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5시 2015.12.8
제목: 강촌출렁다리
1. 오늘은 강촌 출렁다리에 대해서 소개해 주신다고요. 출렁다리라 하니까, 흔들거리는 다리 같습니다. 어디 있는 다리인가요?
강촌은 너무나 잘 알려진 그야말로 국민관광지라 하는 춘천시 남산면에 있는 강촌리를 말합니다. 통상 사람들은 강촌하면 강이 있는 마을을 생각합니다만, 보통명사가 아닌 강촌리라는 지명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입니다.
강촌리에 북한강의 한 구간인 둥덜리강을 건너는 출렁다리가 있어서 명물이었습니다. 푸른 강물 위로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는 스릴과 낭만은 환상적이었습니다. 시원한 강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떨어질 것 같은 불안에 연인들은 더욱 손을 꼭 잡게 되었지요. 너무나 멋진 추억의 다리였습니다.
2. 추억의 다리라면 지금은 없는가요?
예, 원래 강촌의 낭만을 자극했던 둥덜리강을 가로지르던 출렁다리는 철거를 했습니다. 1972년에 건설되었다가 1985년에 철거를 했으니, 13년 간 있었던 다리입니다.
지금은 옛 추억을 살리며, 5분의 1로 축소를 해서 물깨말 앞에 새로운 출렁다리를 만들었습니다.
3. 그러면 원래 출렁다리는 없어지고, 새로운 출렁다리를 만든 것이네요? 같은 장소에 있나요?
강촌은 강촌인데 그 위치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북한강인 둥덜리강에서 강촌의 물깨말 앞을 흐르는 강촌천으로 옮겨졌습니다.
강촌사람들은 옛 강촌출렁다리가 없어진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출렁다리에 대한 향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춘천시에서는 경춘선 폐철도 관광자원화 사업의 하나로 20억 원을 들여 강촌천변에 마을주차장과 함께 출렁다리를 2015년 건립하였습니다. 춘천시는 출렁다리 입구에 시민의 옛 사진들로 추억의 공간을 만들고 교각에 야간경관을 위해 조명도 설치했습니다. 아울러 옛 출렁다리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의미로 “어게인 1972강촌(Again 1972 Gangchon)”이라는 조형물도 설치했습니다. 강촌 관광지의 끝없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바람직한 일이지요.
4. 아, 그렇군요. 그런데 출렁다리의 이름은 뭐였어요?
강촌 출렁다리는 출렁이는 다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들이 부른 것이고요. 원래는 등선교라 해서 신선이 오르는 다리라는 뜻으로 썼습니다. 그 당시 삼악산에 있는 등선폭포가 유명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았습니다. 그래서 등선폭포의 이름을 따서 등선교라 한 것입니다. 신선에 대한 동경과 신선처럼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상이 담긴 이름입니다.
5. 등선교라, 그 위를 걸으면 정말 신선 같은 느낌이 들었겠어요. 그럼 어떻게 출렁다리를 놓게 되었나요? 이에 대한 계기나 비화가 있을 것 같은 데요?
강촌의 등선교, 일명 출렁다리가 건설 된 계기가 있습니다. 그 당시 남면 일대의 사람들은 넓은 강과 높은 고개가 가로 막고 있어서 춘천시내까지 오가는데 많이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룻배를 이용해서 강을 건너든가, 수동리에 있는 한치재, 강촌 말골의 의암고개, 광판의 덕만이고개 등을 반드시 넘어야 했습니다. 등짐을 지고 수십 리 길을 걸어 시내까지 왕래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지요. 그렇다고 도로를 뚫든가 다리를 놓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북한강의 양쪽에 굵은 로프를 연결해서 그 로프로 버스를 매달아 강을 건너게 하려고 했습니다. 큰 쇠줄 하나에 의지해서 버스를 공중에 띄워 옮기는 것이지요. 그런 얘기가 오갔는데, 그때 춘성군에서 일본의 기술을 활용해서 현수교를 놓을 것을 생각했습니다. 공중에 매단다는 것에 착안을 한 것이지요. 줄을 연결해서 다리를 놓아 사람을 건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인 일명 강촌의 출렁다리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6. 등선교인 강촌출렁다리를 놓고는 지금 춘천시의 전신인 춘성군에서 통행료를 받았다면서요?
다리 양쪽에 매표소를 두고 공무원이 통행료를 받았습니다. 다리 건설비용과 관리비 때문이었지요. 처음 1년 동안은 공무원이 상근을 하면서 통행료를 받았고, 그 다음부터는 입찰을 해서 개인업자에게 임대를 줘서 통행료를 받았습니다. 마치 요즘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7. 그런데 왜 출렁다리가 철거되었나요?
문제는 관리 부실이었습니다. 원래 현수교를 건설할 때 그 용도가 사람만 건너다닐 수 있도록 설계 되었습니다.
그런데 출렁이는 다리 위로 자동차가 건너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짚차와 경운기는 물론이고, 버스나 트럭도 간간이 다리 위로 건너다녔습니다. 특히, 관리가 소홀한 밤이면 자동차 통행량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규칙을 위반하고 자동차를 다리 위로 운행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쇠줄을 지탱하던 쇠말뚝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3cm정도 빠졌는데, 차차 더 빠져서 30cm가 넘게 쇠말뚝이 빠져나왔습니다. 그 때문에 다리가 강바람과 함께 지탱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요동을 치게 되었지요. 그래서 다리를 건너던 사람들이 다리에서 떨어져 죽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 사연으로 강촌의 명물이었던 출렁다리는 다리를 건너다니던 사람들의 추억만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8. 그럼 지금은 출렁다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겠네요?
출렁다리에 얽힌 추억으로 대부분 사람들은 빛바랜 사진 한 장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양쪽에 반쯤 잘린 채로 있는 교각을 볼 수 있습니다. 두 개의 폐교각은 지난 2011년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이 ‘흉물스러운 지장물이라며 철거해 달라’는 춘천시의 요청에 따라 모두 철거를 하려다가 강촌주민의 반대로 반쯤 잘린 채 남아 있습니다.
철거하고 남은 등선교 교각에는 옛 등선교의 사진이 양면에 크게 붙어있습니다. 사진 한 장은 경운기와 자동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고, 또 한 장은 출렁다리 전체를 찍은 사진입니다. 그리고 폐 교각 한 면에는 이문섭 시인이 쓴 <물안개>라는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시를 보면 물가에서 님을 생각하는 낭만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물안개>
젖은 강가에서
나홀로 그 사람을 생각한다
만날날 기약 없는 사람이기에
그리울 때면
물에 비친 미소 떠올리며
강가에서 선다
바람을 따라
그 사람 떠났어도
내 가슴에 남아 있는 사람이
눈물 속에 핀 물안개처럼
섧도록 섧도록
아름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