에서 9천만 명을 대상으로 긴급구호사업, 지역개발사업, 옹호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1950년 이후부터 1990년까지 월드비전의 지원을 받은 한국은 강대국의 대열에 올라섰다. 더 이상 약소국이 아니다. 즉 도움을 받는 나라가 아닌 도움을 주는 나라 즉 돕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움이 필요한 우리가 도움을 줘야할 약자는 누구인가? 현재 한국에는 없지만 아프리카에선 굶어 죽는 아이가 많다. 기아의 상황에 처한 아프리카의 아이들의 눈동자를 바라 볼 때. 마음속에서는 그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곤 한다. ‘나는 왜 이렇게 여기서 죽어야 되는거죠?’ 단지 그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굶어죽는 아이들. 그들을 위한 식량은 없는 것일까? 정답은 “No”이다. 식량은 있으나 배분의 문제인 것이다. 그 굶어죽는 아이들이 있는 마을에서 20분 정도만 차를 타면 시장이 있다. 그 시장안의 곡물상의 창고에는 곡물이 가득 쌓여 있다. 그 곡물상에게 난 따지듯 물었다.
한비야 : 바로 옆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걸 모르나요? 왜 이렇게 곡물을 쌓아 놓고만 있는거죠?
곡물상 : 난 장사꾼입니다. 쌀 때 사고 비쌀 때 파는 것이 내 일이지요.
상인으로서 자신의 도리를 다하는 것.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정글의 법칙’만으로 세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글의 법칙’과 ‘사랑과 은혜의 법칙’이 함께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더 확대해서 ‘정글의 법칙’의 기저에 ‘사랑과 은혜의 법칙’이 깔려있지 않다면 그 가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 자신도 처음부터 사랑과 은혜의 법칙에 재미를 느끼지는 않았다. 한국 월드비전 박종삼 회장과의 만남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긴급구호를 해보라고 제안했고 난 현장을 가본 후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 현장에서 난 유명한 케냐의사인 아싸를 만났다. 극심한 가뭄의 현장에서 한센병(나병 문둥병이라고도 한다)과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기아로 인해 사선을 넘나드는 아이들. 몸을 가누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눈조차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그런 아이들에게 식량(죽)을 준다. 그렇게 약 2주가 지나면 눈을 뜨고 몸을 가누며 살아난다. 그렇게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가 2주간 하루 한 끼씩 먹는 고단백 분말 영양식을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만원. 만원으로 한 생명의 불씨가 다시 살아난다는 이야기다.
현장에서 함께 활동 하면서 좀 더 친해진 난 아싸에게 물었다.
한비야 : 의사라는 직업으로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고생하면서 이런 일을 하는 거죠?
아 싸 : 내가 가진 재능을 돈버는 일에만 쓰는 것은 아깝지 않나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로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아싸의 말은 내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내 피를 끓게 하는 일. 그 일은 무엇인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내 자신의 해답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속에 있다. 작년 쓰나미 현장에서의 일이다. 나는 재앙 발생 후 48시간 내 도착해야 하는 긴급구호 팀장으로서 그 현장에 들어갔다. 건물 곳곳에 널려있는 시체들. 우리가 그 시체들을 한 구, 한 구 도로가에 옮겨 놓으면 공무원들은 그 시체를 처리한다. 또한 그 밖의 생존자들에게 물과 식량, 생필품을 공급하기도 한다. 하루 수면시간은 약 2~3 시간. 수면부족 시 안구가 충혈 되는 경향이 있는 나로서는 그 증상이 심해져 눈물이 흐를 때 피가 섞여 나오기도 한다. 흔히 말해 피눈물이 흐른다. 하지만 피눈물 나게 하는 일을 언제 해봤을까? 피눈물을 흘려가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로 긴급구호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이 힘을 내는 모습을 볼 때. 바로 그 때이다.
여러분들의 피를 끓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4. 나는 어떤 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마칠까 한다. 나는 이 손을 볼 때마다 기도한다. 이 손이 남의 뒤통수를 치는 손이 되지 않기를…. 남의 것을 빼앗는 손이 되지 않기를….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눈물을 닦아주는 손이 되기를…. 이 시간,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의 손을 바라보며 이 물음을 던져보길 바란다. ‘나는 어떤 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나는 여기 모인 여러분들의 손이 나눌 수 있는 어떤 것을 나누는 손이 되기를 기도한다.
글 : 경기대 수습기자 최 동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