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country for old man
컴퓨터에 이 영화를 깔아놓은지가 2주 가량 지나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남부 텍사스 영어는 알아듣기가 아주 힘듭니다. 물론 그렇다고 뉴욕 영어도 아주 수월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요.
이상하게 혀를 꼬부리는 부분들, 영어하는 사람으로서는 흑인들 영어(ebonics)와 더불어 좀 다른 영어로 규정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영화 1시간 40분이 흐르도록 그 도망치는 작자와 킬러의 이름도 제대로 알아먹을 수 없었습니다. 토미 리 존스는 그대로 톰이어서 좋았지만요.
영화는 굉장한 황량하고 지루한 풍경과 배경음악까지 실종되어 아주 늘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긴장이 아주 팽팽합니다. 약간만 느슨해지면 그만 일이 터져버리더군요.
'노인'이란 말은 제 짐작으로는 은유인데, 니체와 연관을 지으면 어거지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삶에 의지(will to power)가 소멸한 사람을 가르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무자비한 킬러는 작자 혹은 감독의 대변인처럼 느껴져 어떤 경우에는 지나치게 설교조란 느낌도 들었지만 좋았습니다. 제가 니체와 연관시킬 수 밖에 없었던 부분들은 그 킬러가 차에 기름 넣으로 가게에 들렀다가 그 주인과 하는 대사와 같은 부분들입니다. 죽음이 임박해 있는지도 모른체 그 노인은 여전히 살아온 습관에 의존한채, 마치 그 습관이 자신의 목숨을 연장해줄 수 있다는 듯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혹은 무엇을 걸고 동전 앞뒤 맟추기를 해야하는지에 관해 묻습니다. 물론 본능적으로 그 킬러에게 살의를 느낄 수 있었겠습니다만 그 작자는 결국 자기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는 사실, 혹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 삶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이 영화에 등장해서 죽어나가는 대부분의 캐릭터들 같은 존재죠.
이러한 예중에 한 극단적인 경우는 또 다른 해결사인 칼슨입니다.(우디 해럴슨 분) 칼슨은 댄디한 전문가입니다. 충분히 그 바닥에서 살아남은 노련미가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배어나죠. 하지만 그 킬러가 칼슨에게 호텔 방에서 처형직전에 던진 이런 말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If you followed the rules (of yours), which led to this point, what's the point of it?' 앞에 그 습관에 의존하는 가게 주인과는 달리 철저한 프로정신으로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를 가두고 말았던 것은 프로가 되어 살아남기 위해 만든 그 rules였다는 것이죠.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주인공(이라고 해도 되겠습니까?)의 애인을 킬러가 찾아가서 죽이기 전에 나눈 대화 역시 한 번 되씹어 볼 만 합니다. 여자는 이제 자기를 죽일 이유가 없으니 살려달라고 합니다. 역시 니체가 들어오는 장면이죠. causality에 얽매여 처한 상황을 어떻게 해보려는 습관이죠. 역시 처형당합니다.
사실 주인공이 죽었을 때 좀 황당하더군요. 예상은 했습니다. 결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러나 가만히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 역시 (물론 제 사유역시 causality안에 갇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과 무관하지 않더군요.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특히 die hard류의 스토리 전개방식에 익숙해져버린 저와 같은 경우) 최선을 다 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습관 역시 무참하게 배반당합니다. 적어도 죽기 전에 그렇게 전선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서의 변, 한마디 즈음 기대했지만 역시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더군요.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작자가 죽임을 당한 순간은 그 작자가 아내를 기다리면서 마음을 놓아버린 순간입니다.
수영장 가장자리에서 담배를 피면서 한 요부가 그를 자극하죠.
요부: I have some beer inside.
주인공: I'm waiting for my wife.
요부: Then I'll bring them outside and let you stay married.
주인공: I'm afraid what that beer might lead to.
요부: Just another bottle of beer.
(역시 기억에 의존해서 재구성한 것이라 실제 대본과는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결혼 한 것을 강조한다는 것은 모럴의 과잉이죠. 그리고 맥주가 다른 무엇으로 이끌 수 있다는 우려섞인 가정은 그의 바램을 드러내죠. 누가 그러지 않겠습니까. 아내 아닌 여자와 공짜 한 섹스. 그러나 그의 삶의 핵심 (쫓고 쫓기는 관계, 치열한 생사의 전선에 있음)에서 그런 소박한 모럴이나 바램따위가 끼어들 틈은 전혀 없었죠.
마지막 톰의 꿈의 관한 이야기는 주제를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꿈에 나타난 두 번째 남자- 모피에 뿔을 씌워 가지고 가는 건지, 뿔 위에 앉아서 가는 건지, 말을 타고 가는 건지, 아직 수련이 많이 필요한 저 실력으로 다 잡을 수 없었습니다만 그 사람은 결국 자기를 지나쳐 어디 먼 곳으로 갈 것이고 꿈속에서지만 톰은 그가 자기가 이를 곳에 그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고 했죠. 이 말은 휠체어에 앉은 자기 친척인지, 누군지를 방문했을 때 그 작자가 톰에게 한 말과 일치합니다. 'You can't stop what's coming.' 결국 피하려고 한다고 해서 (나약한 노인들이 할 짓) 피할 수도 없으며 삶에는 그런 작자들이 낄 틈이 없다.
파고와 마찬가지로 그 황량한 분위기 설정 좋았습니다.
그리고 텍사스는 부시 동네라 아주 싫어했는데, 그 부츠, 카우보이 모자, 그 독특한 정장, 텍사스 만의 어떤 정취, 이런 거 좋았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초반부에 물달라고 죽어가면서 애원했던 멕시칸에게 다시 물을 가져다주러 밤늦게 다시 찾아가는 장면 등은 좋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자의 로망이겠지만, 본 아이덴티티나 더블타겟 등에서 나온 그 치열함과 치밀함, 두려워 하지 않음, 두려워 할 수 없음(죽기 때문에) 이런 것들 역시 그 황량한 풍광과 어우러져 아주 좋았던 것 같습니다.
너무 길었지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석조드림
첫댓글 니체의 의지와 연관시킨 것은 재미있습니다. 이미 세상은 험해져 더 이상 개인의 의지로 삶 전체, 또는 흘러가는 세태 전반적인 것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 세태는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그 개인의 노력을 소용이 없다는 것인가요? 코엔형제의 영화들은 기존의 틀을 깨는 것들이 많아, 아니 오히려 그런 것이 더 현실적이겠지만, 매우 참신합니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틀에 갇힐 필요도 없구요. 그래서 처음부터 그런 기대를 하고 영화를 보게 되지요. causality로 설명한 것도 재미있습니다. 영화를 매우 섬세하게 보는 것 같아서 영화보는 자세가 범상치 않음을 느낍니다. 어려운 영화의 주제가
엇인지를 고민하기에는 너무 일상이 바빠 또 한참 잊어버리고 지냈어요. 글, 고맙습니다.