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화약/나침반/인쇄술입니다
이 네 가지가 중국으로부터 서양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서양에서 <중국의 4대 발명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하나하나씩 꼽아보면
종이는 105년경에 중국 후한(後漢)의 채윤(蔡倫)이 처음 만들었다. 751년에는 중앙 아시아, 793년에는
바그다드에 전파되어, 결국 유럽에까지 전해졌죠. 물론 유럽에는 이집트의 파피루스 식물로 만든 파피
루스 종이나, 짐승가죽으로 만든 양피지 같은 게 있었지만, 중국산 종이가 훨씬 실용적이고 품질도 좋았
나 봅니다.
화약 중 최초로 발명된 것은 흑색화약입니다. 초석(질산칼륨)·황·숯의 혼합물이죠. 10세기경 중국에서
발명되어 불꽃놀이나 신호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아랍인이 흑색화약을 처음 개발했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1304년에 아랍인은 대나무통을 쇠로 보강한 최초의 총을 만들었는데 화살을 쏘기 위해 흑색
화약을 썼습니다. 어쨌거나... 중국에서는 자기네들 발명품이라고 주장합니다.
나침반은 자석이 저절로 남북방향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일찍이 발견한 중국인들에 의해 여러 형태로 제
작,사용하였는데 이에 관한 신뢰성 있는 기록은 11세기 이후의 문헌에서 보입니다. 이후 아라비아를 거
쳐 유럽으로 전래되었죠.
인쇄술은 최초의 활자를 1041~48년경 중국의 필승(畢昇)이 점토와 아교를 섞은 뒤 구워 만든 것으로
추측됩니다. 1313년 역시 중국의 왕정(王禎)이 목활자 6만 자를 새겨 기술사에 관한 책을 출판했지요.
그러니까 이건 우리나라가 최초의 것으로 되어 있는 목판인쇄와는 다른, 활자인쇄라는 겁니다. 세계최
초의 목판인쇄본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706~751년)인데요. 이건 넓은 판자에
다 글자를 줄줄이 새긴 거고, 중국에서 자기들이 세계최초라 주장하는 것은 조각 하나에 글자 하나를 새
긴 활자를 말하는 겁니다.
============================== dmayj82님께서, 나침반의 기원은 신라이고, 신라침반을 줄여서 나침반이라고 한 것이라는 문제제기를
해오셨습니다. 그래서 한 번 이 부분에 대해 찾아보았는데요,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 국사편찬
위원회 위원, 문화재 전문위원 및 유네스코위원으로 활동한 박성래 교수님의 글을 참고하게 되었습니
다. 아래에서 몇 가지만 간추리겠습니다. 원문은 http://www.kps.or.kr/%7Epht/7-7/33.html 을 참고하
시길.
중국 후한 때, 왕충(王充)이란 사람이 서기 83년에 쓴 <논형(論衡)>이란 책에 자석의 남북 지향성에 대
한 기록이 나옵니다. "사남의 표를 땅에 던지면 그것이 남쪽을 향한다."(司南之杓 投之於地 其灏指南)
여기서 말한 표(杓)란 것은 원래 북두칠성의 자루를 가리키는 말인데, 그것은 2천 년 전에 등장했던 일
종의 점치는 장치로서 네모진 판에 방위(方位)와 점괘(占卦)를 적어 놓고 그 위에 자석으로 만든 숫가락
을 던져 돌려주면 그것이 남북을 향하게 될 터이니 이를 이용하여 점을 쳤던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습니
다.
중국에서는 이것이 바로 중국의 4대 발명의 하나라고 한답니다. 중국측 설명에 의하면 중국에서 나침반
에 관한 기록이 처음 보이는 것은 기원전 3세기 전국(戰國)시대부터라고 한답니다. 특히 사남을 돌려주
는 판(地盤)은 낙랑(樂浪)에서 출토된 칠기 유물에 그려진 것을 근거로 다시 만들어 본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제시기 발굴된 낙랑고분에서는 원과 네모의 하늘과 땅을 나타낸 판(天地盤)에 방
위, 간지와 기본 별자리를 그렸던 흔적이 남은 칠기가 발견되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실제로 낙랑은 중국 한나라의 식민지라 할 수 있었던 곳이고, 이 낙랑의 점치는 판 '식점천지반
(式占天地盤)' 이외에 한반도에서 언제 어떻게 자석이 알려지고, 전기현상에 주목하기 시작했던가는 아
직 연구되어 있지 못합니다. 그런대로 흥미있는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자석을 중국에 보냈
다는 기록을 들 수 있습니다. 신라 문무왕 9년(669년) 정월에 당나라 승려 법안(法安)이 와서 천자의 명
령이라며 자석을 요청하니, 그해 5월 신라는 급찬 지진산(祗珍山) 등을 당나라에 보내 자석 2상자를 바
쳤다는 것입니다.
7세기의 일이니까 당시의 중국에서는 이미 자석을 사용하는 길이 여러 가지로 알려져 있었고, 거기 필
요한 천연자석을 신라에서까지 얻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삼국시대의 자석에 관한 기록이 이 정
도밖에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신라 또는 그전의 삼국시대에 자석을 어떻게 이용했던가는 아직 알 길이
없습니다.
더욱 분명하게 나침반에 대해 말한 기록으로는 11세기 송나라의 과학자 심괄(沈括, 1033-1097)을 들어
야 할 것입니다. "방사(方士)는 자석으로 바늘을 문질러서 그것을 남쪽을 향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약간 동쪽으로 기울어 정확한 남쪽을 향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물 위에 띄워두면 불안정한 것이
흠이다. 손톱 위에나 그릇의 가장자리 위에 놓으면 잘 돌아가기는 하지만 금방 밑으로 떨어져버리기 쉽
다. 가장 좋기로는 자침의 중심점에 밀랍을 달고 여기를 명주실로 묶어서 균형을 잡고 바람 없는 곳에
두면 바늘이 언제나 남쪽을 향한다. 바늘 가운데에는 북쪽을 향하는 것도 있는데... 아직 아무도 그 이치
를 설명할 수는 없다." <몽계필담> 제24권 18조
이 문헌은 당시의 중국에서 나침반이 여러 가지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가리킵니다.
서양에서는 자석의 방향성을 알고 활용한 예를 1190년에서야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알렉산더 네캄의 글에 처음으로 항해에 나침반을 사용하는 기록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랍에
서는 오히려 이보다 조금 늦게서야 나침반의 사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저러한 근거를 토대로 박성래 교수님은 나침반의 발명과 사용은 중국이 세계 최초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결론 내립니다.
그리고 박교수님의 글을 읽고 나름대로 추측해보건대, 중국에서 '나침반'이라고 부른 것은 신라에서 그
도구를 처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도구의 원료가 되는 자석을 신라에서 많이 들여왔기 때문이 아닐
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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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羅針盤)’ 도 우리 나라꺼래요!>
방위를 측정하는 기구인 ‘나침반(羅針盤)’ 을 더러 ‘나침판’ 이라 하나, 이는 표준어가 아닙니다. 그런데
‘침반(針盤)’ 이라고도 하는 이 ‘나침반’ 과, 이의 다른 말인 ‘나경(羅經)’ 에 쓰인 ‘나(羅)’ 는 어떤 뜻으로
쓰인 것일까요.
인류 최초의 나침반인 ‘사남(司南)’ 에 관한 첫 기록은 중국 후한(後漢) 때 왕충(王充, A.D 27 - 97) 의 ꡔ
논형(論衡)ꡕ인데, 이에는 자석을 숟가락 모양으로 만들어 식반(食盤) 위에 던져 운수를 점친다고 하였
습니다.
자석에 관한 최초의 중국 기록은 전한(前漢) 때 유안(劉安, B.C 179 - B.C 122)이 명해 쓴 ꡔ회남자(淮
南子)ꡕ라는 책이 있는데 여기에는 ‘자석’ 이란 말이 오늘의 ‘磁石’ 이 아닌 ‘慈石’ 으로 씌어 있는데, 자석
이 남북을 가리키는 도구로 쓰이는 경우는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로서는 ꡔ삼국사기(三國史記)ꡕ에 신라 문무왕 때(699) 당나라 고종이 승려 법안(法安)을 신
라에 보내 자석을 구해 갔다는 기록이 있고, ꡔ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ꡕ 에도 경상도의 특산
가운데 자석을 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석으로 만드는 나침반을 최초로 사용한 것은 중국으로 알고 있는데, ‘나침반’ 의 ‘羅’ 는 ‘신
라’ 를 뜻한다는 국내외 학자들의 학설이 있습니다. 곧, 대부분의 특산물은 그 지역명을 따른 것으로 볼
때, ‘나침반’ 은 ‘신라 침반’ 이란 것이지요.
낙랑(樂浪, B.C 108 - A.D 313) 고분에서 발굴된 식점천지반(式點天地盤)의 조각은 바로 2000년 전쯤
에 우리 선조들이 중국과 비슷한 방법으로 점을 친 것을 알 수 있고, 중국의 어느 나침반 설명문에 보이
는 「방위표(지반, 地盤)는 고대 낙랑 지방에서 출토된 옻 지반을 복원한 것이다」 란 기록이 이를 뒷받침
하고 있습니다.
‘나침반’ 이란 말이 ‘신라 침반’ 에서 온 것이란 것은 더 연구가 있어야겠지만,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게
되는 것 같아 반갑게 생각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